영화와 현대소설에 나타나는 베르그쏭적 시간 개념을 우리는 - 영화와 소설에서처럼 뚜렷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 현대예술의 모든 장르와 경향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른바 ‘심적 상태의 동시성’은 현대미술의 여러 경향을 연결시켜주는 기본 체험으로서, 이딸리아의 미래파에서 샤갈의 표현주의, 삐까쏘의 입체주의에서 지오르지오 데 끼리꼬Giorgio de Chirico와 쌀바도르 달리의 초현실주의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음직임에 일관되어 있다. 정신활동 과정의 대위법과 그 내면적 상호연관의 음악적 구조를 발견한 것은 베르그쏭이었다. 마치 우리가 한 음악작품을 제대로 듣는 경우 지금 울려나오는 음정 하나하나와 그전에 나온 모든 음정들과의 상호관계를 귀에 담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가장 깊고 중요한 경험에서는 우리가 과거에 체험하여 우리 것으로 만들었던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충분히 이해할 때 우리는 우리 영혼을 마치 하나의 악보처럼 읽게 된다. 그리하여 두서없이 뒤섞인 소리들의 혼돈상태를 지양하고 여러 음정의 예술적 합창으로 변모시키는 것이다.
모든 예술은 혼돈과의 유희요 혼돈에 대한 싸움이다. 예술은 언제나 혼돈을 향해 점점 위태롭게 다가가서 더욱더 넓은 정신의 영토를 그로부터 건져오는 작업이다. 예술사에 어떤 진보가 있다면 그것은 혼돈으로부터 탈환해온 이러한 영토의 끊임없는 확대를 말하는 것일 게다. 영화는 시간의 분석을 통해 이러한 발전을 또 한걸음 밀고 나갔다. 전에는 음악을 통해서만 표현될 수 있었던 경험을 시각적으로 나타낼 수 있게끔 해준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가능성, 아직 비어 있는 이 새로운 형식을 참다운 삶으로 가득 채워줄 예술가는 아직도 나타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