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두 산 사이에서 흘러나와 바위와 부딪치며 사납게 싸우면서, 놀란 파도, 성난 물결, 분이 난 큰 물결, 화가 난 물보라, 구슬픈 여울, 흐느끼는 소용돌이가 달아나며 부딪치고 굽이치고 곤두박질치면서 으르렁 소리치며 울부짖고 포효하며, 언제나 만리장성을 꺾어서 무너뜨릴 기세이다. 만 대의 전차, 만 마리의 전투 기병대, 만 틀의 전투 대포, 만 개의 전투 북을 가지고도 무너뜨리고 깔아서 뭉갤 것 같은 저 야단스러운 소리를 충분히 형용할 수 없으리라.
모래밭 위에 큰 바윗돌은 우뚝하게 외따로 섰고, 강 둔덕의 버드나무숲은 까마득하고 어두컴컴하여 마치 물귀신과 강 도깨비가 앞을 다투어 튀어나와 사람을 놀리는 듯, 교룡較龍과 이무기가 양쪽에서 서로 움켜쥐고 낚아채려 날뛰는 듯하다. 혹자는 말하리라. 여기는 옛날 전쟁터이므로 강물이 이렇듯 으르렁거리며 소리를 낸다고. 그러나 이는 그런 까닭이 아니다. 무릇 강물 소리란 듣는 사람이 어떻게 듣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
내가 사는 연암협燕巖峽 산중에는 집 앞에 큰 개울이 있다. 해마다 여름철이 되어 소낙비가 한차례 지나가면 개울물이 갑자기 불어서 언제나 수레 소리, 말 달리는 소리, 대포 소리, 북소리를 듣게 되어 마침내는 아주 귀에 탈이 생길 지경이었다. 언젠가 문을 닫고 누워서 소리의 종류를 다른 사물에 비유하면서 들어 보았다.
우거진 소나무 숲에서 퉁소 소리가 나는 것 같은 물소리, 이는 청아한 마음으로 들은 것이요, 산이 짜개지고 절벽이 무너지는 것 같은 물소리, 이는 분노하는 마음으로 들은 것이다. 개구리 떼가 다투어 우는 것 같은 물소리, 이는 뽐내고 건방진 마음으로 들은 것이요, 번개가 번쩍하고 천둥이 치는 것 같은 물소리, 이는 놀란 마음으로 들은 것이다. 찻물이 화력의 약하고 강함에 따라서 각기 보글보글 부글부글 끓는 것 같은 물소리, 이는 아취 있는 마음으로 들은 것이요, 거문고가 가락에 맞게 소리가 나는 것처럼 똥땅거리는 물소리, 이는 애잔한 마음으로 들은 것이요, 종이 창문에 문풍지가 떠는 듯 파르르 하는 물소리, 이는 의심하는 마음으로 들은 때문이다. 모두 그 바른 소리를 듣지 못하는 까닭은 다만 자신의 마음속에 어떤 소리라고 이미 설정해 놓고서 귀가 소리를 그렇게 듣기 때문이다.
오늘 나는 한밤중에 한 가닥 강물을 이리저리 아홉 번이나 건넜다. 강물은 장성 밖의 변방에서 흘러 들어와 장성을 뚫고 유하와 조하, 황화, 진천 등 여러 가닥의 강물이 한군데 모여 밀운성密雲城 아래를 지나서 백하白河가 되었다. 나는 어제 배를 타고 백하를 건넜는데, 그곳은 바로 이 물의 하류였다. 내가 아직 요동 땅에 들어서지 못했을 때는 바로 한여름이라, 뙤약볕 아래 길을 가는데 갑자기 큰 강이 앞을 막았다. 붉은 흙탕물이 산더미처럼 밀려 끝이 보이지 않았는데, 이런 경우는 대체로 천리 밖에 폭우가 내린 까닭이다.
물을 건널 때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젖히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나는 속으로 사람들이 고개를 젖히고 하늘에 조용히 기도를 올리는가 생각했다. 한참 뒤에야 알았지만 물 건너는 사람들이 넘실거리고 빙글빙글 빨리 돌아가는 강물을 보면, 마치 자기 몸은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고 눈은 강물과 함께 따라 내려가는 것만 같아서, 갑자기 현기증이 생기고 몸이 빙글 돌며 물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들이 고개를 젖히고 우러러 하늘을 보는 까닭은 하늘에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곧 물을 피하여 보지 않으려 함이다. 어느 겨를에 경각에 달린 생명을 위하여 기도를 드릴 경황인들 있을 것이랴. 이토록 위험하다 보니 물소리를 듣지 못하고, 모두들 말하기를 ‘요동의 벌판은 넓고 펀펀하기 때문에 물소리가 요란하게 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물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요동 땅 강물이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단지 밤에 건너지 않았기 때문이다. 낮에는 눈으로 물을 볼 수 있으므로 눈은 오직 위험한 데만 쏠려 바야흐로 벌벌 떨면서 눈으로 보는 것을 걱정하고 있는 판인데, 어찌 귀에 소리가 다시 들리겠는가?
오늘 나는 밤중에 물을 건너는지라 눈으로는 위험을 볼 수 없으니 그 위험은 오로지 듣는 데만 쏠려 귀가 바야흐로 무서워 부들부들 떨면서 그 걱정을 이기지 못하게 되었다.
나는 오늘에서야 도道라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도다. 마음에 잡된 생각을 끊은 사람, 곧 마음에 선입견을 가지지 않는 사람은 육신의 귀와 눈이 탈이 되지 않거니와, 귀와 눈을 믿는 사람일수록 보고 듣는 것을 더 상세하게 살피게 되어 그것이 결국 더욱 병폐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오늘 마부인 창대가 말발굽에 발이 밟혀서 뒤에 따라오는 수레에 실렸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말의 고삐를 늦추어 혼자 말을 타고 강물에 들어갔다. 무릎을 굽혀 발을 모으고 안장 위에 앉았으니, 한번만 까딱 곤두박질치면 그대로 강바닥이다. 강물을 땅으로 생각하고, 강물을 옷이라 생각하며, 강물을 내 몸이라 생각하고, 강물을 내 성품과 기질이라고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까짓것 한번 떨어지기를 각오했다. 그랬더니 내 귓속에는 강물 소리가 드디어 없어져 무릇 아홉 번이나 강물을 건너는데도 아무런 근심이 없었다. 마치 안방의 자리나 안석 위에서 앉고 눕고 일상생활을 하는 것 같았다.
옛날 우禹 임금이 강물을 건너는데 타고 있던 배가 황룡黃龍의 등에 올라앉는 위험을 당했다. 그러나 죽고 사는 판가름이 이미 마음속에 먼저 분명해지니, 그의 앞에는 용인지 도마뱀인지 족히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소리와 빛깔이란 내 마음 밖에서 생기는 바깥 사물이다. 이 바깥 사물이 항상 사람의 귀와 눈에 탈을 만들어 사람으로 하여금 이렇게 똑바로 보고 듣지 못하게 만든다. 더구나 한세상 인생살이를 하면서 겪는 그 험하고 위태함은 강물보다 훨씬 심하여, 보고 듣는 것이 문득문득 병폐를 만듦에 있어서랴. 내가 장차 연암협 산골짝으로 돌아가 다시 앞 시냇물 소리를 들으면서 이를 시험해 보리라. 또한 자기만 유익하게 하는 처신에 밝고, 자신의 총명함을 믿는 사람에게 이를 가지고 경고하노라.
- 박지원, 『열하일기』, 김혈조 옮김, 돌베개,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