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필요한 것은 삶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에 무엇을 기대하느냐가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느냐라는 것을 우리 자신이 배워야 했고, 더 나아가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가르쳐주어야 했다. 우리는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하기를 멈추고, 대신 자신이 삶으로부터 끊임없이 질문을 받는다고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의 대답은 말과 명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처신이어야 했다. 삶은 궁극적으로 삶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 할 책임과 또한 각 개인에게 끊임없이 주어지는 삶의 과업들을 수행할 책임을 우리에게 안기려 하기 때문이다.
이 과업들, 다시 말해 삶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고 경우에 따라 다르다. 그러므로 삶의 의미를 일반적으로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한마디로 대답하기는 절대 불가능하다. 삶이란 막연한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삶의 과업이 매우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어떤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삶은 사람의 운명을 만들어내는데, 그것은 각 개인에 따라 저마다 다르고 독특하다. 어떤 사람, 어떤 운명도 다른 사람 또는 다른 운명과 비교될 수는 없다. 어떠한 상황도 똑같이 반복되지는 않으며, 경우에 따라 모두 다른 반응을 요구한다. 어떤 상황에서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운명을 만들어가야 할 필요도 있다. 또 어떤 때는 자신에 대해 조용히 명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 이러한 명상을 통해 자신의 장점을 실현해나가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때는 단순히 운명을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주어진 시련을 감내해야 할 때도 있다. 모든 상황 하나하나가 독자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의해 제기되는 문제에 대한 올바른 해답은 언제나 오직 하나뿐이다.
고통을 겪는 것이 자신의 운명임을 깨달은 사람은 자기의 고통을 과업으로, 오직 자기에게만 주어진 단 하나뿐인 과업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는 고통 속에서조차도 자기는 이 우주에서 유일하고 무엇과도 비길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자기를 그 고통에서 구해주거나 자기를 대신해서 고통을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자기의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것뿐이다.
죄수인 우리에게 이런 생각은 현실과 동떨어진 공리공론이 아니었다.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유일한 생각이었다. 우리가 살아서 그 고난의 끝을 보게 될 가망이 전혀 없어 보이는 때에도 절망의 늪에 빠지지 않게 지탱해준 것은 그런 생각들이었다. 오래전에 우리는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라고 질문하는 단계를 지나왔다. 그것은 가치 있는 어떤 것을 적극적으로 창조함으로써 어떤 목표를 달성하는 것으로 삶을 이해하려는 데에서 생긴 천진난만한 질문이었다. 우리들에게 있어 삶이란 죽음과 고통 받고 죽어가는 모든 것들을 두 팔을 크게 벌려 껴안는 것이었다.
일단 우리가 고통의 의미를 알게 된 이상, 우리는 수용소의 끔찍한 고통을 무시하거나 헛된 환상을 품거나 또 억지로 낙관적인 생각을 함으로써 그 고통을 줄이거나 가볍게 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고통은 이제 하나의 과업이 되었고, 그것에 등을 돌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고통 속에 성취의 기회가 숨겨져 있음을 깨달았다. 릴케가 노래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Wie viel ist aufzuleiden!”(헤쳐나가야 할 고통이 얼마나 많은가!) 릴케가 말한 ‘헤쳐나가야 할 고통’을 다른 사람들은 ‘성취해야 할 일’이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헤쳐나가야 할 고통이 많이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칫 약해지려는 순간들을 다잡고 남몰래 눈물을 감춰가며 엄청난 고통에 맞설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눈물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었다. 눈물이란 한 인간이 최고의 용기를 지녔음을 입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깨달은 사람은 불과 몇 사람뿐이었다. 가끔 어떤 사람들은 겸연쩍어하며 자기가 운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내 동료 한 사람은 부종이 어떻게 나았느냐고 내가 묻자 이렇게 고백했다. “난 울어서 그것들을 몸 밖으로 내보냈소.”
-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정순희 옮김, 고요아침,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