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적 만족에 대한 미국 사람들의 갈망은, 겉모습과는 다른 그들의 감춰진 속마음의 불안감과 매일같이 새로운 것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변덕스러움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되어야 한다. 전적으로 세속적인 행복에만 집중하는 사람은 항상 초조하다. 그 행복을 쟁취하고, 붙잡고, 그리고 즐기는 시간이 늘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생에 주어진 시간이 짧다는 생각은 이 사람에게는 끊임없는 채찍질이 된다. 이 사람은 매 순간 지금 소유하고 있는 좋은 것들 이외에 서둘지 않으면 죽음 때문에 포기해야만 될 수천 가지의 다른 것들을 동경한다. 이런 생각 때문에 이 사람의 마음은 불안, 공포, 미련으로 가득 차고, 언제나 동요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로 이 사람은 끊임없이 자신의 계획을 수정하고 주거지를 바꾸게 되는 것이다.
물질적 행복에 대한 갈망 이외에, 어떤 사람을 자신의 위치에 붙잡아두는 법이나 관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회적 조건이 하나 더 더해지면, 미국 사람들의 이러한 불안정한 기질은 한층 더 자극을 받게 된다. 이 때문에 미국 사람은 행복에 이르는 지름길을 놓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직업을 계속해서 바꾸는 것이다.
물질적 만족에 집중하고 있는 사람의 욕망은 강렬하며, 그만큼 또 쉽게 좌절한다는 사실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즐기겠다는 것이 이들의 궁극적인 목적이므로, 그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은 즉각적이면서도 쉬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만족을 얻기 위해 들인 수고의 양이 만족의 정도보다 더 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의 주된 마음 상태는 열렬함과 동시에 느긋하며, 격렬함과 동시에 무기력하다. 이런 사람들은 흔히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계속해서 끈질기게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죽는 것보다도 더 무섭게 여긴다.
지금까지 내가 설명한 몇 가지 효과를 발생시키는 데 더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미국이 평등한 사회라는 사실이다. 출생과 재산상의 특권이 존재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 어떤 직업이건 선택할 수 있으며, 그리고 어떤 직종에서건 자신의 능력만으로도 정상에 오를 수 있다면, 사람은 쉽게 그리고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존재한다는 인식과 함께 자신이 비천한 운명을 타고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실제적인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모든 시민이 이런 고상한 희망을 품을 수 있게 해주는 바로 그 평등성 때문에 그 희망을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평등의 조건은 시민들의 능력을 모든 면에서 제한하고, 반면에, 욕망의 한계는 넓혀놓는다. 시민들은 무기력해질 뿐만 아니라, 인생의 매 단계에서 애초에는 인식하지 못했던 어마어마한 장애와 부딪치게 된다. 미국 시민들은 자신들에게 장애가 되는 일부 시민들의 특권은 없애버렸을지 모르지만, 무한 경쟁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젖혔다. 장벽을 없애는 대신 그 모양만 바꾸어놓은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서로 다 비슷하고, 모두가 같은 길을 걸어간다면, 어떤 개인이건 자신을 빼곡하게 둘러싸고서 밀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헤치고 빨리 나아가기 힘들다. 조건의 평등이 형성하는 사람들의 욕망과, 그 욕망을 충족시키라고 평등이 제공하는 수단 사이의 이 끊임없는 충돌이 미국 시민들의 마음을 위협하고, 그리고 종내에는 지쳐버리게 만드는 것이다.
자신이 완전히 만족할 정도의 자유를 획득한 사람들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독립성을 아무 불안감이나 초조함을 느끼지 않고서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결코 만족할 수 있을 정도의 평등을 성취할 수 없다. 어떤 노력을 경주하건, 사회의 모든 조건들을 완벽하게 동일한 수준으로 환원시킬 수 있는 시민 집단은 없다. 그리고 설사 모든 사람들의 조건을 절대적으로 그리고 완전히 평등하게 만드는 어리석은 일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사람들의 마음의 불평등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신이 직접 내리신 것이라 언제나 인간의 법을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시민들의 사회 조건과 정치체제가 아무리 민주적이라 해도, 그 집단의 개인들은 모두 다 자신의 입장을 돌봐주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사회적 문제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런 개인은 언제나 그 문제들에 집착하게 될 것이다. 불평등이 사회의 일반적인 양상일 경우에는 가장 뚜렷한 불평등도 눈에 띄지 않게 된다. 하지만 모든 것들이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평등할 경우에는 아주 미약한 불평등도 눈을 찌를 듯이 뚜렷하게 부각된다. 그러기에 평등에 대한 욕망은 언제나 평등 상태가 완전해지면 질수록 그에 비례하여 더 충족시키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민주국가의 시민들은 어느 정도의 평등은 쉽게 이룰 수 있다. 그렇지만 원하는 만큼의 평등을 이루게 되는 법은 없다. 완전한 평등은 언제나 그들의 눈앞에서 물러난다. 그렇지만 시야를 벗어나는 법은 없다. 그러기에 뒤로 물러나면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민주국가의 시민들은 매 순간 완전한 평등을 곧 손에 쥘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언제나 실패한다. 그들과 완전한 평등 사이의 거리는 언제나 그 매력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는 가깝지만 직접 즐기기에는 너무 먼 것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생전에는 그 즐거움을 충분히 맛볼 수 없는 운명이다.
민주국가의 시민들이 풍요 속에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기이한 우울증, 그리고 평안하고 고요한 상황에서 돌발적으로 엄습하는 삶에 대한 혐오감 등에 시달리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임이 틀림없다. 프랑스에서는 자살이 증가하고 있다는 불평이 제기되고 있지만, 미국에서는 자살은 극히 드물다. 하지만 정신병 발병률은 세계 그 어느 곳보다 높다고 한다. 이것들은 모두 동일한 질병의 상이한 증상들이다. 미국인들은 아무리 삶이 불안스럽다고 해도 자살은 하지 않는다. 종교가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질적 만족에 대한 전반적인 열정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이 물질주의를 믿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의지는 저항하지만 이성이 항복해버리는 경우라 할 수 있다.
민주 시대에서의 향락은 귀족 시대에서의 그것보다 훨씬 더 강렬해졌고, 특히 그 향락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엄청나게 불어났다. 그러나 다른 한편, 민주 시대에 이르러 인간의 희망과 욕망이 시들어버리는 경우는 더 빈번해졌고, 영혼은 더 괴롭고 혼란스러워졌으며, 근심은 더 심각해졌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 알렉시스 드 토크빌, 『미국의 민주주의』, 이삼출 옮김,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