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두 가지 중요한 변화가 ‘행복에 대한 권리’를 ‘행복에 대한 의무’로 전환시켰다. 첫 번째는 자본주의 성격 자체의 변화였다. 오랫동안 생산과 욕구 충족의 유예(검약과 저축)를 두 축으로 해서 돌아갔던 자본주의가 이제 모든 사람을 좋은 소비자로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더 이상 노동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공장제 산업 기계가 자기 생산성을 완전히 발휘하기 위해서는 소비가 필요했다. 이런 변화가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 천재적인 발명품 하나가 등장하는 데에는 별로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발명품은 처음 미국에서 1930년대에 등장했고 유럽에서는 1950년대에 등장했다. 바로 신용 판매다. 그 전까지는 자동차나 가구, 집을 사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한 가지 규칙을 따라야만 했다. 한푼 두푼 돈을 모으며 참고 기다렸던 것이다. 하지만 신용 판매가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욕망의 좌절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 되었고 욕망의 충족이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지금 당장 풍요롭게 살고 그 빚은 나중에 갚는다. 오늘날 이 제도가 어떤 과도한 무절제를 가져왔는지는 전 세계가 알고 있다. 미국의 재정 파탄은 바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 빚에 의존해서 살아온 결과였다. 자신이 지닌 실제 자산 가치보다 수백 배나 많은 돈을 빌렸기 때문이다.
두 번째 변화는 개인주의의 등장이었다. 더 이상 어떤 것(교회나 정당이나 사회적 계급 등)도 우리의 욕망 충족을 가로막을 수 없게 됨으로써 우리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책임질 사람은 오직 자기 개인밖에 없게 되었다. 이것은 엄청난 부담을 의미했다. 만약 내가 행복하지 못하다면, 나 자신 말고는 어느 누구도, 어느 무엇도 탓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성형수술에서부터 다이어트 약, 온갖 치료 요법에 이르기까지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산업이 우후죽순 생겨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런 모든 산업들은 나 자신과의 온전한 화해와 내가 지닌 잠재력의 완전한 실현을 약속해준다. “당신 자신에게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 주십시오. 자기 존중을 배우십시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조화롭게 사십시오.” 수많은 자기 계발 서적들이 이렇게 가르친다. 하지만 그토록 많은 서적이 계속 쏟아져 나온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그렇게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줄 뿐이다. 욕망 충족 그 자체가 이제는 하나의 필수적인 요구가 되었다. 오늘날 지배 질서는 더 이상 우리에게 궁핍과 고통을 형벌로 내리지 않는다. 오히려 물질적 갈망을 통해 자아실현에 이르는 길을 제시해준다.
하지만 이러한 관대함은 결코 해방이 아니다. 사실 자비로운 강제는 막연한 불안감을 낳는다. 지배 질서가 널리 공표하는 통계와 모델들은 새로운 죄인 무리를 만들어냈는데, 그들은 더 이상 탕아나 사치꾼들이 아니라 흥을 깨는 사람들이다. 웰빙이 의무가 되어버린 사회에서 슬픔은 단지 질병일 뿐이다. 행복은 더 이상 우리의 단조로운 삶에 우연히 찾아오는 놀라운 은총이나 하늘이 주신 선물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행복해져야 할 의무가 있으며 자신의 행복을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보여줘야 한다.
- 파스칼 브뤼크네르, <씨티저널> 2011년 겨울호 칼럼, 최인자 옮김,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