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다가와 해가 짧아지면 저녁식사를 마치기도 전에 땅거미가 졌다. 우리가 거리로 모여들 즈음에는 집들이 어슴푸레해졌다. 머리 위로 펼쳐진 하늘의 보랏빛은 시시각각 변하고 그 하늘을 향해 거리의 가로등불이 희미한 등불을 치켜들었다. 차가운 공기가 살을 파고들었지만 우리는 몸이 후끈해질 때까지 뛰어놀았다. 우리의 고함소리가 고요한 거리에 메아리쳤다. 놀다보면 우리는 늘 주택가 뒤쪽에 자리한 진흙투성이의 어두운 뒷골목을 지나가게 되었고, 그 판자촌에 사는 거친 패거리의 연이은 주먹질로부터 달음박질쳐 빠져나와서는, 잿구덩이에서 퀴퀴한 냄새가 올라오는 어둡고 질척질척한 정원들의 뒷문까지, 그리고 마부가 말을 털을 고르고 빗질해 주거나, 조임쇠가 달린 마구를 흔들어 방울소리를 내는 어둡고 냄새나는 마구간들까지 가게 되었다. 거리로 돌아올 무렵에는 이미 부엌 창문 불빛이 집안뜰마다 가득했다. 나의 아저씨가 모퉁이를 돌아오는 모습이 보이면 우리는 아저씨가 무사히 집으로 들어갈 때까지 어두운 곳에 숨어 있었다. 혹은 맹건의 누나가 저녁 먹으러 들어오라고 동생을 부르러 현관 계단에 나올 때면, 우리는 어두운 곳에 숨어 거리를 두리번거리며 동생을 찾는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우리는 그녀가 계속 서 있을지 아미면 들어갈지 기다려보다가 그대로 서 있으면 어두운 곳에서 나와 맹건네 집 계단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면 그녀는 우리를 기다리고 서 있는데, 반쯤 열린 문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에 몸의 윤곽이 드러났다. 그녀의 동생은 늘 한참 애를 먹이고 나서야 말을 들었고 나는 계단 난간 옆에 서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몸이 움직이는대로 치마가 따라 흔들리고 땋아내린 부드러운 머리채가 좌우로 찰랑거렸다.
매일 아침 나는 길 쪽 응접실 바닥에 누워 그녀가 사는 집 대문을 지켜보았다. 블라인드가 문턱에서 2센티미터도 안되게 낮게 드리워져 있었으므로 내 모습을 들킬 염려는 없었다. 그녀가 계단으로 나오면 가슴이 뛰었다. 나는 현관으로 달려가 얼른 책가지를 낚아채고 뒤를 쫒아갔다. 갈색옷을 입은 그녀 모습을 내내 눈에서 놓지 않았고, 서로 길이 달라지는 지점이 가까워지면 걸음을 재촉하여 그녀를 앞질렀다. 이런 일이 아침마다 계속 되풀이되었다. 몇마디 의례적인 말 말고는 제대로 말을 걸어본 적도 없지만, 그녀의 이름은 나의 어리석은 피를 온통 끓어오르게 만드는 소환장 같은 것이었다.
- 제임스 조이스, 「애러비」, 캐서린 맨스필드 외,『가든파티』, 김영희 편역, 창비, 2010, 112~1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