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이 보장되면 무얼 할래요?”
스위스 기본소득 활동가들은 이 물음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큰 질문’이라고 한다. 포스터의 크기 때문이 아니다. 이 물음은 우리의 머릿속에 강력하게 ‘삽입’되어 있는 하나의 생각을 뿌리째 흔든다. 소득은 거의 전적으로 취업 노동에서 나오고, 그래서 높은 소득을 보장하는 직업이 그 사람의 가치를 결정한다는 생각 말이다.
일을 하든 안 하든 평생 기본소득을 보장한다면? 우리가 무얼 하든 굶을 걱정이 없다면?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개인의 삶은, 사회의 모습은 어떻게 변할까?
아서 클라크의 말처럼, 이러한 아이디어는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미친 소리’ 취급을 받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기본소득의 바람이 전세계에 불고 있다. 너도나도 기본소득을 이야기 한다. 여기에는 스위스 기본소득 국민투표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스위스에서 기본소득으로 주려는 금액이 ‘월 2500스위스프랑(원화로 약 300만 원)’이라는 소식도 퍼졌다. 한국은 물론 전세계 사람들이 “뭐라고? 한 달에 300만 원을 그냥 준다고?”라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국민투표 날짜가 다가오자, 한국의 인기 TV 프로그램 <비정상회담>(다양한 나라에서 온 남성 청년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에서도 스위스 기본소득을 주제로 찬반 토론을 벌였다.
자히드(파키스탄): 전 반대예요. 그런 돈을 그냥 주면 국민들이 일을 하지 않을 거예요.
기욤(캐나다): 찬성해요. 우리나라에서 이미 1970년대에 기본소득 지급 실험을 했는데 효과가 좋았어요. 기본소득은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오헬리엉(프랑스): (사회자인 가수 성시경에게) 돈과 상관없이 노래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잖아요?
성시경(사회자):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면 더 열심히 노래를 부르겠죠.(웃음) 하지만 돈 걱정을 덜면 지금보다는 덜 치열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마크(미국): 아이디어는 매력적이지만 돈을 어떻게 구하죠? 세금으로 충당하게 되면 국민들이 좋아하지 않을 거예요.
자히드: 사람들에게 돈을 주기보다 정부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오헬리엉: 자히드 말은 과거에는 옳았지만 앞으로는 옳지 않아요. 프랑스에는 이미 지하철이 전부 무인 운전 지하철로 바뀌었어요.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대체하게 돼요.
성시경: 설마 인공지능이 노래도 하지는 않겠지?(웃음)
스위스 국민투표에서 기본소득 도입은 ‘찬성 23%, 반대 77%’로 부결되었다. 투표 결과가 나오자 한국의 언론들은 ‘스위스 국민들이 포퓰리즘을 거부했다’고 목청을 높였다. 정말 그런 것일까? 투표 결과는 기본소득의 전망이 어둡다는 걸 의미하나? 혹은 나무에서 돈일 열리는 줄 착각하는 복지병 환자들에게 매서운 교훈을 준 것일까?
바로잡아야 하는 오해가 있다. 이번 스위스 국민투표는 스위스 헌법에 기본소득 보장을 명시할지를 묻는 투표였다. 300만 원이든 30만 원이든 기본소득 액수를 얼마로 정할지를 묻는 투표가 전혀 아니었다. 300만 원은 국민투표 운동을 벌인 단체인 ‘스위스 기본소득 이니셔티브Initiative Grundeinkommen’가 “이 정도는 필요하다”며 제시한 금액일 뿐이다. 또 스의스의 물가를 감안할 때 300만 원은 최저생계비를 조금 상회하는 액수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비정상회담>에 기본소득 찬반을 토론 안건으로 올린 스위스 청년 알렉스도 스위스에서 300만 원은 “한 달 겨우 살 만한 돈”이라고 말한다.
제 16차 기본소득 지구네트워크 대회에서도 스위스 기본소득 활동가 체 바그너Che Wagner가 단상에 올라 스위스 국민투표 결과에 관해 설명했다. “스위스에서 국민투표를 했다고 많은 사람이 놀라지만, 우리나라에서 국민투표는 1년에 네다섯 번씩 하는 흔한 일입니다.” 그는 투표자 가운데 23%인 56만8905명이 찬성표를 던졌으며, 스위스 기본소득 지지자들은 이것을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여론조사를 할 때만 해도 찬성이 9~10% 정도였습니다. 찬성이 4명 가운데 1명으로 늘어난 것이지요. 18세~29세 사이의 젊은 투표자는 36%가 찬성했는데 전체 찬성률보다 높습니다. 여기에 스위스 기본소득 운동의 미래가 있습니다. 또 유권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보니, 반대표를 던진 투표자 가운데 63%가 기본소득을 앞으로 계속 논의하는 데 동의한다고 응답했습니다. 찬성 투표자 가운데는 83%가 그렇게 응답했습니다. 즉 이번 투표는 더 깊은 논의로 가기 위한 출발점입니다.”
이 말대로라면, 반대 투표자 가운데 3분의 2에 가까운 사람이 기본소득의 취지에 동의하지만 ‘당장 도입’에는 부담스러워한 것으로 보인다.
(중략)
동국대 경제학과 김낙년 교수에 따르면, 한국인 상위 10%가 전체 자산의 66%를 소유하고, 하위 50%는 단지 2%만을 소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