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 콜로디가 《피노키오》를 발표한 19세기 말은 근대적인 학교가 성립되고 확대되던 시기였다. 산업 혁명으로 사회가 밑바닥부터 재편되면서, 농사를 짓던 사람들은 이제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게 되었다. 농사일은 아버지를 따라 밭에 나가 일하면서 전수되지만, 공장 일은 그런 식으로 배울 수 없었다. 공장주들은 기본적으로 읽고 쓰고 셈하기를 할 수 있는 일꾼들을 원했다. 노동자의 자녀에게 읽고 쓰고 셈하기를 가르쳐 내일의 노동자로 준비시킬 제도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요청에 따라 생겨난 것이 근대적인 학교였던 것이다. 더욱이 학교는 부모가 공장에서 일하는 동안 아이들이 사고를 치거나 딴짓을 하지 못하도록 감시하기 위한 기관으로서도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일석이조인 셈이다.
그런데 처음의 기대를 뛰어넘어 학교는 산업 사회에 딱 맞는 노동자를 양성하는 데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학교는 읽고 쓰고 셈하기보다 더 중요한 것을 내일의 노동자에게 가르쳤다.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일제히 공부하고 일제히 쉬기. 자신이 하고 있는 공부가 아무리 지루하더라도 참고 견디기. 선생님이 말씀하시면 아무 말 없이 무조건 경청하기.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기. 이 모든 것은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공장주가 바라는 필수적인 덕목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