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은 마차에 숯을 싣고 도시로 갔다 돌아오곤 했다. 아무리 굳센 사람이라 할지라도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좌절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버렸다. 여인들의 마음 속에서도 불만이 끓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놓고 경쟁했다. 숯을 파는 것을 두고, 교회에서 앉는 자리를 놓고서도 경쟁했다. 선한 일美德을 놓고, 악한 일惡德을 놓고, 그리고 선과 악이 뒤섞인 것들을 놓고 서로 다투었다. 바람 또한 쉬지 않고 신경을 자극했다. 그래서 자살이 전염병처럼 번지고 여러 정신병마저 유행하여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양치기는 조그만 자루를 가지고 와서 도토리 한 무더기를 탁자 위에 쏟아 놓았다. 그는 도토리 하나하나를 아주 주의 깊게 살펴보더니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따로 골라 놓았다. 나는 파이프 담배를 피워 물었다. 도와주겠다고 했으나 그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사실 그가 그 일에 기울이는 정성을 보고 나는 더 고집할 수 없었다. 우리의 대화는 그것이 전부였다. 그는 아주 굵은 도토리 한 무더기를 모으더니 그것들을 열 개씩 세어 나누었다. 그러면서 그는 도토리들을 더 자세히 살펴보고 그 중에서도 작은 것이나 금이 간 것들을 다시 골라냈다. 그렇게 해서 상태가 완벽한 도토리가 100개 모아졌을 때 그는 일을 멈추었고 우리는 잠자리에 들었다.
이 사람과 함께 있으니 마음이 평화로웠다. 다음 날에도 나는 그의 집에서 하루 더 머물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그것을 아주 당연하게 생각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어떤 무엇도 그의 마음을 흐트러뜨릴 수 없다는 인상을 나는 받았다. 반드시 하루 더 쉬어가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호기심을 느꼈고 그 사람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그는 우리에서 양떼를 몰고 풀밭으로 갔다. 떠나기 전에 그는 정성껏 골라 세어 놓은 도토리 자루를 물통에 담갔다.
나는 그가 지팡이 대신 길이가 약 1.5미터 정도 되고 굵기가 엄지손가락만한 쇠막대기를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걸으며 쉬며 그가 가는 길을 따라갔다. 양들의 풀밭은 작은 골짜기에 있었다. 그는 양 떼를 개에게 돌보도록 맡기고는 내가 있는 곳을 향해 올라왔다. 내 맘대로 올라왔다고 꾸짖으러 오는 것 같아 두려웠으나 그게 아니었다. 그가 가는 길에 내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나에게 달리 할 일이 없으면 자기와 함께 가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는 거기서 산등성이를 향해 200미터쯤을 더 올라갔다.
그가 가려고 한 곳에 이르자 그는 땅에 쇠막대기를 박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구멍을 파고는 그 안에 도토리를 심고 다시 덮었다. 그는 떡갈나무를 심고 있었다. 나는 그곳이 그의 땅이냐고 물었다. 그는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 누구의 땅인지 알고 있는 것일까? 그는 모르고 있었다. 그저 그곳이 공유지이거나 아니면 그런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도 않는 사람들의 것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그는 그 땅이 누구의 것인지 관심조차 없었다. 그는 아주 정성스럽게 도토리 100개를 심었다.
그리고 점심을 먹은 뒤 그는 다시 도토리를 고르기 시작했다. 내가 끈질기게 물어보자 그는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해 주었다. 그는 3년 전부터 이 황무지에 홀로 나무를 심어 왔다고 했다. 그리하여 그는 도토리 10만 개를 심었다. 그리고 10만 개의 씨에서 2만 그루의 싹이 나왔다. 그는 들쥐나 산토끼들이 나무를 갉아먹거나 신의 뜻에 따라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날 경우, 이 2만 그루 가운데 또 절반 가량이 죽어 버릴지도 모른다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예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던 이 땅에 떡갈나무 1만 그루가 살아남아 자라게 될 것이다.
─ 장 지오노, 『나무를 심은 사람』, 김경온 옮김, 두레, 2005, 21~3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