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요란한 소리, 꽃과 전류 쇼크 - 이미 유아의 의식 속에는 이 조합이 멋지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이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훈련을 2백 번 반복하면 양자의 결합은 도저히 분리할 수 없이 견고한 개념이 될 것이다. 인간이 결합시킨 것은 아무리 자연이라 할지라도 분리시킬 수 없다.
“아기들은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책과 꽃에 대한 ‘본능적’ 증오심을 가지고 성장할 것입니다. 영구불변하게 심어준 조건반사적인 것입니다. 그들은 평생 책이나 식물로부터는 안전할 것입니다.” 소장은 보모들을 향했다.
“아기들을 다시 데리고 나가시오.”
아직도 울고 있는 카키색 아이들은 식기운반차에 실려 밖으로 운반되었다. 그들은 뒤에다 시금털털한 우유 냄새와 고마운 정적을 남기고 나갔다.
학생 하나가 손을 들었다. 하층계급의 인간이 독서로 인하여 세계국가의 시간을 낭비한다든가, 해로운 독서를 함으로써 그들의 조건반사 작용을 약화시키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지만…… 꽃에 대한 훈련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델타 계급의 인간에게 꽃을 증오하게 하기 위한 심리학적인 수고를 무엇 때문에 해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인내심을 발휘하며 소장은 설명했다. 장미꽃을 보고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게 되는 상태로 이끄는 것은 경제적 고등정책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렇게 오래 된 이야기는 아닌데, (약 1세기 전에 있었던 일인데) 당시에는 감마 계급, 델타 계급, 엡실론 계급에게까지도 꽃을 사랑하도록 훈련했다는 것이다 - 특히 꽃과 전원을 좋아하게 훈련했다는 것이다. 그 목적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전원으로 나가고 싶도록 만들어 운송기관을 이용토록 하려는 것이었다.
“그들이 운송기관을 사용하지 않았나요?”
그 학생이 물었다.
“아니, 많이 사용했지” 하고 소장이 대답했다. “그러나 그저 그뿐이었어.” 프리뮬러꽃과 전원 풍경은 한 가지 중대한 결점을 가지고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그것들은 그냥 손에 들어온다는 점이다. 자연에 대한 애착은 공장을 분주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 하층 계급의 경우는 자연에 대한 애착을 포기하도록 결정했던 것이다. 자연에 대한 애착은 포기시키지만 운송기관을 사용하는 경향은 그대로 보존시킨다. 다시 말해서 자연을 증오토록 하면서도 그들을 시골로 보내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단지 프리뮬러꽃이나 전원 풍경에 대한 사랑보다 운송기관을 사용케 할 보다 건전한 경제적 이유를 찾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은 발견되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대중들이 전원을 증오하도록 훈련합니다” 하고 소장은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동시에 전원의 스포츠를 사랑하도록 훈련합니다. 그런데 전원의 스포츠에는 반드시 복잡한 장비를 사용하도록 마련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대중은 운송기관뿐 아니라 공업제품을 소비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러한 전기 쇼크가 행해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