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과학의 씨앗이 이미 알렉산드리아에서 뿌려졌음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무엇 때문에 그 씨앗이 깊게 뿌리를 내려 큰 나무로 일찍 성장할 수 없었을까? 왜 서구 문화는 그 후 1,000년이나 지속된 암흑시대라는 혼수상태에 빠져들게 됐을까? 암흑시대는 콜럼버스, 코페르니쿠스 그리고 그들의 동시대인들에 의해서 결국 최후를 맞는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이미 이룩했던 것들이 이 무렵에 와서 재발견되고는 했다. 앞에서 던진 질문에 나는 간단히 답을 할 수 없다.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히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융성하던 전 시기를 통하여 과학자들이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주장이나 가정에 도전했다는 기록이 단 한 건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별의 영구 불변성은 의심했지만, 노예 제도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과학적 발견과 과학 지식은 일부 기득권층만의 소유물로 남아 있었다. 그 위대한 도서관 안에서 벌어지던 새로운 발견들이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고 아무도 발견의 내용과 의미를 대중에게 설명해 주지 않았다. 그러므로 연구 결과가 대중에게는 아무런 이득이 되지 못했다. 기계와 증기 공학의 발견들은 오로지 무기의 성능을 향상시키는 데 이용되거나, 아니면 왕의 흥미를 자극하고 미신을 부추기는 데에 쓰였을 뿐이다. 과학자들은 기계가 언젠가는 사람을 노예의 상태에서 해방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고대에 이루어진 위대한 업적들의 거의 대부분이 실제로 응용되지 못하고 잊혀졌다. 이렇게 됨으로써 과학은 대중의 상상력을 사로잡지 못했다. 지적 발전의 정체, 비관주의의 확산, 신비주의에의 비참한 굴복 등에 길항할 수 있었던 그 어떤 기제도 없었던 것이다. 결국 폭도들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불을 지르고 소장품과 장서를 약탈해 갔지만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칼 세이건 (지은이) | 홍승수 (옮긴이) | 사이언스북스 | 2006-12-20 | 원제 Cosmos (198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