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캐나다, 미국의 기본소득 실험
강남훈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이사장.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
2018년 4월 몇몇 신문에서는 2017년 1월부터 시작된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이 실패해서 중단하기로 했다는 보도를 하였다. 기본소득 실험 결과 재정부담은 크면서도 실업률이 높아지고 빈곤율도 줄지 않아서 중단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보도는 오보임이 드러났다.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은 원래부터 2018년 말에 종료되기로 되어 있다. 실험의 평가는 실험의 엄밀성을 위하여 실험이 끝난 뒤인 2019년에 실시하기로 되어 있어서 현재로서는 아무런 데이터도 공개되지 않은 상태이다.
핀란드의 실험은 실업수당을 받던 2,000명의 사람들에게 1달에 560유로의 무조건적 현금을 지급하는 실험이다. 기존의 실업수당과 달리 실험 기간 중 소득이 발생하더라도 동일한 금액이 지급된다. 이 실험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기본소득 실험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소수의 실험 대상에게만 지급하기 때문에 실업률이나 빈곤율에 미치는 영향도 측정할 수 없다. 기본소득의 여러 가지 특징 중에서 무조건성(취업을 해도 지급한다)으로 인한 노동유인 효과만 검증할 수 있는 실험이다. 핀란드정부는 이 실험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설정하였다. ①노동의 성격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사회보장제도의 재설계, ②더 강한 노동유인을 제공하는 사회보장제도의 재형성, ③관료주의 축소와 복잡한 급여체계 단순화.
핀란드는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국가를 만든 나라이다. 실업수당은 구직활동 조건이 충족되면 무기한 수령할 수 있다. 이런 핀란드의 복지제도는 완전고용 경제구조를 전제로 한 것인데, 최근에는 비정규직과 실업자가 많아지면서 경제구조와 복지제도의 정합성이 문제가 되고 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실업수당이다.
실업수당은 실업자에게만 지급되고, 취업을 하면 중단된다. 560유로의 실업수당을 받는 실업자는 560유로의 저임금 일자리가 생겼을 때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일을 하나 안 하나 소득이 늘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한 달 동안 일을 하는 데 들어가는 고통이 400유로라고 한다면 960유로를 주는 일자리가 생기더라도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문제는 복지국가를 만들 때부터 있었지만 그때는 완전고용 시대였다. 실업률이 3% 내외라면 실업자들에게 노동유인이 사라진다고 해도 거의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실업률이 10% 이상이 되면 문제가 달라진다. 실업수당같이 노동유인을 없애는 복지제도는 유지하기 어렵다.
실업수당이 노동유인을 없애기 때문에 실업수당을 받는 사람들에게 구직활동을 강제하는 조건을 부과하지 않을 수 없다. 핀란드는 일정한 기간마다 취업활동 보고서를 의무화하고, 의무를 어겼을 때 수당을 삭감하고 있다. 이러한 조건은 실업수당을 신청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엄격해지게 된다. 구직활동에 대하여 엄격하게 심사하는 관료주의적 통제도 불가피하다. 신청자에게 강한 낙인효과를 부여해서 신청자 수를 줄이는 방법도 종종 사용된다.
핀란드의 실험은 기존의 복지제도의 하나인 실업수당이 가진 문제점을 인식하고 그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기본소득이 과연 관료주의적 통제와 구직활동에 대한 강제 없이도 자발적으로 노동유인을 높이는 효과가 있는지를 실험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핀란드 실험에서 실험 대상으로 삼지 않은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광범위한 불안정 노동의 증가이다. 근로 기간을 제약하거나, 고용관계의 속성을 삼각고용 관계나 위장고용 관계로 변형시키는 비표준 고용이 급증하고 있다. 플랫폼 기업은 앱 주문형 노동(온라인에서 주문하고 오프라인에서 실행하는 노동)과 클라우드 노동(온라인에서 주문하고 온라인에서 실행하는 노동)을 확대시키고 있다.
기존의 복지제도는 표준적인 고용관계를 전제로 설계된 것으로, 노동자성을 인정받아야 복지 수급권도 갖게 된다. 즉 비표준적인 노동자들은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해서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사회보장법의 적용도 못 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면 정규직 노동자는 소득의 4.5%를 내면 국민연금 수급권이 생기지만,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불안정 노동자는 소득의 9%를 내야 한다. 이와 같이 기존의 복지제도는 불안정 노동자에 대한 충분한 사회안전망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기본소득은 불안정 노동자에게 두 가지 차원에서 도움을 줄 수 있다. 하나는 직접적인 소득의 증가이다. 최저임금도 저소득 노동자의 소득을 증가시킬 수 있지만 고용을 줄일 우려가 있고, 불안정 노동자의 또 다른 주요 부분인 자영업자들의 부담을 증가시키는 부작용이 있다. 이에 반해서 기본소득은 자영업자를 포함해서 모든 불안정 노동자의 소득을 부작용 없이 증가시키게 된다. 다른 하나는 협상력 증가이다. 협상력을 좌우하는 큰 요인의 하나는 협상이 결렬되었을 때 소득의 크기이다. 협상이 결렬되었을 때 소득이 보장되면 그만큼 협상에 여유를 갖고 초조함을 감내할 수 있다. 기본소득은 고용되었을 때에나 고용되지 않았을 때에도 지급되므로 협상이 결렬되었을 때의 소득을 높여서 불안정 노동자의 협상력을 높인다.
기본소득의 이런 특징들은 캐나다와 미국의 실험에 반영되어 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실험
캐나다의 온타리오주에서는 기본소득 실험 대상자 4,000명 이상을 모집하여 기본소득 실험을 시작하였다. 실험 대상자는 연소득 3만 4,000달러(미혼) 내지 4만 8,000달러(결혼) 이하의 사람들이다. 지급 방식은 대상자에게 1만 7,000달러(미혼) 내지 2만 4,000달러(결혼)를 지급하되, 시장소득이 생길 경우 시장소득의 50%를 기본소득 지급액에서 공제하는 음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 형태이다. 예를 들어 시장소득이 0달러일 경우에는 1만 7,000달러를 받지만, 시장소득이 1만 달러가 되면 그 50%인 5,000달러가 공제된 1만 2,000달러를 받는다.
음의 소득세는 세금을 걷으면서 동시에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정책과 동일한 재분배 효과를 갖는다. 위에서 예로 든 사람의 경우 1만 달러와 보조금 1만 2,000달러를 합쳐서 최종 소득이 2만 2,000달러가 된다. 이것은 기본소득 1만 7,000달러를 온전히 받으면서 시장소득에 대하여 50%의 세금을 내는 정책과 동일하다. 이런 특징 때문에 미국과 캐나다의 기본소득네트워크는 음의 소득세를 기본소득의 한 가지 형태로 보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금액을 지급하면서 소득에 비례해서 세금을 내도록 하는 기본소득은, 시장소득에 따라 지급하는 금액이 달라지는 음의 소득세보다 행정비용이 적게 든다. 행정비용을 고려하면 음의 소득세도 실제로 실행할 때에는 1년에 한번 소득세를 낼 때 지급액을 정산하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기본소득과 음의 소득세의 차이는 거의 없어진다.
음의 소득세는 실험으로서 장점을 갖는다. 음의 소득세는 한편으로는 세금을 걷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정책과 동일하기 때문에 음의 소득세 실험은 두 가지 정책을 합친 효과를 한꺼번에 실험하는 셈이 된다. 핀란드와 같이 기본소득을 지급하기만 하는 실험은 결과가 좋게 나오더라도 세금을 낼 용의가 있는지 다시 실험해보아야 한다. 이에 반해서 캐나다의 실험은 바람직하다는 결과가 나오면 두 가지 살험을 다 거친 셈이므로 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다.
캐나다는 실험의 목표를 “소득을 보장하고 빈곤과 싸우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는 것”으로 설정하였다. 실험에서 측정할 변수들은 다음과 같다 - 식품 안정성, 스트레스와 불안, 정신 건강 및 건강보험 사용, 주거안정, 교육과 훈련, 고용과 노동시장 참여. 측정 항목 중에서 식품 안정성이 제일 먼저 나오고 노동유인이 제일 마지막에 나오는 것이 흥미롭다. 전 국민 무상의료를 실시하고 있는 캐나다에서는 빈곤층이 정신적·육체적 건강이 좋아지면 의료비 지출이 줄어들어 제정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
캐나다는 무상의료와 기본소득에 가까운 노인기초연금 등 복지제도를 상당히 갖춘 나라이지만 핀란드 정도로 복지가 성숙된 나라는 아니다. 최근 불안정 노동이 증가함에 따라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 빈곤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빈곤은 2008년 온타리오주의 경제적 산출을 5.5% 감소시켰고, 매년 322억 달러에서 383억 달러의 비용을 발생시키고 있다. 빈곤과의 싸움을 위하여 복지 확대가 시급한과제가 되었다. 그런데 실업자를 선별해서 복지를 확대하면 불안정 노동자의 빈곤을 해결할 수 없다. 빈곤 해결을 위해서는 불안정 노동자들에게도 복지가 확대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기본소득이다.
캐나다는 실업자뿐만 아니라 중위 소득 이하의 사람들을 실험 대상으로 선정하였다. 여기에는 일하면서도 빈곤한 불안정 노동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보아서 캐나다의 실험은 기본소득이 경제구조의 변화로 늘어나고 있는 불안정 노동에 대한 적절한 복지정책이 될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실험
미국에서는 두 가지 기본소득 실험이 준비 중에 있다. 하나는 스톡턴시의 기본소득 실험이고 다른 하나는 ‘와이콤비네이터’의 실험이다.
①스톡턴
스톡턴은 캘리포니아주에 속한 인구 30만 명의 작은 도시이다. 경제 불황 이후 파산을 선포하였고, 지금도 극심한 가난과 높은 범죄에 시달리고 있다. 마이클 텁스 시장은 27살의 흑인 시장이다. 텁스가 아주 어렸을 때 그의 어머니는 5-6년 동안 복지에 의존해서 살았다고 한다. 그의 집은 먹을 것보다 더 긴급한 것이 많았지만, 식품권은 현금이 아니었다. 그는 현금을 주면 사람들이 더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스톡턴시는 2019년부터 100명의 거주자들을 선정해서 매월 500달러를 18개월 동안 아무 조건 없이 지급하는 기본소득 실험을 실시할 예정이다. 스톤턴시는 기본소득이 미국혁명을 일으킨 토마스 페인의 사상이고,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옹호했던 사상이며, 알래스카주에서는 이미 실시하고 있다는 것을 홍보하고 있다.
스톡턴시의 실험은 ‘경제안정프로젝트’라는 단체가 지원하고 있다. 이 단체의 핵심 인물은 ‘페이스북’ 공동창업자인 34세의 크리스 휴즈이다. 휴즈가 기본소득 실험을 지지하는 이유는 불평등과 프리케리아트(불안정 노동자)의 확대이다. 미국에서 불평등은 1929년 수준으로 증가하였다. 자신은 마크 주커버그(페이스북 CEO)의 룸메이트라는 덕택으로 3년 일하고 5억 달러를 벌었지만,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비상시 사용할 수 있는 400달러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같은 거대한 부는 기술혁신, 지구화, 금융·벤처 자본이라는 힘들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동일한 힘들이 수백만 개의 일자리를 없애고 저임금 파트타임 일자리로 채워진 ‘긱 경제(gig economy)'를 만들어냈다. 빈곤에 대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현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②‘와이콤비네이터’
민간기업인 ‘와이콤비네이터’의 샘 올트먼은 미국에서 기본소득 실험을 주도하고 있다. ‘와이콤비네이터’는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고 있는 1,500개 이상의 기업에 투자한 세계 최고의 엑셀러레이터 기업으로서 기업가치는 800억 달러 이상이다. ‘에어비앤비’, ‘레딧’, ‘드롭박스’ 등의 세계적인 기업들이 ‘와이콤비네이터’에 의해서 육성되었다.
‘와이콤비네이터’는 소수의 인원을 대상으로 한 기본소득 예비 실험을 마무리하였고, 조만간 본 실험을 1,000달러의 무조건적인 현금을 3년 내지 5년이라는 비교적 장기간에 걸쳐서 지급할 계획이다. 실험 결과는 스탠퍼드대학 연구진과 함께 분석할 예정이다.
실험의 배경은 빈곤의 증가, 소득의 극단적인 양극화와 불안정화, 중산층 축소,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일자리 소멸 등이다. 실험의 측정 변수는 다른 나라의 실험과 확연하게 구별된다. ①시간 사용의 변화(기본소득이 사람들이 시간을 사용하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②주관적인 행복과 객관적인 건강, ③금융적 건강, ④시간 선호와 위험 선호(기본소득이 장기적이고 위험한 투자를 더 잘 수용하도록 만드는가), ⑤정치적·사회적 행동과 태도, ⑥범죄, ⑦아이들에 대한 영향, ⑧가정을 넘어선 외부효과 및 네트워크 효과.
올트먼은 TV시리즈 <스타트랙>의 팬으로서 과학기술 유토피아를 꿈꾸면서 자라났다. 인공지능에도 투자하고 있는 그에게는 기술 발전이 미래의 일자리를 줄일 것이 너무도 분명해 보인다. 앞으로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 돈을 벌까가 아니라 어떻게 해서 시간을 의미 있게 사용할까를 고민하게 될 것이다. 안정된 직업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모험적인 창업을 시도하는 일에 치중해야 한다. 기본소득을 받으면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도 생기겠지만, 충분한 수의 사람들이 더 많은 혁신과 경제적 가치를 창조하는 데 시간을 사용할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을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을 사는 사회를 만드는 도구로 써야 한다는 생각이 기본소득 실험을 지배하고 있다.
경제구조의 변화에 대응하는 기본소득
세 나라의 기본소득 실험은 모두 기술혁신에 따라 변하고 있는 경제구조의 변화에 대한 대응 모색이라는 의의를 가지고 있다. 세 나라의 실험은 모두 시대적 과제에 대한 대응이라는 공통의 맥락 위에서 각각 자기 나라에 더 시급한 과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경제구조의 변화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일자리 부족. 전 세계적으로 실업률, 특히 청년실업률이 늘어나고 있다. 기존의 복지제도는 노동유인 감소, 낙인효과, 관료주의, 낮은 포착률 등의 문제로 일자리가 부족한 경제에 적합한 제도가 될 수 없다.
둘째, 불안정 노동의 확대. 비정규직, 특수고용직, 영세 자영업자 등 불안정 노동이 증가하고 있다. 불안정 노동자로서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면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사회보장법의 수혜도 받지 못한다. 불안정 노동자가 되면 정규직 노동자 보험료의 두 배를 내야 하는 정규직 중심의 복지제도를 가지고서는 불안정 노동자 문제에 대처할 수 없다.
셋째, 불평등 확대. 근로소득 사이의 격차 및 근로소득과 자산소득 사이의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 부동산과 금융자산을 넘어서 지식자산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격차의 확대는 사회 불안정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근로의욕 상실을 가져와서 경제 효율을 떨어뜨리고 있다.
기본소득은 이러한 세 가지 경제구조 변화에 대한 대응이 될 수 있다.
첫째, 기본소득은 일을 하지 않을 때뿐만 아니라 일을 할 때에도 지급되므로, 실업자에게도 도움이 되고, 일하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면서 노동유인을 없애지 않는다.
둘째, 소득에 비례해서 세금을 걷어서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나누어주면, 결국 상위 근로자는 순 납세자가 되고 중하위 근로자는 순 수혜자가 된다. 따라서 불안정 노동자의 소득을 보장하면서 소득 불평등을 축소하는 효율적인 정책이 될 수 있다.
셋째, 자산에 대한 과세를 통해서 기본소득의 재원을 마련하면 자산소득과 근로소득 사이의 격차를 줄일 수 있다. 특히 배당이라는 이름으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모든 국민이 공유자산에 대한 공동소유자라는 인식에 기초하고 있으므로, 공유자산을 적극적으로 개발해서 나누어 소유하는 활동을 촉진함으로써 자산 소유 분산에 기여하게 된다.
복지국가 건설의 수단으로서의 기본소득
우리나라는 복지국가 건설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사람들은 모두 복지국가에 살고 싶어 하지만 세금을 내기 싫어한다. 증세 없이 복지국가를 만들 방법은 없다. 이렇게 보면 복지국가 건설이 과제라고 말하는 것은 부정확한 표현이다. 복지국가 건설에 필요한 증세를 하는 것이 과제라고 말해야 한다.
우리나라에도 기본소득 실험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성남시 청년배당이다. 성남시는 만 24세 청년들에게 매년 100만 원의 청년배당을 지급하고 있다. 1개 연령층 전부에게, 노동이나 구직활동 등 아무런 조건 없이 지급된다는 점에서 범주형 기본소득이라고 할 수 있다. 1만 명이 넘는 청년들에게 지급되므로 수천 명 정도를 대상으로 하는 외국의 실험 규모를 훨씬 넘어선다. 기본소득 실험이라기보다는 기본소득 시범사업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청년배당은 지역화폐로 지급되어 전통시장이나 골목시장, 사회적경제 부문에서만 사용할 수 있고, 해당 부문의 소상공인들만 현금으로 바꿀 수 있다. 성남시의 미공개 조사 자료에 의하면 청년배당으로 인하여 성남시 소상공인의 매출은 25% 정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청년배당은 밑바닥 경제를 확실하게 활성화시켰다.
1인당 GDP(국내총생산)의 3% 정도에 불과한 연간 100만 원을 가지고서 청년들의 경제적 상태를 개선시켰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많은 청년들은 “정부가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고 말했다. 청년들은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투표율은 뚜렷하게 증가하였다. 청년배당을 받은 청년들 사이에서 세금을 더 내고 복지를 늘리는 정책에 대하여 찬성하는 비율이 인근 도시의 청년들보다 높아졌다. 성남시 청년배당은 기본소득이 조세저항을 극복하는 수단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제 지방선거를 마친 결과, 청년배당은 경기도 전역에서 실시될 것이다. 15만 명이 넘는 청년들이 청년배당을 받게 될 것이다. 경기도 청년배당이 과연 경기도 밑바닥 경제를 살려낼 수 있을지, 경기도 청년과 소상공인의 증세와 복지에 대한 의식을 변화시킬 수 있을지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