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아버지와 어머니는 열일곱에 나를 가졌다.
올해 나는 열일곱이 되었다.
내가 열여덟이 될지, 열아홉이 될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런 건 우리가 정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건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뿐이다.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란다.
그리고 나는 무럭무럭 늙는다.
누군가의 한 시간이 내겐 하루와 같고
다른 이의 한 달이 일년쯤 된다.
이제 나는 아버지보다 늙어버렸다.
아버지는 자기가 여든살이 됐을 때의 얼굴을 내게서 본다.
나는 내가 서른넷이 됐을 때의 얼굴을 아버지에게서 본다.
오지 않은 미래와 겪지 못한 과거가 마주본다.
그리고 서로에게 묻는다.
열일곱은 부모가 되기에 적당한 나이인가 그렇지 않은가.
서른넷은 자식을 잃기에 적당한 나이인가 그렇지 않은가.
아버지가 묻는다.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나는 큰 소리로 답한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아버지가 묻는다.
더 나은 것이 많은데, 왜 당신이냐고.
나는 수줍어 조그맣게 말한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로 태어나, 다시 나를 낳은 뒤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싶어요.
아버지가 운다.
이것은 가장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자식의 이야기다.
1부
1
바람이 불면, 내 속 낱말카드가 조그맣게 회오리친다. 해풍에 오래 마른 생선처럼, 제 몸의 부피를 줄여가며 바깥의 둘레를 넓힌 말들이다. 어릴 적 처음으로 발음한 사물의 이름을 그려본다. 이것은 눈〔雪〕, 저것은 밤〔夜〕, 저쪽에 나무, 발밑엔 땅, 당신은 당신…… 소리로 먼저 익히고 철자로 자꾸 베껴쓴 내 주위의 모든 것. 지금도 가끔, 내가 그런 것들의 이름을 안다는 게 놀랍다.
어릴 땐 온종일 말을 줍고 다녔다. 엄마 이건 뭐야? 저건 뭐야? 종알대며 주위를 어지럽혔다. 각각의 이름은 맑고 가벼워 사물에 달싹 붙지 않았다. 나는 어제도 듣고 그제도 배운 것을 처음인 양 물어댔다. 손가락을 들어 무언가 가리키면, 식구들의 입에서 낯선 소리를 가진 활자가 툭툭 떨어졌다. 바람에 풍경風磬이 흔들리듯 내가 물어 무언가 움직이는 거였다. 그래서 나는 ‘이건 뭐야?’라는 말이 좋았다. 그들이 일러주는 사물의 이름보다 좋았다.
비는 비. 낮은 낮. 여름은 여름…… 살면서 많은 말을 배웠다. 자주 쓰는 말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이 있었다. 지상에 뿌리내린 것이 있고 식물의 종자처럼 가볍게 퍼져가는 말이 있었다. 여름을 여름이라 할 때, 나는 그것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럴 수 있다 믿어 자꾸 물었다. 땅이라니, 나무라니, 게다가 당신이라니…… 입속 바람을 따라 겹치고 흔들리는 이것, 저것, 그것. 내가 ‘그것’ 하고 발음하면 ‘그것……’ 하고 퍼지는 동심원의 너비. 가끔은 그게 내 세계의 크기처럼 느껴졌다.
이제 나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말은 거의 다 안다. 중요한 건 그 말이 몸피를 줄여가며 만든 바깥의 넓이를 가늠하는 일일 것이다. 바람이라 칭할 때, 네 개의 방위가 아닌 천 개의 풍향을 상상하는 것. 배신이라 말할 때, 지는 해를 따라 길어지는 십자가의 그림자를 쫓아가보는 것. 당신이라 부를 때, 눈 덮인 크레바스처럼 깊이를 은닉한 평편함을 헤아리는 것. 그러나 그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일 것이다. 바람은 자꾸 불고, 태어난 이래 나는 한번도 젊은 적이 없었으니까. 말들 역시 마찬가지일 테니까.
내가 세상과 최초로 말을 섞은 곳은 산 깊고 물 맑은 농촌마을이었다. 물줄기가 여러개로 나뉘고 휘돌아 다시 감기는 그곳에서 나는 내 이름을 배우고 걸음마를 떼었다. 옹알이에서 단순한 문장을 만들 때까지 삼년. 부모님이 외가에 신세를 진 기간만큼이다. 동네 사람들은 필요한 게 있으면 대부분 직접 기르거나 만들어 썼다. 그러니 내가 자주 접한 말들도 생활과 가까운 선명한 말들이었을 거다. 만날 티브이만 보고 자란 내 사촌은 태어나 처음 한 말이 ‘엘지LG’였다는데…… 나는 말이 더뎌 한동안 부모님 속을 태웠다. 어머니는 내게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근심하며 어른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아버지는 애들은 말 못할 때가 제일 예쁜 거라며 묵묵히 일터에 나갔다. 인근에 들어선다는 대호관광단지가 막 부지를 다지고 있었고, 아버지도 거기서 막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셈 밝은 외할아버지는 타지에서 밀려올 일꾼들을 위해 텃밭 앞에 건물을 지었다. 콘크리트 벽에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외풍 심한 집이었다. 조그마한 일자형 건물에는 모두 네 가구가 들어갈 수 있었다. 그중 한 곳이 우리 가족의 방이었다. 아직 애티를 벗지 못한 십대 부부와 갓난아기 이렇게 세 식구였다. 부엌도 시원찮은데다 세 사람이 지내기에는 터무니없이 좁은 곳이었지만, 월세도 생활비도 내지 않던 터라 찍소리 않고 지냈다 한다.
외할머니는 슬하에 자식을 많이 두셨다. 아들 다섯에 딸 하나 도합 여섯 명이다. 언젠가 나는 ‘엄마,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랑 평생 사이가 안 좋았다면서 왜 그렇게 자식이 많아?’라고 물은 적이 있다. 어머니는 ‘그지? 나도 그게 궁금해서 네 외할머니한테 물어본 적이 있거든? 근데…… 그게 정말 가뭄에 콩 나듯 할 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덜컥덜컥 애가 들어섰다더라’ 민망해하며 답해주었다. 우리 어머니는 육남매 중 여섯째로 어릴 때 별명이 ‘시발공주’였다고 한다. 입이 건 사내들 틈에서 나고 자라, 예쁜 얼굴과 어울리지 않게 툭하면 상말을 내뱉었던 까닭이다. 조그마한 계집아이가 동네 곳곳을 누비며 깜찍하게 욕을 하고 다녔을 모습을 상상하면 친근하니 만만한 기분이 든다. 지금도 드센 성격이 남아 있긴 하지만, 어머니의 말씨가 풀죽은 듯 순해진 건 세상이 ‘시발’로만 해결되는 게 아니란 걸 깨달은 순간부터인 듯하다. 일찌감치 애를 배어 퇴학을 당했을 때라든가, 아버지가 다섯 명의 외삼촌들에게 맞아죽을 뻔했을 때, 식당에서 자기보다 어린 여자들의 까탈과 소란을 받아줘야 했을 때,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도무지 답이 안 나오는 병원비 청구서를 뚫어져라 들여다봐야 했을 때 같은 경우 말이다.
외할아버지는 처음부터 사위를 마음에 안 들어했다. 가장 큰 이유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의 새끼’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진짜 새끼’를 만들어왔다는 거였다. 두 번째 이유는 가장인 주제에 생활력이 없다는 건데, 열일곱 학생에게 돈 벌 능력이 없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두 남자가 처음 만났을 때, 외할아버지는 아버지를 향해 다짜고짜 퉁명스레 물었다.
“그래, 너는 뭘 잘하냐?”
어머니의 임신으로 말미암아 집안에 몰아닥친 온갖 울음과 실랑이의 폭풍우가 한바탕 지나간 후였다. 아버지는 무릎 꿇은 자세로 어쩔 줄 몰라하며 답했다.
“아버님, 저는 태권도를 잘합니다.”
외할아버지는 못마땅한 듯 끙 소리를 냈다. 아버지가 태권도 특기생으로 도에서 제일 큰 체육고등학교에 들어간 건 사실이지만, 그런 재주는 살아가는 데 별 쓸모가 없었다. 아버지는 그것도 모르고 외할아버지의 침묵이 초조해 말을 보탰다.
“보여드릴까요?”
주먹을 불끈 쥔 게 누가 보면 장인을 때리려 한다고 오해할 만한 광경이었다. 외할아버지는 자기도 모르게 움찔한 뒤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네 주먹에서는 쌀이 나오나보지?”
“그게, 졸업하면 작은 도장에라도……”
학교로 돌아갈 가망이 없는 걸 알면서도 아버지가 답했다. 외할아버지는 처음부터 그럴싸한 대답 따윈 기대하지 않았지만 한번 더 물어봐주겠다는 투로 말했다.
“그리고 또 뭘 잘하나?”
아버지의 머리 위로 여러가지 생각이 지나갔다.
‘나는 ‘스트리트 파이터’를 잘하는데……’
하지만 그런 걸 입밖에 냈다간 장인에게 귀싸대기를 맞을지도 몰랐다.
‘나는 선생한테 대드는 걸 잘하는데……’
그렇지만 그것도 장인이 바라는 답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럼…… 나는 정말 뭘 잘하지?’
아버지는 머리를 감싸안고 고뇌하다 자신을 뚫어져라 노려보는 장인 앞에서 결국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잘 모르겠습니다, 아버님.”
그러곤 이내 깨달았다.
‘아! 나는 포기를 잘하는구나!’
사위가 물러간 자리에서 외할아버지는 기가 찬 듯 빈정댔다.
“잘하는 거라곤 일찍부터 새끼 치는 거밖에 없는 놈이더구나.”
나이 들어 지아비 어려운 줄 모르게 된 외할머니가 조그맣게 구시렁거렸다.
“그것도 재주는 재주지요.”
어머니는 깻잎머리를 한 채 아무 말도 않고 새치름히 앉아 있었다. 외할아버지는 딸의 행실보다 안목에 더 실망한 듯 먼 산을 봤다.
“남자가 돈이 없으면 허세라도 있어야지. 이건 뭐 너무 숙맥 같아서……”
하지만 그건 외할아버지가 우리 아버지를 단단히 잘못 본 거였다. 아버지는 숙맥이 맞았지만 무모하고 모험심 강한 숙맥, 말하자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숙맥이었다. 그러니까 결혼식날 주례하고 멱살 잡고 싸우고, 친구들과 노느라 자기 아내를 ‘질마재 신화’ 속 신부처럼 내버려뒀을 거다. 그러니까 친구 말만 믿고 여러 일에 손댔다 실패한 뒤, ‘우리집 가훈’이란 숙제를 들고 온 내게 태연히 ‘붕우유신’이란 말을 일러줬을 거다. 벗 사이에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집에 표구까지 해 걸어놓은 문구였다. 액자는 아버지가 친구들과 불국사에 놀러 갔다 기념품 가게의 글씨 쓰는 노인에게서 만들어온 거였다. 어머니는 종종 액자 속 네 글자를 두 자로 줄여 빈정거렸다. 누가 보면 신랑을 너무 하대한다며 혀를 찰지도 모르는 일이나, ‘부자유친’을 ‘부자 친구와는 반드시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뜻쯤으로 알고 있는 여자의 태도론 자연스러운 거였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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