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인생이란 그 얼마나 역겨운 것이던가! 얼마나 비열한 수단을 우리에게 휘두르는가 말이다. 한순간 자유롭다고 생각하노라면 바로 그 다음 순간 이런 식이다. 여기 우리는 또다시 빵 부스러기와 지저분해진 냅킨 사이에 있게 된다. 나이프에는 벌써 기름이 응고되어 있고, 혼란, 불결, 부패가 우리를 에워싼다. 우리는 죽은 새들의 몸뚱이를 입 안에 넣고 있었다. 우리는 이 기름이 묻은 빵 부스러기, 군침으로 젖은 냅킨, 그리고 작은 사체들을 가지고 무언가를 이루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언제나 다시 시작한다, 적은 항상 있다, 우리의 눈을 맞이하는 눈이. 우리의 손가락을 비트는 손가락이, 대기하고 있는 수고가. 종업원을 불러라. 지불해라. 의자에서 일어나야만 한다. 코트를 찾아야만 하고. 가야만 하고. 해야 한다, 하지 않으면, 해야 해 ─ 지겨운 말들이로다. 모든 것에서 면제받았다고 생각했던 나, ‘일체의 것에서 벗어났다’라고 말했던 나는, 파도가 나를 완전히 거꾸러뜨리고 재산을 풍비박산 나게 하고, 나로 하여금 모으고 집합시키고 쌓아올리고, 군대를 소집해서 일어나 적에게 대항할 자세를 다시 한 번 가다듬게 한다.
이 정도의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우리가 이런 정도의 고통을 가해야 하다니 이상도 하지. 아프리카행 배의 현문舷門 위에서 딱 한 번 만났다고 생각되는 정도의 거의 모르는 사람의 얼굴에 ─ 그저 눈과 뺨과 콧구멍의 윤곽정도만 아는 ─ 이런 모욕을 가할 힘이 있다는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다. 너는 보고, 먹고, 미소 짓고, 지루해하고, 기뻐하고, 짜증을 내고 ─ 이 정도가 내가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한 시간 아니면 두 시간 내 옆에 앉아 있던 그림자, 두 개의 눈으로 훔쳐보는 이 마스크에는 나를 쫓아보내서, 온통 타인의 얼굴뿐인 가운데 결박해 무더운 방에 가둘 힘이 있는 것이다, 나를 이 양초에서 저 양초로 나방처럼 홱 홱 지나가게 할 힘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기다려줘. 그들이 스크린 뒤에서 계산을 하고 있는 동안 잠깐만. 과일 껍질, 빵 부스러기, 그리고 오래된 고기 조각들 사이에서 나를 비틀거리게 했던 그 타격 때문에 너를 꾸짖었으니까 너의 시선 아래에서 강요당해 어떻게 내가 이것저것 기타 등등을 감지하기 시작했는지도 짤막하게 기록하겠다. 시계가 재깍거린다, 여인은 재채기를 하고 종업원은 오고 있고 ─ 서서히 모여들어서 하나가 되어 가속과 합일이 생긴다. 잘 들어봐,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고, 바퀴가 돌진하는 소리, 문이 돌쩌귀에서 찍찍거리는 소리가 들려. 나는 복잡성, 현실, 그리고 투쟁 의식을 되찾은 것에 대하여 너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약간의 동정심과 선망과 선의를 지니고 너의 손을 잡고 작별을 고하노라.
고마운 고독이여! 지금 나는 혼자다. 잘 모르는 그 사람은 떠났다, 기차를 타려고, 택시를 타려고, 어딘가에 가려고, 아니면 내가 모르는 사람을 만나려고. 나를 바라보고 있던 얼굴은 사라졌다. 압박이 없어졌다. 빈 커피 잔들이 있다. 의자가 돌려져 있지만 아무도 앉지 않았다. 비어 있는 테이블이 있지만 오늘 밤은 더 이상 아무도 식사하러 오지 않는다.
자, 찬미의 노래를 부르자, 고마운 고독이여. 혼자 있게 해다오. 이 존재의 베일을, 밤낮으로, 밤새도록, 온종일,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모습을 바꾸는 구름을 내던져버리자. 여기에 앉아 있는 동안에도 나는 변화하고 있었다. 하늘이 변하는 것을 주목했다. 구름이 별들을 감쌌다가 풀어주었다가 다시 숨기는 것을 보았다. 이제는 더 이상 이러한 변화를 보지 않는다. 이제는 아무도 나를 보지 않고 나도 더 이상 변화하지 않는다. 눈의 압박을, 육체의 유혹을, 거짓말과 문장들 일체의 필요를 제거시킨 고마운 고독이여.
문장을 가득 적어넣은 나의 공책은 마루에 떨어졌다. 테이블 밑에 놓여서, 종잇조각, 오래된 전차표, 여기저기 공 모양으로 구겨지고 다른 잡동사니와 함께 쓸어버려야 할 쓰레기와 함께 남겨진 쪽지를 치우러 새벽에 지친 몸을 끌고 온 허드렛일 하는 여인이 쓸어버리게 되어 있다. 달을 표현하는 문장은 무엇인가? 사랑을 나타내는 문장은? 어떤 이름으로 죽음을 부르는가? 모르겠다, 내게는 연인들이 쓰는 이심전심의 짤막한 언어가 필요해, 애들이 방에 들어올 때 어머니가 바느질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밝은 색깔의 털실, 깃털, 사라사 무명 조각을 집어들면서 하는 단음절의 단어들이. 울부짖는 소리, 절규가 내게는 필요해. 늪지대에 폭풍우가 휘몰아쳐 도랑 속에 아무도 보살피지 않는 상태로 누워 있는 내 위를 휩쓸고 지나갈 때 나는 언어가 필요하지 않다. 단정한 것은 아무것도 필요 없다. 발을 마루 밑에 붙이고 서는 것도. 부서져 흩어지는 가슴의 신경에서 신경으로 메아리치는 열광적인 음악이나, 거짓된 문장을 만들어내는 반향이나, 아름다운 메아리도 소용이 없다. 문장과는 이제 인연을 끊어버렸다.
침묵이 얼마나 더 좋은가, 커피 잔, 식탁이. 말뚝 위에서 날개를 펴는 외로운 바닷새처럼 혼자 앉아 있는 것이 얼마나 더 좋은가. 이 커피 잔, 이 나이프, 이 포크 등의 단순한 물건들, 사물의 본질, 물건 본연의 물건, 나 자신인 나와 함께 언제까지나 여기에 앉아 있게 해달라. 가게 문을 닫고 떠나야 할 시간이라는 암시를 하면서 나를 괴롭히지 말아달라. 나를 방해하지 말고 조용히 혼자 앉아 있게만 해준다면 내가 가진 돈 전부를 기꺼이 주겠노라.
하지만 웨이터장이 자신의 식사를 마치고 나타나서 얼굴을 찡그린다, 호주머니에서 머플러를 꺼내고는 여봐란 듯이 떠날 준비를 한다. 그들은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셔터를 내리고 테이블보를 접고, 젖은 걸레로 테이블 아래를 한번 닦아야만 한다.
그렇다면 똥이나 먹어라. 아무리 패배했다손 치더라도 몸을 일으켜서 내 코트를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소매에 팔을 끼고 밤공기에 대비해서 몸을 감싸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나, 나, 나는 피곤하지만, 많이 지쳤지만, 사물의 표면에 코를 대고 비비느라고 지쳐버렸지만 동작이 굼떠지고 힘든 일을 싫어하는 초로의 남자인 나지만 가서 마지막 기차를 타야만 한다.
다시 한 번 늘 보던 거리가 내 앞에 펼쳐진다. 문명의 천개는 다 타버렸다. 하늘은 반짝반짝하게 닦은 고래 뼈같이 검다. 그러나 하늘에는 들불인지 아니면 여명인지 한 점의 불빛이 있다. 어떤 종류의 부산함이 느껴진다 ─ 어딘가 플라타너스 나무 위에서 지저귀고 있는 참새 떼 소리가 들려온다. 날이 밝는 느낌이 든다. 이것을 여명이라고 부르지는 않으련다. 거리에 서서 약간 현기증을 느끼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초로의 남자에게 도시의 여명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여명은 하늘이 희끄무레해지는 것, 아니면 어떤 종류의 재생이다. 또 하루, 또 하나의 금요일, 또 하루의 삼월, 일월, 혹은 구월 이십 일. 또 다른 각성. 별들은 퇴장하고 꺼진다. 파도 사이의 모래톱은 깊어진다. 안개의 막은 들판에 두꺼워진다. 붉은 빛이 장미꽃들 위에, 그리고 침실 창가에 걸려 있는 엷은 색 장미 위에도 드리운다. 한 마리의 새가 지저귄다. 오두막에 사는 사람들은 아침 일찌감치 양초에 불을 켠다. 그렇다, 이것이 영원의 재생, 부단한 삶과 죽음, 또한 죽음과 삶이다.
그러고는 내 안에서도 파도가 일어선다. 부풀어오르고 등을 구부린다. 나는 다시 한 번 새로운 욕망을, 기수가 처음에 박차를 가하고는 뒤로 잡아끄는 자존심이 강한 말같이 내 밑에서 용솟음치는 어떤 것을 느낀다. 지금 내가 타고 있는 너, 우리가 이 보도를 발길질하며 서 있을 때 어떤 적이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것을 느끼는가? 그것은 죽음이다. 죽음이 적이다. 내가 창을 공격태세로 꼬나잡고 젊은 사람처럼, 인도에서 말을 타고 달렸을 때의 퍼서벌처럼 나의 머리칼을 휘날리며 죽음에 맞서서 말을 타고 돌진한다. 말에 박차를 가한다. 정복당하지 않고, 굴복하지 않고, 너를 향해 내 몸을 던지노라, 오오 죽음이여!”
─ 버지니아 울프, 『파도』, 박희진 옮김, 솔, 2004, 430~43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