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이익이 사회적 목적에 종속된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고 경제적으로 좋은 것이 항상 도덕적으로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이제 국내사회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국가경제에서 이윤동기를 점차 제거하는 것은 외교정책으로부터도 이윤동기를 제거하는 것에 조금은 도움이 될 것이다. 1918년 이후 영국과 미국정부는 일부 어려운 국가에 “구제금융”을 제공하였다. 그러면서 경제적 보상을 거의 기대를 하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수출을 증진시킬 목적으로 외국에 차관을 제공하는 일은 이제 많은 나라에서 익숙한 정책이 되었다. 후일 이와 같은 정책은 주로 군사적 고려에 의해 지배되었다. 우리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생산성이 떨어지는 산업을 보조하면 할수록, 또 고용의 창출이 최대한의 이윤보다 중요한 경제정책의 목표가 될수록, 그러한 사회적 목적이 한 국가 내에 머무르지 않고, 영국의 정책이 영국의 도시인 올드햄이나 자로우의 복지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지방의 복지도 고려하는 일이 쉬워질 것이다. 국가정책에 대한 우리의 시야를 넓히는 것은 결국 국제정책에 대한 우리의 시야를 넓히는 것을 도와줄 것이며,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희생이라는 동기에 호소하는 것이 항상 실패로 끝나지는 않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