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동아리 인터뷰 9
앎과 삶이 만나는 지점을 탐구하는 시간
대전 창작과담론
모이는 곳_ 카이스트 세미나실
모이는 사람_ 대학생
읽는 책_ 문학, 예술, 인문학
우리는 종종 때로는 아주 쉽게 선입견을 가지게 된다. 선입견은 그 자체로 그치지 않고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이어진다. 세대별, 지역별 등 다양한 방면으로 선입견은 가지를 뻗는다. 대한민국 최고의 수재들이 모이는 곳, 대전 카이스트에 자신들의 전공 분야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문학과 예술, 인문학에 빠진 이들이 있다고 한다. 읽을 책으로 하이데거의 《예술작품의 근원》, 로이스 타이슨의 《비평이론의 모든 것》 등 인문학 열풍 속에서도 잘 읽히지 않는 책이 선정되어 있었다. 당장 대전으로 달려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한 여름 한가로운 대학 캠퍼스에서 기계공학과 4학년 최인호 씨와 수학과 3학년 이종명 씨를 만날 수 있었다.
독서동아리모임이 만들어진 계기가 궁금합니다
“지금은 잠깐 쉬고 있는 친구가 겨울방학 때 교환학생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계절학기 수업을 다녀왔어요. 그곳을 다녀온 후 우리 학교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다들 치열하게 공부를 하고 뭔가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뭘 하고 있느냐 이런 논의를 통해 올 초에 책 읽기 모임이 만들어졌어요. 처음에는 지인을 통해 회원을 모집하다가 학교 내에 작은 포스터를 게시하고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과학 중심의 대학교에 문학과 철학을 중점으로 하는 독서동아리를 만들기도, 운영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오히려 카이스트이기 때문에 더 관심이 있는 것 같아요. 과학 쪽으로는 세분화가 잘 되어 있는 반면 인문학은 교양 수업으로 전체가 뭉뚱그려서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더 자세하게 알고 싶고 배우고 싶다는 내적 욕구가 생기는 것 같아요. 그리고 동아리 운영은 나오는 사람들은 열심히 하고 있어요. 너무 열심히 해서 회원 중에서 물리학 석사과정을 밟던 친구가 지금은 고려대 비교문학과로 전공을 바꿔서 열심히 글쓰기 공부를 하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얼마 전 문학기행을 통해 회원 모집에 관해 상당한 논의가 있기도 했어요. 우리 동아리에 단순히 호기심만 가지고 찾아오는 사람과 우리 동아리에서 책을 읽고 삶을 변화시킬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을 모집해야 한다 등 여러 의견과 고민을 나누고 있습니다.”
“방학 때 특강을 기획해서 진행해 보려고 했는데 이 부분도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아직 학생이다 보니 정보가 부족한 측면도 있고요.”
방학 중인 요즘은 소설 부문을 집중해서 읽고 있다고 한다. 가장 좋게 읽었던 책에 대해 궁금해졌다.
모임을 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은 무엇인가요?
“전 아무래도 김현의 《한국문학의 위상》이 마음을 많이 울렸어요. 어떻게 이렇게 글을 잘 쓸 수 있지 감탄이 저절로 나왔어요. 개인적으로 힘들고 고민이 많은 시기였는데 그 책을 같이 읽다 보니 나만, 몇 명만 고민하고 사는 것이 아니구나라고 위로가 되고 힘을 주는 부분이 있었어요.”
“책 첫 부분에 김현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왜 법을 안 하고 쓸모없는 문학을 하냐고 말했다는 얘기가 있어요. 김현 씨가 이 부분을 설명해 주면서 왜 문학이 필요하고 우리에게 어떤 역할을 하는지 희망 같은 것을 제시해 주는데 뭔가 벅찼어요.”
1970년대의 글이 몇십 년이 지나도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책이 주는 힘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창작과담론’이라는 동아리 이름에 걸맞게 이들은 단순히 감탄에 머물지 않고 내용에 대한 비판도 잊지 않았다.
“책에 보면 문학이 쓸모없기 때문에 그것으로 인해 오히려 가치가 있다, 라는 말이 있는데 진짜 쓸모가 없나 비판을 제기하기도 했어요.”
“‘쓸모, 효용성이 있다면 우리를 억압한다, 하지만 문학이 쓸모가 없기 때문에 우리를 억압하지 않는다.’ 그런 논리가 이상하게 보였어요. 많은 사람들이 문학을 알고 읽고 있는데, 정신적으로 쓸모가 있는데 왜 쓸모없다고 하는가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인상 깊었던 책으로 고명섭의 《니체극장》을 꼽고 싶어요. 사실 니체에 편견을 가지고 있었어요. 언어를 남발하는 거 아닐까. 대표적으로 ‘신은 죽었다’라는 말에 논리는 없고 주장만 있는 느낌. 그런데 그런 것이 아님을 이 책을 통해 이해할 수 있었고 니체 식으로 ‘피로 쓰는 책’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야기는 계속해서 문학의 효용성 문제, 철학과 문학의 역할론, 공학과 수학의 전공 분야와 인문학이 연결될 수 있는가 등으로 뻗어 나갔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야만 했다.
이런 인문학적 책 읽기가 지식의 과시, 지적 우월감 등으로 빠질 수 있지 않을까요?
“안 그래도 그냥 일반적인 수다와 우리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게 본질적으로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이야기하기도 했어요. 단순히 지식의 소비가 아닌 일단 세상을 바라보는 도구로서 분명히 문학이나 이런 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삶에 앎이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 우리 동아리의 결론이었어요.”
“《이반 일리치의 죽음》 마지막에 이런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죽는 순간에 내 삶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너무 늦은 것이다. 거창할 수 있지만 우리가 살면서 이렇게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 고민을 하는 것이 아닐까. 대학생이라는 위치에서 이런 고민을 하지 않는다면 언제 하게 될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학생이라 책 읽기 모임을 하기에 더 좋은 측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나중에 분명 사회에 나갔을 때 여러 가지 제약이 생길 텐데 지금은 자유롭게 하고 있어요. 하고 싶어서 한다, 단순히 의미에서의 필요가 아닌 하고 싶어서 하는 내적 욕구가 있어요.”
“책들을 계속 읽고 고민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중에 자연스레 삶 속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눈 것들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런 기록을 어떻게든 남기는 것이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런데 생각보다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더라고요.”
마지막으로 독서동아리 지원 사업과 개인의 취미 활동이라 할 수 있는 독서를 국가가 지원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사실 저희가 지금 지원을 받고는 있는데 정부 차원에서 책을 읽으라고 독서동아리에 지원한다는 것을 저희가 처음에는 좋지 않게 봤어요. 여러 사람이 책을 읽고 싶다면 어떻게든 동아리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질 것인데 이런 식으로 지원하는 것은 일종의 강제적인 것이 아닐까, 이것이 옳은 것일까 하는 고민도 있었어요.”
“저는 좋다고 생각해요. 독서가 개인적 행위일 수 있지만 같이 있음으로써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봐요. 독서동아리 지원이 같이 읽어서 같이 공적인 차원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도 생각해요.”
“어쩌면 저도 독서동아리사업이나 다른 독서동아리에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제 다른 동아리와의 교류나 보다 확장된 독서를 통해 보다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이들의 생각과 의지는 생각보다 단단한 토대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쉽게 쓸려가거나 무너지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시간이 갈수록 생겨났다. 오늘 이 자리가 아닌 다른 자리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발전된 우리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부디 이들의 단단함이 카이스트라는 공간을 넘어, 대전이란 공간을 넘어 보다 더 큰 공간으로 확대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