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말
이번 문화정책 월례포럼 발제를 맡은 손경년입니다. 사실 저는 발제를 맡을 만큼 문화정책 전반을 총체적으로 파악할 만한 역량도 없고, 또 사업을 수행하는 기관종사자여서 이러저러한 이해가 걸려있는 조건으로 이미 많은 한계를 안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내놓은 이 미약한 발제문에 토론자들이 탁월한 전문역량을 보태주신다면 보다 좋은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합니다. 제 발제가 갖는 장점을 굳이 찾아보면, 제가 기초단위에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중앙정부-광역-기초의 관계 속에서의 ‘갑-을-병-정’ 입장을 두루 취하고 있고 그런 탓에 정책의 현실체감에 대한 생생함을 (비록 부분일지라도) 어느 정도 전달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아무리 좋은 정책이더라도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경우 ‘귤이 회수를 건너면서 탱자’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비록 본 발제문의 정책분석과 제안에 있어서 예리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지라도 정책의 실효성이 분명한 지역, 정책환류에 있어서 현장의 소리는 매우 중요하다는 측면에서 그런대로 의미가 있을 것이라 여깁니다.
박근혜 정부 1년이 지난 지금,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느낌은 뭔가 움직임이나 요란한 소리는 나는 것 같은데 딱히 어떤 변화나 차이가 있는지 구분하기 힘듭니다. 또 꽤 긴 시간 민간영역에서 문화정책의 비전과 이념적 토대 등에 대한 제안이 많이 있었는데 이것이 어떤 방식으로 현 정부의 문화정책 속에 녹아들어갔으며, 실행과정과 결과에 있어서 어떤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는지 체감하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다고 봅니다.
다만 ‘문화융성’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했을 때 생뚱맞다는 생각을 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1년 사이에 ‘세미나 융성’이 아니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많은 세미나, 토론회 등이 있었고, (쉽지 않은 이 용어가 방방곡곡에 플래카드로 걸려있거나 언론, 방송에서 수시로 사용됩니다) 그 결과 공무원이건, 민간전문가이건, 혹은 주민들이건 별 생각 없이(?) ‘문화융성’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 것을 보면 홍보분야에서는 어느 정도 성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다른 한편, 참여정부 시절, 많은 문화정책 토론회가 있었으나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토론문화가 거의 사라졌었지요. 그러다가 박근혜 정부에 이르러서 다시 많은 정책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는데 어떤 면에서 고무적이긴 합니다. 그렇지만 왜 이 많은 세미나가 정신없이 기획되고 정답 맞추기처럼 토론이 이루어지며, ‘1년 동안 몇 회를 했다더라’ 라는 말을 들으면 그저 횟수 채우기 강박증처럼 여겨지는 걸까요? 그래서 저는 지금이라도 형식적인 토론이 아닌, 시민(국민)의 의견을 끌어내고 이를 수렴해가는 민주적인 과정을 위해 다시금 방법과 내용을 깊이 있게 고민하고 짚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어떤 때는 ‘문화융성시대’나 ‘문화가 있는 삶’ 등의 문화체육관광부가 즐겨 쓰는 용어를 보면 이전 정부에서 생산한 다양한 정책수사의 변종 정도로 여겨져서 크게 기대하지 않는 마음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일반적으로 중·장기 비전 아래 정책실현을 위한 구상과 기획, 그리고 이를 세부계획 등 기초를 단단히 하기 위해서는 이를 수행할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합니다. 말하자면 하나의 집을 짓더라도 살 사람이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고, 원하는 공간이 무엇이며, 그래서 그것에 따라 컨셉과 공간구성, 재료, 비용 등을 산출하는데, 하물며 한 나라의 문화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수행하는 일을 하는데 어찌 집짓기보다 못하겠는지요? 당연히 더욱 정밀한 공정과정을 통해 차근차근 쌓아올려야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오겠지요. 그런 면에서 정부 출범 1년차의 정책평가란 것이 ‘무엇을 평가할 것인가’가 분명하지 않으면 ‘평가를 위한 평가’로 그칠 소지가 있기도 할 것입니다. 성급하게 ‘무엇을 내놔라’라고 닦달하기 보다는 ‘적어도 이것을 해 두어야 기반이 흔들리지 않는다’라는 제안을 하고 이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1년 평가의 의의가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오늘의 토론을 위해서 공약과 공약이 정책으로 입안되던 시기의 검토(박근혜 정부의 문화에 대한 인식적 기반의 검토와 정책의 타당성, 수행의지 등), 그리고 1년이 지난 뒤(현장에서 체감하는 상황 및 제안 등)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2. 기존 논의의 점검
여기서는 박근혜 정부 출범에서 1년이 지난 현 시점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문화정책 분야에서 논의되었던 내용들을 검토해 보고자 합니다. 우선 살펴보고자 하는 것 중의 하나로 2013년 3월, <대안을 준비하는 문화정책 포럼>에서 진행한 토론이 있습니다. 그 때 주로 짚어본 것은 박근혜 정부의 공약과 공약에서 드러나고 있는 인식적 토대, 그리고 공약이 어떻게 정책으로 이행, 반영되고 있는지에 대한 것이었으며, 이를 간략하게 정리해보았습니다. 다음으로 한국정책학회 동계학술대회(2013.12.6)에서 <새 정부 1년의 평가>라는 주제로 발표한 논문들이 있습니다. 그 중, 문화정책관련 부분에서 제기한 평가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몇몇 언론에서의 평가 등을 첨부하였습니다.
(1) 2013년 3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대안적 문화정책의 구상」에서의 토론*
* 대안을 준비하는 문화정책 포럼,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대안적 문화정책의 구상」,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2013.3.27, 포럼에서 발표된 두 개의 원고를 중심으로 원문 발췌를 하였음.
1) 문화정책의 새로운 철학과 패러다임의 전환*
* 이동연, “문화정책의 새로운 철학과 패러다임 전환을 위하여”,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대안적 문화정책의 구상」, 대안을 준비하는 문화정책 포럼,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2013.3.27
① 문화융성 개념의 함의와 해석의 어려움
- 대통령 취임사에서의 문화는 국정운용에서 가장 강력한 키워드로 사용하고 있으며, 문화융성에 담긴 문화의 의미는 경제, 사회, 인류, 삶과 연관하여 다룰 수 있는 거의 모든 영역을 담고자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문화융성의 개념은 어쩐지 낡은 개념 같아 보이고, 지나치게 경제발전의 근대적 패러다임에 종속되어 국가주의적인 이념을 내세우는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문화융성文化隆盛을 표현하는 한자의 의미만 보더라도 강력한 발전주의적 의미를 상상하게 만든다.(2쪽)
- 번영으로서의 문화와 사회적 가치 확산으로서의 문화를 동시에 담고 있는 문화융성의 역설적 개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것은 어떤 점에서 경제와 복지의 공존을 원하는 국정철학을 문화적 관점에서 설명하려는 강한 의지의 표명이라 할 수 있다.(3쪽)
② 문화적 창의성을 넘어서는 문화역능
- 21세기 문화정책의 주요 5대 키워드는 문화역량cultural potential, 문화권리cultural rights, 문화다양성cultural diversity, 문화분권cultural decentralization, 문화자립cultural independency이 아닐까 싶다. 이 다섯 가지 개념들이 그동안 논의되었던 문화정책 개념 중에서 사회적 가치 확산으로서의 문화정책의 주요 키워드들의 한계들을 극복하려는 패러다임 전환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4쪽)
- 문화적 역능은 문화적 역량의 구체적인 실현 이전에 개인들이 고유하게 보유하고 있는 내적인 잠재성을 말한다. 창의성을 언급하기 이전에 필요한 것은 잠재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개인들의 무한한 잠재성으로서의 문화역능은 ‘창의적 리더’라는 소수의 가치보다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저마다 발견할 수 있는 문화적 잠재 에너지를 말한다.(5쪽)
③ 다문화주의를 넘어서는 문화다양성cultural diversity
- 국가의 문화정책이 다문화를 오히려 제한적, 배타적으로 간주하는데 일조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5쪽)
④ 창작-생산의 수준을 넘어서는 문화권리cultural rights
- 문화권리는 문화에 대한 권리이면서 동시에 사회에 대한 문화적 권리를 내포한다. 이는 문화권리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일상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문화권리에 대한 포괄적인 적용이야말로 문화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을 위해서 중요하다.(9쪽)
⑤ 지역문화를 넘어서는 문화분권cultural decentralization
- 진정한 의미의 지역분권이 이루어졌는가? 예컨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역협력형 사업을 위한 문예진흥기금의 지역재단 배분율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고 서울과 나머지 지자체의 배분 비율도 갈수록 후자가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지만, 단순히 예산의 배분만이 아니라 정책집행과 운용의 독립성은 충분히 보장받고 있지 못하다. 문화분권은 인위적인 지리적인 배치와 분배의 문제가 아니라 다양한 문화적 자원과 문화적 특이성이 지리적 구획과 경계를 넘어서 자기 권리와 정체성을 갖는 것을 말한다.(10쪽)
⑥ 문화복지를 넘어서는 문화자립cultural independency
- 문화복지는 예술가들을 위한 문화복지와 시민들을 위한 문화복지로 구분해서 설명할 수 있다.(11쪽)
- 문화복지가 대안적 문화정책의 모든 것을 해결하지는 못한다. 어떤 점에서 예술가들의 자율성, 자립성의 촉각을 무디게 만드는 국가의 사회적 관리장치의 수단으로 활용될 수도 있다. 문화복지를 원천적으로 거부하기보다는 그것을 기능 전화시키고, 새로운 물적 토대를 형성하기 위해 국가의 문화정책에 온전하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노력하면서 개인들, 집단들간의 호혜적 관계를 유지하는 문화자립운동은 대안적인 자기 문화정책의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다.(11쪽)
2) 박근혜 정부 문화정책 분석 그리고 문화정책에 대한 대안적 상상력*
* 이원재, “박근혜 정부 문화정책 분석 그리고 문화정책에 대한 대안적 상상력”,「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대안적 문화정책의 구상」, 대안을 준비하는 문화정책 포럼,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2013.3.27
① 박근혜 정부 문화정책 구상의 특징 및 한계
- 「박근혜 정부 국정비전 및 국정목표」는 박근혜 대통령의 선거 정책공약인 ‘국민행복 10대 공약’의 핵심적인 구성요소였던 생활경제 및 복지, 일자리, 안전 등에 ‘교육과 문화’, ‘안보와 통일·외교’ 영역이 추가된 모양새를 갖추었다. 그리고 박근혜대통령 선거 정책공약 구조에 비해 국정비전에서는 교육과 문화의 비중이 많이 커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22쪽)
- 이명박 정부가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쟁정책 및 기업친화정책의 극대화라는 국정목표를 그렸다면, 박근혜 정부는 신자유주의적 안전국가정책의 극대화라는 국정목표를 드러내고 있다. 한편 이명박 정부에서는 국정목표에서 제외되었던 문화정책이 박근혜 정부에서는 국정목표 수준으로 언급되었다.(24쪽)
- 장애인 문화권과 관련된 공약들, 지역문화전달체계의 확립 및 분권과 관련된 공약들, 예술인 노동 및 안전망과 관련된 공약들, 문화콘텐츠 공정거래 환경 조성 공약, 남북문화교류 확대 등의 영역에서 박근혜 정부 문화정책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하는 정책공약 조정 작업이 진행되었다.(30쪽)
- 박근혜 정부의 국정비전과 국정과제들은 ‘문화에 대한 철학과 개념의 부재’, ‘시대에 부합하는 새로운 문화정책 패러다임의 제시 부재’, ‘기존 문화정책의 범주별로 사업을 나열하는 구조 반복’, ‘새 정부의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고민 부재’, ‘문화정책의 목표와 우선순위에 대한 모호함’, ‘정책, 사업 사이의 통합성과 연계성 부족’,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문화정책의 구체성과 적극성 부족’, ‘지역분권과 민관 거버넌스를 위한 새로운 문화정책 전달체계에 대한 고민 부재’, ‘사회변동과 호흡하는 새로운 문화정책 의제발굴 실패(과거지향적이고 관습화된 문화정책 의제들)’, ‘문화적 가치와 충돌하는 대규모 문화 이벤트와 막개발 사업들 반복’, ‘교육과 문화, 경제/산업과 문화 등 융합적이지 못한 정책구조’ 등의 문제점과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31쪽)
② 대안적인 문화정책
- 출발점 : 정책이 지배권력, 중앙정부, 공공기관 등의 업무가 아니라 개인들의 자율적인 삶의 영역을 다양하게 기획하고 구체화하는 과정 그 자체라는 것을 이해하는데서 시작될 것이다.(31쪽)
- 방향 : 허위적인 문화예술이 아니라 생존의 영역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자본주의의 ‘공급된 삶’을 경계하고 자율적인 문화의 형성을 모색해야 한다. 프로그램의 공급에서 벗어나 ‘자율시간의 확장’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한 전략이다. ‘지역화’ 전략과 문화적 관계의 복원에 주목해야 한다. (32-34쪽)
- 주요과제들 : 문화의 의미와 역할에 있어서 폭넓은 인식 필요하다. 문화가 획일화되거나 독점화되지 않고 다양한 문화적 자원들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문화다양성의 원리가 실현될 수 있어야 한다. 문화는 소수의 문화예술가들의 전유물이나 문화산업가들의 상품논리를 관철시키는 수단이 아니라 개인의 삶의 행복과 자유를 위한 공공의 자원으로 인식되고 접근되어야 한다.(34-35쪽)
2. 박근혜 정부 1년, 야심과 현실사이
(1) 정책기획 및 세부사업
과거 정부의 문화정책의 특징을 간략히 살펴보면, 김영삼 정부는 ‘선진국 수준의 삶의 질’ 추구와 문화를 통한 감수성과 창의성을 제고할 수 있는 ‘문화의 집’을 건립, 문화산업발전 5개년계획을 실시하였습니다. 국민의 정부(김대중)는 ‘팔길이원칙(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이 정책기조였으며, 문화예산 1% 달성, 문화산업발전5개년계획 수립, 문화산업진흥기본법 제정과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을 설립하였지요. 참여정부는 ‘자율, 참여, 분권 그리고 문화향유권확대’를 기조로 <창의한국>과 <예술의 힘>을 통해 문화정책 비전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국가의 문화정책이 비로소 시작되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이 시기 문화예술진흥원이 문화예술위원회로 전환되고 문화예술교육정책의 토대가 마련된 것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전 정부의 정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채 생활공감형 문화정책, 5대 콘텐츠 강국으로의 도약, 예술인복지법 제정 등의 일정정도 성과를 냈으며, 그렇다고 새로운 문화정책을 제시하거나 전 정부의 문화정책을 크게 발전시킨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이어 박근혜 정부는 대통령취임식에서 19회나 문화를 언급함으로써 문화에 대한 입장을 여타 정부보다 강력하게 피력하였습니다. 4대 국정운영기조의 하나로 ‘문화융성’을 내세웠고 이를 위해 2013년 5월31일 시행공포된 대통령령 ‘문화융성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에 의해 ‘문화융성위원회’가 만들어졌지요.
문화융성위원회 홈페이지를 보면, “문화란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생활양식, 관습, 사고방식 및 가치관의 총체로서 사회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가치관, 태도 및 관습 등 가치의 형성과 관련된 모든 것”으로 정의되어 있습니다. 사실 문화에 대한 광의의 개념은 삶의 모든 것을 포괄할 수 있기 때문에 정책범위와 정책대상, 사업내용을 설정하는데 어려움을 주기도 합니다. 또 “문화융성이란 문화의 가치가 사회 전반에 확산되어 정치, 경제 등 모든 분야의 기본원리로 작동하고 국가발전의 토대를 이루며 국민 개개인의 행복수준을 높이는 것”을 의미한다고 서술되어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정의는 너무나 포괄적이어서 ‘문화의 가치가 무엇이며, 모든 분야의 기본원리로 작동할 수 있기 위한 조건을 어떻게 설정해야 하며, 국가발전의 의미를 어디에 두는 것이며, 국민 개개인의 행복수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무엇인가’ 등의 숱한 질문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기억하시겠지만 2012년 대선 당시 문화예술단체들이 각 당의 후보들에게 제안한 <문화정책 100대 과제>가 있습니다. 이를 10개의 키워드로 다시 정리해 보면, 1) 문화의 위상강화와 새로운 문화정책 패러다임 수립(문화기본법 제정, 문화예산 3% 확보 등) 2) 문화예술을 통한 사회적 창의성 확대(대통령 직속 창의사회위원회 설치, 문화부 소속 창의사회위원회 설치 등) 3) 문화권리와 표현의 자유 확대(국가보안법 폐지, 청소년 인권법 제정, 국가인권위원회의 독립성 보장과 문화권 강화 등) 4) 문화시장 독점해소와 종 다양성 확보(문화산업생태계의 선순환구조마련을 위한 생산자단체 집중 육성정책, 문화산업 노동조건 향상을 위한 표준고용계약서 적용 의무화 실시 등) 5) 지역문화 자율성과 자생성 확보(지역문화지원체계 개선 및 활성화 : 지역문화진흥법 제정 추진 외, 생활단위(마을, 동네) 기반형 통합적 지역문화지원체계 구축, 생활단위(마을, 동네) 기반 스토리텔링 관광 활성화 및 관광안내센터 혁신 등) 6) 사회적 소수자의 자기문화역량 강화(청소년청 신설, 여성의 생애주기에 적합한 여성문화예술인 복지 정책 수립, 이주자를 위한 자립형 문화센터 신설 등) 7) 예술의 사회적 확산을 위한 문화-교육 정책 혁신(공교육 교육과정에 문화예술교육의 확산, 지역문화예술교육 지원센터 활성화 등) 8) 공존과 상생을 위한 글로벌 문화정책(문화다양성 국회비준 정책실행을 위한 문화다양성 아젠다 개발, 동아시아 전통문화교류확산, ‘흡수통합’에서 ‘차이 공존’으로 다문화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실행계획수립 등) 9) 사회적 문제해결을 위한 문화정책의 대안 마련(문화예술분야 노동 관련 사회 기준선 마련 및 제도화, 문화예술분야 복권기금사업 개혁 및 문화복지 전달체계 재구성 등) 10) 문화사회를 위한 공공문화정책의 확대(생활권 문화 거점 마련을 위한 ‘문화의 집’ 2.0 추진, 국공립 문화시설 이용 활성화를 위한 국공립문화시설 전면 개방, 지역문화의 특징을 살릴 수 있는 지역문화재단 매개 지원구조 마련 등)입니다.
당시 문화예술계에서의 제안의 일정 부분이 아래 도표에 정리된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주요업무계획 및 문화융성위원회의 비전과 정책방향 및 사업에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13년 주요업무계획과 2014년, 그리고 2013년 10월25일 발표한 문화융성위원회의 발표내용을 요약하여 하나로 볼 수 있도록 묶어보기로 하지요.
(2) 현실체감 정도
문화융성위원회가 구성되고 지역에서의 정책토론회를 거쳐 나온 의견을 수렴, 8대 정책과제의 발표, 문화기본법과 지역문화진흥법의 제정, 예술인 복지법 개정 등 다소 속도감 있게 진행되어 온 기반구축의 과정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지역문화정책에 있어서 문화예술전문가, 문화정책 및 행정인력 등의 오랜 현장경험을 통해 얻은 고민과 제안 및 주민들의 의견을 듣고자 했던 일련의 과정은 소통과 공감을 위한 좋은 방법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년 동안의 과정에서 문화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도록 제대로 전달되었는가 하는 점에서는 다소 미진한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문화의 가치’에 대한 국민(시민)들의 이해와 합의를 구하는 과정은 없었으며 하향식 정책의 모습이 여전했기 때문입니다.
소외계층 등 대상 문화향유 프로그램 수혜자의 증가는 계량적으로 볼 때 명백하게 확대되었습니다. 찾아가는 문화순회사업의 ‘수혜자’ 54만 명, 사랑티켓 ‘수혜자’ 45만 명, 문화이용권 ‘수혜자’ 160만 명 등 무려 250만여 명이 문화복지의 혜택을 받았으니까요. 그런데 일반복지의 개념과 문화복지의 개념에는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문화란 그 가치를 평균적으로 나누어 균등하게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취향과 습관, 신념과 관습, 공동체의 가치관 등에 의해 형성되는 것으로 ‘수혜자’가 아닌, 문화권리자로서의 문화향유를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기획재정부에서는 기초수급자, 차상위계층 등 지원의 대상이 명백할 경우 예산을 확보해 주기 때문에 문화복지 또한 이런 기준에서 예산을 확보,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문화기본권을 가진 시민으로서의 문화권을 갖기 위해서는 타 부처의 문화가치의 이해와 문화적 관점이 관통된 정책이 수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적절한 재정을 확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역문화진흥정책의 측면을 보면 문화분권, 문화분산을 위한 기반이 제대로 조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중앙에 대한 의존도 및 종속성이 강합니다. 재정적인 측면에서 기획재정부의 예산 편성 기본 방침은 대응투자 방식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대응투자비율을 볼 때 5:5에서 점차 3:7로 지방자치단체 자체부담율이 커지고 있어서 재정이 취약한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실질적인 지역문화정책을 펼치기에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의 프로그램이 지역현실과 동떨어진 형태로 설계되어 ‘내려오기’ 때문에 광역과 기초의 경우(대개 문화재단 등) 중앙정부의 통제(관리) 하에 지역의 예술가나 단체 등의 문화적 역량 강화나 자율성 확장을 도와주는 역할이 아닌, 정책 배달자이거나 행정절차로 쥐어짜는 ‘마름’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오히려 지역문화진흥을 위해서는 도시와 도시 간 격차, 도시와 농촌(어촌/산촌)의 격차 등을 고려, ‘보충성의 원리’에 따른 정책 방안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난 1년은 지역문화진흥정책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실행되었지만 실질적인 진흥기반이 만들어졌느냐 했을 때는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인문정신문화 및 전통문화에 대한 언급을 할까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인문정신문화계 인사들과의 오찬 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성숙한 선진국이 되고 국민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토대도 중요하지만 정신적·문화적 토양을 일구고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며, 그 근간이 되는 것이 바로 인문정신문화”라고요.*
* 선뉴스데이, 2013.11.20
말하자면 문화융성을 하기 위해서는 인문정신문화가 중요하다는 뜻이지요. 적어도 인문학의 중요성을 짚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 그러나 ‘어떤’ 인문학을 의미하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이는 공교육에서의 문화예술교육과 사회문화예술교육의 방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입니다.
아무튼 2013년 10월 25일, 인문정신문화특별위원회가 출범하였고 여기서 인문정신문화의 가치 재조명, 인문정신문화의 대중화, 한국문화의 국내외 확산 등을 위한 해법을 찾아나가겠다는 방향을 제시하였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13년 11월20일 「문화체육관광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시행규칙 일부개정안 입법예고」를 통해 도서관박물관정책기획단을 인문정책국으로 개편, 그 속에 인문정신문화과를 신설하고자 하였는데, 관계부처 간 사전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직제개편안이 무산되었지요. 문화부 직제 개편안 무산은 '인문학 관련 업무는 교육부의 기존 학술 관련 업무와 중복 우려가 있다'며 교육부가 반대의견을 제시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입법예고까지 한 직제개편안이 타 부처의 반대로 무산된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고 하는데 부처 간 협력 및 칸막이 없애기가 주요업무였던 만큼 관련부처간의 의견수렴이 미흡했던 이 사례는 정책수행과정에서의 오류로 보입니다. 이 후 2013년 12월22일, 한국국학진흥원이 주관한 ‘인문정신문화진흥을 위한 정책 제언’포럼에서 “특정 부처보다는 청와대나 국무총리실 등 상급기관이 총괄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 세계일보, 2013.12.22
이런 상황을 고려하여 문화체육관관부는 2014년 2월17일, 「문화체육관광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일부개정령」(대통령령 제15182호)과「문화체육관광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시행규칙 일부개정령」(문화체육관광부령 제165호)을 공포, 시행하였습니다. 그리고 도서관박물관정책기획단을 문화기반국* 으로 개편하고 문화기반국에 인문정신문화과, 도서관정책기획단, 박물관정책과를 설치하게 됩니다.
* 문화체육관광부는 2.17일 조직개편을 발표하면서 “문화기반국장은 인문ㆍ정신문화와 독서문화의 진흥 정책, 도서관정보정책, 박물관정책을 총괄하며, 인문정신문화과장은 인문ㆍ정신문화 진흥에 관한 계획의 수립 및 추진, 독서문화진흥을 위한 종합계획의 수립ㆍ조정 및 독서문화진흥 활동의 육성ㆍ지원 등 인문ㆍ정신문화와 독서 진흥에 관한 세부 업무를 분장”한다고 설명함.
‘문화융성’ 정책은 정부가 자체적으로 정책만족도 조사한 결과에서 보여주듯이 ‘기대가치’에 비해서 만족도는 그리 높지 않음이 드러났습니다. 여전히 정책공정성에 있어서 (지원에 대한 심사의)불공정을 지적하고 있으며, 특히 지방자치단체와 중앙정부가 불공정한 기관으로 꼽히고 있다는 것은 지원에 있어서의 공공부문의 개선이 여전히 요구되고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국민의 문화체감을 위한 정책의 하나로, 정책적 수사로서는 참으로 멋진 ‘문화가 있는 날’이 있습니다.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시민들에게 무료 혹은 감면금액으로 공연이나 이벤트, 전시 등을 제공하라는 중앙정부의 ‘공문’은 시민들에게 문화적 서비스를 하라는 좋은 의도를 담고 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폭력적으로 다가옵니다. 대개 재정상태가 빠듯한 지방자치단체나 그 산하의 문화기관들은 한정된 재원으로 인해 시민에 대한 문화서비스 확대(공공성 확장)와 재정자립도 증대(경영성과)라는 상반된 요구를 받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게다가 지역주민이 처한 현실과 요구를 고려하지 않을 경우 기존의 ‘프로그램 공급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홍보성’ 정책으로 머물 수 있습니다. 물론 국민들에게 일상 속에서 문화예술활동 기회를 주고 이를 통해 문화융성을 체감하도록 계획한 것이겠지만, 성급하게 던져주는 방식의 문화정책이 아닌, 주민 스스로 주인의식을 갖고 일궈나가는 문화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보다는 오히려 공동체문화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스스로 수행할 수 있는 다양한 자원, 즉 멘토와 매개자 육성, 최소단위의 공간 및 시드머니, 생활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는 동아리 활동 지원 등의 보다 근본적인 기반조성이 절실합니다. 이와 더불어 시민들의 일상생활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가지 지점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함께 해결하지 않고서는 단품 수준의 프로그램 제공만으로 진정한 ‘문화가 있는 삶’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3) 다시, 문화정책이란?
문화정책이란 무엇일까요? 아마도 정부가 정책의 이름으로 사람들의 삶 자체에 모두 관여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것보다는 공적영역에서 공공성, 공공선의 이름으로 행해야 할 무엇, 그 ‘무엇’이 무엇인가를 찾아서 정책대상에 적절한 제도의 마련과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 적절한 기능이라고 생각됩니다. 여타 정책과 달리 문화정책은 그런 점에서 우리가 당대에 어떤 가치와 철학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하며 유형의 가치뿐만 아니라 무형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이해와 수용이 전제되어야 정책수단을 확보할 수 있고 또 비전과 목표달성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쉽게 합의되고 몇 가지 프로그램으로 문제가 해결될 듯이 성급하게 접근하는 태도를 접고, 긴 호흡으로 ‘다양하면서도 다른’ 의견들이 서로 충돌하는 과정을 함께 겪으면서 시대에 따른 ‘삶의 재구성’을 해 나가는 데 기여하는 것이 문화정책의 고유한 기능이 아닌지요. 박근혜 정부 1년, 평가를 하자면 이제 공정도 10% 달성 수준입니다. 앞으로 4년 동안 정책기초를 야무지게 다지는데 재원과 노력이 더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원하건대 숙성되지 않은 정책을 그저 ‘거룩한’ 어휘로 포장하여(그 어휘의 본질이 오염되어 재사용도 어려운) 소란을 떨기보다는 좀 느리게 가더라도 논의하고 또 논의하면서 국민적 공감대와 합의에 기반을 둔 ‘문화융성’이 되었으면 합니다.
★ 발제 : 손경년(부천문화재단 문화예술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