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공공성
사람이 건축을 만들고 건축은 사람을 만든다. (We shape our buildings and they shape us) 이 말은 유명건축가의 말이 아니다. 윈스턴 처칠의 말이다. 건축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정치가는 간파한 것이다. 개인의 요구에 의해 만들어진 건축도 사유물로만 볼 수 없고 사회 공공재로 다루어져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공건축은 그 의미가 더 강조되어야 한다. 기적의 도서관은 공공건축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완성까지 공공건축의 좋은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기적의 도서관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살펴보면
첫째, 사용자의 요구를 충분히 살펴볼 수 있는 지역 활동가들의 경험이 있었다. 건축은 인간의 삶을 담는 그릇이다. 어떤 그릇을 만드는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어떤 사람’의 그릇인가이다. 사용자를 위한 건축이라는 것이 너무 타당한 것이지만 건축과정에서 자칫 소홀히 다루어질 수 있는 우를 지역 활동가들의 그간의 실패와 성공의 경험이 어린이 도서관의 사용자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둘째, 다양한 요구를 이해하고 전망을 제시할 수 있는 현명한 시민단체가 있었다. 건축이란 꿈을 찍는 사진과 흡사하다. 꿈을 꾸고 깬 다음 떠오르는 단편의 스토리와 막연한 이미지가 주는 감성을 벽을 세우고 창을 열어 선명하게 드러내주는 작업이다. 이 과정에서 건축가가 건축주의 감성을 이해하고 기능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이를 잘 정리하여 설명할 수 있는 건축주는 좋은 건축을 만드는 중요한 요소이다. 책사회(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는 ‘공공의 건축주’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셋째, 능력 있는 착한 건축가와 시공자이다. 다양한 요구를 성실히 들어주고 감응하여 물리적 구조물을 통해 기능뿐만이 아니라 감성을 일깨우는 건축을 완성하는데 건축가와 시공자의 노력은 중요하다. 정기용 선생이 학생들에게 늘 대가병, 문화병, 유토피아병에 빠지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다. 학생들이 작가주의 건축에서 벗어나 세상과 소통하고 다양한 문화 행위를 경험하여 감응할 수 있는 건축을 이루기를 꿈꾸셨다. 정기용 선생의 작업 중에 무주 안성면 사무소에는 목욕탕이 있다. 기존 관공서에서는 시도조차 없었던 일이었다. 건축가가 지역민의 이야기를 충실히 듣고 삶을 이해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정기용 선생은 ‘건축가로서 내가 한일은 원래 거기 있었던 사람들의 요구를 공간으로 번역한 것이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런 건축가의 접근방법은 공공건축을 건립하는데 디자인 능력만큼이나 중요한 덕목이다. 기적의 도서관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요구를 충실히 듣고 이를 시적 감수성과 상상력을 통해 공간으로 번역해 보여줄 수 있는 건축가와 이 과정의 결과물인 도면을 근거로 짧은 공기와 부족한 예산에도 불구하고 구체적 구조물로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 시공자가 있었다.
넷째, 협치의 건축생산 방식이 가능하게 한 행정관료가 있었다. 일반적인 경우 지자체의 행정관료가 공공의 건축주가 되어 건축과정에서 일방적인 요구로 건축물이 왜곡되어 나타나기도 하는데 기적의 도서관에서는 공공의 건축주 역할을 시민단체가 수행하고 지자체는 대등한 관계에서 논의하고 협력하는 협치의 방식이 가능하게 하였다. 그 과정에서 지자체와 시민단체가 소통과정에서 새로운 방식에 대한 많은 논의와 진통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하지만 이 과정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협치의 방식이 가능하게 한 이유 중에 사회적 요구를 공론화한 미디어의 역할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다섯째 건립과정에서 공유한 가치를 이해하고 실현시키고자 노력하는 도서관 운영자와 자원봉사자이다. 주어진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공간을 재해석하거나 변용하여 아이들과 함께하는 공간으로 이용하여, 상상 속에 머물렀던 어린이도서관의 모습을 완성하고 있으며 이는 진행형이다.
기적의 도서관이 주는 교훈
문화체육관광부 국가도서관통계시스템 자료에 따르면 현재 기적의 도서관 11개 관을 포함하여 84개 관이 공공어린이도서관으로 분류된다. 2003년 기적의 도서관 건립 이전에는 서울시립어린이도서관(79), 양평어린이도서관(93) 두 곳뿐이었다. 어린이 도서관이 사회적 기본시설이라는 인식을 갖게 된 계기를 기적의 도서관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기적의 도서관이 사회에 끼친 영향으로 전국 각지에서 기적의 도서관이 벤치마킹되어 어린이도서관이 건립되고 있으나 개인적인 건축의 관점에서만 보면 기적의 도서관이 공유한 가치는 사라지고 단순히 건물 형태나 평면 일부분을 모방하여 건립하는 키치Kitsch 문화적 성향까지 보이는 도서관도 종종 발견된다. 기적의 도서관 결과물만을 주목한 결과이다. 정기용 선생께서도 말씀하셨듯이 기적의 도서관은 건축가의 상상력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철저하게 협치의 과정을 거친 결과물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체험과 지혜와 노력을 통해 하나의 결과물로 완성되는 과정을 벤치마킹하여야 한다. 사용자의 관점, 어린이들의 시각에서 기적의 도서관을 살펴보고 교훈을 얻어야 한다. 어린이가 선호하는 공간과 공간을 재해석하거나 변용한 공간을 분석하고 도서관 운영 프로그램에서 나타나는 공간의 장단점을 살펴보아야 한다.
어린이의 성장과 발달은 환경과 상호작용의 결과로서 이루어지므로 환경의 영향은 대단히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실제 물리적 환경 요인이 어린이 발달에 중요하고 표면적으로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들이 나오고 있다. 특히 학습을 위한 환경은 인간의 특성에서 나타나는 변화의 범위와 종류를 결정해 주는 요인이며 인간 발달 과정 중에서 가장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는 어린이시기에 더욱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어린이 시기의 물리적 공간 환경이 중요함에도 어린이를 주 사용대상자로 한 어린이도서관 설계과정에서 어린이의 요구사항을 직접 파악하기 어려움과 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성인의 취향과 개인적 경험을 통한 무분별한 추측에 의해 디자인이 결정되어 어린이도서관의 공간적 특성이 모호한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사용자를 위한 건축이 되기 위하여 어린이에게 주어진 공간이 얼마나 적정한지 어린이에 대한 이해를 통해 요구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적의 도서관이 어린이 공간을 살펴보는 중요한 사례임에도 이에 대한 연구가 아직 미진한 상태이다.
기적의 도서관은 많은 사람들이 협력하여 만들어진 결과물로, 어린이도서관의 공간구성에 대하여 계획의 기준이 없던 환경에서 진행된 기적의 도서관은 스페이스 프로그램(실 구성)에서 어린이 발달 심리학의 관점과 건축심리학 연령별 어린이 방과 행동의 발달 측면에서, 개인적으로 살펴본 결과 의미 있는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공간구성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
<표1> 공간구성에서 보여지는 특성
기적의 도서관 열람공간은 어린이발달단계에 따라 0∼6세의 미취학 유아기, 7∼11세의 초등학교 저 학년기, 12세 이상의 고 학년기로 3단계로 나누어 구분한 특징이 보이며 각 시기별 적용 가능한 발달심리학 및 열람공간의 특징은 다음 표와 같다.
<표2> 시기별 발달심리학 및 열람 공간 특징
위 내용은 어린이 공간을 이해하기 위하여 기존의 발달심리학 이론을 도구로 살펴본 것으로 건축전공자로서 한계를 가지며, 유아 발달 심리학, 교육학, 색채학, 건축 등 다양한 전문가들의 어린이공간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기적의 도서관이 어린이도서관에 다양한 영향을 미쳤음에도 객관적인 데이터나 연구가 없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기적의 도서관이 이룩한 사회적 자산을 교훈으로 삼아 어린이 공간의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기적에서 일상으로
기적의 도서관이 전국적인 관심에서 건립된 지 10년이 지났다. 많은 어린이도서관이 건립되었고 건립 중이다. 이제 기적의 도서관은 어린이도서관의 모델이 되어 어디에서나 어린이도서관의 건립기준이 되고 있다. 하지만 기적의 도서관이 성취한 가치를 현재 건립된 어린이도서관이 공유하는지는 회의적이다. 10년이 지난 현재, 기적의 도서관을 교훈으로 삼았다면 기적의 도서관은 이 땅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일상적인 어린이도서관의 모습으로 나타나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기적의 도서관 결과물만을 주목한 결과로 판단된다. 기적의 도서관 같은 어린이도서관을 건립하고 싶다면 첫째, 어린이도서관 관련 지역 활동가를 발굴하거나 양성하여야 한다. 둘째, 다양한 시민의 요구를 이해하고 전망을 제시할 수 있는 시민단체와 결합하거나 행정 관료가 공공의 건축주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소양을 키워 협치의 건축생산 방식이 가능해야 한다. 셋째, 능력 있는 착한 건축가와 시공자의 발굴이다. 이는 현재 지자체에서 하기 어려운 부분으로 지방자치단체를당사자로하는계약에관한법률 등의 개정을 통해 입찰제도, 현상설계 제도 등의 개선이 필요하다. 넷째 건립과정에서 도서관 운영자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제도를 갖추어야 한다. 이것이 선행되고 기존 어린이도서관의 연구가 결합된다면 기적의 도서관을 능가하는 어린이 도서관이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