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의 접근성
공공도서관 수가 부족해 접근성이 불편했던 실정에서 주민들은 작은 규모라도 마을 가까이에 도서관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전문적인 자료 이용자 이외의 시민 대중들이나 어린이에게 도서관은 걸어서 10여 분 거리에 있어야 한다는 논리는 검증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공립 도서관의 경직성을 벗어나고자
공립 도서관은 조직의 기본 성격상 민간 조직보다는 상대적으로 딱딱한 인상을 느끼게 합니다. 관료제 조직의 기본 바탕은 사람의 자의적인 판단보다는 법률과 각종 규정에 의한 판단을 우선시하는 운영을 할 수밖에 없어 유연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공부방 없는 도서관의 꿈
최근에 많이 좋아지고는 있지만, 그동안 우리 공공도서관의 고질적인 병은 공부방 위주의 운영이었습니다. 공부방이 없는 작은도서관은 어린이의 놀이 공간이고, 보고 싶은 책을 고르며, 주민의 사랑방으로 이웃들과 어울릴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기 때문입니다.
작은도서관은 마을 단위 지역운동과 궤를 같이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만큼 그 지역 주민이 함께 참여하여 소통하고 교류하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뿌리를 내리고 정서적으로 주민과 가까이했기 때문입니다.
머뭇대며 들어오는 어린이에게 이름까지 부르며 환대하는 직원의 모습은 바로 작은도서관의 매력이었습니다. 큰 규모의 공립도서관은 주기적인 인사이동 원칙에 따라 어린이실 사서가 같은 부서에 오래 있을 수도 없거니와 주민과 그 정도로 밀착하기도 어려운 실정이겠죠.
1990년대 전후의 시기는 민주화의 분위기 속에 시민사회와 관련단체가 활성화되면서 당시까지의 도서관운동을 곱씹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풀뿌리 작은도서관 운동은 자연스럽게 불붙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2000년대 전후해서는 작은도서관, 어린이 책읽기 등의 전문적인 시민단체들이 더욱 늘어나며 사회적 분위기를 이끌고 언론을 자극하여 작은도서관을 사회적 관심의 반열에 올려놓았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덧붙여 10여 년 전부터는 문화관광부의 정책 차원의 관심과 지원도 적지 않은 역할을 하였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어린이 책읽기, 도서관 대중화 등의 의식을 가진 풀뿌리 지역운동가들의 헌신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작은도서관은 본질적으로 시설이 아니라, 책읽기 문제에 대한 신념을 구현하는 ‘운동성’이 중심인 만큼, 그동안 작은도서관을 이끌고 운영했던 운동가분들의 열정과 헌신이 밑받침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공공도서관 접근성이 불편하고 서비스가 만족치 못한 현실에서 주민 가까이에 정서적으로 밀착시켜 출발한 작은도서관 운동은 공공도서관 서비스의 부족분을 메우는 보완적인 역할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그동안 사회적 관심과 호응을 받았던 작은도서관 운동이 앞으로 지속 성장하여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공공도서관 문화를 형성할 수 있기를 바라며, 몇 가지 관점에서 현 단계의 문제점과 그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작은도서관 운동의 핵심적 정신은 '풀뿌리 정신'과 '운동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풀뿌리 정신’은 마을의 저변 층 현장에 뿌리내리고 현장의 힘으로 지탱하며 도서관의 가치를 추구하는 정신이며, ‘운동성’은 자발적인 의지로 시작하여 주민의 공동참여를 바탕으로 도서관 문화의 개선을 이끌어 나가는 봉사자로서의 자세라고 봅니다. 이렇듯 작은도서관은 본질적으로 민간영역의 도서관운동인바, 과거시대 선진국의 작은도서관이나 현대 일본의 문고운동 모두 그러했습니다. 지방정부의 지원을 받더라도 민간영역으로서의 정체성과 자율성은 훼손되지 않아야 하며, 그러하기 위해서는 주민의 자발적인 참여(후원금 활동, 자원봉사 등)를 바탕으로 하는 자조自助· 자립自立의 기반이 전제되어야 하는 어려운 도서관운동입니다.
필요성
현대의 도서관은 어느 나라이든, 어떠한 관종이든 독자적으로 존립하면서 홀로 운영해 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실정입니다. 더구나 동일한 공공도서관 범주 안에 속하면서, 공립 공공도서관과 관내의 작은도서관이 서로 연계·협력해야 하는 일은 자연스러우면서도 필수적인 일입니다. 그런데 공립 공공도서관과 작은도서관이 서로 연계·협력하는 자세에 소극적이기도 하고, 심지어는 정부 정책이나 재정지원 획득에서 공생의 관계보다는, 서로 경쟁하는 ‘제로섬’의 관계로 인식하는 일부의 그릇된 시각에 대해 언론에서까지 우려를 표하고 있는 바1), 작은도서관 운동으로 출발하여 평생 공공도서관 공부를 해오는 사람으로서 부끄럽기까지 합니다. 이에 관련해서 양측은 인식의 전환이 최우선적으로 필요합니다.
- 공공도서관 측에서 : 작은도서관은 독서인구 늘리기·주민의 도서관 이용습관 키우기 등 공공도서관의 잠재고객을 양성하여 결과적으로 공공도서관의 인프라를 튼튼하게 해주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인식 필요.- 작은도서관 측에서 : 공공도서관은 지역의 거점 도서관으로서 제 몫을 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지역 내의 작은도서관을 포용하며 육성하는 실무를 감당할 수 있으며, 서로 연계체제 구축으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인식 필요.
즉, 작은도서관만으로 모든 주민의 망라적網羅的인 도서관서비스를 충족시키기는 쉽지 않으므로, 지역단위로 공공도서관과 작은도서관이 ‘도서관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연계·협조체제로 나가야 하는 일은 필수적인 미래 전략 방향입니다. 3~4천 개 작은도서관문고의 중심조직인 일본의 '부모독서 지역문고 전국 연락회'親子讀書 地域文庫 全國 連絡會의 여러 역할 중에는 지역의 공공·학교도서관 진흥 활동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점도 시사점이 큽니다.
연계·협력해야 하는 일들
공공도서관과 작은도서관 양측이 지방정부의 작은도서관에 대한 행·재정 지원정책과 행정 내용을 공유하고, 지역 도서관의 가치와 정신을 함께 인식하며 쌍방 소통과 교류에 도움이 되는 활동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한 예로 순회사서 지원 체제 운영, 작은도서관 실무운영 교육, 자료 상호대차 업무, 작은도서관에서 충족 못 한 이용자를 공공도서관으로 유도, 독서문화 프로그램 연합행사, 공동 도서관리시스템 운영 등 실정에 맞는 일을 찾아 협력할 수 있겠습니다.
현재 작은도서관의 수는 전국적으로 5,234개(2014년 말 통계)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운영이 잘되는 곳이 많지만 부진한 곳도 적지 않습니다. 2011년도 실태조사 분석 자료와 그 후 2014년까지의 분석 자료는 이러한 현상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체로 절반에 가까운 작은도서관들이 제 구실을 하기 어려운 실정으로 보입니다.2) 이러한 현실은 자율적인 민간운동에 있어서는 어쩔 수 없이 뒤따르는 일인 만큼, 지속적인 지도·지원과 개선조치를 강력히 추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양적인 확산이 아니라, 제대로 된 공공도서관, 제 구실하는 작은도서관으로 정비하고 육성하는 쪽으로 정부 정책의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작은도서관의 기준을 강화하고, 질문지 실태조사는 물론 방문조사 자료를 지자체 당국이나 관내 공공도서관이 세밀하게 평가토록 한 후,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은 평가결과를 엄격히 연계시켜, 선택과 집중의 방식으로 지원액을 늘리거나 정비해 나가는 방안 검토가 필요할 때입니다.
현재에도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정부 예산으로 ‘공립 작은도서관’을 설치하여 운영하는 지역이 적지 않습니다. 현재 전국적으로 공립의 작은도서관은 전체 작은도서관의 1/4에 해당하는 1,302개관(2014년 말)에 이릅니다. 지방자치단체의 작은도서관 정책은 새로운 공립 작은도서관 설치보다는 사립 작은도서관 지원, 교육, 정비 등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왜냐하면 지방정부가 도서관을 신설한다면 제대로 된 ‘공립 공공도서관’ 설치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리고는 그 공공도서관으로 하여금 주변에 설치되어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립 작은도서관을 지원·육성하게끔 하는 것이 순리이며, 이 시점에서 정부가 관내 사립 작은도서관이 취약하다 하여 직접 공립 작은도서관을 설치·운영하는 일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만약 지방정부의 예산이 부족하든가 작은 규모의 도서관이 어쩔 수 없이 필요한 지역이라면, 공립 공공도서관의 ‘분관’이나 '소분관'sub-branch으로 설립하고 정규직원을 두어, 전체 ‘공공도서관 시스템’(인사, 재정을 한곳에서 통괄)의 일환으로 운영해야 합니다. 자치단체가 양적인 실적을 내세우면서 상근인력과 운영비를 최소화 할 수 있다는 유혹으로, 민간 도서관운동 영역인 작은도서관을 공립으로 세우는 일은 이제 지양해야 됩니다. 몇 개의 공립 작은도서관보다는 그 예산으로 사립 작은도서관들의 정비·육성에 투입하는 것이 명분이나 효율성에서 바람직합니다.
오히려 저는 이왕 설치되어 있는 공립 작은도서관을 조속히 공립 ‘공공도서관시스템’에 편입하고, 공공도서관의 ‘분관’으로 변환시켜 운영할 것을 주장해 왔습니다. 외국의 경우 산간벽지에서는 특정 요일이나 시간에만 개관하는 규모가 작은 공립의 공공도서관 ‘분관’도 꽤 있습니다. 민간영역의 작은도서관 운동과 지방정부 고유영역인 도서관행정이 제자리를 찾아야만, 도서관계가 우려하는 공공도서관 생태계의 혼란도 방지하고 사립 작은도서관 육성에도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역 공립 공공도서관들이 관내에 설치된 민간주도의 사립 작은도서관과 어떻게 ‘도서관네트워크’(독립적인 운영주체 유지하며 연계협력)를 구축하여 지원·육성할 것인가에 대한 장단기 정책을 각 지방정부가 우선적으로 수립해야 합니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지방정부는 기존 사립 작은도서관이 민간 도서관운동으로 특성화 되도록 행·재정 지원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와 중앙정부는 작은도서관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 이러한 핵심적인 정책이 지방자치단체에 구현되도록 하는 실천적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안합니다.
★ 본 기고글은 2016년 4월 18일 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전국 작은도서관대회'의 기조강연 원고로서, 필자의 동의 아래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