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동아리를 위한 책 읽기 9
분야별 추천 도서_ 예술
등장인물・손님(-), 나(=)
때・현재
곳・나의 연구실
나는 연구실에 있다. 연구실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면 왼쪽에는 서가에 가득 책이 꽂혀 있고, 오른쪽 흰 벽에는 그림이 세 점 걸려 있다.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선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홍 선생에게 얘기 들었어요. 독서동아리를 시작한다고요?
-예. 좀 궁금한 게 있어서요. 근데 여긴 갤러리이자 도서관이네요?
=하하, 그러네요. 그림이 있고 책이 있으니까요. 자, 차 한 잔 하죠. 갤러리 도서관 카페라 생각하면서요.
-좋아요. 이 그림들은 직접 그린 건가요?
=맞아요. 봄 전시를 앞두고 그리고 있어요. 그림이 완성되면 저렇게 벽에 걸어 놓고 봐요. 여러 날 봐도 좋으면 합격인데, 어떤 놈은 하루 걸었다 떼어 낼 때도 있어요.
-뭐가 좋은 건지 잘 모르겠어요.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지요. 그림은 좋아하는데 뭐가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고요. 하하. 그럴 때 난 이렇게 되물어요. 음악은 좋아하세요?
-네. 좋아하는 가요를 폰으로 매일 들어요.
=거기 답이 있어요. 미술도 아마 매일 가까이 접하게 된다면 어떤 것이 좋은지 알게 될 거라고요.
-당연한 얘기 아닌가요?
=그런가요? 그런데 한편으로, 뭐가 좋은지 모르겠다는 분들도 이미 생활 속에서 미술을 알고 잘 활용해요. 옷이나 가방을 살 때 색깔과 형태를 보고 고르잖아요.
-네, 당연히 고르긴 하죠. 지갑 사정과 무관하게 자주 지름신이 내려서 문제지만요.
=하하, 그건 다른 얘기고요. 옷을 예로 들면, 일단 시각적으로 마음에 들어야 하죠. 그 다음엔 손으로 만져 보고 직접 입어 보게 됩니다. 입었을 때의 느낌이 중요하고요. 또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살까 말까 판단하게 되지요. 그림도, 조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마 여기 걸린 세 점의 그림 중에서 한 점 선물로 준다고 하면 분명히 가장 좋은 것을 딱 집어 갈걸요? 자, 한번 골라 보세요.
-진짜요?
=네. 한번 골라 보세요. 단지 골라 보세요. 하하.
-얘기를 듣고 보니 갑자기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바로 그 점이에요. 아까 음악 얘기 했었죠? 매일 들으니까 친숙하고 잘 알게 된다고요. 좋은 음악이 무엇이냐 물으면 누구나 할 말이 많아요. 왜냐면 그 대답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자신의 취향이죠. 짜장면이냐 짬뽕이냐 물으면, 걱정하고 눈치 볼 필요가 없는 것처럼, 분명한 취향의 문제일 뿐이죠. 다만 취향이라는 것도 항상 같지 않죠. 짜장면이 밋밋하고 느끼하다 생각하면 뜨겁고 매운 짬뽕을 먹어 보기도 하죠. 락이 최고라고 주장하던 사람이 언제부턴가 재즈 예찬론자가 되는 것처럼 말이죠.
-이제 갤러리에서 도서관으로 이동할까요? 좋은 그림이 따로 있듯이, 좋은 책이 따로 있을까요?
=네. 자신이 좋으면 좋은 그림이고요, 자신이 좋으면 좋은 책입니다.
-늘 자신이 주인공이군요. 그래도 이 많은 책 중에 좋은 걸 딱 한 권을 고르라고 하면 쉽지 않겠는데요?
=그건 그래요. 하루 읽을 한 권을 고르기 위해 평생 읽을 만 권을 다 읽어 볼 수는 없으니까요. 하하. 그런데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책을 고르기 쉽게 하기 위해서 도서관이나 서점마다 분류를 잘하고 있으니까요. 예를 들면 십진분류 60번에 해당하는 예술은 다시 미술, 음악, 무용, 영화, 건축 등으로 나뉘지요. 그 중 미술을 고른다면, 회화나 조각, 미술사, 미술가 등으로 다시 나뉩니다. 이렇게 관심 영역을 좁히다 보면 자신이 읽고 싶은 내용이 무엇인지 정해지지요.
-비슷한 주제를 다룬 책들 중에서는 어떻게 고를까요?
=목차를 대강 보고 비교하고, 그걸로 부족하다 싶으면 한 꼭지 정도 읽어 보면 좋겠네요.
-그런 수고를 직접 해야 하네요. 추천 도서 목록을 따르면 쉬울 텐데요. 고전 같은 것은 어떨까요?
=전문가들이 뽑아 놓은 목록이나 고전은 성공할 확률을 높여 주지요. 다만 책 읽기 또한 취향의 발견이라면, 아무래도 자신에게 맞는 취향은 따로 있다고 봐요. 고전은 가장 많은 전문가가 추천한 가장 오래된 추천 도서들이지요. 하지만 자신이 잘 알고, 관심이 있는 건 역시 동시대라고 생각해요. 고전을 읽을 의무는 없지만, 고전을 읽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그는 ‘오래된 미래’를 엿보게 되는 셈이에요.
-그러네요. 여러 명 같이 읽는 독서동아리라면 회원마다 관심사와 취향이 다를 텐데요. 어떤 동아리는 할머니와 손녀가 같이 오기도 해요.
=연령대와 관심사가 다른 다양한 사람들의 취향을 다 맞추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요. 다만 책 선정만으로 본다면, 한 사람이 열 번 수고할 일을 열 사람이 한 번씩 돌아가면서 나눠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능률적이지요.
-그건 독서동아리의 장점이네요.
=그렇지요. 스스로 책 선정이 어려운 사람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요. 자신이 책을 고른다 할 때도 혼자 읽는 것이 아니니 다양한 연령대와 관심사를 반영하게 되겠지요. 독서동아리의 장점은 이렇듯 다양성을 존중하고 그 다양성을 바탕으로 내 자신 다른 사람과 세계에 대해 인식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점이지요.
-늘 책 읽을 시간도 부족해서 그냥 혼자 보고 싶은 책을 읽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얘기를 듣고 보니 독서동아리의 장점이 많네요. 이제 예술 책 얘기로 넘어가지요. 예술 책을 왜 읽어야 할까요?
=하하. 예술 책이 아니라 어떤 책도 읽어야 할 의무는 없어요. 의무로 생각한 순간 책 읽기가 지겨워지겠죠. 엄마들이 어린이 책만 관심을 두는 것도 다 의무감에서 나온 것이라 좋지 않아요.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자신의 취향에 따라 읽는 게 낫죠. 책 읽기의 동력은 호기심인데 호기심은 자발적인 데서 나와요.
-그렇군요. 질문을 바꾸지요. 예술 책을 읽으면 좋은 점은 무엇인가요?
=하하. 좋은 질문입니다. 예술 책을 읽으면 예술을 이해하게 되어서 좋습니다.
-질문은 좋다면서 답이 좀 그러네요.
=하하 그런가요? 하지만 뭐든지 쉽고 간단한 게 사실 좋습니다. 다만 예술을 이해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설명이 더 필요하네요. 예술은 쓸모없는 것의 쓸모를 발견하는 과정이자 결과입니다. 이 연구실에 걸린 그림을 보세요. 저야 밤을 새워 고민한 결과지만 이 천 위의 물감 반죽은 아무짝에도 쓸모는 없죠.
-베짱이의 음악처럼요?
=맞아요. 그런데 그게 다는 아니죠. 개미가 만든 빵이 고픈 배를 채워 준다면, 베짱이의 음악은 지친 영혼을 달래 줄 수 있죠. 음악을 듣고 울어 본 적이 있다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말입니다. 예술의 힘은 거기서 나와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너무나 사소한 데에서 나와 세상을 새롭게 발견하고 이해하게 하는 힘 말이지요.
-예술보다 예술가를 이해하면 좋겠네요?
=그래요. 예술은 작품으로 드러나고 작품은 작가가 만드는 것이니 예술을 이해하려면 예술가를 이해하는 게 좋지요.
-예술 책을 고를 때도 적용되는 말인가요?
=맞아요. 제 전공인 미술을 갖고 말해 볼까요? 앞서 미술의 분류를 보면 회화나 조각, 미술사, 미술가 등으로 나뉜다고 했죠? 장르별로, 시대별로 작품과 작가가 있겠죠. 작가가 작품을 만들게 된 개인적 동기와 과정을 살펴보면 작품을 쉽게 이해하게 돼요. 물론 작가는 혼자 태어나지 않아요. 작가가 태어난 시간이 있고 공간이 있죠. 역사와 환경이 한 사람의 작가를 만들고, 다시 한 사람의 작가가 역사와 환경을 만들기도 하죠.
-그 많은 예술가 중에서 누구를 먼저 읽어야 할까요?
=따로 마땅한 순서는 없지요. 다만 제 생각에, 가까운 공간, 가까운 시간을 살았던 예술가부터 찾아보는 것이 좋겠네요. 왜냐하면 예술가를 읽고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것은 나의 취향과 세계를 발견하고 이해하고 확장하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그 시간과 공간이 내가 사는 시대와 환경과 같을수록 쉽게 다가오거든요.
나와 손님의 이야기는 한동안 더 이어졌다. 저녁 무렵에야 서가에서 둘은 가까운 공간과 시간을 살았던 열 명의 예술가를 추려 냈다.
-『김정희: 알기 쉽게 간추린 완당평전』, 유홍준, 학고재, 2006
-『나의 사랑 백남준』, 구보타 시게코, 남정호, 이순, 2010
-『아름다운 사람 이중섭』, 전인권, 문학과지성사, 2014
-『윤이상: 세계 현대음악의 거장』, 박선욱, 작은씨앗, 2010
-『장욱진』, 김형국, 열화당, 2004
-『전설의 명창 임방울: 고독한 광대의 생애』, 천이두, 한길사, 2009
-『착한 그림, 선한 화가 박수근』, 공주형, 예경, 2009
-『현재 심사정: 조선남종화의 탄생』, 이예성, 돌베개, 2014
-『호생관 최북』, 임영태, 문이당, 2007
-『화가 이응노: 붓으로 평화를 그리다』, 김학량, 나무숲, 2005
뜻이 맞는 사람들과 이 책들을 조금씩 읽어 나가면서 세계의 정면과 이면을 엿보기 바란다. 그들이 영혼을 던져 빚어 낸 한 점의 작품 앞에서 내가 세상에 와서 살며 사랑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