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동아리 인터뷰 6
책만 보는 바보가 되고 싶어요
경기 안산 간서치
모이는 곳_ 안산 무인카페
모이는 사람들_ 주부
읽는 책_ 인문, 교양 등
경기 안산의 독서동아리, 간서치와는 몇 번이나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가 어긋나게 되었다. 그곳이 안산이었기 때문일까. 안산은 2014년 4월, 세월호가 침몰한 그날부터 잊을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렸다. 인간과 그 인간들이 만든 시스템에 대한 무력함을 가장 절실히 느끼게 한 곳이기도 했다. 그것은 전혀 원하지 않았던 일이고, 일어나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실재의 속살, 베일에 가려져 있던 그것이 살짝 들춰지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너무나도 큰 고통을 겪어야만 했고 그 고통은 언제 사그라질 수 있는지 가늠할 수조차 없다. 그래서 안산으로 발걸음하기가 무거웠다.
인연이 아닌 걸까 생각할 때쯤 결국 자리가 마련됐다. 무거운 마음으로 작은 무인카페에 들어서자 6명의 어머니들이 오순도순 모여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만으로도 뭔가 위안이 되었고 힘이 되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일까. 이날 간서치와의 대화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그 분위기에 힘입어 회원들의 이야기 또한 막힘없이 이어질 수 있었다. 가장 먼저 간서치는 어떻게 시작했는지, 회원들은 어떻게 모이게 됐는지 들어 봤다.
“처음에 저희들은 초등학교에서 3~4학년 정도의 저학년 학생들에게 동화책을 읽어 주는 모임을 통해 만나게 되었어요. 학교에서 아침에 20분 정도 아이들을 대상으로 책을 읽어 주는 활동이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다 그 봉사활동을 했던 분들이에요. 동화책을 읽어 주기 위해서 도서관을 들락날락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책도 많이 읽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혼자 책 읽는 것에 만족했지만 점차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듣고 싶었어요. 어차피 교류를 하던 사람들이라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게 됐는데 공개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서 책에 정말 관심을 분들만을 포섭했어요.”
“저는 최초로 모임을 만든 분들에 비해 조금 더 늦게 모임에 가입했어요. 저는 안산의 ‘꿈을키우는도서관’에서 자원활동가를 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곳에서 책모임을 하고는 있었는데 그 모임이 그만 와해가 됐어요. 그래서 책 읽기 모임에 대한 갈증이 있었는데 마침 간서치를 만날 수 있었어요. 이곳에 오니 나만의 생각이 아닌 여섯 가지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 너무 좋아요.”
“독서동아리를 같이 하자고 얘기를 들었을 때 걱정이 먼저 되었어요. 아이들을 키우고 생활을 하면서 책을 읽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저를 멈칫거리게 했어요. 하지만 그동안 아이들 책을 위주로 읽었는데 엄마들을 위한 책, 성인 도서를 읽어 보자는 이야기에 도전한다는 생각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아동 도서와 추리소설 위주로 독서를 했는데 두루두루 여러 책을 만날 수 있어 참여한 보람을 느끼고 있는 중입니다.”
“저 같은 경우 집안에 행사가 많은 맏며느리였습니다. 외부 사람들과 거의 만날 수 없었어요. 그러다가 아이들도 크고 조금씩 여유를 가지게 되자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겁이 많이 났었어요. 그러다가 간서치를 만든 노미경 대표님의 권유를 받게 되었지요. 시작하면서 정말 많은 걱정을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제 성격이 많이 밝아졌고 모임에 대한 애정도 깊어지고 있습니다. (웃음)”
“앞에서 이미 좋은 이야기들을 해 주셨는데 제가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저는 흔쾌히 모임에 들어 왔습니다. (웃음) 책을 억지로라도 읽고 싶어서 참여하게 되었어요. 서로 다양한 얘기를 나누고 때로는 아이들에 대한 애기도 나눌 수 있고, 부디 오래오래 모임이 유지되었으면 좋겠어요.”
테이블에는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가 놓여 있었다. 간서치에 오기 전 대구의 독서동아리에서도 본 책이라 반가웠다. 읽을 책에 대한 선정 방법과 그동안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책 한 권씩 소개를 부탁했다.
“엄마들이 책 모임을 한다고 하면 처음에는 부담을 가질 수 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접근하기 쉬운 책 위주로 고르다가 점점 잘해 보겠다는 의지가 생겨나니까 순서를 정해서 한 사람씩 책 소개를 하고, 주제를 정해서 해 보자, 작가별로 가 보자 이런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아직도 어떤 것이 좋은지 정해진 것은 없어요. 계속 모이면서 우리 동아리에 맞는 방식을 찾아서 열심히 책을 읽어 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율곡, 사람의 길을 말하다》라는 책을 어서 읽고 싶어요. 이 책은 다음 번 모임 때 읽기로 한 책인데 처음 이 책을 읽는다고 할 때에는 불만이 있었어요. 역사 쪽에 너무 집중하는 것 같아서요. 그런데 도서관에서 살짝 서문만 읽어 봤는데 우리 모임이 나아갈 방향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것을 느낄 수 있는 구절들이 정말 많아서 벌써부터 기대하고 있어요.”
“모임 이름을 정할 때 아니, 이 모임을 만들기 전부터 간서치라고 해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간서치 이덕무를 다룬 《책만 보는 바보》를 통해 그의 생애와 독서에 대한 태도에 가장 강렬한 인식을 가지게 되었고 우리 처음 모임을 할 때도 이 책을 가지고 하자 할 정도였어요. 사실 역사의 전면에 드러나지 않은 사람이잖아요. 그렇지만 정말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에 나도 이덕무처럼 진짜 간서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어요.”
“저는 정약용과 그의 제자를 다룬 《삶을 바꾼 만남》을 가장 인상 깊게 읽었어요. 지금도 제가 가 보고 싶은 곳이 강진인데 딸과 꼭 같이 가 보고 싶어요. 책을 보면 제자에 대한 스승의 사랑, 제자들이 스승에게 바치는 사랑과 태도들을 볼 수 있는데 지금 우리들의 아이들에게서 보기 힘든 모습이잖아요. 그래서 더욱 우리 아이들에게 옛날에는 이런 스승과 제자가 있었다고 알려 주고 싶어요.”
“저는 좀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 집과 아이밖에 몰랐고 그것만 관심이 있었어요. 그런데 오르한 파묵의 《눈》 , 할레드 호세이니의 《그리고 산이 울렸다》를 읽고 저를 둘러싼 이 작은 공간이 아닌 전혀 다른 세상과 넓은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 관심도 생기도 시야도 넓어진 것 같아요.”
“맞아요. 《그리고 산이 울렸다》는 정말 좋았어요. 아프가니스탄이란 나라는 그저 뉴스에서나 듣던 먼 나라로만 알고 있었는데 책을 읽고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그곳에서 겪는 여인들의 아픔, 진짜 사람들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어요. 내가 좁은 이 동네에서 살고 있는데 책 읽기를 하면서 더 멀리, 더 넓게 볼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것이 독서의 힘인 것 같아요.”
이후로도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알랭 드 보통의 《뉴스의 시대》 등 장르의 구분 없이 다양한 책에 대한 감상이 계속되었다. 독서동아리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공통적인 분모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독서동아리가 편독을 막는 좋은 기회가 된다는 것이다. 이곳에서도 그러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간서치는 활동한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동아리이기도 했다. 앞으로의 계획도 궁금했다.
“사실 처음 시작할 때 주위에 거의 알리지 않고 쉬쉬하면서 했어요. 조금 부끄럽기도 할까. 공개적으로 하면 일이 너무 커지지 않을까,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까, 하다 보면 빠져나가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텐데. 그런 현실적인 이유로 열심히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지금은 조금 작게 모임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요즘 우리가 지속적으로 동아리를 하는 모습에 같이 하고 싶다는 사람들의 문의가 계속 오고 있어요. 외형을 조금 더 넓혀 활동할지 아니면 내실을 더 다질지 여러 가지 고민을 하고 있어요.”
“맨 처음 회원을 모집할 때 처음에는 어려웠어요. 게다가 작년에 독서동아리 지원 사업에 신청했을 때 선정이 안 되기도 했어요. 올해는 선정이 되어 저희들끼리 얼마나 기뻐했는지 몰라요. (웃음) 저희는 책을 읽고 나면 꼭 감상이나 평을 써서 기록을 남기고 있어요. 지금은 꽤 쌓였는데 이것을 활용할 방법과 도서관과 연계하여 아이들과 함께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있어요.”
간서치 이덕무는 당시 책을 읽고 나면 꼭 기록을 남겼다. 그 기록은 후에 《관독일기》라는 치열한 독서 기록으로 남겨졌다. 마치 관독일기를 보는 것처럼 파일 한가득 격주로 읽었던 책에 대한 기록이 꼼꼼하게 쓰여 있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한 동네에 살고 있는 엄마들의 평범하지만 특별한 모임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면서 올 때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안산을 떠날 수 있었다. 이후에 이곳을 다시 찾을 때에는 모든 것들이 부디 잘 해결되어 있기를 또한 바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