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시민연대 심포지움'이 2015년 5월 30일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에서 열렸습니다. 심포지움의 주제는 '어린이책에서 어린이 짚어보기'이며, '지원이와 병관이 시리즈'(길벗어린이)를 중심으로 최근 어린이책에서 어떻게 어린이를 나타내고 있는지에 대해 논의하였습니다. 발제는 조은숙(춘천교대 교수), 김은호(성미산학교 교사), 서정홍(농부시인), 수수-류수민(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 변춘희(어린이책시민연대 정책지원부장) 총 5명이 맡아주셨습니다. 발제문 전문을 게재합니다.
어린이를 진지하게 대하자!
변 춘 희 (어린이책시민연대 정책지원부장)
아이들을 진지하게 대한 다면 그들의 능력에 놀라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지각 능력에 놀랄때가 많은데, 그것이 바로 그들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야누슈 코르착 <아이들>, 양철북, 33쪽)
방정환선생님은 ‘어린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하여 ‘어린이’를 어른과 똑같은 인격체로 대하라고 하였습니다. 젊은 사람을 젊은이라고 하고 늙은 사람을 늙은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린사람을 어린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1920년에 어린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하였는데 지금은 누구나 ‘어린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린이를 어른과 똑같은 인격체로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린이를 진지하게 대한다면 어린이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을 겁니다. 옛이야기의 주인공들을 보면 어려운 일을 피하지 않습니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일곱째 바리공주는 여섯 언니들이 모두 황천바다 건너 저승 세계를 어찌 가겠냐며 힘들어서 못한다고 했지만, 황천바다 건너 저승에서 약수를 구해 오겠다며 길을 떠납니다. 바리공주는 숱한 어려운 일을 다 해내고 마침내 약수를 구해서 아버지를 구하고 오구신이 되어 저승 가는 영혼을 인도하는 일을 맡게 되었습이다. 이처럼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어려움을 만나서 그 시련을 겪고 이겨내면서 성장을 합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스스로 애를 쓰기 때문에 도움을 받습니다.
어린이가 이야기의 주인공이라면 어린이 스스로 문제를 만나고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어른의 도움없이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부터 자존감이 생깁니다. 어린이도 어른과 마찬가지로 눈 앞에 닥친 일을 겪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성장합니다. 성장은 어린이들만 성장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시기에나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린이 시기를 성장기라고 규정하고 어린이는 미래를 위해 준비하고 교육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린이를 어른과 똑같은 인격체로 대한다면 어린이에게 미래의 희망이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어린이는 미래에 무엇이 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어린이로서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나중에 무언가가 되기 위해 준비하는 단계 쯤으로 생각하면 어린이를 어른에 비해 미숙하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어린이들이 어른에 비해 부족한 것들 있듯이 어른도 어린이에 비해 부족한 것들이 있습니다. 어른들이 어린이를 진지하게 대할 때 어린이도 진지하게 반응합니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어린이와 어린이 대신 문제를 해결하려는 어른
어른들은 종종 어린이들의 문제를 어른이 대신 해결해 주어야 한다고 오해 합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을 어른이 말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어린이는 그들만의 옳고 그름의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린이는 어른이 만든 사회에서 어른과 함께 살면서 몸으로 체득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미 그들의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기준을 바탕으로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합니다. 지금까지와 다른 경험을 통해 기준을 바꿔 가겠지만 그것은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대신 할 수 없습니다. 그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경험이 쌓여야 가능합니다.
≪싸워도 돼요?≫에서 우진이는 한솔이가 공을 뺏겼기 때문에 축구에서 졌다고 한솔이를 구박을 합니다. 한솔이 편을 드는 병관이에게도 때릴 듯이 주먹을 들이 대자 병관이는 우진를 이기고 싶습니다. 병관이는 호신술을 연습해서 한솔이를 괴롭히는 우진이 팔을 비틀어서 우진이를 울립니다. 그러자 담임 선생님은 병관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병관아, 그런 일이 있으면 선생님께 이야기 해야지. 폭력을 함부로 쓰면 안 돼. 벌로 반성문 써.”
병관이는 자신과 한솔이를 꼬맹이라고 놀리고 자꾸 시비를 거는 우진에게 어떻게든 맞서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호신술도 열심히 연습하고 아빠에게 자신을 때리려고 하는 아이와 싸워도 되냐고 묻기까지 합니다.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어떤 방법으로든 해결해 보려는 병관이의 노력에 응원을 보냅니다. 그렇다고 큰 덩치로 작은 친구들을 위협하는 우진이를 더 센 힘으로 제압하겠다는 병관이의 해결방법에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병관이한테 선생님은 ‘선생님에게 말해서 선생님이 해결하도록’하라고 합니다.
아이들끼리 문제가 생겼는데 선생님이 나서서 해결해 주겠다는 것은 아이들 스스로는 해결을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처음 우진이가 병관이에게 주먹을 들었을 때 선생님이 나타나 우진이를 꾸짖고 한솔이를 달래줍니다. 선생님이 끼어드는 바람에 한솔이와 병관이의 이야기는 사라지고 없습니다. 우진이도 선생님이 없는 곳에서 계속 병관이와 한솔이를 놀리고 시비를 겁니다. 선생님이 아이들의 관계를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병관이는 자기가 맞서야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런데 결론에서 또다시 선생님께 이야기를 하라며 뭔가 스스로 해 보려고 한 병관이를 오히려 나무랍니다.
선생님뿐 아니라 누나와 아빠도 병관이 문제를 자신들이 대신 해결해 주려고 합니다. 병관이가 누나한테 우진이 이야기를 했을 때 지원이는 “걔가 너 때렸어? 누나가 혼내 줄까?”라고 합니다. 아빠도 싸워도 돼냐고 병관이가 물었을 때 “놀린다고 싸우면 어떻하니. 참을 줄도 알아야지... 주먹은 정의로운 일에만 쓰는거야.”라고 정답을 가르치듯 이야기 합니다. 특히 아빠는 ≪싸워도 돼요?≫뿐 아니라 많은 상황에서 병관이보다도 훨씬 주도적으로 문제에 접근하고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제안하고 행동합니다. 마치 아빠가 주인공인 것처럼 말입니다. 병관이가 자기 문제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해결해 나갈 겨를도 없이 아예 문제를 직접 해결해 주거나 해결방법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병관이의 성찰이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거짓말≫에서 아빠는 “돈을 주웠으면 먼저 큰소리로 주인을 찾아 봤어야지. 내일이라도 주인 찾아서 돌려주도록 해라.”라고 답을 알려 줍니다. 지원이는 덩달아 벽보를 만들어 붙이자고 제안하고 벽보 내용도 지원이가 다 만듭니다. 병관이가 한 일은 없습니다. 병관이는 놀이터에서 돈을 주워서 쓰고 누나와 엄마, 아빠에게 차례로 혼나고 벌을 받는 일을 할 뿐입니다.
지원이와 병관이의 문제는 부모와의 갈등
어린이책에서 내면과 외부가 갈등할 때 내면이 알맹이이고 외부가 시련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외부의 어려움을 이기고 내면이 더 단단해지는 이야기로 나아갑니다. 아이와 부모가 갈등할 때도 아이는 부모를 설득하여 자신이 소망하는 것을 이루어 가는 과정에서 성장을 합니다.
지원이와 병관이는 내면의 갈등보다 부모와의 갈등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거짓말≫에서 병관이가 놀이터에서 돈을 주워들고 처음에는 마음이 조마조마 합니다. 주운 돈으로 요요를 사서 놀면서도 마음이 불편합니다. 불편한 병관이의 마음을 쭈욱 따라갔더라면 좋았을 텐데 병관이의 불편한 마음은 금방 사라져 버립니다. 병관이의 문제는 주운 돈으로 떢볶이를 사 먹다가 엄마에게 들키면서 시작됩니다. 엄마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벌을 섭니다. 아이들이 어른들 모르게 뭔가 일을 벌이고 해결해 나가는 것은 자신들의 세계를 넓혀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스스로 양심에 거리껴서 조마조마한 것과 엄마한테 들킬까마 조마조마한 것은 다릅니다. 그런데 병관이의 고민은 오직 엄마와 아빠한테 들킬까봐 전전긍긍합니다. 결국 엄마는 야단을 치고 아빠는 생일 선물을 안 주는 벌을 줍니다. 병관이가 주운 돈을 써 버려서 문제가 된 것은 엄마 아빠에게 벌을 받은 것 밖에 없습니다.
≪손톱 깨물기≫에서 지원이의 고민은 친구들이 뚱뚱하다고 놀리는 것입니다. 뚱뚱하다고 놀려서 급식도 제대로 못 먹었는데 선생님이 음식을 남겼다고 꾸지람까지 하자 손톱을 깨물기 시작합니다. 지원이로서는 속상한 마음을 손톱 깨물기로 풀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손톱 깨무는 버릇을 고치려고 손에 반창고를 감아주자 친구들이 놀릴까봐 또 걱정을 합니다. 지원이가 손톱을 물어 뜯어서 걱정인지 친구들이 놀려서 걱정인지 뒷부분은 분명하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엄마의 제안으로 지원이는 손톱을 물어 뜯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그 결과 엄마에게서 선물까지 받습니다. 지원이 문제는 친구들과의 갈등으로 시작했는데 엄마와의 갈등해소로 해결이 되어 버립니다. ≪손톱 깨물기≫에서 병관이 역시 부모로부터 블록을 선물받고 싶어서 손톱을 깨뭅니다. 병관이가 손톱을 깨무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인 셈입니다.
한편 엄마는 뚱뚱하다고 놀림을 받아서 걱정하는 지원이에게 크려고 그러는 거니까 걱정 말라고 하면서 손톱을 물어 뜯어서 손가락 모습이 흉해지면 남들 앞에 손 내밀기가 부끄러울거라고 얘기합니다. 다른 사람의 말에 휘둘리지 말라고 하는 것 같았는데 또 남의 시선을 의식하라는 말도 하고 있어서 엄마의 태도에 일관성이 없어 보입니다.
≪집 안 치우기≫에서도 블록을 더 가지고 놀고 싶어하는 병관이와 청소기를 돌려야 한다는 엄마가 갈등합니다. 엄마 말 안 들을 거면 나가라고 해서 병관이는 집을 나가지만 저녁 때가 되어 배가 고파지자 백기를 들고 결국 집으로 돌아옵니다. 부모와의 갈등에서 번번히 부모가 이깁니다. 배가 고파서, 밥값과 병원비를 낼 수 없어서, 선물을 받고 싶어서 등등의 이유로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고민해 보지도 못하고 포기하고 맙니다.
어린이의 고민과 부모의 고민
이야기는 주인공의 고민과 갈등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런데 지원이 병관이 이야기에는 지원이와 병관이의 고민보다 부모의 고민이 더 많이 드러나 있습니다. ≪집 안 치우기≫에서 집을 치우라는 엄마와 블록만들기를 계속하고 싶은 병관이가 갈등합니다. 블록 만들기를 계속하고 싶은 병관이 입장에서 이야기를 진행하기보다 집 안을 어지르고 안치우는 아이에 대한 부모의 고민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칭찬 먹으러 가요≫ 역시 산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고 싶은데 가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산에 데리고 갈 수 있을까라는 어른들의 고민을 담았습니다. ≪손톱 깨물기≫와 ≪먹는 이야기≫도 손톱 물어뜯는 아이의 버릇을 고쳐주고 싶고 골고루 잘 먹도록 아이들의 음식 습관을 바꾸고 싶은 부모의 고민에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그러다 보니 어린이 입장에서 주체적으로 문제에 접근할 수가 없습니다.
지원이 병관이 이야기는 ‘착한 어린이’로 만들고 싶은 부모의 고민에서 출발하여 어린이에게 부모 말을 잘 들으라고 합니다.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세대에게는 아주 익숙한 논리일 수 있습니다. 흔히들 어른들이 어린이를 바라볼 때 부모나 어른의 말을 잘 듣는 어린이를 순응력이 뛰어나다거나 수용적인 어린이라고 하지 않고 ‘착한 어린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이가 부모의 뜻을 거스리거나 거부하는 것을 나쁘게 생각합니다. 순응력이 뛰어나고 수용적이기보다 주체적이고 자존감 높은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른이든 어린이든 다른 사람의 지혜를 바탕으로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하철을 타고서≫에서도 지원이가 병관이를 잘 데리고 할머니 집에 가야 하기 때문에 갈등이 생깁니다. 병관이는 자기가 아는 길은 늘 앞서 뛰어가다가 낯선 길이 나오면 누나랑 나란히 갑니다. 지원이는 처음으로 어른과 동행하지 않고 할머니 집을 가는데, 혼자 가는 것보다 동생 병관이와 함께여서 훨씬 든든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할머니 집 가는 길에서 최대의 난관이 병관이입니다. 자신이 아는 길에서 신나게 달려가는 병관이가 할머님 집을 찾아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고 걸림돌이 되는 것은 부모의 시선일 겁니다. 혼자 가는 것보다 아이들과 동행하는 것을 더 힘들어 하는 어른의 시선 말입니다.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은 어린이와 어른 모두 가지고 있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서 아이들 스스로 위험을 감지할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 위험을 감지하고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것은 본능입니다. 어린이든 어른이든 누구나 가진 능력이라는 겁니다. 때때로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거나 위험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기도 하지만 어린이라서 위험을 살필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 책의 병관이를 보면 늘 위험해 보이고 불안합니다. 마치 병관이에게는 위험 앞에서 멈칫하는 감각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병관이는 늘 뛰어다닙니다. 에스컬레이트에서도 뛰고 지하철에서도 뛰고 횡단보도도 뛰어서 건너가 버립니다. 산을 내려 오는 길에서도 뛰어서 결국은 아빠 손을 잡고 내려 오게 됩니다. 누나 두발 자전거도 겁도 없이 타겠다고 덤비다가 넘어지고 아파트 앞마당에서 보조바퀴를 떼자마자 자전거에 올라 탑니다. 심지어 누나랑 할머니 집을 갈 때는 지하철을 혼자서 타버립니다. 지하철을 갈아 타는 곳에서 얌전히 누나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과는 대조적입니다.
뛰는 것이 꼭 위험과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아는 길을 찾았을 때 자신감과 안도감에 뛰기도 하고 열정과 건강함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어느 순간에도 뛰는 것보다 조금 늦는 걸 선택해 버리는 나이가 되면 젊은이들이 뛰어 다니 것이 부러워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지원이와 병관이가 뛰는 모습은 늘 위태위태하게만 보입니다. 지원이와 병관이의 관점에서 보지않고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려는 보호자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알 겁니다.
≪지하철을 타고서≫에서 지원이와 병관이가 할머니 집을 갈 때 지원이와 병관이 둘 다 지하철에서 잠이 들어 친절한 아주머니가 아니었으면 내릴 역을 지나쳐 버릴 뻔합니다. 처음으로 둘이서만 할머니 집을 찾아 가느라 긴장하고 있을 텐데 그런 모험의 순간조차 긴장의 끈을 놓치는 존재로 그린 것이 아쉽습니다. 잠이 들어 내릴 역을 지나칠 수도 있는데 그럴 때에도 다시 목적지를 찾아가는 힘을 어린이 안에서 발견했더라면 좋았을 겁니다.
어린이는 비교하고 경쟁하고 이기고 싶어한다?
≪칭찬 먹으러 가요≫에서 지원이는 가족과 함께 등산을 가서 청설모를 만납니다. 청설모를 들여다보는데 나무위로 달아나 버리자 “에이, 사진 찍어서 친구들한테 자랑하려고 했는데.” 라고 말합니다. 산에서 다람쥐나 청설모같은 동물을 만나면 누구나 신기하고 반갑고 가까이 가서 보고 싶기도 하고 달아날까봐 조마마마해 하며 오래도록 들여다 보고 싶어 합니다. 그러다가 달아나면 안타깝습니다. 사진에라도 그 모습을 담아서 두고두고 보고 싶고 다른 사람들한테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이런 감탄보다 친구들한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먼저라니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과 호기심이 전혀 느껴지질 않아서 지원이와 병관이가 왜 산에 갔는지 궁금해 집니다. 작가는 산에서 청솔모를 본 소감을 지원이의 말을 빌어서 한마디로 친구들한테 자랑하고 싶다로 표현했습니다. ‘자랑하고 뻐기는 마음’도 사람들이 가진 마음입니다. 그런데 그걸 귀하게 여기거나 일상적인 감성이라고 얘기하는 해서는 안 됩니다. <지원이와 병관이> 다른 시리즈에서도 비교하고 경쟁하고 겨루고 싶어하는 마음을 사람의 본성인 양 그리고 있는 부분을 적잖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두발자전거 배우기≫에서 병관이와 상현이는 단짝친구입니다. 그런데 이둘은 늘 승패를 가르며 놉니다. 자전거를 탈때도 그네뛰기도 서로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놉니다. 자전거 타기는 늘 병관이가 빨랐는데 어느 날 상현이가 보조바퀴를 떼고 와서 병관이보다 자전거를 빨리 타자 병관이는 상현이와 자전거 타기를 싫어합니다. 그네타기도 누가 잘하나 내기를 못하니 금방 싫증을 냅니다. 혼자 노는 것보다 함께 노는 것이 재미있는 이유가 겨루면서 놀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놀이는 내가 이기면 재미있고 지면 재미없는 것이 아닙니다. 혼자 이기기만해도 재미없고 지고도 깔깔대며 웃는 것이 놀이입니다. 승패를 따지지 않아도 놀 수 있고 겨루지 않아도 즐겁습니다.
자전거를 둘이 타면 혼자서는 못하는 것들을 할 수 있고 누구랑 같이 타는 것만으로도 좋습니다. 그런데 병관이는 상현이와 겨루는 놀이에만 집중합니다. 한강 둔치에서 처음으로 두발자전거를 배우고 나서 가족들과 자전거를 타며 즐거운 한때를 보낼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병관이는 함께 한강 둔치로 나간 가족들이 돼지갈비를 먹자는 제안도 무시하고 곧바로 상현이와 시합하러 집으로 돌아옵니다. 병관이가 쓰러지고 지쳐 주저 앉았다가도 벌떡 일어나 열심히 자전거를 배운 이유가 오직 상현이를 이기겠다는 마음에서라니 아쉽습니다. 상현이를 이기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했다가도 두발자전거를 타면서 다른 즐거움을 알게 되거나 이기고 싶은 마음을 슬그머니 내려 놓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병관이에게는 시종일관 상현이를 이기고 싶은 마음만 있습니다. 상현이를 이기기위해 아빠와 따로 자전거타는 연습을 하는 모습이 씁쓸합니다. 친구와 함께 놀다보면 혼자서는 무서워서 엄두를 못내던 일을 용기 내어 해보기도 하고 주저하는 마음을 들키기 싫어서 하게도 됩니다. 노는 중에 새로운 걸 시도하고 엉급결에 해보기도 하는데 친구에게 이기며 놀기위해 따로 연습하고 준비해서 나가는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칭찬 먹으러 가요≫에서도 병관이는 “재 봐라, 너보다 동생인데도 잘 올라가잖니.”라는 말에 우쭐해서 산을 오릅니다. 어린이들이 평소에 어른들로부터 이런 말을 많이 듣는다 하더라도 이런 일상의 모습을 책에서 아무런 성찰없이 당연하게 보여주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비교에는 비교당하는 상대가 있기 마련입니다. 일상생활에서는 미처 보지 못하더라도 책은 그 상대를 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교하면서 우쭐해 하는 아이와 비교 당해서 상처받는 아이를 모두 보여주는 것이 책의 힘입니다. 이 그림책에도 병관이에게 비교 당하며 속상해 하는 아이가 그려져 있습니다. 속상한 표정으로 비교하는 아버지에게 항의하는지 병관이를 노려 보는지 알기는 어렵지만 얼굴이 붉으락합니다. 병관이를 우쭐하게 해서 씩씩하게 등산을 하도록 만든 비교가 이 아이에게는 등산을 포기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독자는 책에서 이런 두 가지 상황을 모두 읽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칭찬에 우쭐해 하는 병관이한테만 집중하고 병관이도 속상해하는 아이는 못 본채 잘 올라간다고 치켜 세우는 아저씨의 말에만 귀를 쫑긋 거립니다. 비교는 공감능력을 떨어뜨리고 자존감도 떨어뜨립니다. 일상에서 비교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더라도 책에서까지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비교하는 말을 익숙하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일상도 낯설게 보게 만드는 것이 문학의 힘입니다. 남의 감정을 내 것처럼 느끼는 것을 공감능력이라고 하고 흔히 문학이 공감 능력을 확장시킨다고 합니다. 공감능력은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데 문학으로 공감능력을 키우려면 작가가 공감의 시선으로 세상을 관찰하고 그런 시선을 바탕으로 작품을 썼을 때에 가능합니다. 독자들이 일상에서 놓치고 간 장면과 감정을 작가가 포착해서 그려줄 때 비로소 독자들은 새롭게 보게 됩니다.
비교에 우쭐해 하는 순간 병관이는 함께 살아갈 친구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힘들게 산을 오르면서 사람을 만나고 친구를 사귀게 됩니다. 힘들어서 주저앉아 쉬고 있던 아이가 병관이와 동행해서 등산을 했다면 친구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등산을 포기하게 만들고 그 힘으로 병관이는 혼자 정상에 오르고 있습니다. 또 병관이는 어른들의 칭찬에만 귀 기울이느라 산에 오르는 동안 지원하고도 엄마하고도 어떤 교감을 하지 않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산을 오르는 것만 중요하고 누구랑 함께 경험했는지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엄마와 누나가 함께 산에 가서 함께 무언가를 겪고 교감한 이야기가 전혀 없습니다. ≪두발자전거 배우기≫에서도 지원이와 엄마는 병관이가 두발자전거를 잘 타게 되었을 때 손을 흔들어 주는 장면만 나옵니다. 한강 둔치에서 병관이가 두발자전거를 배우는 과정에 함께 있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함께 경험하는 사람으로 그려지지 않은 점이 아쉽습니다.
≪싸워도 돼요?≫에서 한솔이, 병관이, 우진이를 덩치로 비교합니다. 한솔이는 병관이보다 몸집이 작고 달리기도 잘못하고 축구하다가 민호가 밀어서 넘어지자 울어버립니다. 반에서 덩치가 가장 큰 우진이는 주먹으로 친구를 위협하고 한솔이 때문에 축구에서 졌다고 한솔이를 나무랍니다. 덩치로 서열을 만들고 한솔이보다 큰 병관이가 한솔이를 대신해서 우진이에게 맞서 우진이를 힘으로 이기고 한솔이와 친하게 지내게 됩니다. 한솔이를 자신보다 힘이 센 친구의 보호가 필요한 아이로 만들어 버린 점도 안타깝습니다. 친구란 서로에게 힘이 되는 관계일텐데 일방적인 관계로 그리고 있습니다. 비교는 관계에서도 서열을 만듭니다.
책에서 우리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만납니다. 나와 꼭 닮은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때로는 내가 상상도 못한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도 합니다. 당당하고 용기있는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수줍움 많고 망설이는 친구도 만납니다. 누군가를 질투하고 미워하고 원망하고 애태우는 마음도 만나고 조마조마한 마음 뻐기고 싶은 마음 울컥 분통을 터뜨리고 화나고 분한 마음 너그럽고 포근하고 따뜻하고 애틋한 마음도 만납니다. 직접 겪으면서 느끼는 감정이 더 강렬하고 살아있지만 다른 생활에 묻혀서 스쳐지나가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시각각 경험하는 다른 감정들 사이에 놓치기도 하고 때로는 외면하기도 합니다. 익숙하지 않은 감정이라 미쳐 느끼지도 못하고 지나쳐 버리기도 합니다. 책은 이런 상황들을 멈춰 서서 천천히 겪도록 도와줍니다. 한꺼번에 들이닥치는 복잡한 상황을 하나하나 펼쳐서 보여주고 미묘한 감정을 섬세하고 자세하게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작가는 그것들을 표현해서 보여줍니다.
우리는 책을 통해 어떤 상황을 작가의 시선에서 다시 겪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시선에 공감도 하고 위로도 받고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같은 상황을 전혀 다르게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는 사이에 독자는 책 속의 세상에 익숙해집니다. 그래서 책에 어떤 마음을 가치있게 담았느냐가 중요합니다.
어린이책시민연대는 어린이들이 새로운 것에 감탄하고 호기심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즐거움을 책에서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실제로는 세상이 두렵고 주눅들고 억울하고 누군가 원망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책에서 다른 세상을 만나고 경험하는 사이에 세상에 대한 시선이 바뀌게 되길 바랍니다.
국
조민정
왜 국에다 밥 말았어?
싫단 말이야
이제부터 나한테 물어 보고
국에 말아 줘
꼭 그래야 돼
국이라는 시는 ≪침튀기지 마세요≫에 실린 어린이의 말입니다. 매 번 국에 밥 말아서 주는 엄마에게 나한테 물어보고 말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이 아이의 글을 보면서 ‘왜 싫다는 내 생각을 엄마한테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을까? 나한테 물어보라고 말하면 되는구나.’싶은 사람이 있을 겁니다. 남한테 싫다고 말하는 건 나쁘다고 알고 있는 어린이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책에서 당당하게 싫다고 말하는 어린이를 만나고 그게 나쁘지 않고 오히려 좋아보이고 필요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경험이 달라지면 생각도 바뀝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들이 책에서 어떤 세상을 만나느냐가 중요합니다. 책에서 만나는 마음을 자기도 모르게 간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린이책에서 어린이를 진지하게 대하기를 바랍니다. 어린이를 무시하지 않고 어린이의 능력을 과소 평가하지 않고 스스로 겪고 배우고 지혜를 발휘하는 그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길 바랍니다.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아서 침묵할 때 침묵의 의미를 알아차리고 존중할 줄 알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