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시민연대 심포지움'이 2015년 5월 30일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에서 열렸습니다. 심포지움의 주제는 '어린이책에서 어린이 짚어보기'이며, '지원이와 병관이 시리즈'(길벗어린이)를 중심으로 최근 어린이책에서 어떻게 어린이를 나타내고 있는지에 대해 논의하였습니다. 발제는 조은숙(춘천교대 교수), 김은호(성미산학교 교사), 서정홍(농부시인), 수수-류수민(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 변춘희(어린이책시민연대 정책지원부장) 총 5명이 맡아주셨습니다. 발제문 전문을 게재합니다.
흔들리며 자라는 아이들, 부모의역할은?
서 정 홍 (농부시인)
《아빠와 아들》
이 책에 그림을 그린 한상언 선생은 “이 책을 보며 우리 아빠 모습이네!”, “우리 아들 이야기잖아!”하고 공감하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공감하면 좋겠다는 부분도 있지만, 정말이지 공감해서는 안 될 부분도 있습니다.
우리 아빠 월급은 얼마일까?
아빠에게 물어보니까 피자를 100개도 더 살 수 있다고 하신다.
내가 좋아하는 피자를 100개도 더 살 수 있다니!
우리 아빠는 정말 훌륭하다.
피자란 무엇인가요? 밀가루 반죽 위에 토마토, 치즈, 피망, 고기 들을 얹어 둥글고 납작하게 구운 먹을거리입니다. 그런데 피자를 만드는 재료들이 어느 나라에서, 누가, 어떻게 생산했는지도 모른 체 오늘도 아이들 몸으로 들어갑니다. 앞으로 어떤 무서운 병에 걸릴지도 모른 체 말입니다. 아빠 월급으로 “피자를 100개도 더 살 수” 있어 “우리 아빠는 훌륭하다.”는 아이가 자라서 건강할 수 있을까요? 더구나 밤늦게 술 냄새와 고기 냄새를 풍기며 잠자는 아이를 껴안는 아빠가 ‘평범한 아빠’라고 생각하며 자라는 건 아닐까 싶어 걱정이 됩니다.
《지하철을 타고서》
개구쟁이 동생 병관이를 데리고 지하철을 타고 건널목을 건너서 먼 길을 달려온 누나의 마음이 군더더기 하나 없이 잘 나타나 있는 책입니다. 그림과 함께 말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동생이 말을 잘 듣지 않았다 해도 누나가 동생 “엉덩이를 힘껏 내지”르다니요? 어디 다치기라도 하면? 폭력을 휘두르지 않고 화를 푸는 방법을 모르는 걸까요, 지원이는.
《손톱 깨물기》
사람은 아이고 어른이고 사랑과 우정을 주고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를 따돌린다거나 관심을 갖지 않으면 슬퍼집니다.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마음이 여리기 때문에 더 많이 슬퍼지겠지요. 그래서 다른 몸짓이나 행동을 통해 자기를 나타내려고 합니다. 이 책은 어떻게 하면 나쁜 버릇을 고쳐나갈 수 있는지, 그 과정을 차분하게 말해줍니다. 지원이와 병관이는 이런 경험을 통해 잘 자라지 않을까요?
《두발자전거 배우기》
누구나 어린 시절에 한 번쯤은 겪었을 이야기를 친절하게 쓴 책입니다. 보조바퀴를 떼고, “한강 다리를 건너 63빌딩이 있는 한강 둔치로”가는 친절한 아빠와 개구쟁이 병관이 모습이 정겹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 누구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잠자리에 누웠는데 두발자전거를 막 배운 병관이가 “상현아, 자전거 시합하자.”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무리 부모형제가 좋다 해도 친구가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살 수 있을까요? 병관이는 친구 상현이와 시합을 하며 쑥쑥 자라고 있을 것입니다.
《집안 치우기》
요즘 초등학생들한테 부모가 농담 삼아 아니면 잠시 화가 나서 “엄마 말 안 들을 거면 나가!” 라고 하면 정말 집을 나가 거리를 헤매는 학생이 있다는 말을 몇 번 들었습니다. 그래서 농담이라 하더라도 이런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며 걱정을 합니다. “그건 나중에 만들고, 누나랑 먼저 거실을 치워.” “방도 청소기 돌려야 하니까 다음에 하고 치워라.” “엄마 말 안 들을래? 빨리 치워.” 말을 듣지 않으면 당장 폭력을 휘두를 것 같은 엄마를 보고 병관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놀이터에 혼자 앉아 외로움을 달래는 것뿐입니다. 이런 엄마 밑에서 자란 병관이가 앞으로 어른이 되면?
《거짓말》
“하나의 거짓말을 참말처럼 하기 위해서는 항상 일곱 개의 거짓말을 필요로 한다.”(루터)
“농담으로라도 거짓을 말하지 말라. 꿈에라도 성실을 잃거든 통회하라.“(도산 안창호)
아이든 어른이든 거짓말은 결코 쉽게 넘어갈 수 없는 문제입니다. 병관이는 놀이터에서 오천 원을 주었습니다. 아무도 본 사람이 없어 문방구로 가서 ‘형광 요요’를 사천 원을 주고 샀습니다. 나머지 천 원으로 누나랑 떡볶이를 사 먹었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 놀이터나 거리에서 돈을 주운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이 문제를 놓고 가족이 다 모여 의논을 한 다음, 돈 주인이 찾아갈 수 있도록 벽보를 만들어 붙이자고 결정을 합니다. ”음, 먼저 ‘돈 잃어버린 사람을 찾습니다.’ 라고 쓰고 우리 집 주소를 적자.” 이런 집안에서 자란 지원이와 병관이는 거짓말을 할 수 있을까요?
《싸워도 돼요?》
“근데요. 아빠, 저 싸워도 돼요?”
“뭐라고? 싸워도 되느냐고? 누구랑?”
아빠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우진이라는 덩치 큰 앤데요. 내 짝꿍하고 나를 꼬마라고 놀려요.”
“놀린다고 싸우면 어떡하니. 참을 줄도 알아야지.”
“걔가 먼저 때리려고 하면요?”
“그럴 때는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함부로 주먹을 쓰면 안 돼.
주먹은 정의로운 일에만 쓰는 거야.“
이 책에서는 키가 작은 병관이가 키가 크고 덩치도 큰 우진이의 팔을 비틀어 꼼짝 못하게 합니다. 아빠가 “그럴 때는 어쩔 수 없지만” 라고 한 말이 병관이한테는 어떻게 들렸을까요? 폭력으로 친구를 꼼짝 못하게 한 병관이는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면 자기도 모르게 폭력을 휘두르지 않을까요? 어떤 문제가 생기면 대화를 통해서 풀어야만 하는데….
《먹는 이야기》
아이들 몸에 해로운 게 맛있습니다. 맛있게 만들어야 팔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날이 갈수록 달고 고소한 먹을거리가 늘어납니다.
“야채를 잘 안 먹고, 게다가 살도 찐 것 같아서 그래요.”
“자기도 잘 알고 있어요. 그렇지 않아도 살이 쪄서 고민이래요.”
몸에 좋은 된장찌개와 김치를 싫어하고 몸에 좋을 것도 없는 소시지와 돼지고기와 과자 따위를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고 엄마 아빠가 주고받은 말입니다. 이 책에서는 그저 걱정하는 마음뿐입니다.
“엄마, 과자 사 주세요.“
“그래, 하나씩 골라라. 엄마는 휴지 가지고 계산대로 갈게.”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면 돈만 있으면 어디 가서 무엇이든 사 먹을 수 있다는 마음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목숨을 이어주는 음식인데 아무 데서나 생각도 없이 사면 어떤 세상이 올까요?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칭찬 먹으러 가요》
“아빠, 다 왔어요.”
“고기 굽는 냄새가 나요.”
지원이와 병관이는 삼겹살을,
아빠와 엄마는 파전에 막걸리를 먹었습니다.
아빠 생일 선물은 가족이 같이 등산을 하는 것입니다. 산 정상에 오르는 길이 하도 멀어 포기하고 싶었지만, 지원이와 병관이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칭찬하는 바람에 끝까지 오릅니다. 그런데 삼겹살이라니?
‘지원이와 병관이 시리즈’ 아홉 권을 다 읽었습니다. 평범한 이야기지만 한 번쯤 생각하고 살아야 할 문제들을 그림과 함께 알기 쉽게 쓴 책이라 참 좋았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계속 시리즈가 이어진다면 어른들과 아이들이 꼭 알아야 하고 실천해야만 하는 문제들을 다루었으면 합니다. 핵발전소, 지구온난화, 생활협동조합, 왜 친환경농산물을 먹어야 하는가, 노동의 소중함과 아이들도 알아야 할 노동법, 비정규직과 실업자 문제, 농업과 농촌과 식량의 소중함, 가난한 이들을 섬겨야 하는 까닭, 똑똑한 사람보다는 사람과 자연을 섬기는 사람이 왜 소중한가, 육식이 왜 지구를 망치는가, 돈을 어떻게 벌 것인가를 생각하기 전에 어디에 쓸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까닭, 무엇이 될 것인가 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 책을 읽는 이들의 생각이 넓고 깊어져 비틀거리는 세상을 바로 잡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