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동아리를 위한 책 읽기 1
분야별 추천 도서_ 총류
이제 책이 너무 많다
오늘날의 책은 도무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많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종수의 책을 가지고 있다는 미의회도서관에는 3천6백만 종 정도가, 한국의 국립중앙도서관에는 700만 종 정도가 있다. 한국의 공공도서관의 경우 10만 종 이상을 가진 곳이 많다. 그러니 이제는 무슨 책을 읽는 것이 좋을까, 하고 골라 보려고 하는 순간 그것이 얼마나 난감한 일인지 깨닫는다. 책을 다루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더욱더 그렇다. 어떤 종류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기도 한다. 이미 존재하는 책의 종수도 어마어마하지만 새 책도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한 해에 대략 1만 5천 종 정도의 단행본이 출간된다. 그러니 먼저 부탁하고 싶다. 무슨 일이나 그렇듯이 왕도는 없다. 쉬운 독서 안내서를 멀리하라는 것이다. 그럴듯해 보이는 잘못된 안내는 결국 빙빙 도는 헛수고를 하게 만들 것이다.
내용의 갈래를 알면 범위가 좁혀진다
제대로 하는 방법은 조금 어렵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그러나 생각보다는 쉽다. 본문을 ‘읽지 않고도 평가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대가라고 보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다. 책의 종수는 많지만 그것들이 다루는 내용도 그렇게 많고 다양한 것은 아니다. 각 분야의 기초적인 지식과 함께 기본적인 갈래를 알고 나면 표지와 차례를 보는 것으로 웬만큼 알 수 있다.
그럴 수 있도록 안내서 역할을 하는 책이 메타북metabook이다. 예를 들면 《생각의 역사》(피터 왓슨, 들녘)와 같은 책이다. 두 권으로 구성된 이 책의 1권은 언어의 탄생에서 무의식의 발견까지, 나아가 공장의 관념과 아메리카의 발명, 19세기 유물론에서 논박된 영혼의 관념, 모호한 자아의 개념에 이르기까지 정신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주제들을 거의 모두 다루고 있다. 2권은 ‘20세기 지성사’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역시 거의 모든 것의 역사이지만 20세기에 들어 눈부시게 발달한 과학을 좀 더 많이 다룬다. 사실 과학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 없이 현대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메타북에 대한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
메타북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기 전에 두 가지 소식을 전하고 싶다. 먼저 나쁜 소식이다. 메타북은 읽어 내기가 조금 어렵다. 좋은 소식은 메타북의 수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많아야 오십 타이틀 정도이다. 만일 당신이 완벽주의자라면 그 숫자가 조금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책의 지도를 완벽하게 그려 내려면 메타북 역시 비판적으로 읽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검증하며 읽어야 한다. 그러려면 메타북에서 다뤄진 저작물 가운데 일부는 직접 읽어야 한다.
메타북의 매력에 빠지면 대단히 재미있다. 어떤 책이든 빨리, 그러면서도 잘 읽어 내는 최고의 속독법은 그 책의 재미에 푹 빠져드는 것이다. 그러면 생각보다 빨리 대부분의 메타북을 섭렵하게 된다.
《책의 정신》으로 시작하길 권한다
메타북을 읽기 위한 독서회를 꾸린다면 《책의 정신: 세상을 바꾼 책에 대한 소문과 진실》(강창래, 알마)로 시작하길 권한다. 이 책은 독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 ‘좋은 책이란 무엇인가?’에서 시작된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잘 알려진 고전이라는 ‘랜드마크’를 짚어 가며 그 넓고 깊은 책 세상의 지도를 그려 나간다. 그리고 비판적인 독서 방법의 전형을 보여 주려 한다.
이 책에서 다루는 이야기를 요약하면 이렇다. (1) 프랑스대혁명 이전의 금지된 베스트셀러는 어떤 것들이었나? (2) 평등이라는 진리를 증명한 근대 과학혁명의 배경이 된 책들 (3) 고대 그리스와 고대 중국의 책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 (4) 현대 학문의 핵심인 ‘본성과 양육’의 과학이 만든 심리학과 사회학, 생물학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5) 책은 어떻게 죽어 가는가? 고대 이집트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살해의 대상이 되었던 책들을 다룬다.
《책의 정신》은 내가 쓴 것이라 추천하기 좀 쑥스럽지만 이런 방식으로 쓰인 다른 책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이 책의 부록에는 분야별 메타북 목록이 있다. 이 책을 읽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그 책들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책의 정신》과 함께 참고할 만한 중요한 메타북들은 다음과 같다.
프랑스대혁명의 지적인 기원에 ‘고전’은 없었다
먼저 로버트 단턴의 《책과 혁명》(알마)이다. 저자는 ‘혁명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가?’, ‘왜 가치 체계는 바뀌는가?’, ‘여론은 어떻게 사건에 영향을 미치는가?’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마련하기 위해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프랑스인들은 어떤 책을 읽었는가?’를 25년 동안 연구했다(원래 제목은 《프랑스대혁명 이전의 금지된 베스트셀러들The Forbidden Best-Sellers of Pre-Revolutionary France》이다).
단턴의 결론은 이렇다. ‘좋은 책으로 권장되는 고전’이라는 것이 당시에 실제로 많이 읽혔던 책도 아니고, 그 이름에 값할 정도의 선정 과정을 거쳐 골라진 것도 아니다. 일부 학자들의 계보를 따라 내려온 임의적인 목록일 뿐이다. 그에 따르면 민중의 힘으로 성공한 프랑스대혁명의 지적인 기원에는 세 종류의 책이 있다. SF소설, 정치비판소설, 포르노소설이다. 이 책은 이 세 가지를 하나하나 자세히 설명하고, 당시 이 소설들을 읽은 독자들의 반응을 살핀다. 그리고 그 당시의 대표적인 작품까지 실려 있다!
SF소설이나 정치비판소설이 혁명을 일으키는 힘이 될 수 있다는 설명에는 쉽게 공감할 수 있다. SF소설은 현재의 모순에 대한 비판과 간절한 바람을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면서 표현하는 장르다. 정치비판소설 역시 현 정치 체제에 대한 비판과 공격이라는 점에서 그럴듯하다. 그러나 포르노소설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어떻게 그런 책이 프랑스대혁명의 지적인 기원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단 말인가. 놀라운 것은 ‘위대한 고전’으로 알려진 책들은 그 목록에 한 권도 없다는 사실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유명한 계몽사상가들 역시 포르노소설을 썼으며 그들은 대담한 정치 논문과 포르노소설을 그리 다른 것으로 여기지도 않았다!
그러니 《책과 혁명》을 제대로 읽어 내기 위해서는 포르노그래피에 대한 메타북, 그리고 프랑스대혁명과 관련된 자료를 참고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다. 메타북에서 다뤄지는 사실과 책에 대한 설명은 저자의 편견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메타북 역시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메타북에서 다뤄지는 주제나 사건, 작품에 대해서는 따로 확인해 가며 읽을 필요가 있다. 포르노그래피를 다룬 메타북으로는 《포르노그라피의 발명》(린 헌트 편저, 책세상)이 있다. 편저자인 린 헌트는 프랑스대혁명을 전공한 문화사학자이다. 또 봐 두어야 할 중요한 자료로는 <포르노그래피의 역사>(히스토리채널, 2002)를 다룬 6부작 다큐멘터리이다.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이 근대 과학혁명을 일으키다
프랑스대혁명과 관련된 자료들을 읽어 가다 보면 계몽 사상가들이 근대 과학혁명의 영향을 받았다는 설명이 나온다. 뉴턴의 물리학에 따르면 우주의 섭리는 하늘에서나 땅에서 ‘기계적으로 평등하게’ 작동하는 것이었다. 이런 설명은 곧 타고난 신분에 따라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계급 제도를 부정하고 만인이 평등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그 시작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두 번째로 권할 만한 메타북은 근대 과학혁명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한 메타북이다. 필자가 보기에 가장 좋은 책은 웨스트폴Richard Westfall이 쓴 《영원히 쉬지 않는 자, 아이작 뉴턴 전기Never at Rest: A Biography of Isaac Newton》(1983)인데, 아직 한국어판이 없다(내년 초에 출간된다고 들었다).
뉴턴의 전기는 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의 전기를 펼치면 고대 그리스 이래 쌓아 올린 인류의 과학적・수학적・철학적 지식이 마치 깔때기처럼 뉴턴을 향해 모여드는 것을 볼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에서부터 데카르트에 이르기까지의 과학자와 수학자들이 그들의 이론과 함께 등장하고, 역사 속에서 그들의 의미를 새길 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다시 그 깔때기를 통해 현대의 과학이 퍼져 나간다. 게다가 뉴턴의 영향력은 단지 물리학과 광학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조금 과장하면 오늘날 우리는 뉴턴의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
과학을 위한 메타북으로는 《과학과 기술로 본 세계사 강의》(제임스 E. 메클렐란 3세, 해럴드 도른, 모티브북)를 권한다. 특히 과학 책은 다른 책들과 비교하면서 읽을 필요가 있다. 그럼으로써 비판적인 독서가 가능할 뿐 아니라 어려운 내용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학혁명의 구조》(토마스 쿤, 까치글방), 《16세기 문화혁명》(야마모토 요시타카, 동아시아)도 함께 참고할 필요가 있다. 《과학혁명의 구조》는 2013년에 출간된 개정판을 읽기를 바란다.
그런데 근대의 과학혁명이라고 할 때 그 혁명의 대상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엉터리 과학에 대해서는 위에서 든 메타북에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그런 내용들을 이해하고 따라가 보면 혁명의 대상은 고대 그리스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세 번째 메타북은 고대 그리스에서 쓰여졌던 고전에 대한 것이다.
그리스와 중국의 고전에 대한 맥락 이해하기
고대 그리스와 고대 중국의 ‘위대한 고전’을 어떻게 볼 것인가? 2천5백 년 전의 그 책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이 살았던 시대를 이해해야 한다. 맥락을 알아야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양의 고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책이 많지 않다. 《책의 정신》에서 말하는 줄거리를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려면 먼저 《러셀 서양철학사》(버트런드 러셀, 을유문화사)와 《생각의 역사 1: 불에서 프로이트까지》에서 고대 그리스 부분을 읽어 두면 좋겠다. 이런 책은 꼭 통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필요할 때마다 부분적으로 참고해도 충분하다. 그런 다음 플라톤 저작물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서인 《소크라테스의 비밀》(I. F. 스톤, 간디서원)이나 박홍규의 저서들을 읽어 보면 좀 더 분명해질 것이다. 물론 해설서만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래서 나는 박종현이 번역한 《에우티프론,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파이돈》(서광사)을 권한다(고대 그리스 저작물의 번역은 모두가 박종현의 것이 좋다).
공자의 《논어》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 과정을 거치는 것이 좋다. 꼭 읽기를 권하는 것은 강신주가 쓴 《철학의 시대》(사계절)와 《관중과 공자》(사계절)이다. 그러고 본문과 해설은 현재 중국 최고의 고문학자인 리링의 《집 잃은 개》(글항아리)를 권한다.
메타북 가운데 추천하고 싶은 책은 많지만, 꼭 다섯 권만 꼽으라면 다음과 같다.
《책의 정신: 세상을 바꾼 책에 대한 소문과 진실》, 강창래, 알마, 2013
《책과 혁명》, 로버트 단턴, 주명철 역, 알마, 2014
《과학과 기술로 본 세계사 강의》, 제임스 E. 매클렐란 3세, 해럴드 도른, 전대호 역, 모티브북, 2006
《러셀 서양철학사》, 버트런드 러셀, 서상복 옮김, 을유문화사, 2009
《철학의 시대》, 《관중과 공자》, 강신주, 사계절, 2011
* 《러셀 서양철학사》는 서양 철학의 기본을 이해하기 위해, 《철학의 시대》, 《관중과 공자》는 고대 중국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 읽어야 할 최소한의 메타북이다. 강신주의 책 두 권은 한 타이틀로 취급하면 좋겠다. 시리즈 제목은 ‘제자백가의 귀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