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동아리 인터뷰 3
한국의 바칼로레아를 꿈꾸는 책극장
서울 까페 크리틱
모이는 곳_ 강남역 윙스터디 스터디룸
모이는 사람들_ 성인
읽는 책_ 영화 관련 책
타인과의 관계를 위해,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종종 취미를 묻게 된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다른 어떤 것보다 독서 또는 영화 감상을 많이 거론한다. 어쩌면 이 두 영역이 우리의 삶과 가장 밀접한 문화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영화가 책보다 더 쉽게 접근하고 소비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닐까. 천만 관객이 드는 영화는 한 해에도 몇 편씩 나오지만 천만 부가 팔리는 책은 쉽게 나오지 않으니 말이다. 이런 와중에 독서와 영화 감상, 두 마리 토끼를 쫓는 독서동아리가 있다. 2008년에 만들어져 현재까지도 활발히 모임이 이어지고 있는 까페 크리틱이 그 주인공이다.
활자 중심의 텍스트인 책이란 매개체 외에 이미지 중심의 텍스트인 영화라는 매개체가 추가로 존재하는 이 모임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져 있을까. 주말 오후 사람이 넘쳐 나는 강남 한복판에서 모인 이들을 찾았다. 열띤 논의를 하던 홍은화 모임 대표와 3명의 회원들 사이로 서부 영화의 한 장면이 반기고 있었다.
까페 크리틱의 존재 이유
한 달, 하루 사이에도 모든 것이 쉽게 변하는 요즘이다. 2008년에서 2014년 현재까지 변함없이 모여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영화에 대한 책을 읽고 있다는 까페 크리틱. 무엇인가를 좋아해도 그것을 전문적으로, 적극적으로 향유하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오랜 시간 모임이 지속되는 비결이 궁금했다.
“일단, 2008년 한겨레문화센터의 영화평론을 공부하는 과정이 있었고 그 과정이 끝난 뒤에도 부족한 부분을 다른 텍스트를 통해 공부하자는 의견을 통해 모임이 만들어졌어요. 그렇게 시작되었는데 초기에 모이던 분들은 각자 길을 가게 되었고, 저는 다른 사람들과 계속 영화 이야기를 하고 싶고 듣고 싶어 여기까지 오게 되었어요.”
까페 크리틱의 산증인이자 모임의 ‘엄마’라고 공공연하게 불리는 홍은화 대표의 간단한 소개였지만 그 속에서 긴 시간 동안 다져진 모임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곧이어 이날 모임의 청일점인 회원에게서 그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이런 인터뷰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 모임을 좋아하는 마음이 더 큰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영화 관련된 일을 하고 있어 할 수 있는 말이 더 많겠다 생각했는데 막상 생각보다 수준이 높고 배울 게 많았어요. 모임에 있다 보니 사람들도 좋고 그러다 보니 계속 나오게 되더군요. 소통이 되는 이곳이 이제 나에겐 특별한 곳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뭐라 말할 수 없는 이상한 기운, 좋은 기운이 있습니다.”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의 독서동아리지원센터에 등록된 동아리 중 영화라는 조금은 다른 색깔을 가진 이 동아리. 그 좋은 기운의 정체를 더 알고 싶었다.
“저는 일을 잠시 쉬고 있을 때 일상의 무료함이 커져 가는 시기가 있었어요. 그러다 1년 전쯤 모임에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그동안 읽은 책 목록을 보고 내가 지원해도 되나 망설이기도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을 배우고 있어요. 무엇보다 신기한 건 저희 모임 구성원이 매우 다양해서 세대가 갈리는데도 불구하고 아무 격의 없이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이에요.”
“2011년에 가입했을 당시 저는 취업준비생이었어요. 모임을 하는 동안 지금은 직업이 생겼어요. (웃음) 사실 모임을 하면서 책을 읽는다는 게 강압적인 장치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제가 정말 일상에 매몰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오히려 지금은 동아리 활동을 하는 게 직장 생활에 도움이 되고 있어요. 직장의 스위치 오프를 하고 책과 영화에 스위치 온 하는 것이 생활에 활력소가 되는 것이죠.”
다른 두 회원 분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들이 어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혹은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해 모이는 것이 아님을 점점 느낄 수 있었다. 서로 간에 배우는 것이 많다, 서로 소통이 된다, 또는 즐겁다는 말이 나왔다. 그리고 이어진 홍은화 대표의 첨언을 듣고 좋은 기운의 정체를 이제는 알 것도 같았다.
“까페 크리틱이 계속 존재하는 까닭이라고 한다면 사실 학교를 졸업하면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공부나 교양 등이 단절이 되잖아요. 그런데 계속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 거예요. 사실 영화 안에 철학, 문학, 영화의 의미 그런 것들이 다 담겨 있어요. 특별한 목적의식 없이 저희는 순수하게 모이고 있어요. 물론 자신들이 읽기 원하는 어떤 책이 끝나면 가시는 분들도 계시고, 일종의 중간 단계로 인식하시는 분들도 계시기도 했지만 최소한 3명만 모여도 하자라는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영화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책
영화를 보고 나서 우리는 곧잘 서로의 감상을 나눈다. 오프라인은 말할 것도 없고 온라인에서는 더욱 활발히 감상과 의견이 오고 간다. 혹시 이 감상을 보다 설득력 있게 혹은 보다 탄탄하게 의미를 실어 줄 수 있는 책은 없을까.
“저희 모임에서 두 번이나 읽은 책이 있는데 루이스 자네티의 《영화의 이해》를 추천하고 싶어요. 오래된 책이지만 개정판이 나오면서 최근 자료도 들어 있고 어찌 됐든 영화에 관련된 모든 부분에서 교범이 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개인적으로 정성일의 《필사의 탐독》이란 책을 읽고 충격을 받았어요. 그동안 영화 평론을 제대로 읽어 본 적이 없었는데 영화를 이렇게 세밀하게 볼 수 도 있구나 하는 점이 대단했어요. 한 번에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지만 꼭 한번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2차 텍스트였던 리처드 J. 제인의 《장 보드리야르 소비하기》를 추천하고 싶어요. 이 책에 나온 개념이나 이론들이 영화뿐만 아니라 지금 현실에도 적용되는 부분이 많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귀를 기울이며 책 제목을 받아 적었다. 마지막으로 청일점 회원의 추천 책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영화감독인 우디 앨런의 인터뷰집을 추천합니다. 영화에 관련된 모든 것 - 기획, 촬영, 홍보, 마케팅 등에 대해 쉽게 접근이 가능해요. 그래서 재미도 있고 이해하기도 쉬워요. 영화를 좋아하시고 좋아하시고픈 분들이 읽어 보셨으면 합니다.”
영화와 책과 사람이 함께 공존하는 곳
영화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지만 분명 이미지를 보는 것이다. 영상이 이야기의 세계를 설명하고 보여 준다. 글자를 읽어 간접적으로 상상을 해야 하는 책과는 다른 지점이 있다. 이는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가 원작과 같은 내용을 가지고 있어도 전혀 다른 감상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영화를 보며, 책을 읽으면 이미지와 텍스트가 서로 간섭하거나 방해하지는 않는지, 또는 도움이 되는지 궁금했다.
“물론 다른 영역일 수도 있어요. 사실 영화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이미지에서 발견한 것을 텍스트화하는 작업을 하고 싶어서였어요. 그런데 그 텍스트화하는 작업이 쉽지 않더군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책을 찾아보게 되었어요. 그렇게 책을 매개체로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만나 영화에 대한 이해를 더욱 높이고 있어요. 그것이 이 모임을 하는 주된 이유인 것 같아요.”
“영화 관련 책들을 보면 영화가 자연스럽게 떠오르고 인문 서적 같은 경우 영화에 대입이 되고 적극적으로 읽다 보면 오히려 영화가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와요. 물론 그러려면 많은 책을 읽어야겠지만 분명 다리 역할뿐만 아니라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을 보면 글로는 설명되지 않는 어떤 것이 있다고 봐요. 그게 영화 고유의 특징이 아닐까 싶어요.”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오자 또 다른 의견이 보태져 저절로 토론이 되기 시작했다. 필자도 어느새 의견을 내며 빠져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야기는 어느새 독서문화와 영상문화의 불균형으로 주제가 옮겨 갔다.
“저는 한때 영상이 쉽고 자극적이라 좋아했던 적이 있어요. 요즘 사람들이 책보다 영화나 영상을 쉽게 받아들이는데 이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책을 멀리하고 영상만 쫓다 보면 시야가 좁아져요. 그러다 보면 그냥 휘둘리게 돼요. 책, 텍스트를 이해할 수 있을 때 영상도 더 이해가 되고 온전히 자기 것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바람직하다 아니다의 문제라기보다 영상 문화로의 집중은 세상의 흐름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런데 영화나 영상에서 잘못 인식될 수 있는 이데올로기들을 이야기해 주지 않는 건 문제예요. 세상의 흐름을 거역할 수 없지만 오히려 도덕과 윤리, 기본적으로 알아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 더욱 이야기를 나누어야 해요, 그리고 명맥을 이어가려는 노력도 필요하고요.”
이야기는 막바지로 향해 가고 있었다. 까페 크리틱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독서동아리 지원 사업을 통해 지원을 받고 있는 동아리이다. 이러한 지원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지 물어보았다.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뿐만 아니라 소속감이 더 생기는 것 같아요. 회원이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어떤 것이 있는지 더 찾아보게 됩니다. 그게 좋더군요.”
“가끔 책을 사기 힘든 학생들도 오는데 확실히 부담을 덜어 주고 있어요. 그로 인해 더 많은 인원이 참여할 수 있는 건 장점인 것 같아요. 다른 독서동아리와 함께 연대해서 세미나를 하거나 또는 책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타 동아리와 연대의 가능성도 엿볼 수 있었다. 영화에 있어 닫힌 형식과 열린 형식 등 이야기 주제는 계속 이어졌다. 더 이상 방해할 수 없어 자리를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쉽게 느껴졌다.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필자에게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언제든지 모임에 참여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강요나 강제가 아닌 자유로운 의견을 교환하는 한국의 바칼로레아가 되고 싶다는 바람이 언젠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