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동아리 인터뷰 2
책을 토닥이며 사람을 성장시키는 모임
서울 토철이
모이는 곳 _ 혜화동 인문·사회과학서점 풀무질
모이는 사람들 _ 토닥토닥협동조합 조합원들
읽는 책 _ 철학, 역사 등
그리 오래 되지 않은 과거, 동네마다 그곳을 대표하는 동네 서점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만남을 가졌고 지식과 삶을 나누었다. 이제 대부분의 서점들이 사라졌고 지식은 여러 방면에서 얻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지역 서점, 우리와 가까이 있는 동네 서점은 그동안 지역 지식 생태계가 구축 가능하도록 지탱해 준 토대가 아닐까. 서울에 있는 풀무질은 오랜 세월 혜화동을 지켜 온 지역 서점이다. 그리고 여전히 풀무질에서는 다양한 책 읽기 모임이 진행되고 있다. 다시금 우리가 보듬고 기억해야 할 공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찾아간 독서동아리 모임은 이곳 풀무질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바로 토철이란 이름의 동아리이다.
토론과 토의, 그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다
서점 건너편에 마련된 모임 공간에 찾아갔을 때 이미 회원들 간에 활발한 의견교환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들이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책은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였다. 역사 관련하여 가장 많이 알려진 고전이지만 내용까지 읽어 본 이는 드문 책. 마침 그들은 책 내용을 가지고 발제를 준비해서 토론을 진행하고 있었다. 역사의 진보,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에 대한 물음, 현재진행형인 세월호 참사 관련 이야기, 군대의 가혹 행위의 문제 등 역사라는 주제를 넘어선 수많은 주제들이 아주 작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우리는 흔히 책을 읽고 토론한다고 하지만 사실 우리가 하는 건 토론Debate보다 토의Discussion에 가까운 형태다. 그러나 토철이는 회원들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때로는 반박하고 다시 반론하며 의견의 충돌과 합일되는 토론과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토의가 적절하게 이루어졌다. 역사에 대한 각자의 관점을 나눈 뒤에야 토철이에 대한 소개를 들을 수 있었다.
“토철이는 토닥토닥협동조합이라는 청년연대은행에서 만들어진 책 읽기 소모임입니다. 작년 4월에 처음 만들어졌는데 그때는 1기로 ‘철학적 책 읽기의 즐거움’이란 주제로 운영되었고, 지금은 토철이 2기인데 역사라는 테마로 너무 어렵지 않게 접근하여 후에는 생활 속의 작은 실천을 찾자는 것이 현재 저희의 모토입니다.”
토론을 진행하는 솜씨가 돋보였던 정병욱 대표의 소개였다. 그는 2기부터 모임의 장을 맡고 있다고 한다.
토철이에 관해 듣고 있다 보니 이 모임을 품고 있는 토닥토닥협동조합이 궁금해졌다. 회원이자 조합의 전체 실무를 책임지고 있다는 에리카 씨(토철이는 서로를 실명 또는 닉네임으로 부르며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가 자세한 설명을 해 주었다.
“토닥토닥협동조합은 청년연대은행이에요. 청년들이 실시일반 돈을 모아 만든 은행입니다. 얼마 전 송파 세모녀 사건처럼 우리 주변에 아주 소액이 없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요즘 시대에 오히려 그런 게 없어져야 하는 거 아닐까 하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했어요. 그래서 우리 안에서 이웃을 찾아보자, 이런 청년들이 하나하나 모여 열심히 하고 있어요.”
현재 협동조합기본법상 금융과 보험업은 협동조합 설립이 불가능하여 여러 현실적 어려움이 있음에도 2년이나 버텼다고 했다. 토철이와 같은 소모임을 갖고 있는 힘일까. 이들은 더 멀리 내다보며 희망찬 계획과 전망을 가지고 있었다.
청년들의 책 읽기
격주로 모여서 여태까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책을 읽고 있다는 이들에게 지금 현재, 청년들에게 책을 읽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오늘 발제문을 준비했던 대학교 4학년생인 장재성 씨는 주변 친구들로부터 그런 거 왜 하냐는 말을 많이 듣는다고 전했다. 자신도 예전에는 그들과 별다를 바 없었다고 덧붙였지만 그는 오늘 모임에서 역사의식을 확고히 가지고 사회를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며 강력히 주장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고 자신만의 뚜렷한 주관을 회원들에게 전달했었다.
닉네임 참치맨 씨는 무엇보다 공동체라는 것을 알게 된다고 했다. 남을 배려하고 자기의 생각을 절충하며 시행착오를 겪기도 하지만 타인의 생각을 존중할 수 있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한다.
취업 준비생이라는 또 다른 회원은 ”이런 공부라도 해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롤 모델이 ‘인문학 협동조합’이라며 앞으로의 계획을 말했는데 그 눈빛에 기대와 즐거움이 가득했다.
앞으로의 책, 앞으로의 길
《역사란 무엇인가》 이후로 그들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을 예정이라고 했다. 정치인의 세계관과 밑바탕을 알고자 선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을 통해 정치가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는 듯했다. 그 다음으로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 이들이 읽어 낼 《군주론》과 《광기의 역사》가 벌써부터 궁금해졌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모임에서나, 개인적으로나 어떠한 책들을 읽고 싶은지 물었다.
“개인적으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정복하고 싶다는 소망이 있어요.”
참치맨의 의견에 사람들은 “안 돼”를 비롯해 다양한 소리로 반응했다. 하지만 그들은 언젠가 《순수이성비판》을 읽을 것만 같았다.
“니체의 책을 읽어 보고 싶어요. 예전에 누군가에게 아는 척을 하고 싶어서 책을 읽고 이해가 간다고 했는데 결국 다 읽지 못했어요. 그때의 미련이 남아 있어요.”
“저는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가 좋을 것 같아요.”
“머리를 식힐 필요가 있어요. 소설, 그것도 연애소설 어때요?”
저마다의 바람과 의견이 거리낌 없이 펼쳐졌다. 자유로움과 함께 웃음이 끊이지 않는 모임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나 의견이 아닌 책을 통해 자기 스스로 판단하고 싶다는 이들을 보면서 청년, 청춘이 가진 힘이 이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때로는 확신을 가지고 행동하며 때로는 불안을 내포한 채 그대로 달려가는 것도 이들의 과정일 것이다. 참치맨 씨가 마지막으로 독서동아리 지원 사업에 대한 한 가지 바람을 전했다.
“우리끼리 모여 책 읽는 것도 좋지만 우리만의 사고로 빠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좀 더 많은 생각이 함께 모이는 자리가 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같이 활동할 수 있다면 토닥토닥도 알리고 우리의 방향성도 알리고 어쩌면 같이 모여 협동조합, 사회적기업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난 송파의 세 모녀는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정부는 부랴부랴 시스템의 미비점을 보완한다고 부산을 떨었지만 여전히 이 사회는 그녀들과 같은 사람들을 밀어내고 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서로의 어려움을 알고 토닥이며 협동하는 청년들의 모임이 만들어졌다. 누군가는 비록 작은 발걸음이라 하겠지만 온기 부족한 지금-여기의 현실에서 이들처럼 따뜻하게 실천할 수 있는 이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