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동아리 인터뷰 1
집밥처럼 따뜻한 환대와 온정을 품다
서울 헌책방독서단
모이는 곳_ 광화문 아름다운가게 헌책방
모이는 사람들_ 직장인
읽는 책_ 교양서
서울의 중심이라 불리는 광화문과 종로 일대. 커다란 건물들 사이에서 책을 읽는 모임이 있다. 높다란 콘크리트 숲을 한참 동안 헤매다 지하 깊숙이 들어갔다. 미로와 같은 그곳, 도저히 헌책방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위치에 헌책방이 이질적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안에 오롯이 서 있는 서가들과 빼곡한 책들, 그 사이로 사람들이 보였다. 이들을 불러 모은 책은 영국의 소설가, 존 르 카레의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였다. 8월 중순, 무더운 여름밤에 ‘추운’과 ‘스파이’라는 단어가 묘한 대구를 이루고 있었다.
맛있어 보이는 빵과 과일들, 모임에 익숙한 사람들과 처음 참석한 사람들, 그럼에도 부드럽고 차분한 톤의 대화들,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 대한 감명과 아직 읽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 헌책방독서단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도시의 번잡함과 소란스러움은 잠시 잊혀졌다.
헌책을 읽는 독서 모임으로 출발하다
“2012년 1월에 첫 모임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헌책방에서 헌책을 가지고 독서 모임을 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시작했어요. 당시 독서 모임의 대부분이 발제를 하고, 토론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 같았어요. 그런 것보다는 편하게 누구나 찾아올 수 있는 모임을 만들고 싶었어요. 또 아름다운가게 헌책방이란 공간을 소개하고 사람들이 체험해 봤으면 하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누구나 언제든지 찾아와서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모임을 원하던 노희승 대표가 성미산의 아름다운가게 헌책방에서 근무하던 분을 만나게 되면서 헌책방독서단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일반 서점도 아닌 그렇다고 도서관도 아닌 헌책방이란 공간은 누군가의 추억과 의미가 듬뿍 담긴 책들이 다른 누군가의 추억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며, 그 손길을 기다리며 잠자고 있는 곳이다. 비록 헌책이란 이름이지만 새책보다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그곳에서 읽을 책을 정하지 않고 서로 각자 읽고 싶은 책을 마음대로 꺼내 읽으며 독서 모임을 진행하던 중 뜻밖의 현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나중에 모여서 서로의 감상을 나눌 때 각자 읽은 책이 달라서 공감대 형성이 쉽지 않았어요. 테마를 가지고 읽어 보려는 시도도 해 봤는데 결국 각자 좋아하는 장르만 읽게 되더군요. 그러면 같이 읽는 의미가 없는 것이니까 지금은 서로 추천을 해서 투표를 통해 한 권의 책을 고릅니다. 그 책을 같이 있고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변화했습니다.”
함께하는 사람들을 위한 다과는 효모를 쓰는 건강하고 맛있는 빵과 시장에서 사온 제철 과일로 준비했다. 책을 구입할 때는 되도록 동네 서점을 이용한다. 더불어 직장인들이 쉽게 찾아올 수 있게 장소도 성미산뿐만 아니라 광화문 헌책방으로도 넓혀졌으며 더욱 많은 사람들과 함께 책을 읽기 위한 방안도 마련되었다.
늘 새로운 만남과 오래된 인연이 함께하는 곳
헌책방독서단에는 회원이라는 개념이 없다. 격주로 열리는 모임에는 자주 오는 사람들도 있고 한동안 쉬었다가 다시 나오기 시작한 사람도 있고 처음 온 사람들이 있다. 집밥www.zipbob.net이라는 인문, 사회, 문화, 예술 취미 모임과 소셜네트워크에 읽을 책에 대한 공지를 올리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게 독서단의 문을 활짝 열어 두었기 때문이다. 이날 모임에도 독서단을 처음 찾은 4~5명의 사람들 말고도 집밥사이트나 트위터 등 SNS를 통해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러한 방식의 운영에 대한 장점이 궁금해졌다.
“일단 모임이 활성화가 되는 계기가 되었어요. 고정된 멤버가 아닌 새로운 사람들이 항상 찾아오시니까 기분 좋은 긴장감을 주기도 하고, 늘 논의가 신선해지는 효과도 얻을 수 있어요. 그 사이트를 이용하시는 분들이 대개 문화와 예술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 저희 모임 성격과도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덕분에 고인 물 같지 않아서 좋아요.”
이날 자리를 끝까지 지켜 주신 분들도 헌책방독서단만의 방식에 대한 매력을 전해 주었는데 ‘누군가 굉장히 신선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시는 분들이 꼭 있다’, ‘편독하는 편이었는데 여기 와서 새로운 독서 목록으로 업데이트되고 있다’는 말과 함께 뭔가 모를 독서단만의 편안한 분위기에 대한 결정적인 한마디를 들을 수 있었다.
“사실 직장인이다 보니 책 읽기에 온전히 시간을 다 투자하기는 힘들어요. 하지만 책을 미쳐 다 읽지 못했어도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나 감상을 즐길 수 있는 느슨하고 편안한 모임, 그런 것을 나눌 공간이 필요했는데 이곳에 오면 그런 것들을 충족시킬 수 있었어요.”
하지만 아무리 편한 분위기라고 해도 처음 온 사람들이 의견을 내며 참여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려운 점도 있지 않았을까.
“모두 다 참여할 수 있게 노력하려고 하지만 모임을 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처음 온 분들을 챙기지 못하고 그냥 모임을 진행할 때도 있어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항상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점이라면 유대가 끈끈하지 않아요, 고정된 멤버들도 있지만 여러 사람들이 오가는 경우가 많아서 어떤 안건이 있다면 의견 수렴 과정 또한 쉽지 않고 결정 내리기도 쉽지 않은 상황도 있습니다. 우리 모임의 가장 큰 재미는 무엇보다 각자 책을 추천하고 투표하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모임 참석 유무에 법칙이 없다 보니 강력하게 어떠한 책을 추천한 사람이 그날 모임에 참석하지 않으면 진행이 어려워지면 단점도 있어요.”
《국제정치이론과 좀비》를 읽기로 한 날, 그 책을 추천한 사람이 오지 않았다. 좀비에 관해 전혀 관심이 없었던 참석자들은 책을 이해하기 어려웠고 굉장히 아쉬워했던 씁쓸한 추억으로 남아있었다. 그러나 추천 제도는 이 모임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것이었다. 플라톤의 《향연》이라는 어려운 텍스트를 같이 읽으며 ‘아, 이런 게 같이 있는 힘이구나’라고 느꼈으며, 《여름으로 가는 문》과 《한밤중에 톰의 정원에서》를 읽으며 다른 사람들이 책을 추천한다는 것에 신뢰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파씨의 입문》을 읽으며 편견을 가지고 있던 한국문학에 대해 새롭게 바라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러한 책의 목록은 《하멜표류기》, 《구운몽》 등으로 끊임없이 퍼져나갔다.
진정으로 독서가 취미가 되는 생활
마지막으로 이곳에 모여 이렇게 책을 읽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답변은 광화문 아름다운가게 지킴이이자 독서단 모임에 6개월 정도 참석한 신지호 씨가 해 주었다.
“여긴 독서에 있어 중간 단계인 것 같아요. 개인적인 수준의 독서에 머물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딱딱하고 고정된 독서가 아닌 자기가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은 공유할 수 있는, 약간의 엉거주춤함이 이 모임의 매력이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사실 공통되는 것들이 있어요. 책의 종류, 선택되는 책들의 공통점인데요. 직장인이 여가 시간에 너무 가볍지도 않고, 너무 무겁지도 않은 하지만 의견을 공유할 수 있는, 구하기 어렵지 않아서 2주 내로 읽을 수 있는 책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 꾸준히 할 수 있는 취미생활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헌책방독서단의 뭔가 모를 여유로움과 따뜻한 분위기는 바로 독서 그 자체에 대한 자발성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독서하면 좋다는 말에 따라 움직이거나 또는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이 아닌 자신의 의지대로 마음을 열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 기울이며 그저 평소의 생활처럼 편안히 책을 만나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 이 모임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이었다. 화려하거나 자극적이지 않지만 차분히 기운을 북돋아 줄 수 있는 집밥 같은 헌책방독서단이 앞으로도 대도시의 빌딩 숲 사이에서 든든하게 계속 자리 잡고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