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주년 준비위원회를 중심으로 멋지고 풍성한 40주년 행사를 만들기 위해 전국의 모든 회원들이 고민의 시간과 노력을 함께 했습니다. 십시일반 기념품을 나누며 전국 방방곡곡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하는 우리 회원들의 위로와 힘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고자 했습니다.
어린이도서연구회 40주년을 돌아보며 이 땅에 어린이도서연구회가 탄생해서 어린이와 함께 어른이 어린이책을 읽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길 위에 있는 회원들의 자각과 성장을 자축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2020년은 정말 여러모로 잊을 수 없는 해로 깊이 뇌리에 새기고 마감될 것 같습니다. ‘고마워요 40년, 피어라 어린이도서연구회’ 제목 아래 준비했던 축제는 코로나19로 연기 혹은 축소·취소되었습니다.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과 공동 주관한 ‘한국동화 100년, 으랏차차 우리 동화!’는 4월에서 5월로 연기되었고 그나마 도서관 휴관으로 관람이 제한되었습니다. 5월 기념식 및 심포지엄은 10월로 연기되었다가 기념식은 12월로 연기하였고 심포지엄은 취소되어 결과보고서로 남길 예정입니다. 40주년 행사의 정점으로 찍으려 7월에 1박 2일로 기획했던 전국 회원 연수도 취소되었습니다. 간신히 3월에, 2회 책돌이상을 발표하였지만 시상식은 기념식 때 하려고 한 상황이라 못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40주년 기념품을 제작하였으며 자료집은 어렵게 온라인 회의를 하며 최종적으로 12월로 연기되어 준비하고 있습니다.
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 잊을 수 없는 기점이 된 시간들을 조직 활동을 중심으로 되짚어 봅니다. 1980년, 1993년, 2003년, 2006년, 2012년, 2018년, 2020년이 떠오릅니다.
1980년은 교사 중심 조직으로 서울양서협동조합 산하의 모임으로 태어난 해입니다. 최초로 어린이가 처한 현실에 관심을 갖고 어린이 문제를 책과 환경을 중심으로 제기합니다. 엄혹한 시절에 어린이에 대한 문제 제기는 비교적 자유로웠던 시절이었습니다.
1993년은 동화읽는어른모임이 전국에서 탄생한 해입니다. 운동 주체가 학부모로 확장되면서 어린이 문제에 대한 호응과 관심의 씨앗이 전국에 뿌려진 해입니다. 김영삼 정권을 시작으로 민주적인 분위기가 확장되기 시작하여 자생적인 모임들이 자유롭게 만들어졌습니다.
2003년은 본회가 먼저 조직을 개편한 해입니다.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사회화, 체계화시켜 독서문화, 츨판문화, 도서관문화위원회로 개편하였습니다. 본회인 어린이도서연구회보다 지역 모임인 동화읽는어른모임이 더 커지게 되면서 단일한 조직으로서의 활동과 의결권을 요구하였습니다. 전국화, 전문화, 정책화의 방향을 가지고 조직 개편과 조직 단일화를 준비했습니다. 당시 조직 단일화는 시대적 요구로 받아들였습니다.
2006년,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회원 단일화, 조직 단일화가 완성되어 12개 지부·지회 체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조직적 체계는 갖추었으나 전국화·전문화·정책화의 구체적인 모습에 대해, 많은 역량이 빠진 상황에서 어떻게 길을 찾아가야 할지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전국협의회의장으로 조직 단일화 한가운데 있었던 책임으로 사무총장의 일을 맡았던 때이기도 합니다.
2012년부터 3년간 《어린이도서연구회가 뽑은 어린이·청소년 책》 특집호를 만들었습니다. 목록을 만드는 일에서 부터 지역의 회원들이 참여하는 구조를 처음 만들어 나갔습니다. 목록위원회 사회팀장으로 사회 갈래의 기준을 만든 기억이 납니다. 또 이 해는 동화동무씨동무사업을 시작해 유아·저학년 중심의 책 읽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중학년 이상 어린이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문학 읽기를 시도했습니다.
2018년 총회에서 연구소 설립안이 통과되었습니다. 어린이도서연구회 조직이 교사 중심의 전문 조직에서 학부모 중심의 대중 조직으로, 지부·지회의 전국 조직으로 확대되면서 전문성 강화와 정체성 유지는 늘 고민의 지점이었습니다. 그 간극을 채우기 위해 조직 단일화 논의는 연구소 설립과 함께 해왔는데 쉽게 현실화 되지 않았습니다. 중간 단계로 연구실에서 그 역할을 유지해 오다 연구소가 설립되었습니다. 지금은 첫 출발이라 성과가 미비하지만 전국적으로 연구계획서를 내고 누구나 연구를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든 것입니다. 이번 대구경북지부에서 책읽어주기 활동을 기록하고 연구하여 단행본으로 만들어 내는 것은 커다란 성과입니다. 앞으로 이런 연구가 지부·지회로 확산되고 상임연구원들이 생겨나고 연구발표회가 지부를 중심으로 곳곳에서 만들어지길 기대합니다.
2020년, 40년간 걸어온 길을 돌아보니 길을 찾으며 주저하기도 했지만 방향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어린이도서연구회 40주년은 2006년 조직 단일화 이후 부족했던 15년의 흩어져 있는 지부·지회의 활동을 정리하는 의미와 그동안 고단하게 걸어온 우리 자신에게 ‘잘했다’는, ‘잘하고 있다’는 위로의 의미를 담고 싶었습니다. 비록 코로나19로 많은 일들이 축소되고 취소되는 아픔을 겪고 있지만 40주년 준비위원장을 맡고 있는 저로서는 이마저도 고마울 뿐입니다. 부족하나마 이런저런 형태로 정리가 되면 뒤이은 후속 연구와 활동의 바탕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IT혁명으로 스마트폰이 보급되어 정보 평등과 민주적 제도의 확산으로 중앙과 지역, 현실 공간과 온라인 공간의 경계가 급속히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온라인 공간에서의 회의, 강의, 교육 등이 현실화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과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합니다. 어린이도서연구회는 연구와 활동을 중심으로 일주일에 한번씩 모임을 하는 대면 활동이 매우 익숙한 조직이며 느슨하고 다양하고 개별적이고 민주적 훈련이 잘 되어 있는 조직입니다. 연구와 활동이 전국적으로 퍼져나가 큰 힘으로 작동하는 조직입니다. 어린이도서연구회의 크나큰 장점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비대면 사회가 익숙해질 것이고 전국 조직으로서 지역 간 경계를 극복하는 방향에서 활동을 해야 하기에 비대면 만남의장을 활성화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활동과 연구 모든 분야에서 전국적으로 나누어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 구조를 지탱하는 인력은 지부 단위에서 채워야하며 지부는 많은 활동가를 발굴하고 길러내는 플랫폼이 되어야 합니다. 지회는 지역 사회를 중심으로 활동할 수 있는 학부모를 발굴해 내어야 합니다. 앞으로는 지역 사회의 활동이 사회 전반에서 강화될 것입니다. 우리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앞으로 나가야 할 길은 지나온 길을 더듬고 살펴 한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그 순간에는 최선의 선택을 하고 내딛었다는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어린이도서연구회 40년의 외길에 서 있는 회원 여러분, 힘든 시기를 잘 견디고 이겨냅시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 이 글은 「동화 읽는 어른」 319호(2020.10)에 수록되었으며, 필자의 동의하에 게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