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드 디 앤절로Ed D'Angelo라는 미국 학자는 민주주의의 성장과 시민들의 계몽이 공공도서관의 목표라면, 얼마나 많은 자료가 대출되었는가 하는 것만으로 성공을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도서관의 사서들이 봉사한 독자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좋은 시민이 되었는가를 가지고 성공을 평가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도서관의 사명과 역할은 시대에 따라 부단히 재정의되어야 하며, 전국 곳곳에 촘촘한 인프라를 갖춘 공공도서관은 사회적 독서를 촉발하고 확산하는 장이 될 수 있습니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사회적인 책임의식을 갖춘 성숙한 민주시민이 될 수 있도록 어떤 철학과 정책을 가지고 지원하느냐 하는 것은 도서관의 본질과 맞닿아 있는 중요한 역할일 것입니다.
구산동도서관마을은 주민들의 자각과 참여에 의해 만들어진 도서관이고, 도서관 건립계획 수립과 건축 과정 전반에 시민들의 참여가 이루어지면서 건립된 주민주도형 도서관입니다. 시민들이 참여 예산을 확보하고, 건축에 대한 의견을 내는 과정 전반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었습니다. 도서관 건축은 무명의 수많은 건축가들의 참여로 이루어졌으며, 그 결과 도서관 이용자 모두가 즐겁게 이용하는 ‘우리 도서관’이 되었습니다. 공공서비스를 제공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사회적협동조합이 운영하는 도서관이기도 합니다.
구산동도서관마을에서는 도서구입부터 문화프로그램과 인문학강좌 기획까지 주민참여와 공공성의 원칙이 지켜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가볍고 시간때우기식 흥미위주의 독서보다 개인과 사회에 대한 인식과 성찰로 나아갈 수 있는 사회적 독서를 촉발하고 확대하는 것을 중요한 원칙으로 일관되게 추구하고 있습니다.
구산동도서관마을에서 개설하는 사회교육강좌의 기본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학교에서 배우지 못했던 역사적 사실, ②전통철학과 사상, ③사고의 방법을 일깨우는 철학, ④더불어 사는 사회의 정신을 일깨워주는 공존의 사상, ⑤사회적 관심사, 이러한 기본원칙을 가지고, 2017년에는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라는 큰 주제 아래 페미니즘, 기본소득, 청년주거, 평화, 통일, 인권 등의 소주제를 정하여 매월 강사를 초청하고, 직원들이 책을 읽으며, 직원전체회의에서 읽은 책을 발표하고, 그 내용을 도서관 블로그에 게재하며, 각 자료실별로 이용대상에 맞는 도서를 골라 전시하였습니다. 이 과정에 지역 전문가 단체들이 기획에 참여하고 함께 준비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사회의 모습을 그려보기 위해 「오마이뉴스」 오연호 기자를 초청하여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제목으로 강좌도 진행하였습니다.
2018년 ‘함께 살고 싶은 마을’을 주제로 정한 후에는 은평구의 분야별 마을활동가들을 초청하여 강의를 듣고, 협동조합과 생태에 대한 책을 읽고 토론하였으며, 자료실별로 북큐레이션을 하였습니다. 도서관 직원들부터 마을활동을 이해하고, 공감할 때에만 이용자들에게 책을 권하고 안내할 수 있다는 취지였습니다.
‘서울에는 철학하는 시민이 산다’라는 제목으로 한나 아렌트, 스피노자, 미셸 푸코, 프로이트 등 철학자들의 강의를 21강이나 진행했습니다.
사회의 그늘진 곳을 돌아보고, 숨겨진 사회문제를 드러내는 영화 상영과 감독과 관객이 만나는 시간을 갖기도 합니다. 우리마을소극장과 독립영화 상영 프로그램으로 「자백」의 최승호 PD, 「공동정범」의 김일란, 이혁상, 변영주 감독, 「B급 며느리」의 여주인공 김진영, 「내일」 영화상영과 사회학자 노명우와의 대화 등을 진행하였습니다.
2019년에는 ‘진화심리학’ 전중환 강연을 시작으로, ‘마음의 습관’ 김찬호, 정희진의 ‘차이에 대한 공부’등 사회심리학 강연과, 청년들을 위한 야간인문학강좌를 개설하였습니다.
2018년 도서관 길위의 인문학은 「동학에서 해방까지」를 주제로, 우리 근현대사의 알려지지 않은 역사와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알아보고 답사를 진행하였고, 2019년은 「미리보는 통일 준비하는 미래」를 주제로 통일에 대한 강의와 답사를 진행하였습니다. 북한의 언어, 예술, 생활문화, 건축, 북·중 국경, 독일 통일 사례, 평화에 대한 모색 등 상당히 딱딱한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매 강좌마다 예상한 인원을 훌쩍 넘기면서 뜨거운 호응 속에 강좌를 진행하였습니다.
강좌가 기획되면 강사의 저작이나 관련 주제의 도서를 전시하여 이용자들이 관심을 갖고 살펴보거나 대출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민간연계시민대학이나 길위의 인문학의 경우 관련 도서를 여러 권 구입할 수 있는 예산이 책정되어 있어서 복본 도서를 구입하고 전시하며, 대출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강의 자체를 토론식으로 기획하기도 하는데, 2017년 이민경 강사의 경우 인근 고등학교와 대학교의 페미니즘 동아리와 함께 준비하였고, 주거를 주제로 한 강좌의 경우 지역의 협동조합인 두꺼비하우징과 토론식으로 강좌를 기획하고 준비하였습니다. 2019년 손희정, 최태섭 강의는 두 강사가 대담식으로 진행하고, 참여자들은 질문과 토론 형태로 함께 하는 형식으로 기획하여 진행한 사례입니다.
여러 회차 강좌인 경우 마지막 강의를 토론식으로 준비하여 강사사회학자 김찬호, 역사학자 김영수, 길위의 인문학 전영선와 참가자가 함께 토론하기도 하였습니다. 수시로 질문을 할 수 있게 하고, 토론을 유도하는 강사여성학자 정희진도 있습니다.
사회적 주제 선정 후에는 전 직원 책읽기와 토론, 도서관 블로그 게시, 자료실별 전시, 카드뉴스 제작, 강연 및 참가자 토론, 질의응답으로 진행합니다. 주제 선정 시 기본소득, 페미니즘, 우리가 잘 모르는 아시아, 평화와 통일 등 사회적으로 화제가 되거나 공론화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지는 주제를 선정하여 사고와 토론을 유발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참가자 자유토론은 다양한 계층이 이용하는 공공도서관의 성격상 한계가 있으나, 강의 마치기 30분 전, 혹은 5회 강좌의 경우 마지막 강의 날 2시간을 질문 및 토론에 할애하기도 하며, 질문과 대답, 다른 참가자의 반응 등 전면 자유토론은 아니지만, 의견교환과 토론이 일어났습니다.
특정한 주제로 강좌나 토론을 열 경우 관련 도서의 대출율이 높아지고, 주제관련 참고서비스도 크게 증가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개관기념행사로 매년 정책포럼을 개최하고 있으며, 2016년 ‘마을과 도서관 다가올 미래’, 2017년 ‘은평구 도서관 십년지대계’, 2018년 ‘독서시민 은평’를 진행하였습니다. 매번 발제자와 토론자의 주제발표와 토론 이후 참가자들이 함께 질문하고 토론하는 형식으로 진행하였습니다. 문제제기를 하고, 이에 대해 참가자들이 생각할 기회를 제공하며, 이것이 지역에 반향을 일으켜 또다른 토론과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산동도서관마을에 있는 동아리들 역시 사회적 독서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도서관 개관 무렵부터 시작된 파동 독서동아리의 경우 주제와 도서를 공지하고 누구나 참가할 수 있도록 하여 열린 독서토론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낭독동아리, 함께 시읽고 이야기 나누는 함시모, 추리소설 동아리, 여행책 읽는 모임 등 다양한 독서동아리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구산동도서관마을은 사회적 독서의 확산을 위해 앞으로도 더 고민하고 실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