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읽기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이것을 질문으로 만들면, 그것은 아주 단순한 질문이 됩니다. 사람들이 옛날에는 어떻게 책을 읽었을까, 오늘 우리는? 그리고 앞으로 다가오는 어느 날의 책읽기는? 질문은 단순해 보이지만, 답변은 쉽지 않습니다.
2.
우리의 언어생활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행위 네 가지, 즉 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가 발생했던 순서를 생각해봅니다. 제일 먼저 말하기와 듣기가 있었을 것입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문자 없이 삶을 영위했습니다. 그리고 쓰기가 있고, 읽기는 가장 마지막에 등장합니다. 쓰기가 없으면 읽기도 없습니다.
3.
현생 인류의 희미한 흔적을 찾아서 유전학자들이 계속 탐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약 4만 년 전에 등장한 현생인류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도 처음부터 문자를 사용한 흔적은 없습니다. 그 이전에 등장한 호모 에렉투스(50만 년 전)나 호모 사피엔스(20만 년 전)도 분명 언어 행위를 했을 것이지만, 문자를 사용한 흔적을 찾기란 불가능합니다. 쓰기, 그리고 쓰기에 잇달아 일어난 읽기라는 행위는 지구상에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신석기혁명Neolithic Revolution과 깊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는 게 분명해 보입니다. 채집 경제에서 생산 경제로의 전환은 무언가 기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만들어냈음이 분명합니다.
4.
월터 옹은 『구술문화와 문자문화』에서 구술문화와 문자문화의 차이가 단지 소통방식의 차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쓰기는 의식을 재구조한다Writing is a technology that restructures thought.”는 것입니다. 이는 놀라운 관찰입니다. 월터 옹은 구술문화와 문자문화의 사이에 있는 ‘정신구조mentality’의 차이에 주목했는데, 이는 책읽기의 미래와 관련해서도 새겨 보아야 할 생각입니다.
5.
책은 물질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흔히 ‘책읽기의 역사’를 이야기하려다 ‘책의 역사’를 이야기하게 됩니다. 책의 역사, 즉 책의 라이프 스토리는 일종의 물리적 진화과정입니다. 고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종류의 표면에 문자와 그림과 상징을 새겨 넣은 것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이 때 등장하는 물건들은 그 종류가 다양합니다. 점토와 나뭇조각과 동물의 뼈와 상아, 거북 껍질, 조개 껍질 등 무언가 기록하기 위해 사용한 물건들의 가짓수는 많습니다.
6.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쐐기문자라고 알려진 형태의 문자를 남겨 놓았습니다. 기원전 사천 년 경의 일이라 합니다. 오늘날 이라크의 북부 니네베 아슈르바니팔 왕의 도서관에서 발견된 점토판에는 길가메시 서사시가 남아 있습니다. 우트나피수팀이라는 현자가 대홍수가 곧 닥칠 것이라는 신의 경고를 받고 배를 만들어 살아남은 이야기가 아카드어로 적혀 있다고 합니다. 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를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적혀 있는 점토판을 오늘날 우리가 책을 읽듯 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쓰는 능력, 읽을 수 있는 능력은 극소수 사람들의 것이었고, 그 사람들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거나 쓰는 능력, 읽을 수 있는 능력을 독점하고 있었던 지배층이었습니다.
7.
쐐기문자에 뒤이어 언급되는 것이 갑골문입니다. 갑골문은 기원전 일천사백 년 전의 기록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만, 이에 대한 연구는 불과 지금으로부터 일백여 년 동안 이루어진 일입니다. 물론 아주 최근의 발견, 즉 2003년 허남성 자후 마을에서 발굴된 상징들은 기원전 육천 년 전의 것이라고 합니다만, 이들 기호가 과연 문자로서의 적격성을 지녔냐 하는 것은 논란의 대상이라고 합니다. 아무튼 거북이 등뼈에 새겨진 문자를 오늘날 우리가 책을 읽듯 읽었을 리 없습니다. 시라카와 시즈카百川靜는 갑골문의 세계가 기본적으로 주술의 세계라는 전제 아래 갑골문을 해석해내고 있습니다. 문자와 주술의 관계는 꽤 오랫동안 지속되어, 오늘날에도 문자에 주술적 능력이 있다고 믿는 이들이 있습니다.
8.
파피루스papyrus는 종이가 유입되기 이전까지 유럽문명의 근저를 이루고 있습니다. 플라톤이나 키케로와 같은 그리스 로마 문명의 인물들이 모두 파피루스에 자신의 생각들을 남겨 놓았습니다.
9.
한나라의 채륜蔡倫이 서기 105년에 종이를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학자들은 그보다는 1~2 세기 정도 앞서서 종이가 발명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언 샌섬은 『페이퍼 엘레지』에서 종이를 궁극의 인공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이’가 걸어간 길은 뚜렷하지 않습니다. 니콜 하워드는 『책, 문명과 지식의 진화사』에서 ‘페이퍼 로드’에 대해 아주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제지술은 6세기경 한국에 전해졌고, 한국의 승려에 의해 다시 일본에 전파되었다. 그러나 서쪽으로의 이동은 중국 제지업자가 사마르칸드(오늘날의 우즈베키스탄)에서 아랍군대에 포로로 잡힌 8세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시작되었다. 이 제지술의 이동은 중국과 지중해를 잇는 교역로인 실크로드의 존재와 예언자 마호메트의 사후에 통합된 아랍제국의 팽창으로 촉진되었다. 이슬람 문화와 이념의 확장은 책의 역사에서 특히 중요했다.”
종이가 아랍문명의 변경이라 할 수 있는 스페인에 도달한 것이 11~12세기의 일이고, 이것이 르네상스의 이탈리아를 거쳐 프랑스와 네덜란드 등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구텐베르크 혁명을 준비하게 됩니다.
10.
이천 년의 해,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할 때, 지난 일천 년 동안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을 뽑았는데, 금속활자를 통해 책의 대량생산을 가능케 한 요하네스 구텐베르크(1398~1468)가 뽑힌 적이 있습니다. 요하네스 구텐베르크는 책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양의 주요 도서관에서는 흔히 ‘42행 성서’라고 하는 ‘구텐베르크 성서’를 그 자체가 도서관인 듯 소중한 보물로 다루고 있습니다. 필사본의 시대를 뛰어넘어 책의 대량생산이 만들어낸 세상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텐베르크가 일군 것은 책읽기의 혁명이 아닙니다. 그 혁명을 가능하게 만든 궁극의 기술혁명입니다.
11. 책읽기의 혁명을 이룬 이는 마르틴 루터(1483~1546)입니다. 사사키 아타루佐々木中는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루터는 무엇을 했을까요? 성서를 읽었습니다. 그의 고난은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무슨 일일까요? 그는 알았던 것입니다. 이 세계에는, 이 세계의 질서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것을. 성서에는 교황이 높은 사람이라는 따위의 이야기는 쓰여 있지 않습니다. 추기경을, 대주교 자리를, 주교 자리를 마련하라고도 쓰여 있지 않습니다. (중략) 그는 읽었습니다. 그리고 불현듯 깨달았습니다. 이 세계는 이 세계의 근거이자 준거여야 할 텍스트를 따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이 세계의 성립 근거를 찾아 아무리 성서를 읽어도 거기에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습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사사키 아타루는 이를 ‘준거의 공포’라고 말합니다. “책을 읽고 있는 내가 미친 것인가, 아니면 이 세계가 미친 것인가” 하는 무섭고도 두려운 질문 앞에서 서는 것이 읽는다는 것입니다. 마침내 루터는 그 유명한 95개조의 의견서를 냅니다. 1517년의 일입니다. 그에게는 이미 종이의 생산이나 활판인쇄, 안경의 보급이 마련되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 의견서의 확산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 있고, 그에 대한 연구도 꽤 이루어진 듯합니다. 그런데 당시 문맹률이 95퍼센트나 되었습니다. 또한 95개조의 의견서는 라틴어로 쓴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루터가 라틴어의 세계에서 벗어나 독일어로 『신약성서』를 번역하는 일에 착수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자신이 읽었던 것을 다른 사람도 함께 읽기를 바라는 일만큼 세상의 모든 독자/저자의 갈망이 없습니다. 번역서라 할 『9월성서』가 출간된 것이 1522년 9월의 일. 독일어로 이루어진 문학이 시작하는 시점입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의 대부분은 문맹이었습니다. 문자를 읽을 수 없는 사람은 읽을 수 있는 사람에게 읽어 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른바 민중은 ‘책읽어주기’ 혹은 ‘집단 독서’를 통해 성서를 만나게 됩니다. 루터의 읽기 혁명에 대해, 사사키 아타루는 이렇게 말합니다. “책을, 텍스트를 읽는 것은 광기의 도박을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어버린 이상 그것에 목숨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되고, 따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중략) 읽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쓰는 것입니다.”루터의 읽기 혁명이 만든 것은 쓰기와 읽기를 역전시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쓴 것이 있기 때문에 읽는 것이 아니라, 읽은 것이 있기에 쓴다는 것입니다.
12.
루터 이야기를 하다가, 사사키 아타루의 이야기가 길어져 버렸습니다만, 조금 더 이야기를 끌어가도 좋을 듯합니다. 사사키 아타루의 질문은 이런 것입니다. “읽는다는 것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나아가서는 다시 읽는 것, 쓰는 것, 다시 쓰는 것의 힘”을 말합니다. 사사키가 말하는 읽기 이야기 가운데 가장 극적인 인물과 텍스트는 무함마드(모하메트)와 『코란』입니다. 무함마드는 고아입니다. 그리고 문맹입니다. 마흔 살이 되어 이상한 꿈을 꾸고 깊은 번민에 휩싸이면서 불안에 떨게 됩니다. 그래서 메카 교외에 있는 히라 산에 있는 동굴에 틀어박혀 명상에 들어갑니다. 그 동굴에서 천사 지브릴(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납니다. 지브릴이 전한 신의 계시는 ‘읽어라’는 것이었습니다. 무함마드는 몇 번이고 거부합니다. 왜냐면 자신은 문맹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는 ‘읽게’ 됩니다. 이슬람의 성전인 『코란』은 ‘qu'ân', 즉 ‘읽기’라는 뜻의 말이라 합니다. 문맹이 읽는다? ‘문맹’은 아랍어로 ‘움미ummî’라고 하는데, 이는 ‘어머니인’이라는 모성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어머니, 어머니, 움미, 움미! 『코란』에는 인간이 읽을 수 없는 신의 말로 쓰인 ‘원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원본’을 이슬람에서는 ‘책의 어머니um al-kitâb’라고 한다고 합니다. 『코란』은 책의 어머니의 사본인 셈입니다. 이슬람이 고지하는 계시는 전혀 읽을 수 없는 남자(문맹)와 ‘책의 어머니’즉 근원적으로 읽을 수 없는 책 사이의 관계입니다. 무함마드에게 읽는다는 것은 ‘책의 어머니’에 대한 접근을 소진시키는 일입니다. 읽는다는 것은 읽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읽을 수 없다는 것은 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책을 읽을 수 없습니다. 읽을 수 있다면 미쳐버립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그것만이 읽는다는 것입니다.”책의 잉태는 읽을 수 없는 것을 읽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사사키 아타루는 무함마드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읽으라는 말을 듣고 읽었고, 쓰라는 말을 듣고 썼으며, 그리고 시를 읊은 것”이라고. 사사키의 결론은 이러합니다. “문학이야말로 혁명의 힘이고, 혁명은 문학으로부터만 일어납니다. 읽고 쓰고 노래하는 것, 혁명은 거기에서만 일어납니다.”
13.
이야기를 조금 되짚어 가야 할 듯합니다. 이반 일리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데이비드 케일리에 따르면, 이반 일리치는 어느 날 “1980년대 중반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정신적인 공간에 변화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 ‘정신적인 공간의 변화’란 사람들이 텍스트 기반의 이미지로 자신을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두뇌적 이미지로 사유하는 쪽으로 변화한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이 더 이상 ‘시대의 뿌리은유’로 책이 아니라 컴퓨터를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일리치는 기술technology이라는 말보다 도구tools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사람이 도구로 말미암아 영향을 받는 것(이는 마샬 맥루한이 “미디어가 메시지다”라는 말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도구의 낙진’입니다.)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입니다. 이반 일리치는 이런 뿌리은유root metaphor의 변화가 언제 일어났는지 추적해 올라갑니다. 마치 고고학자처럼.
아직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았습니다만, 이반 일리치의 텍스트 『ABC, 민중지성의 알파벳화』나 『텍스트의 포도밭에서』는 그 뿌리은유의 변화와 깊은 연관이 있는 책입니다. 배리 샌더스와 함께 탐구했던 『ABC, 민중지성의 알파벳화』에서 이반 일리치는 뿌리은유가 변화하는 역사적 분기점을 두 가지라고 말합니다. 하나는 고대 그리스에서 서사적 구술문화로부터 문자문화로 넘어가던 때(고전 읽기의 어려움은 바로 여기에 있는지 모릅니다. 원시적인 구전 서사가 문자언어 밑으로 가라앉아 버린 것을 우리는 ‘읽게’ 되는데, 사실 고전 구전 서사의 놀라움은 그것이 문자언어 위로 솟구쳐 오를 때입니다.), 또 하나는 12세기 유럽에서 현대적 책의 조상이라 할 만한 것이 등장하던 때입니다. 이는 앞서 언급했던 월터 옹의 지적처럼 두 가지 문화의 분기점에 일어나는 ‘정신구조’의 차이를 이반 일리치도 주목했던 것입니다. 구술문화의 사회는 ‘자아’를 모릅니다. “생각 자체가 날개를 타고 날아간다. 말과 분리할 수 없기 때문에 생각은 그 자리에 머무르는 일이 없이 언제나 사라져버린다.” 우리가 자아에 부여하는 안정성과 서사적 일관성은 텍스트 기반의 문자문화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구술문화에서 문자문화로 넘어가던 때는 그렇다치고, 12세기 유럽에 일어났던 일은 무엇일까. 이반 일리치는 『텍스트의 포도밭에서』라는 책에서 『디다시칼리콘』의 저자인 생빅토르의 위그Hugh of Saint Victor(1096~1141)라는 인물에게 일어난 정신구조의 변화를 탐구합니다. 생빅토르의 위그 시대에 일어난 것은 단적으로 말해서 필사본筆寫本에서 목판본과 같은 판본板本이 생겨난 변화였습니다. 판본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었던 것일까. 중세기의 필사본에는 낱말이 분리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책을 입으로 웅얼거리며 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읽기에는 세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읽기, 다른 사람의 귀에 들리도록 읽기, 그리고 눈으로 읽기, 즉 묵독. 이런 식으로 읽기의 방식을 처음으로 분류한 이가 생빅토르의 위그입니다. 판본이 만들어짐으로써 차츰 띄어쓰기가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 판본이 만들어짐으로써 일어난, 12세기 책의 변신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판본, 즉 이반 일리치가 가시적 텍스트visual text라고 부른 책은 완전히, 전혀 새로운 종류의 질서와 권위를 반영하게 됩니다. 우선 각 장에는 제목과 부제가 붙기 시작했고, 인용 표시가 들어갔으며, 문단, 난외주석과 차례, 찾아보기 등이 모두 추가로 생겨났습니다. “그것은 마태복음 몇 장에 나오는 내용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성서』 몇 페이지에 나오는 내용이다”라고 말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가시적 텍스트’의 등장은 단지 지식 생산의 새로운 도구가 등장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종류의 뿌리은유가 등장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사회적, 심리적 내면을 새롭게 정의하게 됩니다. 교회에서는 고백告白을 제도화하기 시작합니다. 이반 일리치는 생빅토르의 위그를 책읽기를 유일하게 가치 있는 책읽기로 받아들인 최후의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생빅토르의 위그에게 책읽기란 성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생빅토르의 위그는 페이지page를 말할 때 파기나la pagina를 말했습니다. 파기나는 포도밭을 걸을 때 우리가 걷게 되는 고랑을 말합니다. 위그는 그 고랑을 오고가면서 마치 달콤한 열매를 따서 맛볼 때처럼 낱말을 맛보았습니다. 그때 책읽기란 말 그대로 입과 입술을 동원한 신체 활동이며, 성스러운 말씀의 열매를 따먹는 순례이며, 빛을 향해 나아가는 고귀한 행위였습니다. 그것은 “독자의 질서가 이야기에 얹히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독자를 이야기의 질서 속으로 끌어들이는 거룩한 책읽기lectio divina”입니다. 그러나 생빅토르의 위그 시대에 판본이라는 것이 만들어짐으로써 거룩한 책읽기는 주석을 따져 들어가는 학구적 책읽기로 바뀌어 갑니다. 오늘날 우리가 ‘배운 사람’으로서 행하는 책읽기의 역사적 시작점이 바로 거기입니다. 이제 묵독黙讀은 책읽기의 표준적인 방법이 됩니다. 이런 책읽기의 방법은 독자의 새로운 의식,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기억의 방식에도 변화가 일어납니다. 판본 읽기, 즉 묵독의 세계에서 일어난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관념에 순서를 매기는 것입니다. 알파벳은 페키니아 시대 때부터 똑같은 순서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알파벳이 발명된 뒤 이천 년이 지나도록 이 고정된 순서를 이용하여 자기 관념에 순서를 매겼던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관념에 순서를 매기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낱말 사이에 띄어쓰기가 있다는 것, 문단을 나눈다는 것, 문단과 시구에 번호를 붙이는 것, 쪽 번호를 매긴다는 것, 각주나 후주를 붙이는 것, 인용문 표시를 하고, 그 출처를 밝힌다는 것, 그 모든 것이 판본을 통해 일어난 변화일 뿐만 아니라 바로 그 책을 읽고 있는 독자의 정신구조에 일어난 변화이기도 하다는 점을 이반 일리치는 말하고자 했습니다. 이제 원전은 책이 아니라 책으로부터 분리된 것입니다. 원전이란 책이 없어도 존재하는 하나의 관념입니다. 십이 세기 말이 되면, 종이에 매겨진 쪽 번호가 사람의 내면을 가늠하는 척도가 됨으로써 독자의 정신구조에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드디어 자아를 새롭게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인간의 내면에 책이 있고, 그 책을 읽음으로써 양심에 대한 성찰이 드디어 가능해졌습니다.
이 분기점에 대한 이반 일리치의 관찰은 너무나 풍부한 것이어서 무궁무진한 생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앞서 첫머리에서 채집 경제에서 생산 경제로의 변화가 현생 인류에게 무언가 기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불러일으켰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판본의 세계, 즉 묵독의 세계에서도 신석기혁명 때와 비슷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제 사람들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 사람과 공동체의 관계를 텍스트text라는 관점으로 이해합니다. 사람의 행동은 콘텍스트con-text 속에 있게 됩니다. 사람들이 말로 약속을 했던 것을 이제 문서로 된 계약서로 대체하게 됩니다. 소유所有, possession라는 것은 원래 몸으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일정한 땅을 소유한다는 것은 그 땅을 문자 그대로 깔고 앉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소유는 재산이 되고, 그것은 문서 형식으로 손에 쥘 수 있게 됩니다. 이반 일리치는 이런 변화를 자본주의와 직접 연관 지어 말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저는 자본주의가 가능하게 된 일련의 변화를 이 분기점에서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어원 사진에 따르면, 소유를 뜻하는 영어 ‘possession’은 라틴어 동사 ‘possideō’의 현재형 동사원형 ‘possidēre’에서 나온 말입니다. ‘possidēre’는 potis(able)+sedeō(sit), 깔고 앉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14세기 후반이 되면, 가지고 있는 것, 손에 잡고 있는 것 그리고 그 소유물 ― fact of having and holding; what is possessed ― 의 뜻이 파생되어 나왔습니다. 법적으로 재산의 뜻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1580년대의 일이라 합니다.)
이반 일리치가 논구하고자 했던, 가장 중요한 점은 우리가 말을 기록할 수 있는 도구가 있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 세계에 살고 있지만,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것이 당연하지 않은 어떤 지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반 일리치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인공두뇌를 모형으로 삼는 세계, 컴퓨터를 자기 자신의 뿌리은유로 삼는 세계를 위험하다고 생각했던 듯싶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잘 알고 있듯, 웹 페이지web page조차 책을 바탕으로, 책을 은유의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계속)
★ 이 글은 <작가들>(2015년 봄)이라는 문예지의 특집원고로 필자의 동의 아래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