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도서, ‘리퍼 도서’ 할인 판매, 폐업 출판사 도서 재정가 등
세부 사항이 명확해야 한다.
김병희 (YES24 도서사업본부 선임팀장, 인터넷서점협의회 간사)
11월 21일 시행을 앞둔 출판문화산업진흥법 개정안(이하 도서정가제)에서 가장 큰 변화는 할인과 적립을 신간과 구간 구분 없이 15% 이내로 제한하는 규정입니다. 도서정가제는 도서 마케팅 금지가 아닙니다. 몇 년 동안 침체일로를 걷고 있는 도서 시장을 키우는 것은 출판/유통업계의 지상과제이며 도서정가제 역시 이 과제를 풀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 가운데 하나입니다. 도서정가제는, 이른바 과다한 할인과 적립이 장기적으로 도서 가격 상승의 원인이 되고 있으며 이를 제한함으로써 도서 마케팅을 건전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는 생각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도서정가제가 무엇을 제한하는지 명확해져야 도서 시장의 건전한 마케팅 경쟁이 가능합니다.
일부 출판사는 출판 단지 내 보유 사옥, 또는 직접 운영 중인 북카페 등에서 이른바 ‘리퍼 도서’(동일 ISDN, 일부 파손된 도서)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서울국제도서전 등 출판 행사에서도 도서를 할인 판매하는 일이 흔합니다. 인터넷서점협의회는 ‘리퍼 도서’, 출판 행사 할인 판매 역시 명백히 도서정가제 위반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업계 일부에서는 특히 리퍼 도서는 할인 판매가 가능하다고 판단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많은 독자들이 각종 도서 축제와 파주 출판단지를 찾는 것은 반길 일입니다. 하지만, 이런 행사가 도서정가제 취지를 훼손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리퍼 도서’ 등 명칭과 관계없이 도서 판매는 도서정가제가 규정한 할인 및 적립율 이내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원칙이 오해 없이 공유돼야 합니다.
도서정가제는 출간된 지 18개월 이상 도서의 정가를 출판사가 다시 매길 수 있도록 규정해뒀습니다. 시의성이 떨어지는 구간 도서를 출간 시점의 정가보다 저렴한 가격에 판매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그런데 폐업 출판사들의 도서는 재정가가 불가능합니다. 서점들은 모두 폐업 출판사 출간 도서 재고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특히 위탁 판매 방식이 없는 인터넷 서점은 현금 매입한 재고를 할인 판매 없이 쌓아두었다가 손실을 떠안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법률 상 문제가 생길 수 있겠습니다만 이미 폐업한 출판사의 도서는 정상 유통 도서와는 다른 방식으로 출판단체 등에서 정가를 다시 매길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보완이 필요합니다.
중고도서는 <출판문화산업 진흥법 시행령>에 ‘최종 소비자에게 판매되었던 간행물로서 다시 판매하는 중고 간행물’라고 규정돼있습니다. 규정만 놓고 보면, 최종소비자에게 판매된 적이 없는 간행물로 보이는 중고도서 판매 행위를 신고할 수 있습니다. 또, 신고에 따라서 중고도서 판매 서점은 해당 도서의 판매, 중고 구매 이력을 제시해야 하는 셈입니다. 독자 간 판매 등 중고도서 유통 이력이 데이터로 남는 온라인 서점에 비해서 중고 전문 오프라인 서점의 경우엔 부담이 큽니다. 사재기 혐의 도서, 도서정가제 할인 및 적립 규정 위반 도서 처리 과정과 마찬가지로 신고 이전에 시정 조치 통보 등 사전 절차가 필요합니다.
개정된 출판문화산업진흥법의 사재기 금지와 도서정가제 위반에 대해서는 신고절차가 마련되어 있고, 300만원에서 2천만 원까지의 과태료와 신고에 따른 포상절차까지 규정돼있습니다. 법률이 시행된 후 규정이 명확하지 않거나 출판, 유통업계의 이해가 나뉘는 사안에 대해서 신고가 급증할 수 있습니다. 출판 진흥을 위해 개정된 법률로 인해 출판, 유통업계가 시비를 가리는 데 시간을 쓰고 언론과 독자 역시 양서 소개와 독서보다 법률 공방에 관심을 갖게 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법률 시행 전에 이 공청회에서 제기된 ‘문제 상황’들부터 확실히 정리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