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짜리 도서할인법 전락,
제대로 된 시행령 제정만이 답이다.
정덕진 (햇빛문고 대표)
도서정가제, 또 다른 개악만은 막아야
아시다시피 오늘 이 자리는 지난 7월 16일 문화체육관광부가 입법예고한 <출판문화산업 진흥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일부개정안>이 가진 문제점을 따지고 개선하기 위해 마련됐다. 그러나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문광부의 도서정가제 확립 의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기나긴 진통 끝에 제정된 도서정가제의 개정 취지와 의의를 제대로 살려 출판문화산업 진흥과 발전에 앞장서야할 문체부가 최근 범출판계 합의 속에 마련한 의견들에까지 모두 수용불가 의사를 일방 통보해왔다. 범출판계 의견을 최대한 수렴해 반영하겠다는 입법예고의 취지 자체가 무색해졌다.
반려 이유는 다양했지만 기조는 단 하나였다. 앞서 밝힌 “자유 시장 경제체제 하에서 더 이상의 규제는 어렵다”쯤 되겠다.
그러나 이는 변명에 불과하다. 약 12년 전, 같은 자유 시장 경제 체제 하에서도 온라인서점에만 10%할인 판매를 허용하는 특례를 주었던 것을 보면 못하는 것이 니라 할 의지가 없다고 보는 편이 옳지 않을까.
단언컨대 현재 마련된 시행령으로는 ‘도서정가제’는 또 다시 반쪽짜리 ‘도서할인법’이 될 수밖에 없다. 이미 한쪽에서는 시행령의 허점을 이용한 다양한 변칙들을 준비하고 있고,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문체부의 태도는 조금도 나아진 게 없다.
도서정가제에 대한 범출판계의 지지의사나 국민적 공감대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이런 바람을 역행하는 허점투성이 시행령으로 인해 법 시행 후에도 출판시장에 변화가 전혀 없거나 오히려 나빠진다면 자칫 도서정가제 무용론까지 불러일으킬 공산이 없지 않다.
제대로 된 도서정가제 하위법령 마련은 한국출판유통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중차대한 사안인 바, 다음과 같은 주요 쟁점 사항에 대하여 수정을 재촉구하는 바이다.
1. “경제상의 이익”의 범위에 경품류, 배송료, 카드사·통신사 제휴를 통한 할인을 포함시켜야 한다.
- 무료배송, 카드·통신사 제휴할인은 온라인 서점이 제공하는 사실상 추가할인(경제적 이익)으로 오프라인서점에 대한 우월적 지위 확보, 시장 선점 수단으로 작용해왔음. 이에 따른 그간의 피해가 명백하고,도서의 일물일가를 유지하여 특정사업자의 독과점에 따른 출판생태계 파괴를 막겠다는 도서정가제의 입법취지를 고려하면, 하위법령에 위임한 상황이 없기 때문에 개정 사항이 아니라는 문체부 주장은 설득력이 없음.출판문화산업진흥법 제22조 제7항 제5호에 규정되어 있는 “소비자가 통상 대가를 지급하지 아니하고는 취득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정의 규정 조항으로 추가하면 될 일임.더욱이 개정 도서정가제가 시행될 경우 '마케팅수단'을 빌미로 이러한 형태의 변칙 할인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상되며, 이러한 변칙 할인에 따른 재원 역시 '슈퍼갑' 온라인 서점들이 제3의 사업자(출판사, 카드사 등)에게 불필요한 경제적 부담을 지우는 것으로 마련,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악영향을 초래할 것임.따라서 1)경품류, 2)배송료, 3) 카드사통신사 제휴를 통한 할인 등은 반드시 간접할인, 즉 "경제상의 이익"의 범위로 포함하도록 해야 소기의 실효성을 기대할 수 있을 것임.
2. ‘전집(세트) 도서’ 구성, 판매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
- 세트 도서와 세트 내 개별도서에 대한 가격과 발행일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 향후 제도 시행 시 상당한 혼선과 차질이 예상되며, 특히 세트 내 개별도서의 가격과 세트 도서 자체의 가격이 현재처럼 과도하게 상이할 경우 이를 이용한 편법적 할인이 발생할 수 있어 세트 도서에 대한 별도의 기준이 반드시 필요함.이와 관련, 최근 문체부가 어떠한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개별도서의 발행일, 가격과는 별도로 세트 도서 자체의 발행일, 가격 등을 출판사에서 정하여 별도의 ISBN을 붙여 발행할 수 있으며, (중략) 기존 낱권 도서도 별도의 세트 도서로 묶어 출판사에서 발행할 수 있다(2014.08.29)", "세트 도서의 가격은 세트 내 각권의 도서를 합한 것과는 별도의 정가를 책정할 수 있다(2014.08.27)"는 해석을 내놓은 데 대하여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함.이미 일각에서 문체부의 일방적이고도 도서정가제와 철저히 배치되는 해석을 악용하여 ▶세트 도서의 정가를 낱권 도서보다 크게 낮게 책정하여 판매하거나 ▶ 판매가 부진한 기존 낱권 도서(구간 및 재고)의 유통 촉진을 위해 세트 도서에 끼워 판매하는 등 법망을 교묘히 피할 수 있는 다양한 편법적 할인을 기획하고 있는 실정임.문체부의 일방적 세트 도서에 대한 '정가 및 발행일' 별도 책정 해석은 도서정가제 법망을 교묘히 피하는 할인수법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음.세트 도서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함께, ‘세트 도서 자체’와 ‘세트 내 개별도서’의 가격 및 발행일을 동일하게 하는 방향의 기준 마련이 필요함.
3. 도서정가제 위반에 따른 과태료 상향이 필요하다.
- 사재기 위반 등에 대해서는 2년 이하의 징역과 2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처벌 수위를 강화해놓고, 유통질서 확립에 가장 중요한 정가제 위반에 대해서는 기존 과태료 수준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은 법의 형평성 차원에서 맞지 않음.과거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현행 도서정가제 위반 과태료 수준으로는 법 위반자에게 부담을 줄 수 없어 억제력이 약한 것이 현실임. 더욱이 정가제를 위반하여 발생하는 수익이 과태료 보다 많을 경우 지속적인 변칙 마케팅을 유발시켜 도서정가제는 또다시 사문화될 수밖에 없을 것임.따라서 사재기 처벌 수준에 상응하는 ‘도서정가제 위반 과태료’ 상향이 필요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