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도서관문화재단의 새로운 방향 설정: 주제전문도서관
안정희
어린이도서관문화재단은 명실상부한 재단으로 재단이 목적의식적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경우라고 생각되요.
김태윤
저희는 진짜 재단이고요(일동 웃음). 2007년에 재단이 만들어졌지만 2005년에 돈을 모으자는 계획을 가지고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컨텐츠 사업으로 돈을 번 설립자들이 모여서 재단을 만든다면 컨텐츠 관련 사업을 하는 게 맞고, 컨텐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책에 관심이 있었어요. 사회적으로 책을 안보는 분위기에서 책읽기를 위한 여건을 마련하자 는 것이었고, 어른들까지 커버하기는 어려우니까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도서관을 해보자 그랬던 거지요. 저희 재단의 출발은 간단명료했지요. 어떤 재단을 할 것인가, 재단의 성격을 두고는 두 가지 논의가 있었어요. 직접 사업을 할 것인가 아니면 열심히 활동하는 곳을 도와주는 지원 사업을 할 것이냐. 제가 직업 사업을 하겠다고 했는데 이유는 간단했어요. 지원 사업이 손쉬울 수는 있지만, 이미 활동하고 있는 곳에 지원을 하면 그것이 지속적인 추동작용을 할 것인가 하는 부분에서 회의적이었던 거죠. 직접 사업을 하는 독립 재단을 해야겠다 그렇게 됐어요. 그러다가 근처에 있는 느티나무도서관을 알게 되었고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의 기적의도서관 사업도 알게 되었지요. 그러면 어린이도서관을 설립해서 운영하자 그랬던 거지요.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이 민관협력 방식으로 기적의도서관 건립 사업을 진행하기에 그러면 우리는 민간 단독으로 전국에 어린이도서관을 만들어보자 그랬던 거지요.
노영주
그래서 재단의 명칭도 어린이도서관문화재단이라고 했나요?
김태윤
네 그렇지요. 기적의도서관이 강원도에 없었기 때문에 강원도로 갔고, 2008년 10월에 춘천에서 담작은도서관을 시작했지요. 당시만 해도 공공도서관계가 빠르게 확장한다는 느낌이었고, 지자체의 대응도 예상보다 빨라서 도서관재단은 공공도서관보다는 주제전문도서관으로 가야하는 것 아닌가 하는 논의가 내부에서 나오기 시작했어요.
노영주
그러면 재단 사업의 방향 선회에 대해서 오래 전부터 논의가 시작된 셈이네요.
김태윤
그렇지요. 2008년에 담작은도서관 건립 직후부터 계속 모색을 했었지요. 정부에서 건립 사업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민간에서도 그렇게 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부와 민간은 발전적 경쟁 관계라고 생각하거든요. 정부가 하는 것을 더 잘하자고 하는 게 맞는지, 그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저희는 사회적 요구가 있지만 정부가 하지 않는 것을 해보자 쪽으로 간 거지요. 전문도서관을 하는 쪽으로 결정이 났고, 다만 어떤 주제로 할 것이냐를 두고 고민이 많았지요.
노영주
이사회에서는 어떤 주제들이 거론되었나요?
김태윤
저는 청소년특화도서관을 제안했었어요. 담작은도서관 인근에 청소년을 대상으로 특화된 도서관을 열면 시너지가 날 것으로 생각했지요. 독서운동을 하는 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은 될 거라는 입장이었고 도서관계에서는 어렵다는 입장이었어요. 이사회에서도 어렵겠다는 입장이어서 엎어졌지요. 이사회에서는 막대한 투자를 통해서 최대한의 사회적 반향과 당사자 효과가 있어야하는데, 과연 중고등학생들이 얼마나 이용하고 반응할 런지 장담할 수 없다는 입장이 우세했지요. 사회적으로 필요하지만 너무 앞서가면 투자 대비 효과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고, 대중적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시의적절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이 우세했어요. 결과적으로 공공도서관에 대한 투자와 확산 계획은 마무리된 거지요. 전문도서관에 대한 사회적 수요는 분명히 있다고 보거든요.
노영주
사립 도서관의 역할은, 사회적 요구가 있고 대중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만 정부가 나서서 하지 않는 영역에서 새로운 모델을 보여주어 선도하는 것이라는 말씀이시지요?
김태윤
사립 도서관과 공립 도서관의 관계에서, 사립의 역할은 새로운 모델을 보여주어 자극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공립에서 벤치마킹해서 쫓아가고 확산시키면, 사립 모델의 효과는 다했다고 할 수 있지요. 느티나무도서관재단은 공공도서관의 새로운 모델을 세우고 확산하는 측면에서 고유한 색깔이 있다고 생각하고, 책읽는사회는 여러 단체가 이슈 메이킹 기능을 하지만, 저희 재단은 그렇게 오픈되어 있지 않고 설립자의 의지가 중요하지요. 가치있는 일들이 많지만 다 해낼 수는 없고요, 물적 인적 역량을 고려해야 하고요. 독립재단인데 우리가 직접 할 수 있는 역량이 되는가를 생각해야 하거든요. 결국 돈이 있고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거지요. 그래서 지금까지 재단을 굉장히 좁게 운영을 했지요. 이사회에서는 잘 할 수 있는 걸 하는 게 맞다는 얘기를 항상 하거든요.
안정희
사단법인이라면 인력 문제를 해결하기가 수월할 텐데, 재단이면서 직접 사업을 선택하고 그것도 전문도서관을 하려고 하면서 어려움이 생기는 것은 아닌가요?
김태윤
구체적인 방식은 좀 더 생각해 봐야하겠지만, 각자 전문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분들을 도서관의 틀 속으로 끌어들여서, 도서관이라는 프레임을 활용해서 본인들이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할 수 있도록 하려는 거지요. 또 다른 그림을 그려내고 있는 거지요. 지금 그 작업을 하고 있는데, 전례가 드문 경우라서 쉽지도 않고 겁도 나고 그렇지요. 그렇지만 설립자와 이사회의 충분한 공감 속에서 이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노영주
그러면 어떤 주제로 합의가 이루어졌나요?
김태윤
주제는 ‘생태’로 결정했어요. 정부에서 할 만한 주제전문도서관은 의학, 법학, 농학 정도이고 나머지는 민간에서 하는 것이 적절한 것 같아요. 생태도 폭넓은 주제여서 농업과 먹을거리를 주로 다루는 전문도서관을 생각하고 있어요. 텍스트 정보 중심 도서관이 아닌 다른 방식을 생각하고 있어요.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의 경계가 없어진지 오래 되었고 그런 흐름을 반영할 계획입니다. 해당 영역의 전문가들과 주로 논의하고 있는 단계입니다. 이사들도 관심이 있고 저도 관심이 있는 주제에요. 일하는 사람들이 재미가 있어야 잘 할 수 있기에 시의적절하고 관심 있는 주제를 정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재단의 명칭을 바꿔야하는 상황이기도 하지요(웃음).
노영주
올해부터는 지원 사업도 시작한다고 들었는데요.
김태윤
‘10대 아이들 손에 책을’이라는 목표로 10대 독서클럽 80개 팀을 6개월 동안 지원하는 사업을 계획하고 있어요. 도시형 중고등학교 학교도서관 15개, 민간 작은도서관 10개, 농촌형 초등학교도서관 15개 정도를 생각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지원 사업을 한다면 민간에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생각이 바뀌어서 민이든 관이든 실제 효과가 있는 곳에 해야겠다는 쪽으로 바뀌었어요. 학교가 움직이게 되면 캠페인 효과도 있을 것 같거든요. 지속적 지원이 없더라도 한번 성공적으로 진행되면 그 경험으로 자체 자원을 활용해서 다음을 추진할 수도 있고요. 영역마다 코디네이터를 선정하고 재단이 지원 사업 깊숙이 개입하는 방식이에요.
새로운 공공서비스 영역의 개발
안찬수
이용남 선생님을 모시고 세 법인체의 관계자가 모여서 이야기하게 되면 ‘새로운 공공’ 서비스 영역의 개발 혹은 개척 이런 얘기를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세 재단은 고유한 목적 사업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공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인데, 각자 추구하는 공익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 하는 질문이 있어요. 공공재원에 비하면 민간재원은 아무래도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특히 지속성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지요. 한정된 재원과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서 공공적 문제를 풀려고 할 때 여러 가지 이슈가 있겠지요. 아까 민과 관이 약간의 경쟁관계라고 했는데, 보완하는 관계도 있고 선도하는 관계도 있는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의 문제지요. 어린이도서관문화가 낙후된 시절에는 기적의도서관, 느티나무(어린이)도서관, 담작은도서관 같은 시도를 했는데, 지금 시점에서는 이 부문이 어느 정도 개선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제한된 민간 자원을 가지고 거듭 같은 시도를 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질문이 생겨나는 거예요. 그래서 정부에서 하지 않는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해서 관을 움직여낼 수 있는 곳에 투자하겠다는 고민을 하게 되는 거지요. 잘 안 보이지만 필요한 ‘새로운 공공’ 서비스 영역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점에 대한 고민인 거지요. 공익을 추구하는 민간 영역의 활동과 공공 영역이 만나는 지점에 아마도 ‘새로운 공공’ 서비스가 개발 혹은 개척될 것입니다. 이를 대화적 공공성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작은도서관의 경우가 그렇지만, 어느 운동이나 운동의 속성상 일정한 시점이 지나면 사회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기 때문에, 시민운동의 역량은 또 다른 영역의 활동을 찾아야 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어요. 그러니까 민간에서 한정된 재원, 인적 네트워크, 역량으로 시의적절한 활동 사안을 선택해서 투자 대비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반향과 효과를 산출했느냐 그런 질문인 거지요.
김태윤
담작은도서관 같은 경우 그런 의미에서 테스트 베드로 만족하는 거지요. 도서관에서 여러가지 새로운 서비스를 시도해서 이용자들을 자극하고 도서관 이용을 활성화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지요. 물론 실패하기도 하고요.
노영주
어떤 부분이 잘 안됐나요?
김태윤
몇 년 동안 다양한 주제를 중심으로 하는 북컬렉션을 시도했었지요. 작가컬렉션이나 특정 주제 컬렉션을 해봤었죠. 그런데 이용자의 반향이 별로 없더군요. 그리고 작년부터는 전시를 꾸준히 하고 있죠. 만화방이라는 컨셉의 전시를 하면 만화, 만화방에 있던 의자 같은 것을 떠올릴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하고 그런 식이지요. 일단 특정 주제에 관한 책도 있고 그림도 있고 음악도 있고 영상도 있으니까 관심을 보이기는 하지요. 아이들은 특이하고 생소해서 관심을 보이는 거 같아요. 어른들도 과거를 되새기면서 관심을 보이기도 하지요. 물론 기대하는 만큼의 반향은 아니지만요. 공공도서관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전시라고 생각하고요. 어린이도서관 서비스의 다양성에 대한 의지를 갖고 테스트 베드 역할을 하고 싶은 거지요.
안정희
느티나무도서관재단에서는 도서관운영만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논의를 하고 있는 중인데, 어린이도서관문화재단에서는 처음에는 공공도서관 이번에는 주제전문도서관을 선택한 셈인데요, 두 번 다 도서관을 선택하신 이유가 뭔가요?
김태윤
도서관은 많이 변화되어 왔고 앞으로도 더 그럴 것이고 확장성이 있다고 보는 거죠. 컨텐츠를 베이스로 하는 공공시설이 도서관이니까요. 컨텐츠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관이니까요. 저희가 이번에 잡은 생태라는 주제도 도서관으로 접근하기에 좋거든요. 어떤 주제로도 가능하고요.
안정희
저희가 도서관운영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느끼는 이유는 컨텐츠의 한계 때문이 아니라 재정 충원의 문제 때문이에요. 재정적인 측면에서 도서관운영은 ‘밑빠진 독’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저희는 ‘진짜 재단’이 아니라서(웃음) 재단의 수익구조를 어떻게 할 것인가와 재단의 활동 방향이 무관하지 않으니까요.
이용남
민간에서는 불씨, 자극, 밀알의 역할을 하는 것이고 지속성은 정부와 지자체 영역에서 할 일이지요. 민간에서 지속성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거든요. 느티나무도서관재단의 친구도서관 사업 같은 사례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사립의 역할이라고 봐요. 친구도서관 사업은 인건비를 지원하는 컨셉이어서, 도서관운영에 있어서 인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인식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지요.
안찬수
오늘 이런 자리가 마련되어서 참 좋습니다. 세 재단이 서로 거울과 같아서 좋은 참고와 자극이 되고 연대의식 같은 것이 있어요. 동시대에 의지할만한 재단들이 있다는 것이 큰 힘이 됩니다. 더 나아가자면 각기 가지고 있는 고민들을 의논하는 테이블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 컨소시엄 같은 방식으로 일을 함께 해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노영주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