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북스타트는 2003년 중랑구를 시범지역으로 시작하여 2014년 현재 전국 141개 지자체로 확대되었습니다. 북스타트는 ‘육아’의 책임을 가정에만 맡겨 두지 않고 지역사회와 국가가 영유아의 성장과 발달을 사회적 차원에서 지원한다는 취지 아래 양적ㆍ질적으로 괄목할만한 성장을 하였습니다. 특히, 북스타트 시행 주체들은 책을 통하여 영유아와 부모를 연결하고, 그들을 지역사회 안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사회적 육아’라는 국가의 책임을 지역사회 안에서 감당해 왔습니다.
북스타트코리아는 영유아가 ‘책’을 통하여 세상에 대한 재미와 신기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데 최우선의 가치를 두고 있습니다. 영유아기는 세상에 이렇게 재미나는 일이 많구나, 세상이 참 신기하네, 하고 느껴야 할 시기입니다. 이 책은 아주 좋아, 책이 참 재미나네, 이 책을 이렇게 가지고 노니까 재미있구나, 내가 이렇게 움직이면 여기 있는 그림과 똑같아지네, 이 그림은 지난 책에서 봤던 그거랑 똑같잖아, 아이의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손에 느껴지는 직접적인 사건을 통해서 이 세상에는 참으로 재미난 것이 많고, 그래서 알고 싶은 게 많아, 하고 깨달아야 하는 시기입니다.
북스타트는 그 대상이 영유아입니다. 영유아기는 무엇보다 관심과 흥미가 교육의 출발이 됨을 기억해야 합니다. 영유아의 관심과 흥미를 무시한 과도한 교육은 우리가 가장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따라서 한국의 북스타트 시행주체는 한국 사회의 병적인 교육열이 영유아기를 물들이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습니다. 책이 영유아기의 아가들을 세상 밖으로 끌어내고, 세상과 연결해주는 고리가 됨을 기억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과도한 교육열의 수단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발달은 저마다의 고유한 시간을 타고 이루어집니다. 특히 영유아기 때 읽은 책들은 아가들의 생각과 정신에 깊이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영유아기 발달에는 맥락이 중요합니다. 영유아들은 맥락 안에서 배웁니다. 사물에 대한 기호가 형성되기 시작하는 중요한 시기에 다양하고 창의적인 그림책을 맘껏 접할 수 있다면 그 어떤 환경보다 좋은 교육적 환경이 될 수 있습니다. 아무 맥락 없는 단어카드의 사용이나 문장의 암기는 영유아기 교육에서 가장 지양해야 할 방법입니다. 지역사회에서 자라는 우리의 아가들을 행복한 아이로 자라게 하는 올바른 육아는 아이들이 무엇을 바라보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관찰하고 아이들이 바라보는 것을 포착하여 좋아하는 것을 하도록 허용하는 것, 지켜보는 것입니다. 엄마와 아가 사이에 좋은 그림책을 놓고 상호작용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올해에도 북스타트코리아는 그림책 전문가, 연구자, 현장의 사서, 영유아 책 활동 실천가들로 도서선정위원회를 구성하여 영유아기에 꼭 읽었으면 하는 책들을 선정하였습니다. 각 위원은 사회적 육아의 책임, 영유아기의 고유성, 그림책의 진정성, 영유아의 관심과 흥미, 상업성의 배제 등 공통의 가치를 염두에 두고 그림책 선정 작업을 했습니다. 제주기적의도서관, 창원아이세상장난감도서관, 청주기적의도서관 세 곳의 사서와 지역사회 영유아 책 활동 실천가들로부터 방대한 그림책에 대한 검토와 우선 선별작업이 있었습니다. 그 후 각 선정위원이 모였습니다. 열띤 토론도 있었고, 각자의 전문성 안에서 선별과 배제의 주장, 그리고 논쟁도 있었습니다. 위원들은 섬세한 고려 끝에 공정성을 최우선으로 하여 2014년 북스타트에 사용할 도서를 선정하여 그 결과를 내놓습니다.
다음은 도서선정 시 고려된 사항들입니다.
우선, 선정된 책들은 모두 그림책입니다. 그리고 본래 북스타트의 영유아발달 단계를 그대로 전용하였습니다. 생후 18개월까지의 영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북스타트 단계, 19개월에서 35개월의 영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북스타트 플러스 단계, 36개월에서 취학 전까지 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북스타트 보물상자 단계로 구분하고, 해당 단계에 적합한 도서를 분류했습니다.
둘째, 발달 특징상 영유아기가 감각적인 자극에 관심과 흥미가 높은 시기이므로 영유아들의 발달 특징을 잘 반영하면서 재미있는 책들이 우선 고려되었습니다. 유사한 주제의 그림책 중 한 권을 선택해야 할 때 글의 내용, 구성, 캐릭터, 그림책의 그림, 분위기, 조화, 모양, 색, 디자인, 여백, 선 등을 함께 고려했습니다.
셋째, 지나치게 상업성에 편승한 도서는 배제하였고, 작가의 실험성과 독창성이 드러난 작품은 우선하였습니다.
넷째, 영유아기가 무엇보다 전인적이고 통합적인 발달을 이루어야 하는 중요한 시기이므로 특정발달을 선전하는 도서도 배제하였습니다.
다섯째, 외국작가의 그림책과 번안 그림책은 배제하였습니다. 국내의 좋은 작가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국내 출판물을 활성화하기 위함입니다.
여섯째, 처음 선정 작업을 시작할 때, 출판된 지 오래된 책들과 근간의 책들의 선정비율을 3대 7로 두기로 하였습니다. 오래된 책이지만 영유아기에 꼭 읽었으면 하는 책들과 딱히 대체할 만한 작품이 없는 경우는 과거 선정되었던 책 중에 다시 선별하여 남겨두었으며, 몇 해에 걸쳐 선정된 책 또는 이미 많이 알려진 책들은 제외하였습니다. 이는 새로운 작품들과 영유아들이 만날 기회를 확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근간의 그림책들에서 많은 아쉬움이 발견되었고, 결과적으로 5대 5 정도의 비율로 선정도서 작업을 마쳤음을 알립니다.
북스타트 도서선정 시 다음의 한계가 있었음을 밝혀 둡니다.
첫째, 도서 선정위원 각자의 주관성을 배제하고자 노력하였으나 철저하게 배제하지는 못하였습니다. 모든 책은 독자로부터 평가를 받습니다. 독자들의 평가로 어떤 책은 베스트셀러에 선정되기도 하고 어떤 책은 외면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영유아를 위한 책은 독자의 반응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하며, 정확한 평가를 받지 못합니다. 아쉽게도 영유아를 위한 책들은 영유아 자신의 손으로가 아닌 부모나 선생님의 손으로 선택됩니다. 책들에 대한 반응도 본인의 입이 아닌 부모나 선생님의 입을 통해 전달됩니다. 특정 그림책에 대하여 선정위원들의 견해 차이가 클 때 아가에게 직접 물을 수 없다는 게 참으로 아쉬웠습니다. 그들이 읽어야 할 책을 우리가 선정했다는 모순이 솔직히 존재합니다.
둘째, 참여한 출판사의 책들만 대상으로 하였습니다. 여기 선정된 책들이 영유아 그림책의 전부로부터 출발되지 않았음이 아쉽습니다. 더 많은 출판사가 이러한 사회적 양육에 대한 책임의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동참해주기를 기대해봅니다.
셋째, 30권 내외라는 기준이 선별의 엄격함과 그림책의 다양성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라고 여겼기에 각 단계별로 30권 안팎의 책들을 선정하였습니다. 이는 어떤 책은 선정범위가 더 넓었다면 선정도서 안으로 진입할 수도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다음은 선정도서 결과입니다.
우선, 총 94권이 선정되었습니다. 북스타트 단계의 도서가 26권, 북스타트 플러스 단계의 도서가 34권, 북스타트 보물상자의 단계의 도서가 34권입니다. 북스타트 단계의 도서 11권, 북스타트 플러스 단계의 도서 17권, 북스타트 보물상자의 단계의 도서 18권이 새롭게 포함되었습니다. 해마다 북스타트 단계에 있는 영아를 위한 좋은 그림책이 상대적으로 적었으며, 올해에도 북스타트 단계 영아를 위한 그림책이 가장 적은 수로 선정되어 아쉬움이 남습니다.
둘째, 선정목록에 새롭게 점자책이 포함되었습니다. 외국 도서관의 경우 보이지 않는 영유아를 위하여 전화로 책을 읽어주는 서비스를 시행하기도 합니다. 시각장애아를 고려한 점자책이 나왔다는 것이 반가웠고, 북스타트코리아가 소수의 영유아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상징적인 의미도 부여했습니다. 반편견과 다문화를 다룬 도서도 보입니다. 책을 계기로 영유아들의 활동이 확장될 수 있는 책들도 보입니다. 아름다운 책, 상상의 세계로 안내하는 책도 보입니다. 많은 투자 비용이 든 책도 보입니다.
끝으로, 무엇을 선정하고 무엇을 배제해야 한다는 것이 참여한 위원들로 하여금 굉장한 긴장감을 갖게 합니다. 잠시의 섣부른 판단으로 우수한 작품을 남겨두지 않았는지 걱정도 됩니다. 다만, 도서선정위원들의 노력이 영유아들이 책을 통해 즐거움을 찾고 세상을 바르게 바라보고 그들의 사고를 확장해나가는 데 도움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다음은 가장 가까이에서 양육을 담당하는 부모님과 선생님들께 드리는 당부 사항입니다.
영유아는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자신의 성장을 위해 스스로 몸부림칩니다. 영유아는 개성과 환경의 반복된 상호작용을 통해서 자기만의 독특한 자아를 완성해갑니다. 온화함과 돌봄, 감정 이입과 관용, 그리고 사랑이 많은 환경은 영유아들을 위한 최상의 환경입니다. 값비싼 장난감과 학습지 등으로 감각적인 인상을 너무 많이 받을 때 자극받기보다는 오히려 혼란스러워합니다. 영유아기 양육의 정답이 책 속에 있습니다. 세상에서 더없이 맑고 순수한 영유아들과 좋은 책을 두고 함께 상호작용해 주시기를 당부합니다.
끝으로 출판사들과 그림책 화가, 그리고 작가님들께 당부합니다.
우리는 기성세대임에도 불구하고 좋은 그림책을 만나면 매우 좋습니다. 그리고 좋은 책들이 자꾸 그립습니다. 영유아들을 위한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그림책을 기대합니다. 그리고 다양하고 독창적인 그림책을 기대합니다. 영유아기의 발달 적 특징을 잘 반영하면서도 그림과 글이 부족하지 않은 멋진 책을 만들어 주십시오. 영유아를 위한 도서 제작에 많은 노력과 비용을 쏟아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최종 심사위원
이용남(의장), 박해미(총평 정리), 민경록, 박소희, 이상희, 이종화, 현희경
지역선정위원
강의정, 고선미, 권명자, 김남주, 김명희, 김미정, 김은숙, 김인숙, 김정옥, 김태희, 박민아, 박정숙, 변이숙, 부경애, 송복녀, 양정미, 오순아, 우경애, 이규숙, 이다영, 이소영, 이영림, 이윤숙, 정지훈, 정창순, 주선영, 주홍진, 진민주, 최광숙
★ 정리: 박해미(대원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