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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그림책은 90년대 중반에 본격적으로 단행본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2000년대 중반까지 엄청난 성장을 이루었고 그로부터 현재까지 불과 20년 사이에 실로 역동적인 변화를 겪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림책 출판이 위기를 맞았다는 진단에 모두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림책이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기를 원하는 저는 그림책과 그림책을 둘러싼 여러 가지 발전과 변화를 설명하기보다는 한국 영유아 그림책이 북스타트와 함께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생각해 보는 쪽으로 그간의 변화를 살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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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북스타트가 사업을 시작하던 시점은 그림책이 가장 활발하게 출간되던 때였으나 아직 아기책에 대한 관심은 많지 않았습니다. 북스타트는 한국에서 창작된 아기 그림책만을 선정 배포하겠다고 결정하는데 그 결정은 몇 가지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집니다.
단행본이 시작되던 90년대 중반에는 그림책이 아동 문학과 같은 목적으로 출판되고 같은 기준으로 평가된다고 해도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림책 작가 중에는 미술 운동이나 사회적 실천으로 그림책에 접근한 경우가 많았는데 아동문학의 리얼리즘 경향과 서로 맥을 같이 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대중적 성공을 거두자 민족적이고 계몽적인 성격의 책들이 그림책 시장에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민족 문화 그림책과 생태 그림책도 그런 분위기 속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렸습니다. 단행본 그림책이 시작되는 단계에서 독자들은 우리 그림책이 나오는 것만도 기뻐했지만 순식간에 번역 그림책이 불어나고 세계 명작 그림책을 많이 접한 독자들은 그림책에 대한 안목이 높아졌습니다. 한국 그림책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었으나 안목이 높아진 독자들은 좀 더 아이에게 적합한 그림책을 요구하게 됩니다.
그런 시점에서 북스타트가 아기라는 연령에 주목하도록 했습니다. 아기 그림책에서는 어떤 사상을 가진 작가라도 사회적 이데올로기를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좋은 아기 그림책은 어린 독자를 배려하면서 그림책을 만든 경험이 있어야 만들 수 있는 책이며 실제하는 독자에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작업입니다. 아기 그림책에 주목한다는 것은 그간의 그림책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와의 거리를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직접 구입하여 배포한다니, 북스타트는 처음으로 한국 그림책을 사회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움직임이었고 출판계의 변화를 촉구하는 사회적인 목소리였습니다.
아쉽게도 출판계는 이런 움직임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했습니다. 그림책 시장은 활황이었고 북스타트의 사업 규모는 크지 않았습니다. 북스타트에서 도서 구매 가격을 낮춘 것도 북스타트의 의미를 축소시켰습니다. 그림책은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책입니다. 창작 그림책의 기반이 약한 우리나라에서 이미 독자에게 증명된 외국 그림책을 수입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창작에 투자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어서 그나마 창작을 위주로 하는 출판사들은 어떻게든 할인가를 유지하고 싶어 했습니다.
변화를 감지한 출판사는 많지 않았고 기존 시장이 줄어들 것 같은 기미도 없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모두들 자신감에 차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짧은 기간 동안 그림책은 많은 것을 성취했습니다. 의식 있는 그림 작가들의 출현이 가시적인 시발탄이 되었지만 출판사와 기획자, 편집자, 글작가들의 역량 없이는 그런 성취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림책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책에 완성도 있는 작업을 할 수 있는 작가는 많지 않았습니다. 편집자와 디자이너들은 작가를 찾아내고 도와주면서 갈등도 많이 겪었습니다. 그래도 그림책에 관계한 모두가 그림책에 열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확대일로에 있었던 그림책 출판에서 변화에 대한 외부적 요구는 크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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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림책 생산자들 사이에서 변화는 이미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림책 시장이 커지고 다양한 시각매체 종사자들(통칭해서 화가라 부르겠습니다)이 그림책에 몰려들면서 그림책은 아동 문학 안에서 갑갑증을 느끼게 됩니다. 화가들은 생래적으로 계몽이나 교육과는 거리가 있었고 그림책은 글이 아니라 그림이 중심이었으며, 영유아 그림책 독자는 아동 문학 독자보다 연령이 어리기 때문에 애초 그림책이 갖는 자질은 아동문학과는 달라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교육의 대상이 아닌 영유아를 자기 독자로 설정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아직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필요했지요. 반면에 시각 매체로서 그림책의 가능성은 매력적이고 해볼 만한 도전이었습니다.
일러스트레이션 학교를 졸업하거나 외국에서 공부한 화가들이 기존 작가들에 더해져 다양한 시각적 방식을 도입하고 실험했습니다. 출판사는 이들을 수용하고 그림책 독자 연령을 넓히는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화가들의 노력은 한국 그림책의 시각적 수준을 껑충 올려놓았습니다. 수입만 하던 그림책이 수출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세계의 그림책 상을 심심치 않게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림책이 어린이 문학과 결별하고 독립된 장르라고 선언하는 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런 변화된 흐름이 생기기까지도 보이지 않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아 문학으로서의 그림책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후퇴하게 됩니다. 이런 사정은 다른 나라도 비슷해 보입니다. 어린이 인구의 감소, 불황으로 인한 시장의 축소, 지나친 교육열, 출판 산업의 쇠퇴 등 문제가 많지만 근본적으로 그림책의 불안은 유아 독자의 이탈에 있습니다. 그림책이 유아 문학이라는 토대를 튼튼하게 세우고 발전해 왔더라면, 우리가 영유아를 통해 자기 예술의 지평을 열어 왔더라면 그림책이 위기라고 해도 지금과는 양상이 달랐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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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들과 멀어진 그림책에 대한 불만은 그림책을 읽어주는 현장에서 가장 잘 느낄 수 있습니다. 올해 북스타트 꾸러미 그림책을 고르고 나서 쓴 총평을 보면 ‘그림책 출판의 역사가 길지 않은’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는 했으나 ‘우리의 창작 결과물 가운데에서 그림책의 본질을 완성도 높게 구현한 그림책이 드물고 귀하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가끔 제게 왜 그림책이 이렇게 발전하지 않느냐고, 왜 이렇게 아이들에게 맞는 이야기가 없느냐고 묻습니다. 사실 그림책은 많이 발전했습니다. 사람들이 가진 불만과 의문은 하나로 모아질 수 있습니다. “유아”입니다. 작가들이 유아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림책은 전혀 새로울 게 없는 장르이며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원시를 발견하고 아동을 발견했던 것처럼 그림책 작가들은 유아를 발견해야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들과 책을 읽는 현장의 여건은 많이 좋아졌습니다. 이것 역시 누군가의 노력이 있었겠지요. 어린이 도서관과 활동가도 늘었으며 북스타트도 사업 규모를 늘려왔습니다. 도서 선정도 연령에 따라 북스타트, 플러스, 보물 상자로 확대되었습니다. 전문 비평지가 없는 그림책 분야에서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선정 작업과 평가는 비평을 대리하고 그림책 흐름을 알 수 있는 주요한 자료가 됩니다. 지역 선정 위원을 그림책 선정 과정에 참여시켜 더욱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한 것은 정말 훌륭합니다. 그들이 좋은 책을 고르려고 애쓰는 모습을 읽고 저는 감동받았습니다. 또한 부모들의 교육과 함께 북스타트 활동가를 꾸준히 양성해 온 점도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북스타트가 하고 있는 선정 작업과 활동은 지금 그림책 출판에 가장 값진 자산입니다. 어른 중개자 없이는 성립할 수 없는 것이 영유아 그림책입니다. 중개자들의 변화는 그림책의 변화를 견인할 수 있는 어찌 보면 유일한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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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현장과는 달리 그림책 출판은 앞으로 더 축소될 전망입니다. 그렇다고 비관적인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단행본 영유아 그림책이 거의 아무 것도 없던 시절에서 불같이 일어나던 시절을 거쳐 우리는 여기까지 왔습니다. 전집을 만들다가 전집 반대 운동을 했고, 계몽주의적 열망에 사로잡혀 있다가 계몽주의와 싸웠고, 독서 권장 운동을 하다 과잉 독서를 반대하며 싸웠습니다. 10년 전, 20년 전, 저는 그림책을 만들면서 어두운 밤길을 홀로 걷는 느낌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림책을 잘 만들기 위해서 풀어야 할 과제는 너무 많았고 나를 인도해 줄 자료는 너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림책을 펼쳐보면서 꼭 좋은 그림책을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그림책 안에는 시대의 도덕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인간 욕망에 대한 긍정이 있었습니다. 모든 것에 신성과 생명이 있는 마법의 세계가, 자연과 우주와 타인과 하나 된 인간이 있었습니다. 훼손되지 않는 낙천성이 있었습니다. 이 고단한 세기에 우리가 어디서 이런 순정한 감정을 느낄 수 있겠습니까. 이제 저는 그것이 유아에게서 왔다는 것을 압니다.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있다가 까꿍! 하며 손을 떼는 단순한 행동에 집중하고 까르르 웃으며 생의 기쁨을 느끼는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는 장르는 그림책뿐입니다. 또 예술이 아니면 어떻습니까? 유아들과 함께 할 때 그림책은 예술이라는 휘장을 두르지 않고도 그 자체로 반짝이는 형식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같이 그림책을 보고 고민하고 아이를 만나 온 제 주변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유아에게서 배웁니다. 우리는 유아가 인간 존재에 새로운 양식을 보태주리라 믿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 저는 이것이 영유아 그림책의 가장 큰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우리가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더라도 기대를 가지고 영유아 그림책 출판을 지원해 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