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는 결코 부모의 물건이 되려고 나오는 것이 아니고, 어느 기성사회의 주문품이 되려고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네는 훌륭한 한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고 저는 저대로 독특한 사람이 되어 갈 것입니다. 그것을 자기 마음대로 자기 물건처럼 이렇게 만들리라, 이렇게 시키리라 하는 부모나 지금의 사회의 필요에 맞는 기계를 만들리라 하여 그 일정한 판에 찍어내려는 지금의 학교교육과 같은 잘못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결코 우리는 이것이 옳은 것이니 받으라고 무리로 강제를 두어서는 안 됩니다. 저희가 요구하는 것을 주고 저희에게서 싹트는 것을 북돋아 줄 뿐이고 보호해 줄 뿐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네에 대하는 태도는 이러해야 할 것입니다. 거기에 항상 새 세상의 창조가 있을 것입니다.
─ 안경식, 『소파 방정환의 아동교육 운동과 사상』, 지학사, 10쪽
지금의 어린이와 청소년을 말하는 ‘어린이’는 방정환이 늙은이, 젊은이와 짝이 되는 말로 어린아이를 높여 부르려고 만든 말이다. 어린이를 미래의 주인으로 키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는 젊은이, 늙은이와 마찬가지로 현재 자기 삶의 주인이며 스스로 싹을 틔우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풀과 나무와 꽃이 하늘과 땅이 주는 기운을 받아 스스로 싹을 틔우며 살아가듯 어린이도 자신만의 고유한 싹을 틔우고 다른 생명과 지내면서 스스로 배우며 산다. 어린이뿐만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오늘을 살며 자신을 발견하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자유로움을 추구한다. 모든 사람은 인간으로서 존엄함을 갖고 행복을 추구할 자유가 있다. 왕이 통치하는 사회가 아닌 시민사회에서 인간의 권리는 곧 시민의 권리와 같은 말이다. 프랑스 혁명 이후 프랑스 인권선언은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이었고 제1조가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태어난다’며 모든 인간이 시민임을 천명했다. 방정환이 위에서 말하는 어린이의 모습이 곧 시민의 모습이다.
그런데 새삼 우리회가 ‘어린이는 오늘을 사는 시민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 삶 곳곳에 어린이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 시선이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를 아직 인간으로는 미성숙한 존재로 취급하여 통제하고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어린이가 어떠한 차별이나 억압 없이 오늘을 사는 시민으로서 당당하게 자신의 개성과 취향을 표현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제도와 문화적 환경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인간은 누구나 생각하고, 질문하고, 해보고, 타인에게 관심 갖고, 더불어 살아간다. 이것은 노예의 모습이 아닌 주체적인 인간의 특성이다. 어린이 역시 인간으로서 이러한 특성을 갖는다. 이제, 어린이를 시민으로 그리고 있는 모습을 어린이문학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회가 어린이문학에서 어린이가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지 살피는 일은 어린이문학이 우리 삶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작가가 어린이문학에서 어린이를 시민으로 그리는 것은 어린이가 주체적인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 문화적 토양을 만드는데 중요한 부분이다.
「꽃밭」
꽃밭에만 가면 / 코스모스가 환하게 / 피어 있다. / 꽃밭에만 가면 / 코스모스가 환하게 / 피어 있다.
「가방」
학교에서 집에 올 때 가방을 메면 / 짐 같기도 하다. / 그래서 가방을 메면 무겁다. / 가방을 벗으면 어깨가 가볍다. / 날아갈 것 같다.
「매미」
매미가 / 맴맴 / 매미가 / 운다 / 그러면 소리도 / 좋다
「바람 소리」
나무 밑에 있으니 / 바람 소리가 / 파라파라거린다. / 그 소리가 좋다. / 바람이 피리를 분다.
「까마귀」
아이들은 까마귀를 보면 / 재수 없다고 한다. / 까마귀를 보지도 않고 지나간다. / 까마귀는 쓸쓸해서 / 울고 있을 거다 / 나는 까마귀를 봐도 / 재수 없는 일 / 하나도 없다.
위 시는 어린이들이 생활에서 느끼고 생각한 것을 쓴 어린이시다. 생각은 본 것, 들은 것, 만난 것, 느낀 것에 반응하는 것이다. ‘코스모스가 환하게 피어있다’ ‘가방을 벗으면 날아갈 것 같다’ ‘매미 울음소리가 좋다’ ‘바람소리가 파라파라거린다’ ‘까마귀를 봐도 재수 없는 일 하나도 없다’ 어린이가 쓴 시를 보면 ‘아, 이렇게 생각했구나!’ 혹은 ‘이런 생각, 나도 했지!’ ‘아, 그러네.’ 하며 맞장구쳐질 것이다. 모든 것은 아니지만 반응하고 생각하는 것은 누구나 한다. 누구나 매 순간 새롭게 감각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어제는 감각하지 못한 코스모스와 매미 울음소리, 바람을 오늘 새롭게 감각한 것이고 날마다 새롭게 감각하기도 한다. 오늘 나는 어제와 다르기 때문이다. 또, 누구나 다르게 반응할 수 있다. 경험에 따라 감각하는 것이 달라지기도 하고, 경험하지 않아도 사람마다 타고난 특성에 따라 느끼는 감각이 다르다. 자신이 감각하고 반응하는 것이 생각이며, 이것이 바로 그 사람의 특성이다. 사람은 누구나 생각하는 존재이고 다르게 생각한다. 어린이도 어른도 누구나 각자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림책 『넉 점 반』윤석중 글, 이영경 그림, 창비에 나오는 아이는 엄마 심부름으로 가겟집에 시간을 물어보러 간다. 가겟집 영감님이 ‘넉 점 반’이라고 알려주자 집에 가는 동안 잊어버릴까봐 나오면서 ‘넉 점 반’을 소리 내어 중얼거린다. 엄마나 영감님이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가 스스로 그 순간 생각하여 행동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있다. 『이슬이의 첫 심부름』쓰쓰이 요리코 지음, 하야시 아키코 그림, 한림에서 어린이가 첫 심부름을 하는 순간도 엄마가 시키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유 좀 사오라고 하는 엄마의 말에 이슬이는 “나 혼자?” 하며 놀라다가 주변을 둘러보고 대답한다. “응 그럴게. 나도 이제 다섯 살인걸.” 부엌에서 엄마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주전자와 냄비는 끓어 넘치고 청소기는 바닥에 그대로 있다. 시장 봐 온 봉지는 아직 뜯지도 않은 채 그대로고 아기는 침대에서 울고 있다. 이슬이가 그 순간에 뭔가 도움 되는 일을 하려고 생각한 것이 예상 가능하다. 반응은 사람마다 다르다. 사람마다 감각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상황이라도 이슬이처럼 반응하기도 하고, 다르게 반응하기도 할 것이다. 나이가 많고 적음에 따라 생각을 잘하거나 못하는 것은 아니다. 각자 다른 생각이 있을 뿐이다. 경험에 따라 생각이 달라지는 것은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변화이지, 경험이 많은 사람이 적은 사람보다 생각을 잘 하는 것이 아니다. ‘까마귀는 까맣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까마귀를 봐도 재수 없는 일 하나도 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경험이 다르다. 누가 더 생각을 잘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스스로 감각하고 생각하는 지점이 다른 것이다. 거기에 독자가 동의하고 동의하지 않는 생각이 있을 뿐이다.
‘미운 네 살’ 혹은 ‘미운 일곱 살’이라는 말이 있다.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따르지 않고 뭐든지 ‘왜?’라고 말대꾸한다고 걱정하여 만들어 낸 말이다. 질문하는 것은 말대꾸가 아니라 궁금한 것에 대한 반응이다. 사람은 자신에게 새로운 것, 낯선 것에 궁금함을 갖는다. 궁금하고 알고 싶어서 질문한다. 새롭게 만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질문하는 것도 사람마다 다르다. 어린이가 질문을 많이 하는 것은 새롭게 보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밥은 왜 먹어야 하지?’ ‘잠은 왜 자야 하지?’ ‘하늘은 왜 파랗지?’ ‘별은 왜 반짝일까?’ ‘아이는 어떻게 생기는 거지?’ ‘길 끝까지 가면 뭐가 있을까?’ 새롭게 발견한 것에 대한 질문이다.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시공주니어은 세계의 어린이가 열광하는 책이다. 이 작품을 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삐삐 시리즈뿐만 아니라 이후에 내놓은 책들도 모두 사랑을 받아 ‘어린이의 친구’라는 별칭을 얻었다. 삐삐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어른들의 반발이 심했지만 책이 출간되자 어린이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어른들은 삐삐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 때문에 버릇없다거나 제멋대로라고 비난을 했지만 어린이들이 환호하는 것은 원래 질문하는 존재인 자신들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어렸을 때 삐삐를 좋아했다. 삐삐를 보고 있으면 가슴이 뻥 뚫리는 것처럼 통쾌하고 기분 좋았다. 토미와 아니카가 삐삐랑 놀고 집에 와서 “삐삐가 오기 전에 우리는 뭘 하고 놀았는지 생각도 안 나. 그렇지?” 삐삐랑 노는 게 훨씬 재밌다는 말에 동의가 됐다. 삐삐는 정말 많은 질문을 한다. 어린이가 혼자 산다고 이웃이 신고해서 경찰이 삐삐를 어린이집에 데려가기 위해 왔다. 경찰이 “학교는 다녀야 한다”고 말하자 삐삐는 “왜요?” 하고 질문한다. 학교에 처음 갔을 때, 선생님이 삐삐에게 덧셈 문제를 질문하자, 삐삐는 “글쎄요. 선생님도 모르는 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한다. 선생님이 답을 알려주자 아는 것을 왜 물었냐고 다시 질문하다. 답을 이미 가지고 있는데 질문하는 선생님의 방식이 새로웠던 것이다. 토미와 아니카도 삐삐에게 궁금한 것이 많다. 삐삐는 대답하기 귀찮은 표정과 몸짓을 하기는 하지만 그들의 질문 자체가 버릇없다고 하지는 않는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궁금한 것들을 맘껏 질문하고 스스로 판단하며 즐겁게 생활하는 어린이를 그려서 어린이들을 어른들의 보호 아래서 해방시켰다.
이태준 작가 역시 『몰라쟁이 엄마』이태준 지음, 신가영 그림, 우리교육에서 질문하는 어린이의 모습을 잘 그리고 있다. 노마는 아침에 참새 소리를 들으며 곁에 있는 엄마에게 질문한다. “참새두 엄마가 있을까?” “그래두 참새들은 죄다 똑같던데 어떻게 저의 엄만지 남의 엄만지 아나?” “참새들은 새끼라두 죄다 똑같던데 어떻게 제 새낀지 남의 새낀지 아나?” “참새두 할아버지가 있을까?” “할아버지는 수염이 났게?” “그런데 어떻게 할아버진지 아나?” 참새를 보며 궁금함이 생겼다. 궁금한 것을 바로 곁에 있는 엄마한테 물어보는데 엄마가 모른다고 해도 질문은 이어진다. 가장 궁금한 것은 자신의 몸에 관한 궁금함이다. “참새도 기집애새끼하구 사내새끼하구 있지?” “그럼 참새두 사내새끼는 머리를 나처럼 빡빡 깎구?” 자기가 머리를 깎은 것이 궁금해진 것이다. 질문하면서 사는 존재인 어린이를 표현한 것이고, 그 질문은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가꾸는 것이다. 보다 많은 작가들이 어린이문학에 어린이가 궁금해하고 질문하는 모습을 담는다면 어린이가 하는 질문이 쓸데없는 질문이거나 말대꾸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계속)
★ 〈어린이도 시민이다〉 심포지엄 발제글을 다듬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