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하는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는 공공도서관이자 청소년문화의집이다. 노원구에서 설립했고, 성공회대학교가 수탁·운영하고 있다. 설립된 지는 만 7년이 다 되어간다. 개관 초기부터 우리센터는 마을의 느티나무 혹은 우물터가 되고자 했다. 마을에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공용의 공간들이 있다. 옛날 시골 마을에는 한데 모여 둘러앉는 공간들이 있었다. 크지 않아도 되었다. 여름 한낮에 뜨거운 햇볕을 막아줄 느티나무 그늘 정도면 되었고, 맑은 물이 졸졸 샘솟아서 함께 나누어 쓸 우물터 정도면 부족함이 없었다. 세월이 흘러 산업화가 이루어졌고, 우리 경제는 고도성장기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도시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공동의 필요는 있었다. 다행히 교회, 학교, 주민센터, 복지관, 도서관, 청소년센터 등이 그 필요의 일부를 채워주었다. 교회와 학교, 도서관 등의 공간은 마을의 구심점이었고, 마을에 새로운 정보와 문화를 공급했다. 세상은 빠르게 경쟁체제로 전환되었다. 마을 주민들은 공공조직에서 일하는 일꾼들더러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가자고 더이상 요청하지 않았다. 대신 무한경쟁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역할을 요구했다. 각종 서비스를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공급하는 전문화된 시설의 길을 걸으라는 것이었다. 전문서비스를 대행하는 도서관이 인접거리에 있다는 것은 생활의 편의성뿐 아니라 내 집값을 올리는 데 주요한 요인을 제공해주기도 했다. 사람들은 책을 사보지 않아도 되고, 시원한 에어컨이 있는 곳에서 여가를 보낼 수 있다는 것으로 만족했다. 개인 칸막이 좌석에서 시험공부를 할 수도 있었다. 도서관은 각자도생 시대에 개인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공급해주는 유익한 공간이었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더욱더 편리하고 효율적인 개인서비스와 개별적 공간만을 요구했다. 공공도서관은 그 요구에 응답하기 위해 끊임없이 애쓰고 있다.
도서관의 전문 서비스는 늘어났고 장서는 많아졌다. 서비스 이용자도 늘었다. 하지만 도서관을 통해 평생독자가 되고, 교양인이 되며, 자기 삶의 주인이 되고, 이웃과 더불어 살려는 시민을 만나는 일은 어려워졌다. 이용자 중 일부는 자신들의 요구에 맞춘 서비스를 더 확대하지 않는다고 민원을 제기했다. 어떤 사람은 칸막이 공간을 늘려달라고 했고, 어떤 사람은 그 공간이 답답하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문화행사를 확대해달라고 했고, 또 어떤 사람은 그런 행사가 시끄럽다고 했다. 도서관은 서로 다른 요구를 하는 이용자 모두를 만족시키는 서비스를 만들어내려고 했고 도서관의 일꾼들은 지쳐버리고 말았다. 일꾼들은 이용자들을 민원 넣는 존재로만 인식하고 있는 듯했다. 도서관과 마을에는 점점 경계가 생겼고, 도서관의 울타리는 높아져 갔다. 도서관은 마을 주민들이 둘러앉는 공용의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잃어갔다. 마을의 일을 궁리하는 사람들은 더이상 마을의 느티나무로서의, 만남의 우물터로서의 도서관을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도서관이 마을 주민들의 ‘집단지성’을 키우고, ‘신뢰, 소통, 협력의 사회적 자본’을 길어 올리는 마을 공동 우물터의 기능을 회복할 수 있을까?
도서관에서 우리는 ‘감정노동’을 하고 있는가, ‘관계의 노동’을 하고 있는가? 우리센터의 일꾼들은 자신의 활동을 함께 구상하고 이야기 나눌 마을의 주민조직, 대학생, 청소년들과 별도의 모임이나 회의로 연대하고 있다. 공공조직들에서 흔히 같은 자격증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일하면서 집단문화가 강해지고, 조직의 울타리가 높아져 가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우리 센터는 사서, 평생교육사, 사회복지사, 청소년지도사, 상담사 등 다양한 자격을 지닌 사람이 함께 일하기 때문인지, 전문자격증별로 구분되는 집단문화가 그리 강하지 않고, 주민과 청소년들에게 많이 열려있는 편이다. 이렇게 집단의 지배문화가 강하지 않고 느슨한 조직에는 틈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 틈으로 청소년과 이웃들이 들어왔고 함께하는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우리센터를 중심으로 매월 열리는 ‘꿈마을 회의’는 중요한 관계와 사귐의 장이 된다. 회의는 마을 주민 누구나에게 열려 있다. 회의에서 구성원들은 함께할 일을 구상하고, 서로의 생각과 입장을 이야기한다. 회의를 마쳐도 사람들은 아쉬운 듯 자리를 쉽게 뜨지 않는다. 결국 또다시 작은 회의와 만남으로 번져간다. ‘마을 걷기’는 마을 일을 시작할 때 꼭 수행해야 할 매우 중요한 관계의 노동이다. 우리센터의 일꾼들도 마을 걷기를 한다. 혼자서 걷기, 여럿이 걷기, 설명을 들으며 걷기, 아침에 걷기, 저녁에 걷기 등 여러 번의 마을 걷기를 하면서 일꾼들의 물리적 위치를 바꾸어도 보고, 마을 사람들의 입장이나 청소년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기회를 갖도록 권장하고 있다. 공공조직 일꾼들은 주민의 편에 서서 다양한 방식으로 ‘감정 이입’할 수 있어야 한다.
공공도서관뿐 아니라 사회 전방위적으로 네트워크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관계의 노동은 중요시되지 않는 것 같다. 네트워크라는 이름이 유행하면서 사람을 자원이라고 쉽사리 이야기하는 것을 종종 본다. 그러나 ‘네트워크 회의’ 같은 건조한 만남에서는 실질적인 내용이 나오지 않을 때가 많다. 사람을 진심으로 환대하고, 친구가 되어, 나의 부족함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힘을 모아준다. 관계는 쌓아가는 것이다. 관계의 노동을 감정노동과 명확히 구분 지을 순 없지만, 반겨주고, 모이고, 수다 떨고, 함께 사귀고, 함께 걱정하고, 배려하고, 격려하고, 어려움을 덜어주고, 서로의 생각을 배워가고,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고, 작은 일들을 함께 해보는 것 등이 관계의 노동이라 할 수 있다. 오랜 시간을 두고 친구로, 이웃으로 살아가야 될 사람들을 대할 때는 감정노동이 아닌 관계의 노동이 필요하다. 관계의 노동은 업무로 분장할 수도, 예산을 편성할 수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사람을 키우고, 사회를 변화시키려 하는 사회적인 일의 성취는 수많은 관계의 노동으로 만들어진다. 마을의 공기를 바꾸는 일은 더욱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이웃과의 관계와 사귐의 노동을 소중히 여긴다.
우리센터는 지하 1층, 지상 6층의 건물이다. 외관은 3면 전체가 유리로 만들어졌는데 동네 골목에서 쉽게 보기 힘든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세련된 외관은 청소년들에게 공간을 매력적으로 느끼게 해주고 많은 청소년들을 쉽게 불러 모을 수 있는 하나의 요소가 된다. 하지만 건물에 전혀 친환경적인 설계가 도입되지 못한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유리 건물이 가지는 최대약점이 있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열효율이 매우 낮은 건물이라는 것이다. 지속가능성이 중요한 시대정신이 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서 부디 앞으로 청소년도서관을 지을 때는 에너지절약형 시설로 설계했으면 한다.
하지만 우리센터는 장점도 많고 자랑할 것도 많다. 가장 큰 장점 한 가지만 소개하겠다. 그것은 도서관과 청소년문화의집이 융합되면서 열람실 외에 모임 공간이 확보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공간을 청소년과 시민들에게 내어준다. 이 공간을 청소년과 주민들이 각종 활동에 이용하면서 다양한 소모임과 동아리, 그리고 그들의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청소년도서관이라는 콘셉트로 인해 ‘도서관은 조용해야 한다’는 기존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역동적인 공간이 되고 있다. 시민들이 서로를 조직하고, 서로가 연결되는 플랫폼으로서 도서관의 공간이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공간들이 더 활짝 열려있을 수 있도록 대관 담당자를 지정하고, 대관 프로그램을 만들고, 1층에 카페를 조성하고, 조명을 바꾸고, 환대를 베푸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
우리센터 한쪽 벽에는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슬로건이 큰 글씨로 적혀있다. 만화동아리 청소년들이 그려주었다. 이 슬로건은 우리가 하는 일을 잘 상징하는 표현이다. 우리는 모이면 누구나 생산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어린이, 청소년, 주민 누구든지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이 모이는 일을 돕고 있다. 사람은 사람을 불러오고, 모인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관심 분야에서 생산자가 되고 있다. 비교적 최근에 생긴 ‘꿈마을여행단’은 공릉동의 문화역사, 산, 들, 강을 바탕으로 여행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외부에서 견학 온 손님들과 마을 사람들을 대상으로 마을여행을 한다. 자유학기제, 진로체험과 연계해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마을여행을 만들어 운영하기도 한다. 개관 초기부터 함께했던 ‘도서관 일촌’은 북카페 다락, 꽃다방, 마을 작은 도서관 네트워크 등으로 퍼져나갔다. ‘든든한 이웃’은 청소년과 마을의 사람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하고 있다. 이들은 되살림 매장을 통해 마을공동체 활동을 실천하며 노원구 되살림협동조합이 잉태되도록 이끌었다. 센터 공간을 이용해서 마을에 다양한 독서모임, 육아모임, 그림책모임, 마을의 바느질 모임, 바리스타, 놀이지도자 모임이 생성되고 있다. 또 지역에 모임은 있었지만 공간이 없어서 활성화되기에 힘들어했던 어린이책읽기모임, 생협모임, 청년예술가 모임 등은 센터 공간을 빌려 활성화되기도 했다. 또 마을에서 서로 구분되어 있어 연결되기 힘들던 장애인복지관, 어르신센터, 북한이탈주민, 종합사회복지관, 지역아동센터, 지역학교 교육복지 활동, 학교밖청소년 활동 등이 도서관을 이용하는 마을 주민들 속으로 들어와 활력을 찾고 있다. 낯선 조직과 사람들의 만남은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러워졌고, 장애인복지관과 도서관자원활동가와의 만남, 학교밖청소년과 마을 동아리의 협업 등으로 유기적인 협력이 일어나고 있다. 초기 참여자들은 재활용 매장, 도시농업, 사회적 경제, 도시재생, 마을공동체, 마을협동조합, 마을여행과 마을문화예술 활동의 당당한 리더들로 성장했다. 열린 공간을 통해 사람들이 만나고, 모이고, 이 사람들이 마을 곳곳을 ‘학습공원’으로 만들어가는 리더로 거듭나고 있다.
우리는 청소년과 주민을 ‘위해서’ 일한다. 하지만 우리는 청소년 그리고 주민과 ‘함께’ 일한다. 우리센터에서 모여서 노는 청소년들은 마을 속에서 생산자가 된다. 문화인이 되고, 교육자가 되고, 예술가가 되고, 기획자가 되는 것이다. 마을의 어둑한 곳에 벽화를 그린다거나, 텅 빈 땅에 식물을 기른다거나, 문제를 직접 찾아서 해결해 나가고 있다. 주민들 중 실력을 갖춘 분들과 직접 생산품을 만들어 내고, 판매도 해보고 있다. 주민 예술가와 함께하는 단기 예술학교에 참여해서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내고도 있다. 마을 축제와 어린이 잔치를 주도하기도 한다. 이렇게 마을의 주민들과 청소년들이 모여서 놀면서 공릉동 마을의 공기가 바뀌고 있다. 각자도생의 치열한 경쟁 구도 속에서 살고 있지만 약자를 살피고, 친구가 되고, 돕는 일을 한다. 청소년들은 마을 속에서 친구들과 함께 무엇인가 해내면서 ‘더불어 함께’라는 공동체적 삶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모여서 생산자가 되는 경험은 청소년들에게 꼭 필요한 교육이다. 우리의 교육은 전문성이라는 논리로 과목과 교육과정을 잘게 쪼개기에 십상이다. 하지만 삶은 항상 복잡하고, 중층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마을에서 스스로 주인이 되고, 생산자가 되는 경험에는 삶을 통합적·총체적으로 이해하게 하는 힘이 깃든다. 도서관을 통해 마을이 더 넓은 학교로 변모하고 있다.
우리는 마을에 ‘사회적 면역력’과 같은 힘이 있음을 믿어야 한다. 그 힘은 마을의 문제를 획기적으로 해결해낼 수 있는 힘이다. 오늘날 우리는 다양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각종 전문가의 처방전으로 임기응변적 대응을 한다. 그러나 그 무수한 노력으로도 세상은 점점 어두워지기만 했다. 이제는 조금 다른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힘은 서비스를 공급하는 전문기관과 전문가에게도 있지만, 주민들 속에도 있다. 하지만 주민 대부분은 여전히 소비자로만 머물러 있으려 할 것이다. 그 이유는 현대의 모든 사람들이 개별화 혹은 파편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개별화된 사람들은 불안과 두려움이 크고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도리어 서비스를 공급하는 사람들을 향한 불만으로 표출된다. 우리는 불만의 목소리 이면을 들어야 한다. 고객 졸도의 시대라는 핑계를 대면서 ‘각자도생하려는 낮은 수준의 담론’을 주민 목소리라고 간주해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하고, 일구는 일! 더 나은 인문공동체, 학습공동체를 꾸리는 일! 중요하지만 도서관 스스로 방향을 찾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도서관 활동은 마을 이용자들의 담론 수준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서관은 더 나은 세상과 삶을 함께 꿈꾸고 만들어갈 협력자를 마을과 일상 속에서 찾아 나가야 한다. 가장 먼저 현실에 대한 아픔을 지닌 파편화된 사람들을 찾아, 초청하고, 모이고, 둘러앉아 수다하고, 함께 해법을 궁리해야 한다. 사람들이 모이면 마을의 담론의 수준은 조금씩 올라가게 될 것이다.
최근 마을 공동체를 활성화하려는 데 행정의 많은 노력이 기울여지고 있다. 현대의 도시에서 공동체를 이루어 같이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마을 주민들이 모이고, 둘러앉아,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좋은 우물터가 필요하다.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는 도서관으로도 청소년센터로도 부족하지만, 어떤 면에서 마을의 소중한 우물터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센터는 현대 도시에 필요한 사회적 자본을 만들어내는 발전소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센터가 마을의 공용 공간으로서 느티나무나 우물터 같은 기능을 어떻게 지속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상상하고 있다. 우리는 지난 6년 이상의 세월을 주민들과 지역의 힘을 키우는 데 함께했다. 봄, 가을로 10주간 도서관 학교를 운영했고, 함께 생각하고, 아파하고, 배우고, 성장하려는 사람들을 모이게 했다. 여러 사례를 찾아 주민들과 함께 견학하기도 했다. 한 달에 한 번 30여 명의 주민들이 둘러앉는 마을회의는 한 달도 빠짐없이 지켜왔다. 이 우물터에 시민들이 둘러앉아 궁리하면서 의미 있는 해법들이 모색되었고, 함께 실천에 옮겨왔다. 짧은 시간 동안 작지만 소중한 무수히 많은 변화들을 시민들이 함께 경험했다. 이렇게 집단지성을 키우고, 변화를 경험한 사람들은 앞으로도 우리 마을에서 사회적 자본을 생성하고, 아픈 문제가 있을 때 면역력 같은 힘을 발휘하는 이웃들이 될 것이다.
도서관의 한계는 분명하다. 그러나 도서관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과 이야기가 담긴 책이 있다. 이 책들이 매력을 발산하고 사람들을 초대하고 있다. 도서관에는 사람들이 둘러앉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사람들을 만나고, 환대를 베풀고, 지원할 수 있는 일꾼들이 있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그저 서비스의 소비자로만 머물러 있으려 할 것이라 예단하지 말자. ‘학습의 시민’ ‘마을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꼭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이 시민들을 찾아내고 서로를 연결시키자. 이웃들이 삶 속에서 크고 작은 문제들을 나누고 둘러앉아 해법을 궁리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주선하고, 공간을 내어주자. 연결된 사람들이 마을의 사회적 면역력을 키우고, 사회적 자본을 만들어낸다면 도서관은 마을의 역사와 문화를 바꾸는 우물터, “마을인문공동체를 만드는 시민 학습 플랫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