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모 │ 서울시립과학관 관장
안녕하세요? 이정모입니다. 『공생 멸종 진화』나무 나무, 2015를 쓰면서 세 가지 중에 제가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멸종’이었습니다. 멸종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가 나타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동물도 공룡이지만, 공룡들이 모두 사라졌기 때문에 인간이 등장해서 살 수 있게 된 것이죠. 흔히들 생각하는 것과 반대로 멸종이 꼭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자연사를 연구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겁니다. 왜 3억 년 동안이나 바다를 지배했던 삼엽충들이 멸종할 수밖에 없었을까? 공룡이 왜 멸종해버렸을까?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건 무엇 때문일까요? 찬란한 과거가 있었다는 자부심을 갖기 위해서는 아니잖아요. 과거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나라들도 모두 망했습니다. 중국의 한나라도 망했고, 로마 제국도 망했고, 통일신라도 망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왜 망했는가를 보고서 대한민국이 진보할 방법을 연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연사를 공부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연사란 멸종한 생물들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연사를 통해 호모 사피엔스가 어떻게 진화해나갈 수 있을까를 연구할 수 있습니다.
모든 생명들은 어울려 살아야 합니다. 우리 혼자서는 살 수 없습니다. 미생물과 식물과 동물이 어우러지는 먹이사슬이 구성이 되어야 살 수가 있습니다.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면 인간의 수정란을 싣고 사람이 살 수 있을 새로운 행성을 찾아 우주로 떠나지요? 새로운 행성을 찾아내려는 노력과 에너지가 있다면 그 에너지로 지구를 지키고 지구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것이 옳은 일이겠습니다. 호모사피엔스도 언젠가 멸종하겠지만 그동안은 인류가 인류 아닌 다른 생명체들과 어떻게 어울려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같이 살아남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어떤 배려를 해나갈 수 있을까 1박2일 동안 함께 이런 이야기를 나눠본다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승환 │ 전라북도 교육감
안녕하세요? 전북 교육감 김승환입니다. 저는 전북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에서 헌법학 강의를 해왔습니다. 그러다 교육감 선거에 출마하게 되었고, 당선이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당선이 되어 재선교육감이 되었습니다. 재선은 두 번 당선됐다는 뜻입니다.(웃음) 작년 10월부터 전라북도의 열네 개 시군의 고등학교를 돌면서 헌법 순회 특강을 했습니다. 그 특강들을 책으로 옮겨보자는 제안이 있어 글로 옮기고, 간추리는 작업을 했고요. 『헌법의 귀환』휴먼앤북스, 2017은 그 강의를 글로 옮긴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저는 헌법학자로서 우리나라 현실에 늘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헌법은 우리 국민의 것인데 우리 국민은 헌법을 외면해왔습니다. 헌법은 끝없이 말 걸기를 시도하는데 우리 국민은 이를 듣기를 귀찮아했습니다. 헌법은 그만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국민들은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헌법의 이야기를 쉽게 풀어내서 국민들께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렵지 않게 쉽게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노력으로 여러분들을 만나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이 자리는 엄청난 자리인 것 같습니다. 함께 앉아 계신 세 작가님들은 누가 봐도 전국구인데 저만 지역구입니다.(웃음) 불러주셔서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구본권 │ 한겨레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고등학생 여러분들을 만날 때마다 제가 고등학생인 것처럼 설렙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은 앞으로 여러분들이 생각한 대로의 인생을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120살까지는 살 테니까 앞으로 100년을 여러분들이 설계한 대로 살게 되겠지요. 그런 분들을 만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두근두근거립니다.
미래의 여러분들에게는 여러분들이 ‘딴짓’했던 것들만 남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혼자 공상하고, 딴 생각하는 일들 말이에요. 앞으로는 정답과 덜 친한 사람들만 살아남을 거거든요. 답이 있는 일들에 대해서는 기계가 이미 완벽히 알고 있으니까요. 여러분들이 답이 없는 일을 한다면,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너는 왜 쓸데없는 일을 하니?’라는 말을 듣는다면 여러분들은 행복해하시면 됩니다.
저는 대학에서는 철학을 공부했고, 그다음에는 기자를 했고, 또 제가 쓴 책은 과학기술과 관련된 책이긴 하지만 여러분만 할 때의 저는 ‘나는 왜 살아야 하나’ 하는 문제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일주일 혹은 한 달이면 앓고 빠져나오는 질문이었는데도 저는 다른 문제를 풀기 전에 일단 이 문제, ‘왜 사나’에 관한 문제를 풀어내자고 골몰했었습니다. 쓸데없는 생각이었죠. 정말로 쓸데가 없었어요.(웃음) 철학 공부 잘 해도 철학 교수가 되기는 힘들어요. 아무 데도 원하는 곳이 없어요. 그냥 좋아서 하는 생각이니 아무짝에 쓸모없는 생각을 이어서 한 거예요. ‘왜 사나?’ ‘나는 무엇인가?’ ‘사람의 앎이란 무엇이며, 사람의 감정이란 무엇인가?’ 같은 생각을 여러분 나이부터 시작해서 30년간 계속했어요. 제가 던진 질문들에 답이 있나요? 답이 없어요. ‘어떻게 하면 행복한 인생을 살 것인가’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답이 없는 문제를 끌어안고 살아가기란 10년, 20년은 스스로 괴로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 생각을 계속한다면 곧 여러분들은 남들이 생각지 않는 걸 생각하게 돼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기 때문에 남들은 알 수 없었을 통찰과 앎에 닿게 되거든요.
오늘 여러분들은 멸종과 진화에 관한 생명의 비밀에 대해 이야기 들을 것이고, 우리가 사회를 만들면서 도대체 어떻게 약속을 만들 수 있었는지 법의 정신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며, 또 시인의 통찰을 ─ 시인이란 무엇을 노래하는 사람이냐면 쓸모없는 것들에 대해 노래하는 사람입니다. 강하게 존재하지 않는 것들만을 노래하는 사람들이에요. ─ 만날 수 있는 자리에 초대된 것입니다. 저도 여러분들이 부럽습니다. 고맙습니다.
김선우 │ 시인
여러분들! 이 앞에 계신 작가분들이 여기서 지금 얼마나 부들부들 떨고 있는지 느껴지세요?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 것 같아요.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그 어떤 어른을 만날 때보다 우리 청소년들과 만날 때 더 긴장하고, 떨리고, 기대하고, 꿈꾸게 돼요. 어떻게 해야 우리의 시간이 아깝지 않게, 알토란처럼 예쁘고 소담스럽게 만들 수 있을까?
오늘 우리는 ‘희망을 말한다는 것’이라는 주제를 걸고 있잖아요. 그래요. 희망을 말할 수 있게 된 것 같기는 해요. 지난 8, 9년간 이 나라에서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어떻게 견디지 고민했었으나 가을과 겨울, 우리의 힘으로 그게 어떠한 종류의 것이건 간에 희망을 만들어갈 수 있겠다는 것을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에서 함께 지켜보았죠. 드디어 우리가 도달한 희망을 말하는 시간에 우리 가슴 속에 새로이 각인해야 하는 것은 이것 아닐까요? ‘말하다’에서 출발한 것은 ‘살아낸다’ ‘산다’ ‘꿈꾸다’로 이어져야 진짜가 된다는 것이요. 가령 머리의 지식이 진짜 지식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슴의 지식과 만나야 되고, 가슴의 두근거림이 진짜 지식이 되기 위해서는 머리의 지식과 잘 만나야 하는 것처럼요. ‘말하다’로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로, 희망의 ‘말’로부터 희망의 ‘삶’으로 희망이 우리 일상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을 때까지 가장 왕성하게 희망을 꿈꾸고 희망을 살아내야 할 미래의 주인, 이 땅의 주인들을 만나러 다닐 거예요. ‘희망의 말하기’가 ‘희망의 삶’으로 전환되는 이 자리에서 모두발언의 퍼포먼스로 시를 하나 읽어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단상에 올라왔어요.
머리의 앎과 가슴의 앎이 조화롭게 만들기 위해 가슴의 앎에 가장 크게 노크하는 것이 문학이고, 또 질문일 것입니다. 이런 취지에서 「여전히 반대말 놀이」『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창비, 2012라는 저의 시를 읽어드릴게요. 가끔 저를 보고 ‘야, 시인이 살아있어!’라고 놀라는 학생이 있어서 제가 웃곤 하는데 살아있는 시인인 제가 짧은 시를 읽어드리겠어요.
여전히 반대말 놀이
─ 김선우
행복과 불행이 반대말인가
남자와 여자가 반대말인가
길다와 짧다가 반대말인가
빛과 어둠
양지와 음지가 반대말인가
있음과 없음
쾌락과 고통
절망과 희망
흰색과 검은 색이 반대말인가
반대말이 있다고 굳게 믿는 습성때문에
마음 밑바닥에 공포를 기르게 된 생물,
진화가 가장 늦된 존재가 되어버린
인간에게 가르쳐주렴 반대말이란 없다는걸
알고 있는 어린이들이 어른들에게
다른 놀이를 좀 가르쳐주렴!
한국 학교에서는 반대말이 있다고, 또는 정답이 있다고 배우긴 하지만 오늘 여기엔 세상에 반대말이란 없다는 것을 자각한 우리가 모여 있다고 생각해요. 반대말 대신에 각양각색의 가능성을 품은 다양성들이 존재하는 시대에 살고 있어요. 우리 오늘 거기에 대한 고민을 열렬하게 해봐요. 반갑습니다.
사회자
자, 저자 선생님들께서 뒤돌아보시면 학생들의 질문이 판넬에 붙어있습니다. 오늘 정답이 없는 질문을 한 사람이 누굴까요? 질문을 골라서 말씀을 들려주세요! … 김선우 시인님께서 너무 고민을 많이 하시니까요.(웃음) 김승환 교육감님부터 답변해주실까요?
김승환
급소를 찌르는 예리한 질문이 있어요. 그 질문을 읽겠습니다. “『헌법의 귀환』을 보면 미란다 원칙이 지켜지지 않아 성폭행범이 무죄를 선고받은 상황이 나옵니다. 이것이 과연 맞는 일일까요?”라는 질문입니다. 책에 미란다 원칙에 대해서 나오지요. 1987년 당시 대한민국 형사소송법에 어떤 사람을 범죄행위로 체포할 때 ‘체포의 이유, 변호사를 부를 권리가 있음, 형사재판에서 불리하게 사용될 진술을 거부할 수 있음’의 세 가지를 반드시 알려주도록 명문으로 규정돼 있었어요. 그런데도 대한민국에서는 검사도, 판사도 이 조항을 무시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1987년 1월에 서울에서 대학생 한 명이 경찰에 끌려가서 전기고문, 물고문을 받고 사망했습니다. 치안 본부장의 이 인권유린행위가 기폭제가 되어 1987년, 이 조항이 헌법 제12조에 들어갑니다.
미국에서 미란다 원칙이 문제가 됐던 사건은 이러합니다. 미란다라는 이름의 멕시코계 미국인 청년이 외딴곳에서 소녀를 성폭행했어요. 재판장에서는 자신의 범행을 자백했어요. 그러나 체포 당시 불리한 증언을 하지 않아도 될 권리와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권리에 대해서 경찰이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권리가 침해당했다고 주장을 해요. 결국, 자백도 했고 증거도 있는데 무죄판결을 선고받았어요. 많은 사람들은 여기에 의문을 제기해요. 비난도 해요. 하지만 수사기관이 절차를 위반할 경우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인권이 침해당할 것인가? 아무리 똑똑하고 권력 있는 사람이라도 일단 경찰 앞에서 조사받을 때에는 쫄게 되어 있어요. 하물며 일반인들은 어떻겠습니까? 저, 김승환 교육감도 검찰 고발을 17번 당했어요. 그때 이후로 얼굴이 많이 쫄아들었죠?(웃음) 미국에서는 미란다 한 사람이 있었고, 대한민국에서는 대학생 박종철의 억울한 죽음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미란다 원칙이 헌법으로 명문화됐습니다. 혹시 추가 질문이 있나요?
학생
미란다 원칙의 적용이 필요한 건 알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얼마 전에 신문기사를 읽었어요. 그 기사는 합리적 의심에 대해 말하며 헌법과 국민정서 사이의 괴리가 커지는 점을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사건의 증거가 명확한 데다 범인이 범행을 자백하기까지 했는데 미란다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해서 무죄판결을 하기보다는 범행에 대해서는 죄를 선고하되 인권침해 부분에 대해서는 인권조사위원회에서 다른 제재를 가할 수 있지 않을까요?
김승환
그런 의견도 충분히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생각도 틀리지 않았다고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지금 말씀드리는 것은 제 생각입니다. 합리적 의심에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어요. 만약 우리 학생이 재판장이라면, 그래서 이쪽의 얘기를 듣고, 저쪽의 얘기를 듣고를 아무리 반복해도 판단이 안선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재판장이 이 사건은 이것으로 끝입니다, 라고 말하면 판결은 종결되는 거예요. 그런 상황에서는 이런 말이 있어요. ‘인 두비오 프로 레오In dubio pro reo’라는 법언이 있어요.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무죄 판결을 선고하라는 거예요. 미국의 그 미란다라는 사람이 나중에 어떻게 되었냐면 한 나이트클럽 화장실에서 시비가 붙어 칼에 찔려 사망합니다. 법은 그 사람을 처벌 못했지만 정의가 그 사람을 처벌한 것일까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계속)
★ 2017년 8월 3일, 4일, 김해대학교에서 김해시와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의 공동 주최로 '제9회 김해 청소년 인문학읽기 전국대회'가 열렸습니다. 전국 44개 학교에서 모인 220명의 학생들이 이정모, 구본권, 김승환, 김선우 작가와 함께 '희망을 말한다는 것'이라는 주제로 토론을 나누었습니다. '저자와의 대화' 시간에 나온 이야기를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