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제도서전 기간 동안 독서문화와 관련된 세미나를 개최하는 것은 각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면 책 읽는 문화가 바로 출판문화의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꾸준하게, 그리고 매년 의미 있는 의제를 중심으로 세미나를 전개해 왔습니다.
세미나의 주제를 되짚어 보면, ‘독서환경과 독서진흥’2006, ‘시민의 독서권과 독서진흥정책’2007, ‘독서문화진흥 기본계획의 성공적 추진을 위한 민관협력 방안’2008, ‘독서 및 도서관 진흥정책과 지역사회 발전’2009, ‘책 읽는 도시’2010, ‘도서관에서의 장서구입 정책과 선정도서목록’2011, 독서의 해 대토론회 ‘국민 독서환경 혁신, 어떻게 할 것인가’2012, ‘독서동아리로 만드는 풀뿌리 독서생태계’2013, ‘지역사회 독서생태계, 어떻게 만들 것인가’2014, ‘도서관 장서의 지역서점 구매 활성화 방안’2015, ‘이제 함께 읽자 - 독서동아리 이야기 한마당‘2016 등입니다.
올해의 주제는 ‘독서문화 진흥정책의 발전 방향과 과제’입니다. 저는 우선 오늘 독서문화 진흥정책의 골격이라 할 수 있는 <독서문화진흥법>을 중심으로 그 제정과 개정의 역사를 짚어보면서 독서문화 진흥정책의 발전 방향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선 <독서문화진흥법>의 성립 과정을 돌아보고자 합니다.1) 독서문화를 진흥하기 위한 법의 성립 과정을 돌아보면, 1993년 ‘책의 해’가 중요한 계기였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노태우 정부의 당시 문화부는 문화 발전 10개년 계획에 따라 ‘문화예술의 해’ 사업을 펼쳤습니다. 그 사업의 일환으로 1993년을 ‘책의 해’로 선정하여(1991년 ‘연극영화의 해’, 1992년 ‘춤의 해’) 출판사, 도서관, 독서운동 단체들이 참여하는 실무추진위를 구성하였습니다.
당시 ‘책의 해 사업추진위원회’는 ▲국제화: 출판 및 관련 산업의 국제경쟁력 제고, ▲산업화: 책 생산 및 보급 촉진, ▲민주화: 독서 습관의 진작을 통한 문화 향수 기회의 확대 등 크게 세 가지 방침을 정하고, 몇 가지 사업 내용을 확정하였습니다.
이후 1992년 12월 16일 ‘책의 해 조직위원회’가 구성되어 6가지 사업계획안을 확정합니다. 당시 조직위는 김낙준(출협 회장) 위원장, 윤형두(출협 부회장)·박계홍(한국도서관협회 회장) 부위원장, 그리고 서점계, 인쇄업계, 학계, 언론계 인사 등 17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독서진흥법(가칭)’은 ‘책의 해’의 사업 내용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책의 해’ 사업계획안>
▲ 책의 해 분위기 조성 사업: 담배 포장지에 책의 해 로고 삽입 등. 소식지 <북토피아> 발간. 출판사별로 책의 해 기념 출판물 1종씩 발간.
▲ 독서하는 사회 분위기 조성 사업: ‘도서관에 책을 채우자’ 운동을 전개. ‘책을 찾아드립니다’ 전화 개설하여 신간 도서에 대한 음성정보 제공. 전국 순회 도서전시회, 분야별 도서전시회 개최. 독서진흥법 제정과 독서운동기금 조성 추진
▲ 출판진흥 기반 구축 사업: 출판 발전 10개년 계획, 유통정보시스템과 출판물유통정보센터 설립. 절판 및 반품 처리된 책을 ‘책을 싸게 드립니다’ 프로그램을 통해 판매.
▲ 한국 출판의 세계화 사업: 국제 심포지엄. 대전 EXPO 특별 프로그램으로 ‘금속활자 특별전시회’ 등 개최
▲ 책에 대한 인식 제고를 위한 사업: 인쇄기술의 어제와 오늘인쇄계, 책의 장정 소재전제본계, 책디자인전디자인업계, 한국출판미술대전일러스트레이션, 종이의 역사전지업계, 한국고문서전정신문화연구원 등 관련 산업 특별전시회 개최
▲ 관련 업계를 위한 사업
1993년 1월 1일, 김낙준 ‘책의 해 조직위’ 위원장은 <세계일보>와 인터뷰하면서 “새 정부가 들어서면 독서운동 기금 조성의 제도화와 신설 건축비의 일정 비율을 도서관에 의무적으로 투자할 것을 골자로 하는 ‘독서진흥법’ 제정을 강력하게 요청할 방침입니다. 그 동안 출판 관련 업종은 경제성장 위주 정책에 밀려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했어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1993년 1월 1일 <조선일보> 사설 ‘책의 해를 이렇게’에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책의 해’를 맞아 출판관계자들은 올해 ‘독서진흥법’을 제정하도록 추진하고 있다. 건축비의 1%를 반드시 도서실에 투자토록 하는 의무와 기업의 도서실 자료실 설치비용의 조세감면, 독서운동기금 조성의 제도화 같은 구체적인 내용을 법에 포함시키리라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부족하다. 새로 출범하는 문민정부의 과감한 출판독서 지원정책이 절실히 기대된다. 그 첫째는 공공도서관의 전국적인 확대 보급이며, 각급 도서관이 중요한 신간은 빠짐없이 구입비치할 수 있게 하는 도서구입비의 대폭 증액이다. 둘째는 출판유통 현대화를 위해 현안의 일산출판문화단지를 실현시키는 일이다. 이 두 가지만이라도 이루어낸다면 ‘책의 해’는 그 1차적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될 것이다.
사실, 1993년 ‘책의 해’는 한국 출판계에서는 중요한 전기가 된 해였습니다. 당시 출판은 ‘사업’ 단계에서 ‘산업’ 단계로 바뀌고 있었다고도 할 수 있는데, ‘책의 해’의 주요한 내용은 이러한 출판계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1991년 말 현재 연간 도서발행 종수 2만2천7백여 종. 발행부수 1억3천4백여만 부, 이 가운데 73%가 학습참고서와 아동도서. 1993년 당시 책읽기, 출판문화, 도서관 등의 현실을 살펴보면, 지금과 비교해볼 때 매우 열악한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한국여론조사연구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71.4%가 한 달에 책을 거의 읽지 않거나 1권 이하로 읽는다고 답변하였고, 1991년 현재 공공도서관의 수는 267개에 불과했으며, 공공도서관 전체 예산 494억여 원 가운데 93.6%가 인건비와 운영비로 충당되었고, 도서구입비는 6.38%인 31억 원, 1개 도서관당 평균 118만 원에 불과하였습니다.)
당시 출판계 등이 중심이 되어 전개하고자 했던 ‘독서진흥법(가칭)’의 핵심적인 내용은 앞에서 언급되었듯이, 민간기업체나 공공기관이 건물을 지을 때 건축비의 1%를 ‘도서실’에 투자하게끔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발상은 이렇게 하여 지어질 도서실의 관리주체 문제(사서, 독서지도사)로 난항을 겪습니다. 그리하여 ‘도서관진흥법’(1991년 제정)과 당시 거론되던 ‘독서진흥법(가칭)’이 통합되어 1994년 7월 <도서관및독서진흥법>이 제정되었습니다.
1994년에 제정된 <도서관및독서진흥법>의 제9장 독서진흥(제46조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임무, 제47조 독서교육 등, 제48조 독서의 달 행사 등, 제49조 학교 등의 독서진흥활동)과 보칙 제52조 연차보고 등의 조항들은 몇 가지 부분적인 개정 이외에는 큰 틀을 유지하였습니다. 그 개정 내용은 다른 법률의 개정(예를 들어 정부조직법 개정)에 따른 부분 개정과 함께, 도서관 및 독서진흥과 관련한 기금 문제, 그리고 도서관 및 독서진흥위원회 관련 조항들입니다.
<도서관및독서진흥법> 제9조(도서관 및 독서진흥기금)에서는 기금으로는 독서진흥을 위한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보조와 기타 대통령령으로 정한 독서진흥 사업을 추진하도록 하고, 제10조(도서관 및 독서진흥위원회)에서는 독서진흥을 위한 종합계획의 수립과 기금 운용 계획, 기타 독서진흥에 관해 문화관광부장관이 부의하는 사항을 심의하도록 하였으나 법 제정 이후에도 기금 조성이 전혀 되지 않았고, 위원회의 활동도 미흡하여, 결국 기금은 1999년 12월 31일, 위원회는 2000년 1월 12일 근거 조항이 폐지되었습니다.
1) 이 부분은 안찬수, <독서문화 진흥을 위한 법률 제정-독서문화진흥법안(박형준 의원 대표발의)에 대한 의견>, 제17대 국회 제256회 제16차 문화관광위원회(위원장 이미경)의 독서문화진흥법안에 관한 공청회, 2005년 11월 25일, 참조.
(계속)
★ 이 글은 2017년 6월 16일에 열린 서울국제도서전 독서진흥 세미나 〈독서문화 진흥정책의 발전 방향과 과제〉에서 발표된 발제문으로, 필자의 동의 아래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