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휴 │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 변호사
1. 들어가며
이른바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에 관여한 혐의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체부장관 등이 직권남용죄, 강요죄 등으로 기소되어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되었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 특검의 수사결과에 따르면,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은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수시로 문화예술계의 좌파척결을 지시하고, 그 지시에 따라 청와대 정무수석실과 교문수석실이 주도하여 문화예술인들의 정치적 성향, 정치인이나 사회이슈에 대한 지지·반대 표명 등을 이유로 지원 배제를 위한 이른바 ‘블랙리스트’ 명단을 만들었으며, 이를 문화체육관광부를 통해 문화예술위원회 등에 하달하여 각종 지원에서 배제되도록 지시하였고, 실제로 많은 문화예술인과 단체가 지원에서 배제되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블랙리스트 이행에 미온적인 문체부 고위 공무원들은 퇴직을 강요당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실체가 어느 정도 드러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를 접근하는 여러 관점이 있을 수 있겠지만, 본 발표문은 이 사태를 국가가 자신에게 비판적인 정치적 견해를 가진 이들을 국가의 재정지원에 있어서 차별한다는 점에 방점을 두고 살펴보려 한다. 국가가 자신과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진 이들을 재정지원에 있어 차별함으로써 위축시키거나 통제하려는 시도는 이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가 처음은 아니다. 아래에서 보듯 2008년 광우병소고기 반대 촛불집회 이후 이명박 대통령 정권 하에서 소위 ‘불법시위’를 명분으로 정부비판적인 단체들에 대한 보조금 지원을 제한하려는 시도들이 이어졌고, 어쩌면 그 시도들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의 출발점이었을 수도 있다. 따라서 그 시도는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로 실행되었고, 우리 사회는 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였는지 살펴봄으로써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한 시사점을 얻어 그 해결이나 재발 방지를 위한 모색에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2. 정치적 견해 차이에 의한 자원배분 차별 사례 - 불법시위단체 보조금 지원제한
2008년 이명박 정부는 전국적인 미국산소고기 반대 촛불집회 이후 “불법폭력시위를 주도, 주최하거나 적극 참여한 단체”에게 국민세금으로 보조금 등의 재정지원을 하는 것이 보조금제도의 취지나 국민법감정에 반한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당시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단체들에 대한 지원을 배제하고자 했다.1) 그리고 2008년 12월 경 기획재정부의 「2009년도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안 집행지침」에 불법시위를 주최하거나 주도한 단체에 대한 보조금 지원 배제가 명문화되어 도입되었는데, 이후 다른 정부부처나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보조금이나 기금 지원과 관련해서도 유사한 규정들이 도입되었으며, 이러한 현재까지도 계속 이러한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보다 구체적인 내용들은 아래와 같다.
(1) ‘보조금의 예산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 시도
2008년 8월 27일 한선교 한나라당 의원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이라 한다) 위반으로 유죄가 확정된 경우 다음 회계연도에 한해 보조금을 교부받을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보조금의 예산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보조금관리법’이라 한다) 개정안을, 2008년 9월 30일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은 중앙관서의 장은 보조사업자가 3년 이내에 집시법 위반 또는 집회에서의 형법 또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행위로 유죄가 확정된 경우 보조금을 교부해서는 안 되고, 교부결정을 취소할 수도 있도록 하는 내용을 신설하는 보조금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불법시위 명목으로 보조금을 제한하는 내용을 ‘법률’에 반영하려던 시도는 기획재정위원회 논의 단계에서 보조금법에 따른 사업 수행의 타당성 여부와 무관하게 집시법 위반 등을 제재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조금을 금지하는 것이 적절치 못하다는 측면 등을 감안하여 폐기되었다고 한다.2)
(2) 기획재정부의 ‘예산 및 기금 집행지침’에 불법시위 관련 지원 제한 신설
보조금관리법을 통해 정부정책에 비판적인 집회시위를 하는 단체들을 지원배제하려는 시도는 무산된 데 비해 기획재정부의 「2009년도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안 집행지침」에서는 각 중앙관서의 장이나 기금관리주체는 “불법시위를 주최, 주도하거나 적극 참여한 단체, 구성원이 소속단체 명의로 불법시위에 적극 참여하여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처벌받은 단체”에 대해서 보조금의 지원을 제한하여야 한다는 내용이 신설되었다. 이러한 내용은 이후 매 년 기획재정부의 지침에 반영되었고, 아래에서 보듯 실제로 예산이나 기금을 집행하는 여러 정부부처와 공공기관 등에 실질적인 지침이 되어 시행된 것으로 볼 수 있다. 2014년 예산에 대한 국회 부대의견을 반영하여, 2014년 지침부터는 “불법시위를 주최 또는 주도한 단체”로 그 범위가 약간 축소되었으나3) 여전히 매 년 지침에 보조금지원제한사유로 명시되고 있다.
(3) 경찰의 “불법폭력시위 관련 단체 현황” 통보 및 지원배제
2008년 8월 28일 방송통신위원회는 경찰청장에게 공문을 보내 ‘시청자 권익증진활동 지원사업’에 신청한 40개 단체의 불법폭력집회·시위 참여 여부를 조회했다.4) 2009년 2월 6일 경찰청장은 “08년 불법폭력시위 관련 단체 현황”을 작성하여 방송통신위원회를 비롯해 여성부, 노동부, 환경부 등 각 부처에 통보하면서,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참가단체인 1800여개 단체들의 명단을 첨부했다.5) 2009년 5월 방통위가 발표한 시청자 권익증진활동 지원사업 선정 결과, 2009년 공모신청을 한 17개 단체 중 그 중 9개 단체가 지원 대상으로 선정됐으나, 경찰청이 보낸 공문의 불법폭력시위 관련단체 목록에 포함된 8개 단체6)는 최종 탈락했다.7)
(4) 여성부, 문화예술위원회, 문화재청 등이 재정지원 대가로 ‘시위 불참 확인서’ 요구
2009년 2월 경찰청장이 각 부처에 통보한 「2008년 불법폭력시위단체 현황」을 토대로, 정부부처나 공공기관에서는 해당 명단에 포함된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소속 단체들에게는 일종의 ‘시위 불참 확인서’의 제출을 요구하였다. 2009년 3월 여성부는 공동협력사업 단체로 이미 선정된 단체인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의 전화, 경기여성연대 등에게 「2008년 불법폭력시위단체 현황」명단에 등재되어 있다는 이유로 불법시위를 주도하거나 적극 가담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확인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했고, 제출을 거부하자 보조금지급결정을 취소하였다. 2010년 1월 문화예술위원회는 문예진흥기금 지원 대가로 한국작가회의에 확인서8) 제출을 요구하였다가9) 논란이 되자 확인서 제출요구를 철회10)했던 사실이 있고, 문화재청은 ‘문화예산 방문교육 지원사업’ 단체모집 공고단계에서부터 입찰공고의 첨부서류로 시위불참 확인서를 사전에 제출하게 하였다.11)
(5) 견해 차이에 따른 차별
이처럼 불법시위단체 명목의 재정지원 배제 시도는 의회, 경찰, 정부부처와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경찰에 의해 지원배제를 위한 일종의 블랙리스트라 할 수 있는 ‘불법폭력시위단체 현황’이라는 명단이 만들어져 정부 부처에 배포되기도 하였다. 당시에도 물론 이에 대한 해당 단체들을 비롯해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발과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지금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만큼 전 사회적으로 공분을 사지는 않았던 듯하고, 이러한 사태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이나 학계의 논의도 그리 많지 않았다.
이는 혹시 불법폭력시위를 주최한 단체에 대해 보조금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방침이 ‘불법’, ‘폭력’이라는 단어를 통해 보조금 지원에서의 차별이 위법행위에 대한 억제나 질서유지라는 공익을 달성하기 위한 것처럼 포장하고 있고, 표현상으로는 집회시위를 통해 표현하려는 내용에 대해 중립적인 규제처럼 보이기 때문은 아닐까.
그러나 집회시위 과정에서 위법이나 폭력사용이 발생한다 해도 이는 이미 집시법이나 형법에 의해서도 규율되고 있고, 형사처벌이라는 가장 강도 높은 제재수단을 동원하여 이미 제재력을 확보하고 있다. 설령 보조금을 실제로 지원사업이 아닌 집회 비용으로 사용하는 등 전용할 경우에도 교부를 취소할 수 있는 근거규정도 이미 보조금관리법에 있다.12) 보조금관리법은 보조금의 교부 여부를 결정할 때 “법령 및 예산의 목적에의 적합여부, 보조사업 내용의 적정 여부”를 조사하게 되어있고(제17조), “법령과 예산에서 정하는 보조금의 교부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필요한 조건을 붙일 수 있다”(제18조)고 되어 있다. 보조금을 지원하는 목적이나 해당 보조사업의 내용의 적정성과 무관한, ‘불법시위 근절’이라는 목적은 보조금 지원에 있어서의 차별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정당성이나 합리성을 가진다고 보기 어렵다. 보조금을 지급받는 단체 또는 개인이 범할 수 있는 위법행위들을 억제시킨다는 목적을 국가가 보조금 지원배제를 통해 달성하려는 것도 문제지만, 수많은 위법행위 중 유독 오로지 민주사회의 주요 기본권인 집회의 자유 행사와 관련해서 발생하는 위법사유만 보조금 지원을 제한하는 위법사유로 명시한 것은 더욱 자의적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정부나 정부정책에 부합하는 의견을 갖는 이들보다 비판적인 견해를 갖거나 반대하고자 하는 사람들일수록 자신의 견해를 집회·시위의 방식으로 표현할 동기를 훨씬 더 자주 갖게 된다. 그리고 또 기획재정부 지침에서 규정한 “불법시위”의 개념 자체가 모호하고, 정부는 비판적인 내용의 집회·시위일수록 금지하고 통제하고자 하는 동기를 가지므로 정부에 비판적인 집회시위를 많이 개최할수록 불법시위로 규정될 가능성, 그리고 지원에서 배제될 확률은 점점 더 높아지게 된다. 그러한 점에서 ‘불법시위’는 내용중립적인 차별이 아니라 집회시위를 통해 표현하는 ‘견해의 내용에 따른 차별’이 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촛불집회 참여단체 등이 위 지침의 주된 적용대상이었고, 故 노무현 대통령 분향소에 대한 물리적 공격을 감행했던 보수단체에 대해서는 계속적인 보조금 지원이 이루어지는 등 그 지침은 차별적으로 적용되었다.
3. 불법시위단체 지원 배제에 대한 법적 분쟁 사례 및 의미
이와 같은 배제 지침이나 배제의 결과에 대해서 몇 차례 법적 다툼이 시도되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2008년 말 기획재정부가 불법시위단체에 대한 보조금지원을 제한하라는 지침을 통보한 이후 각 부처나 지자체에서는 2009년도 지원금을 교부할 단체들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지침을 반영하여 선정을 ‘거부’하거나, 지원대상자로 선정되어 있던 단체에 대한 보조금지급을 ‘중단’하거나, 지원대상자로 선정한 뒤 지원금을 교부하기 전 단계에서 갑자기 불법시위를 주최, 주도하거나 적극 참여한 적이 없고, 보조금을 불법시위 용도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확인서 제출을 요구하였는데, (1) 지원대상 선정과정에서 배제된 단체는 선정거부처분의 취소소송을, (2) 지원대상이다가 보조금지급이 ‘중단’된 단체는 보조금지급중지결정 취소소송을, (3) 지원대상으로 선정된 후 확인서제출을 요구받았다가 제출을 거부한 뒤 선정결정이 직권으로 취소된 단체들은 그 취소결정을 다투는 취소소송을 제기하였던 것이다.
(1) 영화진흥위원회의 영화단체 지원사업 선정거부처분 취소소송 사례
- 인권영화제, 인디포럼13)
2009년 3월 영진위의 영화단체 사업지원에 ‘인디포럼’은 ‘인디포럼2009’를, ‘인권운동사랑방’은 ‘제13회 서울인권영화제’를 신청하였으나 2009년 7월 결정된 지원대상사업에 포함되지 않고 지원이 보류되다가 2009년 12월 최종적으로 지원이 보류되었다. 이 두 단체는 불법시위 주도 단체에 대한 지원배제라는 기획재정부 지침에 따라 지원이 배제된 것이 위법하다고 주장하며 2010년 1월 28일 선정거부처분을 취소하라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소송과정에서 영진위는 선정에서 탈락한 것이 불법시위단체를 배제하는 기획재정부 지침 때문이 아니라고 주장하였고 법원도 기획재정부 지침의 이행여부를 거부처분 사유로 삼았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며 청구를 기각하였다.14)
기획재정부의 2009년 예산 및 기금운용집행지침에 따라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참가단체 등 정부에 비판적인 집회시위를 하는 단체들에 대한 지원배제나 중단, 확인서 요구 등의 행태가 전 정부적으로 나타나고 있었고,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기획재정부 지침 이행여부가 원고들에 대한 영진위의 지원보류 사유로 밝혀졌음에도 거부처분의 사유로 보지 않은 법원의 결정은 잘 납득되지 않는다.
(2) 계속사업 보조금 지급중단 사례 -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노동자회는 ‘새로 쓰는 여성노동자 인권이야기 사업’을 3년짜리 계속사업으로 신청하여 2008년 행정안전부로부터 선정되어 2008년에 2000만원을 지원받았고, 사업평가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아 별다른 탈락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2009년 5월 2009년도 비영리민간단체 공익활동 지원사업을 확정하면서 원고의 위 사업을 지원대상 사업에서 제외하고 보조금지원을 중단하는 결정을 하였고, 보도자료를 통해 “사업선정일(2009. 5. 1.)로부터 최근 3년 이내 불법폭력 집회·시위 참여 전력이 있는 단체의 사업에 대하여는 지원사업으로 선정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는 내용을 발표하였다. 취소소송에서 재판부는 한국여성노동자회가 불법·폭력 집회를 개최·주도했다고 볼 증거도 없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주었다.15)
(3) ‘확인서’ 미제출로 인한 선정취소결정 취소소송
- 한국여성의 전화16)
2009년 3월 여성부가 민간단체 공동협력사업의 지원단체로 선정한 한국여성의 전화17)는 보조금 지급 이전에 위 단체에게 불법시위에 적극 가담하지 않았음을 인정하는 확인서 제출을 요구하였다가 한국여성의 전화가 제출을 거부하자 지원선정 및 보조금지급결정을 취소하는 처분을 하였다. 확인서 제출을 거부했다는 사정이나 광우병대책회의 소속단체에 포함되어있다는 사정만으로는 지침에 따라 보조금 지급이 제한되는 불법시위 주최 주도 단체라고 보기에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4) 소송의 의미
불법시위 지원배제 사태에 대해서 제기되었던 세 가지 유형의 소송들은 그 중 일부에서는 지급중단이나 선정취소를 취소시키는 등의 성과가 있었지만, 판결의 의미 측면에서 아쉬운 점들이 있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는 인디포럼과 인권운동사랑방을 대리해 소송을 하면서 이러한 지원배제를 ‘견해차에 따른 차별’viewpoint discrimination의 문제라고 규정하고, 소송과정에서도 이 두 단체가 실제 불법시위를 한 단체가 아니라는 점 뿐 아니라, 기획재정부 지침 자체가 법령상의 근거도 없이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고 법치국가원리에 반한다는 점 등을 주장하였다. 특정한 신청자에 대해 실제 재정이 지원되는 결과 자체가 아니라, 그 지원과정에서의 국가의 중립성과 공정성이 확보되고, 심사과정에 반영되는 차별의 기준이 평등권, 표현의 자유나 예술의 자유 등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추구되어야 할 목표이다. 그러나 법원이 영진위의 선정거부가 기획재정부 지침에 근거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전제한 탓에 더 나아가 그러한 차별적 기준의 위법, 위헌성에 대한 판단을 받지 못하였다.
또 한국여성노동자회 사건도 실제 촛불시위를 주최하거나 주도한 단체인지 여부와 같은 사실관계의 문제가 승소의 주요 이유가 되었고, 한국 여성의 전화 판결에서도 불법시위라는 명목으로 지원을 배제하는 지침의 위법, 위헌성 여부를 본격적으로 깊이 다루지는 않았다. “피고가 관련 법규에 의하여 보조금 교부를 결정하면서 붙일 수 있는 조건은 법령과 예산이 정하는 보조금 교부목적을 달성함에 필요한 조건일 뿐 보조금 교부목적 달성과는 무관하게 보조금을 지급받을 단체의 성격과 활동내용을 문제로 삼아 불법 시위 단체가 아니라는 취지의 확인서를 제출할 의무를 그 교부조건으로 붙일 수는 없다.” 라는 부분이 그래도 유의미한 판시일 것이다.
한편 정부가 예산이나 기금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그 지원대상이 되는 단체나 개인을 선정하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수익적인 행정행위로 볼 수 있고, 정부의 재량이 상당히 넓게 인정되는 영역이다. 그런 점에서 그 선정이 위법하여 취소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관철되는 것이 쉽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인디포럼, 인권운동사랑방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정부로서는 왜 해당 단체나 개인이 지원과정에서 선정되지 않았는지에 대한 추상적인 명분들을 언제든지 내세울 수도 있고, 법원은 그런 행정부의 판단의 재량을 존중한다며 쉽게 취소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4.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한 시사점
(1) 현재 진행형인 불법시위 주도단체 배제 지침에 대해서도 지속적 문제제기 필요
불법시위 주도를 명분으로 한 지원배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박근혜 정권 들어서도 기획재정부는 매년 예산 및 기금 집행지침에서 불법시위를 주최하거나 주도한 단체에 대해 보조금 지원을 제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2015. 10. 29. “영화발전기금 보조금 관리규정”에, 2016. 1. 22. “고용노동분야 국고보조사업 관리규정”에, 2016. 8. 1. “외교부 민관협력사업보조금 운영에 관한 규칙”에도 “불법시위를 주최 또는 주도한 단체의 경우” 보조금의 지원을 제한한다거나 보조사업자 선정에서 제외하여야 한다는 등의 규정이 새롭게 명문화되었다.
사실 이번에 문제되는 블랙리스트도 비단 문화·예술계에 국한된 지원배제가 아니었다. 김기춘 등에 대한 공소장의 공소사실과 언론보도된 ‘문제단체 조치내역 및 관리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청와대는 ‘민간단체 보조금 TF’를 운영하면서 각 부처별로 야당정치인 지지, 정부비판의견 피력 등을 이유로 소위 ‘문제단체’ 130곳과 ‘문제인사’ 96명의 명단을 작성하여 지원 배제나 단계적 축소 등의 조치를 취하였다. 문체부 및 문화예술위원회 외에도 고용노동부, 공정위, 통일부, 농림축산식품부, 보건복지부, 환경부, 인권위 등에서 지원하던 단체와 인사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고, 지원배제사유 중에는 여전히 광우병대책회의나 한미FTA 범국민운동본부와 같은 정부정책비판집회참가도 적시되어 있다.
불법시위 명목의 지원배제는 비록 행정규칙의 지위라 해도 기획재정부 지침과 같은 공개된 형태로, 최소한의 형식적 법치주의의 외관을 둘러쓴 채 시행되었던 데 비해, 박근혜 정권의 문화·예술계 지원배제는 비밀리에 매우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시행되고, 비협조적인 공무원에 대한 사직강요까지 하여 관철시키며 법치주의를 농락했다. 사실 단체 대표자의 배우자가 야당의원 보좌관이라거나, 단체 이름에 ‘주체’라는 의미가 들어간다는 이유를 지원배제의 사유로 삼는 것은 법치주의의 외피를 쓰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이다. 그 차별의 기준의 비합리성과 관철방식의 비정상성이 극심하지만, 그만큼 어쩌면 이런 정도의 비상식적인 행태는 쉽게 반복되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 시민들이 이번 정권의 기득권 세력과 유신세력을 일소하고 그런 세력에게 다시 투표를 통해 권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신뢰한다면 말이다.
오히려 불법시위단체에 대해 지원을 배제한다는 기획재정부 지침과 같이 법치주의의 외피를 쓰고 행해지는 차별과 배제가 더 위험할 수도 있다고 본다. 계속 존속하고 있고, 오히려 추가적으로 명문화되기까지 하고 있는 이런 지침은 박근혜 정권 이후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자신에게 비판적인 의견을 표명하는 단체에 대한 지원배제의 명분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사실 참여정부 시절 경찰의 진압과정에서 농민이 사망한 뒤 출범한 ‘평화적 집회·시위문화 정착을 위한 민·관 공동위원회’(공동위원장 한명숙 총리, 함세웅 신부)에서조차 향후 불법시위에 참여한 단체에 대해서는 비영리 민간단체 심사·선정 과정에서 배제하는 방안이 검토된 적이 있다고 한다.18)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대한 해결과정에서 견해 차이에 따른 재정 지원 배제의 원형이 되었던 이러한 지침들도 함께 지속적으로 문제제기하여 위헌성을 제거해나가야 한다.
(2) 견해차에 따른 재정 지원 차별의 위헌성을 명확히 판단 받을 필요
문화예술인에게 문화예술활동을 위한 재정을 지원하는 것이 수익적 행정행위이자 전문적이고 재량적인 판단여지를 갖는 영역이라 해도 그 재량에는 분명히 한계가 존재한다. 그 판단과정에 개입되는 차별의 기준이 어떤 경우에 위헌적인지가 더 논의되고 규명될 필요가 있다. 불법시위 지원배체 지침과 관련된 행정소송에서는 그러한 차별의 위헌성 문제가 본격적으로 다뤄지지 못했다.
국가는 예산을 가지고 여러 분야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의 시행을 위해 사용하고, 그 시행방식으로 정책에 협조하는 단체나 개인에게 세제혜택이나 보조금을 통한 재정지원의 수단을 택하기도 한다. 수익적인 행정행위라도 그 지원대상과 지원대상에서 제외되는 주체 사이에는 늘 차별이 문제되고, 평등권 침해를 주장하는 헌법소원도 심심치 않게 제기된다. 장애인고용촉진을 위한 세제혜택이라거나, 일·가정양립에 친화적인 기업에 대한 재정지원을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는 문제없다고 여겨질 수 있지만, 사실 이 또한 차별 자체는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차별취급이 헌법적으로 정당한지에 대한 판단은 필요하다. 국가가 재정 지원을 함에 있어서 차별취급을 할 때, 어떤 목적으로 차별하는 것은 헌법적으로 정당화되는가, 어떤 기준을 통해 차별하는 것은 정당화되는가에 대한 판단은 재정지원의 분야와 목적, 원칙에 따라 개별적으로 더욱 엄밀하게 논증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지금 문제되는 문화예술계 지원에 있어서 차별은 특정한 정치적 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이나 단체의 문화예술활동을 위축시키고 정권에 우호적인 예술활동만을 장려하겠다는 것으로서 문화예술에 대한 국가 지원이 추구해야 하는 목적인 문화의 보호, 진흥, 다원성 증진에 역행하는 것이자 자유로운 예술창작 및 표현활동을 위축시키는 것으로 차별취급의 합리성을 찾기 어렵다. 이러한 차별적 기준의 설정과 적용이 가진 위헌성이 현재 블랙리스트를 원인으로 제기된 손해배상소송이나 헌법재판 과정을 통해서 더욱 명확히 규명되고 선언됨으로써 의미 있는 선례로 남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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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광우병 촛불집회 이전에도 정부보조금을 받는 단체들이 보조금으로 불법시위를 한다며 지원을 제한하여야 한다는 주장들은 있어왔다. 지방정부 차원에서는 촛불집회 이전인 2007년 2월 9일 창원시의회가 처음으로 불법폭력시위 단체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제한하는 내용의 보조금관리 조례를 통과시킨 바 있다.
2) 제278회 국회(정기회) 기획재정위원회 제24차 전체회의 회의록 중 기획재정위원회 이광재 위원장 발언 참고.
3) “불법시위를 주최·주도하거나 적극 참여한 단체” 문구를 “불법시위를 주최 또는 주도한 단체”로 변경하고, “구성원이 소속단체 명의로 불법시위에 적극 참여하여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구성원이 처벌받은 단체” 문구를 삭제한다는 것이 국회의 부대의견이었음(기획재정부 「2014년도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안 집행지침」 358쪽 참고).
4) 연합뉴스, 2008년 9월 18일자, “방통위, 시청자단체 촛불집회 참여여부 조회” 기사 참조.
5) 미디어오늘, 2009년 5월 13일자, “촛불든 언론단체등 1800곳도 ‘불법낙인’” 기사 참조.
6) 녹색미래녹색세상녹색지구, 서울YWCA, 서울YMCA, 마산YMCA, 거제YMCA, 미디어세상열린사람들, 포항YMCA, 한국여성민우회
7) 최문순 의원실 2009년 5월 14일 보도자료 “방통위, ‘불법폭력단체리스트’ 해당 단체 돈줄끊기 작업 착수” 참조.
8) 확인서의 내용은 “본 단체는 2008년도 광우병국민대책회의에 소속되었으나 실제 불법 시위에는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았음을 확인하며 향후 불법폭력시위 사실이 확인될 경우 ‘문예진흥기금지원금관리규정’ 및 ‘민간단체 보조금의 관리에 관한 규정’ 등 관련규정에 따라 보조금 반환은 물론 관련된 일체의 책임을 지겠습니다.”라는 것이었다.
9) 한국일보, 2010년 2월 7일자 “보조금 받으려면 촛불시위 불참확인서 내라” 기사 참조.
10) 그럼에도 한국작가회의는 이러한 방침에 저항하는 차원에서 보조금을 반환하고 이후에도 지원을 거부하였다.
11) 한겨레, 2010년 2월 16일자 “문화재청, 교육사업 자격에 ‘불법시위 불참’ 요구” 기사 참조.
12) 보조금관리 등에 관한 법률 제30조(법령 위반 등에 따른 교부 결정의 취소) ① 중앙관서의 장은 보조사업자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보조금 교부 결정의 전부 또는 일부를 취소할 수 있다.
1. 보조금을 다른 용도에 사용한 경우
13) 서울행정법원 2010구합10105 사건(인디포럼), 서울행정법원 2010구합4742 사건(인권운동사랑방). 이 두 단체가 제기한 소송은 참여연대 공익법센터가 공익소송으로 지원한 것이기도 하다.
14)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사업지원을 보류하는 과정에서 원고들이 전형적인 영화단체라고 보기 어렵거나, 단체의 자생력을 키우기 위하여 장기간 동안의 지원은 제한되어야 한다거나(인디포럼이나 인권영화제 모두 2000년부터 2008년까지 9년 동안 영화단체 사업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바 있다.) 독립영화제를 표방하는 원고와 유사한 사업이나 비슷한 성격의 단체가 많아 중복지원을 피할 필요가 있다거나 하는 등의 의견이 제시되었던 점을 들며, 기획재정부 지침에 근거한 선정거부가 아니라고 보았고, 영화단체 사업지원 대상 선정은 전문적, 정책적 판단에 기초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라 선정과정의 재량권 행사가 위법하다고 쉽게 단정할 수 없다는 논리도 제시하였다.
15) 그 외 의견제출의 기회가 없었던 점 등 절차적 하자도 문제삼았다.
16) 서울행정법원 2009구합36170 선정및보조금지급취소결정취소
17) 데이트폭력 예방 및 근절을 위한 교육·홍보사업에 대해 선정됨
18) 노컷뉴스, 2006년 5월 17일자 “불법폭력 시위 단체, 정부보조금 배제 검토” 기사 참조.
19) 차별의 문제를 주된 쟁점으로 다뤘지만, 불법시위단체 지원배제 지침의 존재 및 시행 자체로 집회시위의 자유에 대한 위축효과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역시 그러한 지원배제 기준의 존재와 시행이 예술의 자유 및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축효과를 가져온다는 점 또한 위헌성 여부의 중요한 쟁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