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화된 도서검열의 현장을 말한다
김영미 │ 어린이책시민연대 활동가
도서 검열은 금서의 역사와 맞물려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중세는 종교 권력이 주체가 되어 금서를 만들었고 이후에는 국가 권력이 금서를 만들었다. 도서를 검열하고 금서를 만드는 것은 권력을 가진 자가 개인의 양심과 표현의 자유를 부당하게 억압하는 것이고 인간의 양심을 장악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확대는 이러한 권력과 맞서 싸우고 있는 것이다. 현대 사회는 종교와 국가 권력이 느슨해진 틈을 타 자본 권력이 검열의 주체로 더해져서 암암리에 개인의 알 권리를 제한하고 있다. 상업 광고와 자본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여 다양한 책이 출간되지 못하거나 출간되었다 할지라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기도 한다. 어떤 책이라도 자유롭게 만나기 위해서는 자본 권력이 검열의 주체로 등장한 것에 대해서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경계를 늦추지 않고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은 국가 권력이 도서를 검열하고 금서를 만드는 사회 분위기이다. 국가 권력이 도서를 검열하고 금서를 만들어 내는 사회에서는 모든 구성원이 검열자가 되기 쉽다. 구성원들의 자유를 보장해야 하는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을 묵인하는 상황에서 특정 개인이 저항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어떤 책이든 자유롭게 만나지 못하는 것이 당연시되면 어떤 책에 대해서 스스로 부끄러워 숨기거나 불쾌감 혹은 두려움으로 터부시하는 등 자신을 검열하는 검열자가 된다. 자기 검열이다. 자기 검열을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같은 잣대로 바라보기 때문에 비난하거나 규제하려 든다. 그 사회는 정부 권력이 작용하지 않아도 자기 검열과 타인을 검열하는 힘이 저절로 작동하며 검열이 내면화된다. 그래서 검열 제도의 완성은 자기 검열에서 비롯하여 서로서로 검열하게 만드는 검열의 내면화이다.
도서 검열이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에서 도서관인 출판인 작가 등 시민들이 나서서 독서의 자유와 도서관의 자유를 선언해야 할 이유이다. 누구나 어떤 책이든 자유롭게 만나고 해석할 독서의 자유와 어떤 자료든 자유롭게 수집하고 제공할 권리를 가진 도서관의 자유가 확보될 때, 외부로부터 어떤 간섭도 검열도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현재 국가 기관의 도서검열뿐만 아니라 각 개인의 자기 검열이 사회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5월 문화체육관광부와 경기도교육청이 사실상 도서 검열을 지시하는 사건이 있었을 때 도서관 사서들과 많은 독서 관련 단체들이 나서서 항의하고 분노했던 것도 자기 검열의 사회적 확대에 대한 것이었다. 정부와 교육당국이 어린이·청소년 도서 중 12권이 편향된 역사의식에 의해 저술되었다는 한 민간단체의 자의적인 주장에 근거하여 공공도서관 및 학교도서관의 추천도서 적절성에 대해 재고하도록 공문을 내려보냈다. 공문이 시행된 뒤, 정부기관이 부당한 지시를 했다고 항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책들이 목록에서 삭제되거나, 일부 도서관에서는 실제 폐기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에 도서관과 독서문화 관련 단체들과 교육단체들의 연대인 「바람직한독서문화를위한시민연대」에서 긴급 토론회를 열고 「국가 권력은 독서의 자유 도서관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라」 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성명서에서 요구한 것은 크게 네 가지이다.
바람직한 독서문화를 바라는 우리는
첫째, 국가권력이 독서의 자유, 도서관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기를 요구한다. 독서문화와 도서관문화의 현장에서는 교사와 사서의 자율성을 강화하여 독자의 권리를 지키고, 학문·출판·사상의 자유를 지켜내도록 해야 한다.
둘째, 다양한 정보와 자유로운 사상의 광장인 도서관의 본질을 지켜서 우리 국민이 양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며 인간의 존엄을 실현할 수 있도록 정부와 교육당국은 국민의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하길 요구한다.
셋째, 개인의 독서이력을 관리하지 않고 개인정보를 함부로 열람하지 못 하도록 제도를 강화하길 요구한다.
넷째, 도서관이 외부의 압력에 의해 책을 폐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부당하게 폐기된 책이 제자리에 꽂히길 요구한다.
위 요구사항은 도서 검열이 우리 사회에 내면화되지 않기 위해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다. 정부와 교육당국의 사실상 검열지시는 사서와 교사를 무시하고 독자의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은 물론이고 공공도서관과 학교 현장에서 자기 검열의 기제가 작동하도록 한 것이다. 국가 권력이 도서 검열을 지시하는 것은 ‘검열’ 자체의 비민주성에 대한 문제보다 시민들이 스스로 ‘자기 검열의 사회적 확대’를 초래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 역사적인 배경으로 볼 때, 정부 권력이 저지르는 비민주성에 개인이 저항하기보다는 두려움과 불안감에 싸여 스스로 양심의 자유를 포기해 버리기 쉽다. 우리 사회는 오랜 군사독재 시기를 거치면서 검열 문화에 대한 트라우마를 겪었다. 즐겨 부르던 대중가요가 어느 날 금지곡이 되고 언론에 실리는 기사가 검열에 걸려 편집 당하거나 언론 통폐합이라는 이름으로 기자가 해직당하고, 특정 책을 읽은 학생과 시민들이 잡혀가는 경험을 했다. 가까운 시기에는 2008년에 ‘국방부 불온서적 리스트’ 라고 해서 23종의 책이 군대에서 금서가 돼서 논란이 되는 등 끊임없이 검열의 악령이 우리 곁에 도사리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지난해에 정부와 교육당국에서 사실상 도서를 검열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특정 단체가 문제도서라고 발표한 목록을 그대로 받아 일선 도서관에 추천도서를 제고 하고 이미 읽은 학생을 찾아 지도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다. 그 이후 실제로 문제 도서가 있다고 발표된 학교도서관에 일명 ‘문제도서’로 지목된 책을 검색했을 때, 이미 폐기했거나 폐기 예정이라고 나왔다고 한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자기 검열에 들어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수년간 억압에 의한 두려움과 불안을 경험했기 때문에 정부의 검열이나 논란을 피하려는 사람들은 훨씬 더 광범위하게 자발적으로 자기 검열을 하는 모습이었다.
올해 7월1일 자 한겨레 신문에는 「군마트에서 팔던 책, 5종 어디로 사라졌나」 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1월부터 군마트에서 팔던 역사책 5종이 갑자기 판매 중지됐다고 한다.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 『글자 전쟁』 『칼날 위의 역사』 『숨어 있는 한국 현대사 1』 『만화로 읽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이 책들은 모두 국방부 심의까지 거쳐 판매되고 있었는데 갑자기 국방부의 지시로 판매 중단됐다고 확인했다고 한다. 작가와 출판사 쪽에서는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판매를 중단한 것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며 ‘뭔가 심기를 불편하게 한 모양’이라고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정부 당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어떤 부분이 발견되어 금서 조치를 한 것이라고 의심하는 것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작가나 출판사도 정부의 심기를 불편할 일을 안 만들려고 자기 검열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이런 게 자기 검열의 사회적 확대이고 도서 검열 문화가 사회적으로 내면화되는 것이다. 물론 정부당국의 도서 검열이 이루어졌다는 것 외에 다른 상황을 상상할 수도 없다.
검열은 힘이 있는 자가 다른 사람의 양심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통제하려는 것이다. 국가 권력으로부터 받은 검열의 경험은 스스로 자신을 검열하는 검열자가 되기도 하지만 자신보다 힘이 약한 대상에 대해서는 검열의 기제가 발동한다.
지난해 토론회 이후 학교와 출판계에서 공공연하게 들려오는 자기 검열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부산의 모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작가와 만남을 기획하며 학생들의 요구를 수렴하여 덴마크 교육을 소개하는 책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작가를 초대하려 했는데 교장선생님이 이를 알고 담당 교사를 불러 좌익 빨갱이 작가를 왜 부르냐며 중단하라고 했다고 한다. 또 어느 학교에서는 『핀란드 교육혁명』에 대해 ‘혁명’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책이 학교도서관에 있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빼라고 했다고 한다.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서 성폭행 내용이 들어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가 높던 『위저드 베이커리』는 어느 순간 학교도서관에서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출판계에서도 자기 검열의 소식이 들려왔다. 문제의 도서로 지목된 책 『나는 공산주의자다』 가 제목을 달리하여 『어느 혁명가의 삶』으로 재출간됐다. 권력기관에서 하는 검열의 두려움과 논란에 대한 불안감, 피로감, 손실에 대한 우려 때문에 스스로 검열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에, 우리 사회에 도서 검열의 분위기가 얼마나 만연하고 내면화되어 있는지 살피고자 학교 도서관과 공공도서관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다. 사서와 도서관 자료선정위원회가 자료를 수집하고 제공하는 과정에서 민간의 간섭 혹은 검열이 이루어지고 있는 사례를 인터뷰와 제보 형식으로 모았다. 학교와 사회에서 민간들끼리 공공연히 도서 검열이 이루어지는 사례를 짧은 기간에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어서 우리 사회 깊숙이 검열이 내면화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공공도서관에 비해 학교도서관에 비치하거나 제공하는 자료에 대한 간섭이나 우려, 제재가 더 많이 이루어지고 있어서 학교에서 검열이 더 일반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학생들은 미성숙하고 교육을 받아야 할 대상이라고 보는 왜곡된 시각과 맞물려 검열이 더 많음을 짐작할 수 있고, 기본적으로 검열은 개인의 알 권리와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목적이 있다. 더 많이 침해받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학교도서관 및 공공도서관 관계자, 독서문화 운동단체들이 현장에서 경험한 사례를 모은 것을 바탕으로 도서 검열이 어디서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 살펴보며 우리의 독서문화를 성찰하고자 한다.
공공도서관의 경우 도서 검열이 이루어지는 사례를 보면 종교적인 이유로 폐기를 요구하거나 직위를 이용해 자료 수집에 대해 압력을 넣는 경우가 있었다.
‘종교 관련 자료 중에 이단으로 판단되는 책이 있으니 당장 폐기 처리하라고 요구해서 해당 자료에 대해 관련 논문 등을 보여주며 이용자에게 안내했으나 계속 항의하며 민원을 넣었다.’ ‘특정 종교책이 더 많아야 한다고 항의하거나 자신이 믿는 종교가 아닌, 다른 종교 책을 찢거나 낙서를 해놓는 경우도 있다.’
연속 간행물의 경우 몇몇 진보적 색채를 띠는 주간지와 월간지에 볼펜으로 ‘이런 빨갱이 잡지는 도서관에서 구입하면 안 된다’는 식의 낙서를 지속적으로 해놓아서 계속 지켜보고 있었는데 반대로 보수적이라고 생각되는 간행물에 다른 이용자가 ‘이런 보수 꼴통들의 말을 믿어서는 안 된다’고 낙서를 해서 자료를 훼손시키기도 했다.
‘국회의원이나 공직자들이 특정 자료에 대한 정보를 요구해서 불안감을 주었다. 한 국회의원은 친일인명사전을 구입한 도서관을 조사하라는 공문을 보내서 도서관 자료수집을 간섭했다.’
‘도서관에서 나름대로 수서 기준을 정하고 있는데 특정 단체에서 자신들이 낸 간행물을 넣으라고 압력을 넣었다.’
학교도서관의 경우 초·중·고등학교 사서, 학부모, 교사가 경험한 학교도서관의 자료수집에 대한 간섭 혹은 검열의 사례를 보면, 교장선생님의 간섭이 많았고 교사와 학부모들이 요구한 경우도 많았다. 특정 책이 학생들에게 맞지 않다며 수서 목록에서 제외시키라고 하거나 소장하고 있는 책을 치우라고 요청하기도 하고, 학생에게 대출 불가나 초등학생인 경우 고학년에게만 대출하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물론 학생들도 자신들이 보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빼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교사나 학부모가 학교도서관에 있는 책에 문제 제기를 하며 빼야 한다고 하거나 대출불가 조치를 하는 이유를 보면 교장, 교사, 학부모가 터부시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이고, 그런 책을 학생들한테 제한하려 하는 것은 학생들을 미성숙한 존재로 보고 과잉보호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미성숙한 존재이기 때문에 변별력이 낮아서 어떤 책은 보면 위험하다거나 교육상 나쁜 영향을 받는다고 보는 것 같다.
교장 선생님들이 학교도서관에 두면 안 된다고 하는 책을 보면 노동이나 정치, 역사에 대해 관심 갖는 것을 우려하고 특정 낱말이나 행위에 대한 저항감이 컸다.
1) 노동이나 노동자 이야기는 아직 몰라도 된다: 『나를 낮추면 다 즐거워: 여성 노동자의 벗 조화순』 『전태일 평전』
2) 제목에서 거부감이 느껴진다. ‘혁명’이라는 말을 아이들이 알 필요가 없다: 『핀란드 교육혁명』
제목이 아이들에게 비교육적이다: 『학교는 우리가 접수한다』 『담배 피우는 여자』 『프랑스 여자는 살찌지 않는다』
3) 정치성향 다르거나 선호하는 인물이 아닌 인물이야기는 정치적이라고 제외시키도 했다: 『행복 바이러스 안철수』 『바보 노무현』 『10명의 사람이 노무현을 말하다』
4) 미국에 대한 적개심을 심어준다: 『노근리, 그 해 여름』
5) 독립운동을 하였으나 공산당에 가입한 인물이다: 『몽양 여운형 평전』
6) 역사서가 편향적, 편파적이다: 『역사 논쟁』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7) 선생과 제자 사이에 벌어지는 내용이 자극적이다: 『악의 교전』
8) 종교적이다: 『엄마, 이럴 땐 어떻게 기도해요?』
학부모의 경우는 성에 대한 이해를 다룬 것이나 잔인한 것, 부모를 거스르는 책에 대해 문제 제기하며 아이들이 읽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학부모들은 특히 성에 관한 터부시 경향이 커서 무척 예민하게 반응했다.
1) 성교육서가 민망한 장면이 나오고 행위가 적나라하다. 성폭행 내용이나 동성애 관련 내용이 나오는 것은 보여주고 싶지 않다: 『나도 엄마 배 속에 있었어요?』 『사춘기와 성』 『엄청 민망한 사춘기 성교육』 『레슬리의 비밀 일기』 『엄마, 남자와 여자는 어떻게 달라요?』 『Why? 사춘기와 성』 『소녀, 소녀를 사랑하다』 『위저드 베이커리』
2) 그림이 야하고 육감적이다: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명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초한지』 『열국지』 『삼국지』 『목욕의 신』 『슬픈 란돌린』 『만화 토지』 『구성애 아줌마의 뉴초딩 아우성』
3) 죽는 묘사가 너무 사실적이라 초등학생에게 부적합하다: 『100만 번 산 고양이』
4) 10대 소녀의 가출이 부모 입장에서 불편하다: 『산적의 딸 로냐』
5) 벽장 속에 아이를 가두는 설정 자체가 끔찍해서 대출 해주서는 안 된다: 『벽장 속의 모험』
6) 사람 몸을 설명하는 글과 그림이 있는데 너무 야하다: 『보리 국어사전』
교사와 학부모들이 도서관에 두면 안 된다고 하는 책은 잔인하고 폭력적인 것과 자살을 소재로 한 책이고, 교사, 학부모 학생들까지 모두 반대한 책은 선정적이고 야한 책이다.
1) 자살을 소재로 한 내용이 담긴 책이라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태일이』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2) 잔인하고 폭력적이다: 『검은 집』 『화이』 『어느 날, 신이 내게 왔다』
3) 선정적이고 야하다: 『은교』 『미실』 『벙어리 신부』 『와인이 있는 침대』 『19세』 『짝퉁 인디언의 생짜 일기』 『열네 살의 인턴십』
교사, 학부모, 교장, 학생 할 것 없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읽을 책에 대해 스스로 자기 검열을 하고 있고, 그 기준으로 정부 권력이 하듯이 다른 사람들의 알 권리를 통제하는 검열을 시도하고 있다. 검열을 하는 사람의 권력이나 영향력에 따라 영향이 미치는 범위는 다를 수 있지만 스스로 검열하거나 타인에게 검열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검열이 있는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익힌 것이기도 하지만 독서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누구나 어디서나 무엇이든 읽을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고, 도서관의 자유와 독서의 자유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독자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권리도 침해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어떤 책을 읽고 싶은지 선택할 수 있고, 같은 책을 읽고도 독자에 따라 수만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100만 번 산 고양이』를 읽으며 고양이의 죽음을 무척 슬퍼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고양이가 흰고양이를 만나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나 흰고양이를 잃었을 때 슬픔이 전달되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책을 읽는 즐거움은 바로 그것이다. 생각지도 못 한 감정의 충만함을 경험하는 것,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거나 성찰하게 되는 것이 어디에서 비롯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한 가지로 단정하여 모든 이에게 좋고 나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사람 수만큼 다양한 생각과 감정, 취향을 인정한다면 자신이 느낀 것이 모두에게 적용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금서의 재탄생』은 역대 금서였던 책을 소개하며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다르게 받아들이게 됐는지 저자의 경험과 함께 보여준다. 18세기 『젊은 베르테르 슬픔』이 친구 약혼녀를 사랑하는 내용이라 방탕하다거나 자살을 부추긴다고 금서가 되기도 했으나 정작 읽은 독자들의 반응은 다양하게 나타났다. 유럽 신사들은 젊은 베르테르가 입은 푸른 프록코트에 노란 조끼를 받쳐 입고, 숙녀들은 향수와 보석, 부채를 애용했다고 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모방작과 속편이 나오고 오페라와 연극 등이 무대에 올려지기도 했다고 한다. 책 한 권이 읽는 독자들에 의해 다양하게 해석되고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음란하고 저속하다고 비판받아 금서가 됐던 『채털리 부인의 연인』 역시 누군가에게는 음란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겠지만 어떤 독자는 제1차 대전 이후 영국의 암울함을 이보다 잘 보여주는 책이 없다고 평하기도 하고 낡은 영국을 개혁하는 가족의 가치를 새롭게 정의한다는 상념을 갖게 됐다는 평을 하기도 했다.
한때 금서였던 책이 오늘날 고전이 되기도 하는 것을 보며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도덕적 타락을 방지하기 위함이라는 이유로 권력에 의해서 금서가 되는 일이 얼마나 우리 삶을 획일화하고 단조롭게 하는지 알 수 있다. 무엇보다 개인이 스스로 느끼고 감동하고 판단할 수 있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오만이고 오류이다.
‘독서의 자유’와 ‘도서관의 자유’ 선언이 검열을 막는 일이다
독서의 자유는 읽을 자유이다. 어떤 책이든 언제, 어디서든 어떻게든 자유롭게 읽을 자유이다.
미국 도서관 협회와 미국 출판인 협의회의 「독서의 자유선언」에 보면 독서의 자유에 대해 잘 기록하고 있다. ‘특정 도서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고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딱지를 붙이고 불온한 서적이나 작가의 명단을 작성 유포하여 도서관에서 몰아내려는 시도가 공권력이나 민간단체들에 의해 도처에서 벌어집니다. 정치체계 훼손 및 도덕적 타락을 방지하기 위해 국가안보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검열과 억압이 필요하다는 시각에서 비롯된 이 같은 조치들은 우리 국가가 지켜온 표현의 자유의 전통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음을 드러냅니다.’
자유를 억압하고 금서를 만들고 특정 책만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누구나 어떤 책을 해석하고 삶에 적용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망각한 것이다. 모든 개인이 스스로 판단하고 선을 택하고 악을 거부하리라는 민주주의의 대전제를 부인하는 것이다. 무엇을 읽고 무엇을 믿을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지 못하면 독서의 자유도 민주주의도 가능하지 않다.
검열의 문화를 만들어 내는 권력자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방해하는가? 테러 방지법이 노리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자기 검열의 일상화라고 한다. 두려움을 갖게 하는 일이다. 도서를 검열하려는 사람들이 노리는 것도 이와 같을 것이다. 아니 의도하지 않아도 그렇게 된다. 교사나 학부모가 학교도서관에 있는 책을 선정적이고 야하다고 문제 삼으면 검열받는 자는 자신이 고른 책이 선정적이고 야한 책인지 살피느라 주변에 누군가 있을 때 감추게 되고 죄책감을 갖는다. 또한 어떤 책이라도 읽은 독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데 그 여지를 주지 않는다. 오로지 선정적이고 야한 것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책에 담긴 다른 부분, 인간의 섬세한 심리나 상황, 부조리 등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힐 기회를 만나지 못한다. 또한 익숙한 것과 결별하고 새로운 길을 선택할 기회를 갖지 못 하고 개인이 누려야 할 자주적인 정신생활을 하지 못한다. 개인의 양심을 통제 하게 되고 다양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지 못 하고, 우리 사회의 진보를 방해한다. 무엇보다 민주시민으로서 삶을 살아가기 힘들다.
가정과 학교, 도서관, 출판계, 작가들까지 자기 검열에서 벗어나야 하고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도서 검열 문화를 들춰내어 털어내야 한다.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노력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독서의 자유, 도서관의 자유를 주장하고 지켜나갈 때 가능해진다. 우리는 1997년 제35회 전국도서관대회 개회식에서 「도서관인 윤리선언」을 선포하였다. 도서관인 윤리선언에 담긴 내용을 밑거름 삼아 독서 도서관계에서 독서의 자유와 도서관의 자유를 선언하고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
누구나 어디서나 무엇이든지 읽을 권리를 위하여 도서관의 자료 수집과 자료 제공의 자유와 이용자의 비밀을 지키고 모든 검열에 반대하는 도서관 자유선언을 기대한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를 지키는 가장 소중한 권리. 논란과 비판이 두려워 '자기 검열'하지 말아야 합니다. 앞으로도 거침없이 할 말 합니다. 실수 있다면 반성하고, 잘못 있으면 책임지고. 불안과 두려움은 제 것이 아닙니다. 제게 대한 비판도 존중합니다."*
* 2016년 7월 6일 자 표창원 의원 SNS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