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작은도서관’이란 말은 정겹고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아름답고 쉬운 말입니다. 그러함에도 외국의 도서관 인들에게 설명할 때는 이해시키기 쉽지 않은 용어 중 하나일 것입니다. 선진국에도 크고 작은 도서관들이 있지만, 모든 도서관은 그 지역의 ‘도서관 시스템’에 속해 있어, 별도로 우리나라의 ‘작은도서관’과 같이 독자적인 개념은 없기 때문입니다. 즉 선진국에서 소규모small 도서관이라 하면 봉사 인구수나 도서관 규모 등 환경적 요인으로 정의되며, 보통 공공도서관의 ‘분관’으로 지방자치단체에 의해 운영되는 도서관을 말합니다. 한 예로 미국에서 ‘small library’는 인구 25,000명 미만의 지역에 봉사하는 소규모 공공도서관을 말하는데 전체 공공도서관 중 3/4이 넘는다고 합니다.
우리의 작은도서관과 가장 유사한 형태의 도서관은 일본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일본에서 최근까지 ‘어린이문고, 가정문고, 지역문고’ 등으로 쓰이고 있는 ‘문고’文庫란 용어입니다. 본래 ‘문고’란 말은 일본에서 ‘도서관’이란 용어가 쓰이기 전부터 ‘library’를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880년에 ‘도서관’이란 말이 공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고 나서, ‘도서관령’이 공포1899된 이후에도 도서관 용어 대신 문고란 말이 자주 쓰였습니다. 그러다가 오늘날은 제도권 공공도서관 외곽의 민간 도서관 활동을 주로 ‘문고’란 용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활동사례는 토모에문고トモエ文庫를 운영하고 계신 쿠사가야 케이코 선생님의 오늘 강연에서 자세한 설명을 해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작은도서관’ 형태는 오늘날 서구 여러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더라도, 지금부터 2~3백 년 전에 도서관 선진국들에서 활발히 전개되었고 세계 도서관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도서관운동이었습니다. 우리와 비교해 보면서 시사점을 찾기 위해 우선 이를 살펴보겠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과거시대의 도서관은 대부분 특수 계층에게만 서비스하는 기관이라서 일반 대중들은 접근하기 어려웠습니다. 15세기 인쇄술의 발명 이후에도 시민대중의 독서를 위한 공적公的 기관은 없으면서, 책의 접근은 철저하게 시장市場에 맡겨 져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다가 정치·사회적인 발달과 민권의식이 싹트기 시작한 18세기 전후해서 영국과 미국에 과거에 볼 수 없는 새로운 도서관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근대적인 공공도서관이나 무상의무교육 제도가 마련되기 1백 수십여 년이나 앞선 시대에, 시민들이 스스로 책에 접근하고자 하는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시대에 시도했던 몇 가지 풀뿌리 도서관운동의 사례1)는 아래와 같습니다.
1 교구敎區도서관17세기 말 경에 영국에서 브레이T. Bray목사가 가난한 지역의 성직자와 일반 대중들의 이용을 위해 교구 단위에 소규모 도서관 설치 운동을 전개, 60여개의 교구도서관을 설치했습니다. 브레이 목사는 그 후 식민지였던 미국으로 발령을 받아 가서도 메릴랜드주 등에 또 수십여 개의 교구도서관을 설치했다는 기록이 전합니다.2 회원제會員制도서관자발적으로 모인 중산층 시민들이 조합 형태로 참여하고 기금을 마련하여 설립·운영하던 작은도서관 형태입니다. 영국에서 1720년경 북클럽 형태로 출발하다가 미국에서 B. 프랭클린이 1731년에 ‘필라델피아 무료도서관 조합’을 만들면서 공공도서관 제도가 생기기까지 1백여 년간 여러 지역으로 확산하였습니다. 뉴잉글랜드 지방에만 1천여 개 이상 설치되었는데 평균 존립기간은 35년 정도였다고 합니다.3 기술공도서관mechanic institute library회원제도서관의 변형으로 공장지대의 근로자를 대상으로 설립된 도서관입니다. 1823년 영국 글래스고에 최초로 설립된 후, 공공도서관 법제화1850 때까지 400여 개로 늘어났습니다. 도서관 운영경비는 경영주나 독지가들이 지원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대부분 근로자들이 부담하는 적은 경비로 운영하였습니다. 공공도서관 제도가 처음으로 생길 때에 몇몇 지역에서는 이 도서관 건물 장소에서 공공도서관을 개관하는 사례도 있었다고 합니다.4 상업도서관미국 보스턴 지역의 상인 우드W. Wood가 영국의 기술공도서관 아이디어를 도입해 19세기 초반 보스턴, 뉴욕 등지에 산업체 직공의 교육과 복지 개선을 위한 도서관으로 설립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이 도서관의 회원 직공은 영국의 기술공도서관 회원보다 사회적 수준이 높았고 장서도 많으며 전문화되어 갔답니다.5 대출도서관영국은 에든버러1725에서, 미국은 메릴랜드주1762로부터 영리목적의 대출도서관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 도서관은 대중의 독서 기호에만 초점을 맞추긴 하였으나, 공공도서관 탄생 이후에 공공도서관들이 대중의 지지를 얻고자 이용자의 독서 욕구에 신속히 대응토록 하는 경쟁 관계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합니다.
이러한 유형의 독서활동들은2) 시민들이 책읽기의 필요성을 자각하고 자발적인 의지로 시작하여 매우 의미가 컸었는데, 시점은 다르지만 오늘날 우리의 ‘작은도서관’ 개념과 같은 도서관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과거의 특수 계층만 이용하던 중후한 도서관과는 달리 일반 대중들이 약간의 경비 부담이 있더라도 자기 의지에 따라 접근할 수 있는 문턱 낮은 도서관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장서는 학문적인 책보다는 젊은이들이나 시민의 요구에 따른 책을 구비하고 활용함으로써, 후대 공공도서관에 학술·종교 책들만이 아니라 대중적인 컬렉션도 가능하다는 인식변화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특정 개인이나 단체 등 민간 차원의 임의롭고 자발적인 행위에 의거하기는 하였으나, 중세 때부터 내려오던 학술도서관, 귀족들의 개인도서관들의 무거운 분위기를 벗어난 경쾌한 분위기의 풀뿌리 ‘작은도서관’이었던 것입니다.
1백여 년간 사회 저변의 이러한 도서관운동 영향으로, 드디어 19세기 중반에 영국과 미국에서는 ‘법률에 바탕을 두고 정부 재정으로 운영하는 공공도서관’이라는 민주적 제도를 법제화하고,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운영하는 공공도서관을 탄생시켜 전 세계에 확산시켰습니다. 공공도서관 제도화 이전의 이러한 풀뿌리 민간운동을 후세에 학계에서는 ‘준공공도서관’semi-public library 또는 ‘사회적도서관’social library 운동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 후 공립의 공공도서관과 분관이 지역 곳곳에 확산되면서 과거 1백여 년 동안 풀뿌리 운동으로 활동하던 이들 민간도서관 중 규모가 큰 회원제도서관들은 사립 공공도서관으로 변형되어 아직도 명성을 유지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것은 시대적 소임을 다하고 소멸하거나 해당 지역의 공공도서관 체제에 편입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이 시대 작은도서관은 시민 대중에게 풀뿌리 독서활동의 기회를 제공하며 책읽기의 가치를 확산시켜 제도권 도서관을 갈망하는 토양을 다졌고, 정부 당국은 이러한 저변의 욕구를 바탕으로 세금으로 운영하는 공공도서관 관련법을 제정·시행하였습니다. 이렇듯 선진국의 작은도서관은 ‘공공도서관 제도 촉매형’ 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운동이 다져놓은 토양에서 태어난 공공도서관 제도는 빠른 기간에 뿌리를 내려 민주사회의 핵심기관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과거에 훌륭한 도서관과 전적 문화의 전통을 지니고는 있었으나 역시 백성들이 도서관과 책에 접근할 수 있는 사회적 제도는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구한말 개화기 때 유길준 선생의 서유견문록西遊見聞錄, 1895에서 서양의 도서관을 소개함으로써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공공도서관 개념이 알려졌던 것입니다. 개화파 지식인들은 공공도서관을 애국계몽을 위한 교육시설이며 개화문명의 상징으로 받아들이고, 근대 도서관 한 곳을 만들려는 운동을 벌이기도 하였으나, 중도에 일본에 합병되어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일제시대에 몇 개의 공공도서관이 세워졌으나 일본 식민정책의 일환으로 인식되어 우리 국민의 정서와 밀착하는 데 한계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공공도서관 운동을 생각해 볼 때 안타까운 점이 있습니다. 서양은 사회 저변 층의 독서 욕구를 조직화하며 풀뿌리식 작은도서관을 바탕으로 하여 공공도서관 제도가 탄생하였는데 반해, 우리는 사회 저변에 자생적인 풀뿌리 운동의 바탕 없이 그 개념이 선각자에 의해 갑자기 수입되었다는 점입니다. 우리에게는 공공도서관 제도가 알려지기 이전에, 자유로운 책읽기에 대한 사회적 갈증을 채우려는 대중들의 자발적인 방안 모색이나 풀뿌리 활동의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3) 일제시대에 일부 지역에서 독서활동 권장 사례가 보이기는 했으나 ‘지식의 대중적 확산’ ‘시민의 읽을 권리 확보’ 등의 도서관적 가치보다는 독립운동이나 문맹퇴치 연장선에서의 국민계몽 운동의 성격이었던 것입니다. 해방 직후는 혼란과 전쟁이 겹쳐 일제시대로부터 물려받은 소수의 공공도서관 유지·관리에 급급하여 자발적이며 자주적인 민간 도서관운동은 기대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대중들의 자발적인 풀뿌리 도서관운동의 바탕이 없는 여건에서 외부로부터 수입한 공공도서관 개념과 제도로서는 우리 사회에 공공도서관 뿌리를 정착시키기 그만큼 어려웠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며, 우리 공공도서관이 오랫동안 시민과 유리되어 오거나 발전이 어려웠던 이유 중에는 이러한 사회·역사적 요인도 작용했다고 판단됩니다.
우리나라의 본격적인 풀뿌리 도서관운동은 1961년에 시작한 마을문고 운동부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운동은 한국 전쟁 휴전 직후, 울산사립도서관·경주읍립도서관장과 한국도서관협회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던 엄대섭이, 우리의 실정에서는 농촌 마을 단위의 도서관운동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것입니다. 당시 공립 공공도서관은 대도시에 18개 관 정도인데, 그나마 학생들의 공부방 수준에 머물러 있는 형편이며, 농촌에까지 공공도서관이 보급되기를 기다리는 일은 하청 세월이니, 꼬마 도서관 격인 문고 설치 운동을 벌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독서습관이나 도서관 이용습관이 적고 사회·경제적인 수준이 낮을수록 주민 가까이 도서관이 있어야 하는 만큼, 농촌 마을에 소규모이더라도 주민과 밀착할 수 있는 도서관운동을 민간차원으로 펼쳐야 한다는 논리였습니다.
문고운동 전개방법은 독지가들에게 고향에 문고설치를 권유하여 마을에 설치한 후, 문고는 독서회가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주민 공동의 노력으로 새로운 책을 사 보태도록 하여 육성해 나간다는 전략이었습니다. 70년대부터 전국 3만여 마을로 문고가 급속히 확산되다 보니 자연히 부실한 문고가 늘어나고, 중앙단위 추진체가 재정난으로 어려워져 1980년 새마을운동중앙본부에 흡수되었습니다. 현재는 농촌 도시화에 따른 문고 통폐합 등의 정비과정을 거쳐 오늘날 새마을문고 또는 새마을작은도서관이란 이름으로 1,300여 개 가량 운영되고 있습니다.
마을문고 운동 출범 당시 이 운동의 궁극적인 목표는 ‘공공도서관을 대치하고자 하는 운동이 아니라, 열악한 공공도서관을 보완하려는 운동’임을 초창기부터 표방하였습니다. 장차 공공도서관의 여건이 나아지고 마을문고도 좀 더 내실화되면, 그 지역의 공공도서관과 연계시켜 ‘공공도서관망網’을 형성하고, 마을단위 최일선 도서관 조직 또는 봉사거점의 구실을 하게 한다는 전략이었습니다. 그래서 70년대 후반에 일부 지역에서 공공도서관과의 협력 활동을 시범적으로 실시해 보기도 했으나 전국적으로 추진할 만한 여건이 되지는 못했던 것입니다.4)
1980년대 후반 민주화운동을 거치면서 높아진 대중운동의 관심이 반영된 분위기 속에 민간의 소규모 도서관들이 생겨났습니다. 1987년 이후 부산지역을 중심으로 ‘도서원’, ‘주민도서실’ 운동 등이 있었는데, 이들 중 일부는 공단지역 중심으로 노동운동을 지원하는 목적이 강해서 도서관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얼마 지탱하지 못하고 소멸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서 1990년대 초반에는 공공도서관의 부족과 서비스의 열악성을 만회하기 위한 목적의 문고 또는 지역주민도서실 운동을 지역 공간에서 활발히 전개하였습니다.5)
이에 발맞추어 정부에서는 이러한 운동을 권장하고자 1994년 제정된 ‘도서관 및 독서진흥법’에 ‘문고’ 관련 조항을 넣었습니다. 즉, ‘도서관의 일반적인 목적과 기능을 수행하고는 있으나 도서관의 기준에 미달되는 규모의 독서시설’을 문고라 정의하고, 제도권 공공도서관과의 연계협력의 틀을 제시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회에서는 법조문에 명시된 문고라는 용어보다는 ‘작은도서관’ 또는 ‘어린이도서관’이란 용어를 선호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마을문고· 새마을문고 등으로 오랜 기간 사용된 ‘문고’라는 용어에 대한 식상함, 관 주도 인상의 탈피, 문고보다는 시설과 운영이 양호한 도서관으로서의 새로운 이미지를 나타내려 했던 결과물이라고 봅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문고 형태의 다양한 독서시설 연합모임으로 ‘작은도서관협의회’가 1994년에 생겨나는 등, ‘작은도서관’ 이름의 새로운 도서관운동이 공공도서관 제도권 밖에서 일어나고 지속적으로 확산되었던 것입니다.
드디어 2004년에는 문화관광부가 정책보고서인 ‘창의한국21: 문화비전’에 ‘1만개 작은도서관, 이웃도서관 확충운동’을 제시하였습니다. 이어서 국립중앙도서관은 2005년에 ‘작은도서관진흥팀’ 조직 신설로 작은도서관 용어를 정부 조직에 처음 사용하고 관련 연구보고서를 연달아 펴내는 등 작은도서관 확산과 진흥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2009년 개정 도서관법에서는 작은도서관을 “공중의 생활권역에서 지식정보 및 독서문화 서비스의 제공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도서관으로서 공립 공공도서관의 시설 및 도서관 자료기준에 미달하는 도서관”이란 표현으로 정의를 내리고 사용하게 됩니다. 덧붙여 2012년에 작은도서관진흥법까지 별도로 제정하면서 작은도서관 설치 및 진흥에 관련된 여러 사항을 법률로 권장해 왔습니다.
앞부분에서 선진국의 작은도서관 운동은 지금부터 2~3백 년 전에 있었던 ‘공공도서관 제도 촉진형’ 도서관운동이었음을 살펴본 바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공공도서관 개념을 들여온 지 120년, 건국 이후 최초 도서관법을 제정한 지 5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응당 공공도서관이 감당하여야 할 지역 주민들의 지식, 정보, 문화욕구를 작은도서관이 일정 부분 담당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 작은도서관 운동의 성격은 그동안 양과 질에서 부족했던 공공도서관을 보완하기 위한 방책으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작은도서관 성격은 선진국과는 달리 ‘공공도서관 서비스 보완형’ 운동이라고 규정할 수 있겠습니다.
(계속)
★ 본 기고글은 2016년 4월 18일 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전국 작은도서관대회'의 기조강연 원고로서, 필자의 동의 아래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