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권의 함의와 즐거운 책 읽기
인간을 보다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독서다. 독서권책 읽을 권리을 말하는 이유도 좀 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기반이 곧 책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책 읽기’는 다른 말로 ‘생각하기’라고 의역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독서권의 확장은 생각하는 사회를 만드는 지름길이다. 그냥 살아지는 대로 살지 말자는 투쟁이다. 기왕이면 나 자신의 지구 생활삶에 대해, 그리고 나를 둘러싼 사회와 세계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배우고 깨닫고 소통하며 ‘나 너머의 나’를 사랑하자는 것이 독서의 함의일 터이다.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만큼의 삶을 사는데, 그 생각의 원천을 키우는 것이 책 읽기다. 시공을 초월한 간접 경험의 무한 우주가 독서다. 그래서 ‘아무 것도 읽지 않을 숭고한 권리’보다는 다소 까다로워 보이는 ‘읽을 권리’의 관점에 설 때 사람의 존엄과 가치는 더 높아질 것이다. 인간의 유한성을 무한으로 호환시켜 주는 것이 책 읽기다.
그런데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어떤가. 책과 관련된 한국인의 평균적인 자화상을 보면 ‘권리’는 초라하고 ‘의무’의 깃발만 무수히 나부낀다. 조기교육 차원의 독서 지도부터 초중고 교육과정에서의 독후감 쓰기, 대입이나 입사 시험에서의 읽기 평가, 독서경영을 심하게 하는 일부 기업의 독서 인사고과에 이르기까지 독서는 자유가 아니라 억압의 상징이다. 좋은 대학 가려면, 출세하려면, 승진하려면 책을 읽으란다. 여기서 독서는 즐거운 놀이가 아니라 질곡이 된다.
최근 한 보수 언론은 ‘읽기 혁명’이라는 특집을 꾸몄다. 책을 많이 읽은 학생이 좋은 일자리를 얻는 비율이 20% 높다, 서울대 입시에서 독서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책을 많이 읽으면 수능 점수를 10~20점 더 받는다, 책 읽는 사람이 월급도 더 많이 받는다더라고 기술한다. 스카이SKY 신입생의 70%는 신문 읽기가 대입에 도움이 되었다고 응답했다며 매체 마케팅도 빼놓지 않는다. 그런데 이처럼 ‘성공을 위한 독서 효과론’이란 것이 얼마나 억압적인 것인지에 대해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래서인지 같은 지면에 『읽기 혁명』의 저자인 미국의 스티븐 크라센 교수가 “자발적인 독서가 아니라 시험에 대한 압박으로 많은 책을 읽을 경우, 시험 성적만 올라갈 뿐 학생의 실제 읽기 능력이 높아지지는 않는다. 책을 읽으려는 학생의 열의가 사라지고, 그러면 앞으로 읽기 능력이 더욱 발달할 가능성이 차단되기 때문”이라고 말한 해당 신문의 자충수 같은 인터뷰가 이어진다. “읽고 싶은 책을 직접 고르고 자발적으로 즐겁게 독서를 해야 한다.”라는 것이다.
컴퓨터 게임 왕국의 비밀
대한민국은 우울하다. 단적으로 청소년과 노인의 자살률이 세계 최고다. 화려한 문명의 껍데기와 달리 행복 지수가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나라들 가운데 하나다.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은 나라에서 진짜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소수의 행복은 가짜다. 나만이 아니라 함께 행복한 것이 진짜 행복이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세계적인 컴퓨터 게임 왕국의 자리에 등극한 대한민국의 빛은 청소년들의 불행한 마음을 제물로 삼은 것이다. 여가 선용이 아니라, 마음 둘 곳이 없어서 밤새워 빠져드는 아이들 덕분에 성장한 게임이 이 나라에서 내세우는 세계적인 자랑거리 중 하나라는 위선은 얼마나 자학적인가. 아이들의 방황과 상처를 숙주로 삼아 성장한 게임 자본과 정부가 강조하는 ‘문화 콘텐츠 강국’이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
입시 지옥의 어두운 터널 속에서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는 이 땅의 아이들이 받는 마음의 우울은 모두 기성세대가 주조한 것이다. 끝없는 경쟁과 삶의 비루함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아야 하는 각자도생의 길 말고는 다른 것을 경험해 보지 못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라곤 용기가 아닌 채찍과 무기력이다. 성적과 성공의 도구로서가 아니라, 어린이와 청소년이 주체적인 독자로서 선택한 책이 정신에 뿌리를 내리며 자랄 가능성은 무척이나 희박하다. 자유학기제를 아무리 한들 그 취지가 달성되기는 힘들다. 형식으로 내용을 대신하기는 어렵다.
독서권 확장시키는 도서정가제
독서권은 헌법 제10조에서 말하는 ‘행복을 추구할 권리’에 직접 맞닿아 있다. 즉 씨름진흥법, 학교도서관진흥법은 물론이고 독서문화진흥법까지 있는 나라에서 독서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은 시민의 행복 추구권이 거부당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여기서 말하는 독서권은 개인의 책 읽을 자유나 권리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누구나 책 읽기를 원할 때 그것을 실현시켜 주는 사회적 기제가 공공성의 틀에서 보장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를테면 공공도서관에 가면 원하는 책을 읽을 수 있는 권리가 시민에게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들이 그러한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는 다양한 책이 발행되어야 하고출판의 자유와 다양성, 출판문화의 활성화, 도서관이 충분한 자료구입비를 확충해야 하며, 사서를 비롯한 전문 서비스 인력이 확보되어야 한다. 그러나 자신들의 가치관과 다르다는 이유로 특정 목록을 문제 삼는 사람들이 큰 소리를 치고, 도서관의 도서구입비는 오히려 감소하고 있으며, 전문 인력이 늘기는커녕 축소되는 사례들도 있다.
지성의 상징이라는 대학도서관들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자료구입비가 늘지 않는 상태에서 전자자료특히 외국 학술논문 DB 비중이 압도적으로 늘어나면서 국내 도서구입비는 매해 곤두박질치고 있다. 대학도서관들의 소망이던 대학도서관진흥법의 제정 이후 지나치게 기준이 낮아져 인력 감축에 나서는 대학들도 늘고 있다.
완전한 도서정가제를 강조하는 것도 시민의 독서권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 본질적인 목적이다. 동네서점을 살리자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당연히 동네서점은 살려야 한다. 할인 경쟁 아래서는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소규모 업체들이 생존하기 어렵고, 그것은 책의 생산-유통-소비를 총체적으로 축소시킬 수밖에 없다. 출판사와 도서의 다양성 확보, 규모와 형태를 달리하는 다양한 서점들의 공존에 의한 구매 편의성 확보, 그리고 거품가격으로부터 독자를 보호하자는 것이 도서정가제다. 독자가 할인해서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는 게 아니다.
도서관과 미디어의 중요한 역할
독서권이 보장되어야 하는 까닭은 시민들이 보다 사람답게 삶의 질을 높이며 살기 위해서이다. 또한, 시민들이 세상의 속도와 변화에 적응하도록 하기 위한 평생학습과 독서 복지의 생명선이기도 하다. 개인들이 알아서 세상에 적응하고 세금만 열심히 내면 된다고 할 것이 아니라, 그 세금으로 지식 격차를 줄이고 시대를 따라갈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공동체 기구들, 즉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등이 건강한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책에 대한 최소한의 공공적 접근로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거주지 가까이에 쾌적한 지역 도서관과 새 책들이 있어야 한다. 학교에는 학교도서관과 학급문고가, 직장에는 직장도서관도서실이 살아 있어야 한다. 가계 도서구입비가 최저치를 경신하는 ‘개인 책 구매 절벽 시대’에서 공공 또는 사회적 책 구매의 힘이 배가되지 않는다면 책 생태계는 막다른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다.
사회의 공기公器라는 매스컴은 책 정보를 풍부하고 흥미롭게 전달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기업 광고주에게만 충성할 것이 아니라 미디어 이용자들의 삶을 고양시키는 사회적 책무를 다해야 한다. 방송은 방송 시간의 최소 1% 이상을 책 소개에 할애하고, 신문·잡지는 기사 관련 책 소개 링크를 인터넷 판에서라도 먼저 시행해야 한다. 좋은 책 정보, 신간 정보가 많아져야 독서권은 공고해질 수 있다. ‘책의 집’인 도서관을 살리고 ‘책의 길’인 미디어가 나서야 한다.
아이들을 위한 사회적 모성
어린이·청소년 독자들의 권리는 아이들 스스로 만들기 어렵다. 최선의 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한다. 사회적 모성이 필요하다. 어른들이 책 읽기로 소통하면서, 학습과 성적을 넘어선 책을 선택하고 읽을 시간과 자유를 줘야 한다. 미국에서는 공공도서관의 가장 좋은 자리에 청소년실을 둔다. 그 정도까지는 못 미치더라도 공공도서관에 반드시 청소년실을 만들어야 한다. 나아가 책에 재미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흥미로운 프로그램들을 개발하여 자발적 독서욕에 불을 붙여줘야 한다.
‘2015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한국출판연구소·문화체육관광부를 살펴보면, 9시 등교제 실시 이후 ‘아침독서’ 시행 학교초중고 수가 전국적으로 많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추가로 돈도 안 들면서 아이들이 책과 만나는 최소 시간조차 일선 학교들이 박탈하고 있는 현실이다. 당연히 아침독서 시행 유무에 따라 독서량에 적지 않은 차이가 나타났다.
책 읽기의 즐거움을 아는 어른이 그것을 아이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 그러려면 어른들의 솔선수범이 필요하다. 독서권이란, 독서 친화적인 사회를 만들자는 표현이다. 아이들의 독서권을 확충하는 것은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마음의 등불을 켜주는 일이다. 자존감과 용기 있게 살아갈 힘을 드높이는 일이다. 그러려면 어른들이 바뀌어야 한다. 못난 정치인들을 표로 다스리지 못하는 어른들이 나쁜 정치의 원인인 것과 같다. 아이들이 책과 가까이할 수 있도록 한 걸음씩의 실천이 필요하다.
★ 이 글은 『학교도서관저널』 2016년 4월호에 실린 칼럼으로서, 필자의 동의 아래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