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공지능
지난 3월 9일부터 15일까지 펼쳐진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대결은 뜨거운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결과는 4대1. 결과도 결과지만, 이세돌과 같은 최정상의 바둑 기사가 버거워하는 모습을 보고는 ‘인공지능’AI에 대한 두려움까지 밀려왔습니다.
인공지능이 어느새 사람의 일자리를 대신하는 이야기와 앞으로 사라질 직업에 대한 분석기사가 쏟아졌습니다. AI가 신문기사를 작성하고, 판례를 분석한다는 이야기, 심지어 AI가 쓴 소설이 일본의 어느 문학상 1차 전형을 통과했다며, 그 소설이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지난 2008년 러시아에서, 2009년에는 미국에서 컴퓨터가 쓴 소설이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합니다.
어디까지가 인간의 창의적 영역이고, 어디까지가 컴퓨터의 영역일 것인지, 쉽게 가늠이 되질 않습니다. 앞으로 10여 년 뒤엔 현재의 직업 가운데 3분의1이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도 있습니다. “그럼, 사람은 뭘 하고 살지?”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3D프린터 등이 바꾸어놓을 미래 사회에 대한 담론이 앞으로 더욱 많아질 것입니다. 그 속에 빠지지 않은 질문이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대신할 수 없는, 인간만의 고유한 활동, 인간만의 창의력, 인간만의 상상력은 무엇이냐는 겁니다. 관건은 질문에 대한 답 찾기가 아니라 질문을 만들어내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키우는 데 책읽기만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2 읽기혁명
2016년 3월, 조선일보가 ‘읽기혁명’을 창간 96주년 특집으로 내보냈습니다.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국인의 책 안 읽는 실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 반가웠다. 창의성이 요구되는 미래 사회에서 독서의 부재는 개인과 국가 경쟁력에 치명적 손상을 준다는 지적과, GDP·국가경쟁력·혁신지수·토익성적·학교성적·연봉 등 실질적 지표와의 관련성을 다양하게 제시해 인상적이었다. 단발성 기획으로 끝내지 말고 장기적 캠페인으로 이어가 사회 분위기를 바꾸는 계기를 제공해달라.” 조선일보 독자권익보호위원회는 이 시리즈를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이 특집 기사 시리즈에서는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연구조사 결과를 다루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경제연구원의 ‘독서의 경제적 영향’ 보고서와 같은 것입니다. 이 보고서를 인용하고 있는 기사는 “국가별 연평균 독서율수험서·만화 등 제외하고 연간 책을 한 권 이상 읽은 비율은 여러 경제 지표·지수 중에서도 특히 미래의 성장 가능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글로벌 경쟁력 지수’나 ‘경제적 혁신성 지수’이상 경제포럼 발표, ‘글로벌 기업가 정신 지수’세계기업가정신발전기구 발표 등과 밀접하게 연동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연구결과는 이른바 패널조사라는 것인데,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지난 2004년 당시 중3 학생현재 만 27세 2000명을 12년간 추적한 결과 책을 많이 읽은 학생은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각 과목 등급이 1.9~1.4등급 높게 나왔다고 합니다. 또 직업능력개발원은 2004년 고3 학생들이 고1~3 사이 교양서적과 문학서적을 각각 몇 권씩 읽었는지를 조사하고, 이후 이들이 2014년 취업했을 때 어떤 직장을 얻었고 임금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확인했다고 합니다. 결과는 교양서적을 더 많이 읽은 학생들이 더 괜찮은 일자리에 취직했고, 연봉도 차이가 났다는 것입니다. “독서는 계층을 관통하는 ‘힘’이자 계층 상승을 이끄는 ‘사다리’였다”고 기자는 적고 있습니다.
이주호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OECD 21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한 2013년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 보고서와 2012년 치러진 PISA 자료를 활용해 분석했더니, 우리나라 중·고교생의 읽기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떨어져 만35세 이후에는 평균 이하로, 55세 전후에는 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으로 추락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내놓은 연구보고서, 『해외 주요국의 독서실태 및 독서문화진흥정책 사례 연구』도 같은 자료를 바탕으로 한 것인데, 연구책임자인 김은하 책과교육연구소 대표도 ‘독서율의 연령별 차이’를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즉 16~24세의 독서율은 87.4%인데 55~65세의 독서율은 51%로 그 차이가 무려 36.4%, 이는 조사국 가운데 가장 큰 것이었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책과 멀어지는 실태가 여지없이 지표로 드러난 것이었습니다. 올 연초에 발표된 국민독서실태조사 결과, 연평균 독서율은 성인의 경우 65.3%, 연평균 독서량 9.1권, 국민들의 독서실태를 조사한 시작한 1994년 이래 역대 최저였습니다. 독서는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음에도, 책 읽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3 파리도서전
3월 17일부터 20일까지 프랑스 파리에서는 ‘2016 파리도서전’이 열렸습니다. 우리나라는 한·불 수교 130주년 기념 문화 교류의 일환으로 주빈국을 맡아 베르사유 전시장에서 특별전시관을 설치 운영했습니다. 주요 언론의 보도가 잇달았습니다.
한겨레신문의 한승동 선임기자는 ‘프랑스에서 문화는 심장, 그 중심에 책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오드리 아줄레 프랑스 문화부 장관의 말을 전했습니다. “역사적으로 프랑스는 책을 사랑하고 책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그래서 정부에서도 여러 가지 지원을 해왔는데, 1980년대 초부터 서점에 대한 지원, 이를테면 도서정가제를 실시하고 도서관에 대한 지원을 늘려 어린이 등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쉽게 책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적극 펼쳤다. 대도시뿐 아니라 작은 지역 서점까지 지원을 해 모든 사람들이 어디서나 책을 사랑할 수 있도록 했다. 서점이나 도서관에 대한 이런 정책적 지원이 책에 대한 사랑을 낳고, 도서전도 이처럼 성황을 이루게 한 것이다.”
중앙일보의 이지영 기자는 ‘파리도서전 찾은 올랑드 대통령 “한국관 아름답네요”’라는 기사와 ‘대통령·총리·장관이 도서전 응원… 국내 출판인들 “부럽다”’라는 기사를 통해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등 정부 관계자의 참석과 관심을 전하면서 “책 안 읽는 사회에서 문화 융성을 기대할 수 있을까.”라고 묻고 있었습니다.
#4 독서진흥정책
이지영 기자의 지적처럼 책 안 읽는 사회에서 문화 융성을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프랑스와 같은 나라를 마냥 부러워하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지난 3월 9일, 우리나라의 독서, 도서관, 박물관 정책을 총괄하는 문화체육관광부 박위진 문화기반정책관 주재로 독서진흥정책 관련 ‘긴급’ 회의가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저는 몇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첫째 대통령 중심제인 국가에서 대통령께서는 언제라도 책, 출판, 독서, 도서관, 서점의 현장을 찾아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문화적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발신해야 합니다. 둘째 책, 출판, 독서, 도서관, 서점을 지원하는 예산의 획기적인 증액이 필요합니다. 현임 정부는 문화재정을 2%를 달성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문화의 시대라는 21세기, 문화부문에 투입되는 공공재정을 충분하게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체육과 관광, 미디어와 콘텐츠 등에 투입되는 재정이 늘어나는 비율만큼이라도 책 문화를 풍요롭게 할 재정을 늘려야 합니다. 셋째 프랑스의 도서·독서국처럼 앞으로 출판, 독서, 도서관, 서점, 저작권, 번역 등 책 문화와 관련된 정책 총괄 부서를 만들어야 하고, 단기적으로는 정책네트워크를 만들어서 상호 유기성을 높여야 합니다. 넷째 방송법을 고쳐서 최소한의 비율이라도 책 관련 프로그램을 의무 편성하도록 해서 일반 시민들이 책 소식을 항상 접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기타 등등.
“앞으로 출판사가 팔 것은 책이 아니라 읽는 습관”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이라고 합니다. 책 읽는 이가 없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찌 될 것인가. 독서인을 키우는 데, 민과 관이 따로 없고, 기관과 단체가 따로 없을 것입니다. 힘 모아 책 읽는 사람의 사회를 만들어가야 하겠습니다.(*)
★ 이 글은 『출판문화』 2016년 4월호에 실린 칼럼으로서, 필자의 동의 아래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