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 출판의 오늘과 내일
시설, 자료(장서), 직원(사서), 이용자를 도서관의 4대 요소라고 한다면, 어린이도서관의 경우에는 도서관과 어른(도서관 직원과 양육자), 어린이가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어린이도서관은 어린이들이 읽기에 적합한 수많은 책들이 모여 사는 커다란 집이다. 이용자인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반겨주는 지적인 놀이터다. 책이 아이들에게 말을 걸고, 아이들이 책을 불러 길라잡이 친구 삼아 이곳저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 여행이 아이를 성장시킨다. 어른에게도 그렇지만 아이들에게 그 ‘성장’의 의미는 각별하다. 그래서 어린이도서관과 어린이책은 아이들의 생각과 마음, 정신과 지식을 한 뼘씩 키워주는 성장제요 영양제다.
어린이책은 온전히 어린이를 생각하는 작가가 출판사의 힘을 빌려(또는 출판사가 작가의 힘을 빌려) 책 생태계에 하나의 생명체로 태어난다. 그리고 유통사, 서점을 거쳐 도착한 도서관에서 아이들과 만난다. 이 과정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수많은 선택들의 조합이 존재한다. 작가의 글감과 출판사 선택, 출판사의 편집·제작·유통·마케팅에 대한 선택, 이어서 서점과 도서관 사서의 선택, 독자인 어린이의 선택이 고리처럼 이어지며, 작가의 마음이 어린이의 마음으로 이어지는 작은 기적이 일어난다.
그런데 오늘날 그러한 기적을 만드는 어린이책이 생산·유통·소비되는 출판산업 현황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출생률 저하와 함께 아동출판의 시장 규모가 계속 줄고 있고, 이윤을 먼저 생각하는 상업적인 출판 영역도 확장되고 있다. 1년여 전부터는 자료구입비 예산이 늘지 않은 채로 도서관, 구간 아동도서에도 할인율이 축소된 도서정가제가 적용되면서 실질적인 판매량이 줄었다는 불만 또한 적지 않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가제가 강화되어야 국내 출판산업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힘없는 작은 출판사와 서점들이 존립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출판 생산, 판매, 독서 관련 통계를 중심으로 어린이책 생태계의 일단을 살펴보고자 한다.
어린이책 출판 동향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집계한 납본대행 통계에 따르면, 2015년에 발행된 신간 아동서는 모두 5,369종이며(가집계 기준, 〈표 1〉 참조), 전체 신간 가운데 아동서의 발행 종수 점유율은 12.4%이다. 이것은 전년도인 2014년의 15.7%, 5년 전(2010년)의 18.2%에 비해 점유율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신간 아동서의 발행 부수 점유율도 2014년의 27.8%에서 19.7%로 감소폭이 매우 크다. 1종당 평균 발행 부수는 전체 평균 증감률(-5.3%)보다 훨씬 큰 -17.2%를 기록했다. 아동서 출판의 전반적인 위축이 드러난다.
한편, 〈학교도서관저널〉이 집계한 어린이문학의 발행 종수는 2015년(2014.12~2015.11) 1년 동안 총 1,017종(개정판, 재출간 도서는 제외)인 것으로 나타났다. 내역을 보면 한국동화 429종, 외국동화 480종, 동시 90종, 옛이야기 8종, 어린이문학 이론서 10종, 어린이 산문 3종 등이다. 그림책은 2,626종으로서 전집에 포함되지 않은 국내 창작 그림책이 233종, 해외 그림책이 321종이다(한기호, 2016.1.9.).
분야별로 살펴보면, 한국동화에서는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조금씩 기운이 돌아오고 있다. 가족의 등장이 줄고 혼자 있는 아이들이 등장하거나, 실직이나 비정규직 등 현실 문제를 너무 날 것 그대로 아이들에게 던지는 동화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저학년 동화책을 지식정보책처럼 만드는 경향에 대한 우려도 있다고 한다. 그림책은 작품성을 보장하기 어려운 시리즈물의 강세, 국내 창작 그림책의 양과 질 양면의 부진, 작가 개인 문제를 작품화하는 경향 등이 엿보였다. 지식정보책 가운데 인문·사회·예술·문화 분야에서는 재미와 힐링의 추구, 동화식 구성과 컬러링북의 다수 출간이 특징적이다. 자연·과학 분야에서는 동식물을 다룬 책이 시리즈물로 출간되는 경향이 강했고 환경 관련서가 속간되었다. 저학년 도서 중에는 캐릭터를 강조하거나 인형이나 스티커를 부록으로 붙인 책도 많았다. 권말에 요약과 문제지가 붙은 학습지 형태의 책, 통합교육과정에 맞춤한 책도 많아 도서 분류가 쉽지 않은 책도 많았다(〈학교도서관저널〉, 2016, 1+2 합병호).
여러 어려운 여건과 출판사들의 부침에도 불구하고, 역량 있는 새로운 작가와 출판사의 지속적인 등장, 그리고 각종 도서관의 충실한 지지대 역할과 해외 진출 등에 힘입어 어린이책 출판이 지속적으로 활성화되길 기대한다.
어린이책 판매 동향
교보문고 판매 통계에 따르면(교보문고, 2015.12), 2015년에는 유아 및 아동서 분야의 판매 점유율과 판매 증감률이 전년도에 비해 감소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유아 도서의 판매 감소율이 전년 대비 -0.7%로 가장 컸고, 아동서는 판매량의 전년 대비 감소(-4.4%)에도 불구하고 판매 점유율은 6.5%로 높아졌다. 이는 어린이책의 판매량이나 판매액이 줄어도 출판시장 전체 매출이 감소함에 따라 점유율이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분석된다.
유아 도서에서는 2014년에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열풍에 힘입어 관련서들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으로 부상하면서 애니메이션 영화의 영향이 커졌다. 애니메이션 영화의 개봉과 함께 스토리북, 놀이북, 교구 등도 다수 출간되어 서점에 선보였다. 전반적으로 외국 작가들의 스테디셀러가 장기적인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이 분야 30위권 베스트셀러 중에 앤서니 브라운의 책이 4종으로 가장 많았다. 김영진의 『엄마는 회사에서 내 생각해?』 『아빠는 회사에서 내 생각해?』라는 직장인 부모의 감성을 자극하는 국내 창작 그림책이 성인들에게도 사랑을 받았다. 전체적으로 신간보다는 스테디셀러가 더 높은 판매량을 나타내는 유아 그림책 시장의 특성이 유지되었고, 2010년대 들어 한국 작가들의 해외 수상이 이어지면서 창작 그림책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높아진 분위기가 반영되었다. 또한 최근 2~3년 사이에 성인 독자층을 확보한 동화 작가가 증가하여, 철학적 내용과 치유의 메시지를 담은 ‘어른을 위한 그림책’도 차츰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아동서 분야에서는 어린이는 물론이고 성인들에게도 사랑받는 프란치스카 비어만의 『책 먹는 여우와 이야기 도둑』이 최고 판매량을 기록했다. 15년간 꾸준히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전작인 『책 먹는 여우』는 스테디셀러로 자리를 굳혔다. 아동만화 분야에서는 『마법 천자문』 『내일은 실험왕』 『퀴즈! 과학 상식』 등 학습만화 시리즈의 강세가 여전했고 ‘Who?’시리즈 등 현대의 유명인들을 다룬 인물 이야기도 인기를 얻었다.
어린이의 독서 행동
초등학생(전국 4~6학년 표본 1,000명)의 독서 생활이 포함된 〈2015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문화체육관광부, 2015) 결과를 보면, 어린이들의 연간 종이책 독서율(교과서, 참고서, 잡지, 만화 제외)은 99.4%, 연간 전자책 독서율은 33.7%였다. 전자책 독서율은 2011년 40.9%, 2013년 38.7%에 이어 감소 추세를 나타냈다. 연간 종이책 독서량은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인 반면(2011년 45.0권, 2013년 65.1권, 2015년 70.3권), 연간 전자책 독서량은 2013년에 7.2권이던 것이 2015년에 5.8권으로 하락했다.
초등학생의 각각 1/3씩이 본인 독서량을 ‘충분’(35.5%), ‘보통’(34.3%), ‘부족’(30.1%)하다고 자평했는데, 평소에 책 읽기를 어렵게 하는 이유로는 ‘학교나 학원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32.3%), ‘책 읽기가 싫고 습관이 들지 않아서’(21.8%), ‘컴퓨터, 인터넷, 휴대전화, 게임으로 시간이 없어서’(10.3%)라는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초등학생들이 선호하는 도서 분야는 ‘소설’(19.3%), ‘인물 이야기’(13.9%), ‘역사’(10.9%) 순으로 나타났다(〈그림 1〉 참조). 소설, 동화, 취미 관련서는 여학생, 역사, 연예/오락/스포츠는 남학생의 선호도가 상대적으로 높았다.
책을 구해 보는 방법(도서 입수 경로, 2순위까지 선택)은 ‘집에 있는 책’(22.4%), ‘학교도서관’(22.2%), ‘직접 구입’(19.7%), ‘부모님이 사다 주신다’(15.4%), ‘공공도서관’(11.2%) 등의 순이었고, 책을 구입할 경우에는 ‘인터넷서점’(25.1%), ‘대형서점’(20.9%), ‘동네서점’(14.3%), ‘어린이책 전문서점’(11.9%), ‘할인마트’(10.3%), ‘학교 근처 서점’(9.2%), ‘중고책 서점’(4.0%) 순으로 나타났다.
초등학교 고학년 어린이들의 연간 공공도서관 이용률은 73.7%(월평균 3.8회 이용)이고, 이 가운데 주로 이용하는 공공도서관의 유형은 ‘대형 공공도서관’(52.7%), ‘어린이도서관’(23.9%), ‘작은도서관/마을문고’(23.1%) 순의 비율이었다. 어린이도서관의 힘이 꽤 세다는 것을 보여준다. 연간 학교도서관 이용률은 93.6%로 대부분의 초등학생들이 이용하고 있었다.
이상에서 근래 어린이책의 출판과 판매 동향, 그리고 독서 행동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어린이책의 출판은 사회, 교육, 경제, 미디어 등 다양한 환경과 여건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한다. 어린이책을 둘러싼 당대 출판문화의 모습은 한편으로는 상업적 출판시장 논리에 의해 규정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현명한 독자들의 선택과 비평에 의해 발전하는 삼투압 현상을 통해 생태계의 건강성을 유지시킨다. 어린이도서관은 어린이책의 기관 구매자이자 이용자 서비스 기관으로서 작가와 출판사에게 최고의 파트너라 할 수 있다. 어린이를 무한히 사랑하는 ‘마음의 공동체’인 어린이책 생태계 관계자들이 동반자로서 서로 의지하고 함께 성장하는 든든한 내일을 그려본다.
【참고 문헌】
교보문고(2015.12). 「2015년 교보문고 도서판매 동향 및 베스트셀러 분석」
대한출판문화협회(2015). 국내 출판산업 현황. 『2015 한국출판연감』
대한출판문화협회(2016.1.27). 「2015년 일반도서 종수, 부수, 정가, 면수(납본대행 가집계)」
백원근 외, 한국출판연구소(2012). 『어린이(5~10세)의 독서 및 도서관 이용 현황 조사』. 서울 :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백원근 외, 한국출판연구소(2015). 『2015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 세종 : 문화체육관광부
조월례(2015). 아동(출판 동향). 『한국출판연감』
학교도서관저널(2015.12.). 「2015 올해의 책 + 2015 어린이 청소년 책 경향」
한기호(2016.1.9.). 「2015년 어린이문학의 출간 경향」(http://blog.naver.com/khhan21/2205921424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