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동아리 인터뷰 18
모든 사라지는 것들을 아름답게 기억하고 싶다
제주 남원북클럽
모이는 곳 _ 서귀포귀농귀촌협동조합 사무실 및 도서관
모이는 사람들 _ 제주 귀농귀촌인
읽는 책 _ 제주도 관련 책 또는 협동조합 관련 책
제주 남원북클럽은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에 있는 서귀포 귀농귀촌협동조합 내 독서동아리이다. 제주도의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곳이 아닌 서울 한복판에서 남원북클럽의 대표 안광희 씨를 만나게 되었다. 그가 소속된 협동조합이 한국문화예술교육원의 시민 문화예술교육지원사업 ‘시시콜콜’에 선정되어 그에 대한 인터뷰를 하러 왔기 때문이었다. 시시콜콜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시민들이 자유롭게 문화예술과 교육에 대한 콘텐츠를 만들고 보다 많은 대상과 향유해 가는 지원 사업이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뒤에 다시 하기로 하고 일단 남원북클럽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안광희 대표의 깊이 있는 성찰과 재기 넘치는 말솜씨로 제주도 바다와 같은 넓게 흘러갔다.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기록을 위해 애쓰는 그와 동료들처럼 이날 있었던 대화를 가감 없이 기록하고자 한다.
책과 사람과 협동조합 그리고 다시 사람
“시작은 서귀포 남원읍에 있는 공공도서관인 제남도서관 옆에 ‘문화공동체 서귀포’라는 사무실을 만든 것이 계기가 되었어요. 제주도에 온 귀농귀촌인들이 도서관에 왔다 갔다 하다가 카페처럼 꾸며진 우리 사무실에 들르게 된 것이죠. 그렇게 모여서 서로 이러저런 이야기들을 하다가 발견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삶터로 제주도를 선택해서 왔는데 제주도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국이나 북한보다 제주도를 더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공교육에서 우리는 제주도에 대해 배운 적이 없어요. 그저 신혼여행 또는 관광지로만 알지 제주도의 전신인 탐라왕국, 몽골에 지배받았던 역사, 섬이라는 특색 있는 자연, 아열대 기후와 고산지대 등 이러한 다양성에 대해 우리가 거의 모르고 있었어요. 우리가 이곳에서 살려면 제주를 알아야 한다는 것에 모두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주 사람들 또한 사는 지역만을 알지 제주도의 전반적인 것에 잘 모르고 있었어요.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씩 제주도에 관한 책을 읽기로 했습니다. 그러다 독서동아리 지원 사업을 알게 되어 보다 더 많은 책을 읽고 그러면서 책을 통해 만난 사람들, 책을 매개로 하는 관계가 쌓여 갔어요. 그리고 제주도를 모른다는 고민에 이어 두 번째 고민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제주도에서 어떤 공동체로 살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문화공동체에서 느슨한 연대의 방식인 협동조합이란 틀을 가지고 귀농귀촌공동체를 설립했습니다. 그 협동조합을 통해 마을기업 ‘제주살래’라는 사업을 하게 되었고 우리 지역의 자원인 감귤을 통해 사업적 이익과 사회복지도 실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지역 문화예술교육입니다. 저희 조합원이 31명인데 대부분 문화예술 관련 종사자예요. 그러다가 저희가 시작한 것이 ‘그림 그리는 해녀’라는 프로젝트입니다.”
소멸되어 가는 것들과의 운명적 만남
대부분의 지역 문화예술사업은 시혜성이 짙은 단발성 사업이다. 또는 개인적 창작을 위한 예술 행위에 불과한 경우도 많다. ‘그림 그리는 해녀’는 과연 어떠한 영역에 속해 있을까.
“저희가 한 ‘그림 그리는 해녀’는 제주 해녀분들에게 미술 수업을 통해 해녀들 자신이 직접 화가가 되어 자신의 삶을 그림으로 그리는 것입니다. 해녀를 대상화하는 작업은 지역문화가 될 수 없어요. 그건 개인의 예술 행위일 뿐입니다. 소멸되어가는 제주도만의 문화가 두 가지 있는데 바로 제주 해녀와 제주어語입니다. 미술 수업을 통해 해녀가 행복해하는 과정을 영상에 담아 ‘그림 그리는 해녀’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듣는 것은 쉽지만 실제로는 전혀 쉽지 않은 과정들이 있었을 것이다.
“제주 말로 해녀분들이 ‘무사 해녀가 그림을 그리우과’ 하셨어요. 예전에는 크레파스조차 참 귀했잖아요. 미술교육을 받은 경험이 없어서 해녀 분들이 미술에 접근하기 쉽지 않았어요. 하지만 제가 조르고 또 조르고, 설득하고, 이해시키고 진정성 있게 다가가려고 많이 노력했습니다. 그러다 나중에 내 평생에 이런 호사가 없다고 행복해하시는 모습을 보며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그런 즐거움이 저희가 계속 이런 것들을 할 수 있게 하는 열정, 동기부여가 되었어요. 사실 이런 작업은 저희가 아마추어가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에요. 기획 단계에서 분명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고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제주 해녀의 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려야겠다 마음먹고 엄청난 제작비를 들여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을 만들고 영어 더빙, 번역 작업 등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의 영화제와 마켓에 출품했고요. 최근 영국 BBC로부터 저희 작품 후속편에(그림 그리는 해녀는 총 3부작으로 기획되어 있다) 투자하고 싶다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사실 이런 것들은 어떤 수익에 대한 기대보다 모든 사라지는 것들을 어떻게 아름답게 기억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시시콜콜이라는 문화예술교육지원사업에 선정되어 받게 된 지원금을 어떤 방향과 목적으로 쓰게 될지 이때쯤 들을 수 있었다.
“지원금은 사라져 가는 제주어를 지키는 데 쓰이게 될 예정입니다. 저희가 계획한 것 중의 1단계가 제주어 배우기입니다. 우리 제주 이민자들이 지역 주민들에게 아주 대중적인 방식으로 제주어를 배울 거예요. 이를테면 대중가요의 가사를 제주어로 개사해서 부르고 『춘향전』 같은 우리 고전을 제주어로 단막극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또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인데요, 팟캐스트 형식의 마을 방송국을 만들고 오픈 스튜디오 방식으로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진행할 예정입니다. 팟캐스트가 이동이 가능한 형식이잖아요. 남원읍에 17개의 마을이 있는데 각 마을회관에 오픈 스튜디오를 차리고 마을 이장님, 할머니, 할아버지, 마을 주민들 모두를 불러 모아 방송을 제작할 겁니다. 나중에는 이러한 모습만으로도 하나의 문화예술이자 교육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이런 것들은 기억하고 기록하기 위한 작업들입니다. 아무리 좋은 문화들도 유형의 무언가가 있어야 기억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제주 해녀는 보존과 보전이 어려운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의 제자만 있어도 전승될 수 있는 무형문화와 달리 해녀는 집단적인 노동문화예요. 지금 하시는 분들이 돌아가시면 완전 소멸될 것 같아요. 요즘 시대에 누가 물질을 하겠어요. 지금 우리나라는 제주 해녀를 산업의 가치로만 보고 있습니다. 해녀 1인당 해산물을 연간 몇 킬로그램을 캔다는 경제 논리로 보지 문화로는 보지 않아요. 그러나 해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어마어마한 문화적 가치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누가 연구를 했으면 해요. 저는 바로 옆에서 제주 해녀의 결사체, 그분들이 가지고 계신 의사 결정 구조, 분쟁 시 처리하는 방식 등을 지켜보는데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봅니다.“
책, 모든 것의 시작
안광희 대표는 이 모든 것들의 출발에 대해 어찌 보면 당연하고 어찌 보면 충격적인 답을 들려줬다. 바로 책이다.
“이 모든 것들의 출발은 바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조합원들이 책이라는 것을 통해 사람이 만나고, 그 사람들이 만나서 공동체를 꿈꾸고, 협동조합을 만들고, 마을기업을 만들어 경제적 이익을 만들고 그 이익을 우리끼리 나누는 것이 아니라 지역 문화에 다시 재투자하는 것에 모두 동의했어요. 굉장히 자랑스럽습니다.
작년 군포에서 저희가 자부심을 가지고 저희 독서동아리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는데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지 책을 읽는 독서문화에 그치지 않고 지역문화예술로 발전하는 다양한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한 권의 책을 시작으로 사람이 꿈꿀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할 수 있었다는 것에 정말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책 한 권으로 시작해 여기까지 왔다는 사례를 만들고 싶기도 했습니다.
앞으로의 목표가 있는데 제주 해녀분들에게 책을 만들어 드리고 싶어요. 별처럼 빛나는 시어가 해녀분들에게 있어요. 그분들이 한글을 배워서 직접 시를 짓고 그것을 모아 책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3년 정도 뒤의 일이긴 하지만 그것을 꿈꾸며 계속 열심히 하고 있어요. 사실 해녀 분들이 바다에 물질하러 가면 관광객들은 그녀들을 마치 파지를 줍는 할머니처럼 보지만 아닙니다. 대부분 적적한 분들이에요. 그런데 왜 바다에 가느냐. 단순히 돈벌이가 아니라 70년을 바다에서 살아간 사람들이에요. 해녀는 말 그대로 바다와 여자, 자기 삶에 바다가 들어와 있어요.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요. 바람 불고 비 와도 바다가 편하다는 그 분들은 인간이 자연 속에서 얼마나 행복해질 수 있는지 노동으로 보여 주시죠. 해녀의 삶에서 바다를 빼놓고 말할 수 없습니다. 『제주기행』이란 책에 ‘제주 해녀 한 명 한 명이 돌아가시는 것은 박물관이 하나 없어지는 것이다ㄴ라는 표현이 있어요.
저는 서울에서 28년, 뉴욕에서 11년을 살았는데, 어느 날 남은 40년을 어떻게, 어느 곳에서 살아야 할까 고민했어요. 그러다 제주도에 왔어요. 제주 해녀를 붙들고 그 기억을 기록해 전하는 것이 내 사명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책을 만드는 작업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지만 그날이 기다려지고 기대됩니다. 단순히 내 개인적인 작업이 아니라 귀농귀촌협동조합이 책을 통해 가장 귀하게 만들어 낸 어떤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독서동아리, 같이 책을 읽는다는 행위가 이렇게까지 넓게 퍼져 갈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고 책을 읽는다는 의미가 새롭게 확장되는 모습이 참으로 반가웠다. 그의 작업이 꼭 완성되기를 바라며 더불어 남원북클럽의 그 열정이 더욱 넓어지고 깊어지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