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동아리 인터뷰 17
생태주의적 실천과 학습이 공존하는 곳, UFO
부산 BH for
모이는 곳 _ 부산BH병원
모이는 사람 _ 성인, 직장인
읽는 책 _ 문학, 인문학
부산의 독서동아리 BH for와의 만남은 쉽지 않았다. 8월 말, 부산역으로 가기 위해 KTX를 타고 대구쯤 갔을 때 기차 안 방송에서 부산에 현재 폭우가 내리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폭우라 해도 비가 오는 것은 일상적인 것이라 별 신경 쓰지 않고 있다가 울산쯤 갔을 때 엄청난 양의 물줄기가 강을 향해 흐르고 있었고, 건물이 무너졌다는 뉴스가 동시에 나왔다. 울산에서 부산에 가는 20여분 동안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 전철역이 침수되고 교통이 마비되었으며 주차장에 있던 차들이 격류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사진을 SNS를 통해 볼 수 있었다. 마침내 도착한 부산역에는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인터뷰를 취소했고 부산과의 인연이 참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곧바로 다시 기차를 타고 올라가게 되었다. 그리고 정확히 두 달 후 다시 찾아갔을 땐 다행히 화창한 가을 날씨가 반겨 주었다.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분들이 만든 BH for의 ‘BH’는 ‘Be Happy’의 약자였는데 그 이름처럼 행복하고 다 잘될 것 같은 희망을 주는 모임이었다.
BH for는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저희는 원래 독서 모임이 있었어요. 2010년쯤으로 기억되는데요, 여기 병원 원장님께서 책 읽는 걸 정말 좋아하셔서 직원들에게 책 선물을 많이 해 주셨어요. 처음에는 본인이 재미있게 보신 책을 나눠 주셨어요. 거의 한 달에 두 권 정도. 그러다 보고 싶은 책을 써서 제출하면 그 책을 구입하거나 빌려서 같이 책을 읽는 모임이 생겼어요. 중간에 공백기가 있긴 했어요. 그래서 책이 아닌 영화나 다른 모임들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마침 책읽는사회문화재단에서 독서동아리를 지원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작년에 신청하고 선정되면서 독서 모임이 다시 진행되었습니다. 올해 같은 경우 부산의 다른 모임인 송곡클럽하우스에도 이러한 지원 제도를 알려서 같이 선정되어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한 달에 한 번 모여서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사실 다 같이 모이는 게 힘들어요. 3교대 근무를 하고 있고 진료 시간이 정해져 있거든요. 그래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모임에 가장 최근에 들어오신 분의 참여 계기를 알 수 있을까요?
“제가 올해 초 마지막으로 들어온 회원인데요, 제가 작년에 입사할 때 원장님께서 입사 전에 면접 보고 나서 제게 책 두 권을 주셨어요. 『아직도 가야할 길』하고 『그리스인 조르바』 이렇게 두 권을요. 책을 주시면서 원장님이 후배나 자기가 같이 갈 사람들에게 일일이 다 말로 전할 수 없어서 책을 통해서 생각을 공유하고 싶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아, 그리고 면접 때 첫 질문이 정말 특이했는데 ‘좋아하는 문학 장르가 무엇이냐’였어요. 주변 의사 동료들에게 말했더니 다들 그런 질문이 낯설다고 하는 거예요. 사실 문학을 고등학교 이후로 읽어 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질문이 요즘 시대에 획기적인 질문이라 생각해요. 그래도 그때 당시는 막상 부담되고 『그리스인 조르바』 같은 경우는 잘 읽히지 않는 부분도 있었어요. 그런데 시간을 내어 책을 읽다보니 재미도 느껴지고 이 모임에도 자연스럽게 참석하게 되었어요. 책을 읽다 보니 내가 책하고 정말 멀어져 있었다는 것도 느끼게 되었고, 우리 모임에서 월초마다 무슨 책을 읽을지 공고가 나는데 그러면 어떤 책을 읽어야 하나 하면서 책을 더 찾아보게 되고 예전보다 책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어요.”
독서동아리를 하면서 장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나요?
“코엘료의 책이 굉장히 많이 출간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한 사람당 한 권씩 다른 책을 읽고 와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어요. 처음에는 다들 기대를 많이 했어요. 막상 모임하려고 모였는데 다들 분위기나 표정이 안 좋았어요. 책은 다른데 내용들이 다 비슷하고, 실망이 컸어요. 처음에는 우리가 이상한 건가 싶으면서도 뭔가 비슷한 걸 느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이런 모임의 장점인거 같아요. 내가 틀린 것은 아니구나라는 걸 확인할 수 있는 것.”
“한국단편소설집은 그 반대의 경우였던 것 같아요. 한 작가의 다른 단편들이 서로에게 다 좋게 읽혔어요. 『동백꽃』 같은 경우 학생 때 읽었던 감상과 지금의 감상이 달라졌고 서로 이야깃거리도 많아서 분위기가 좋았던 것 같아요.”
“단순히 여러 책을 읽어서 좋은 것도 있지만 틈틈이 『로마인 이야기』, 『십자군전쟁』처럼 긴 이야기, 긴 책을 읽어 냈다는 것에 자부심도 느껴요. 무엇보다 감사한 건 나이 차이가 많은데도 저를 이렇게 모임에 끼워 줬다는 거예요. (웃음)”
지금 보니까 각자 다른 책을 갖고 계신 것 같습니다. 모임은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나요?
“테마를 정해서 그 테마에 맞춰서 자신들이 원하는 책을 읽는 방식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모였을 때 자신이 읽었던 감상을 얘기하고 그러면 저도 다른 사람들이 읽었던 책에 대해 관심이 가고 바꿔 읽고 싶어지기도 하고 그런 식으로 테마를 통해 책을 읽고 있습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책과 친숙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같은 공간에서 근무하는 직장인끼리 모임 하는 것에 어려운 점이 있을까요?
“전혀 단점이나 어려운 점이 없어요. (웃음) 있나? 아, 있어요. 다 같이 모이기가 정말 힘들어요.”
“말씀하신 대로 저희가 어쩌면 집보다도 더 오랜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기도 하고 거기에 플러스 알파로 모이는 것에 과장된 느낌이나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왜냐하면 강제적으로 모인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아니에요. 저는 3년 전에 원장님 덕분에 강제성도 있었던 것 같아요. (웃음) 그래서 부담도 있었고, 아직까지 아이가 어린 직장맘이다보니 더 걱정도 되었고요. 그런데 차츰차츰 책을 알게 되고 그러다 보니 재미도 느끼고 있어요.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 모임 대표가 참 고생이 많죠.”
“날짜 잡기나 공고는 그냥 일정상의 문제라 별로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오히려 이렇게 모이다보니까 저희가 일하는 부서가 다 다른데 서로 업무적으로 유대가 생기는 것 같아요. 게다가 작년에 비하면 올해는 독서동아리 지원 사업의 업무 자체가 줄어서 괜찮은 것 같아요.”
아무래도 병원이라는 특수성이 눈에 들어오는데 독서와 병원에서의 일이 연관된 부분이 있을까요?
“우리 모임의 대표가 이 모임 말고도 열심히 하시는 일을 있는데 환자들을 위해서 한 달에 한 번씩 남구도서관에서 100권의 책을 빌려와요. 다음 달에 또 100권을 빌려오세요. 일종의 이동도서관인 거죠. 병원에 생긴 초창기인 2006년부터 꾸준히 하고 계세요.”
“지금은 빌려오는 책이 60권 정도로 줄었어요. 그래도 전부는 아니지만 환우분들 중에 책을 열심히 읽으시고 종교나 교양 분야의 책에 관심을 기울이는 분들도 많은 편이에요. 사실 여러 계획이나 아이디어는 있는데 그걸 해도 되나 그런 생각이 있어요. 병원 로비에 두 달에 한 번, 우리가 본 책을 전시하여 안내하는 코너도 마련했어요. 요즘은 환자분들 교육시간에 책 읽는 것을 많이 해요. 그러다 보니 최근에 든 생각은 환우들과 책 모임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디서 들었던 얘기인데, 책을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자신의 감정을 위로받고 같이 공감하는 행위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정신과 의사로서 환자들에게 무엇을 하게 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있으면 아, 이 사람이 나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어 주고 있구나 하면서 치료가 진행되는데 그런 의미에서 독서가 자가 치유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얼마 전에 『인 마이 백』이란 책을 알게 되었어요. 유명 인사들이나 일반 사람들의 가방에 무엇이 있는 지 사진과 인터뷰를 통해 보여 주는 책이었는데 의외로 그 사람들의 가방 안에 책이 많이 있었어요. 자기 일을 잘하고 있는 사람들이 다 책을 읽고 있더라고요. 보면서 많이 자극되었어요.”
“일단 좀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작년에 비해 서류작업이 매우 간소화되었다는 것에 책읽는사회문화재단에 감사를 드립니다. 뭐랄까, 믿어 준다는 느낌이었어요. 사실은 부산에 있으면 큰 행사나 여러 가지 행사에 일일이 참여하기가 힘들었어요. 이번에 계획서를 쓸 때 제가 느낀 것은 이 사업이 2년째에 접어들면서 보다 더 파생할 수 있는 어떤 것을 의도하시는 것 같아요. 동아리마다 사정은 다르겠지만 다른 동아리와 연대해서 뭔가를 만들어 내기가 만만치 않아요. 부산에서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저는 애초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 찾아보는 편인데 지역에서의 그런 연대 방식이나 방법, 사례, 행사들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라도 쉽게 찾아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