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청소년문학의 산실로 자리 잡은 사계절1318문고가 1997년 첫 권을 펴내기 시작한 후 18년 만에 마침내 백 번째 책을 냈습니다. 이를 기념하여 웹진 나비는 2015년 8월 27일, 카페 에뮤에서 강맑실 사계절 대표, 김태희 사계절 아동문학팀장과 진행한 인터뷰 대담을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안찬수 (책읽는사회문화재단 사무처장)
강맑실 대표님, 김태희 팀장님 시간을 내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사계절이 1997년에 ‘1318문고’를 출발하면서 이전의 청소년문고와는 다른 개념의 청소년문고를 만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박상률 작가의 에세이를 서두에 넣고 시리즈를 만들어가던 초기에는 어떤 구상을 하고 계셨던 겁니까? 1997년이라는 해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겁니까?
강맑실 (사계절 대표)
당시 청소년들이 읽을 만한 책으로는 번역된 만화, 명랑소설, 하이틴 로맨스가 전부였습니다. 아이들 현실과 동떨어진 책, 현실을 미화하는 허무맹랑한 책이 난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래선 안 되겠다는 고민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 시기는 한 편 사회 곳곳에서 386세대의 역할이 무르익는 시기였습니다. 어린이도서연구회와 책따세(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가 활성화되었고 독서운동이 활발히 일던 시점이었지요. 386세대의 축적된 사회적인 역량과 새로운 청소년문학에 대한 절실한 필요가 맞물려 ‘1318문고’가 자연스럽게 태동할 수 있었습니다. 시작은 외국 청소년문학을 선별하는 일이었습니다. 현실에 천착한 책을 써낼 우리나라 작가군이 부족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독자들은 물론 작가들에게도 좋은 자극이 될 수 있도록 외국 청소년문학을 엄선해서 번역하는 일이 시급했습니다. 미국보다는 독일을 포함한 유럽의 책들이 아이들의 현실을 더 심도 있게 다루고 있었습니다. 제일 먼저 발굴해낸 책이 『행복이 찾아오면 의자를 내주세요』, 억압적인 학교 교육현장에서 아이들 간의 우정과 선생님과의 관계를 담아낸 책이었지요. 1318시리즈를 내겠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반대가 심했습니다. 발의했던 친구가 최옥미 초대 아동문학 팀장이었는데 청소년문학이라는 분야가 없으니 서점에 진열도 될 수 없다고 ‘망하는 지름길이다’라는 반응이었지요. 학교 현장에서 독서운동을 펼치는 선생님들의 활동이 더 활발해질 테니 책 선정과 더불어 홍보 역할도 맡아주실 수 있겠단 생각으로 제가 적극적으로 지지했습니다.
안찬수
청소년기에 읽던 책들을 보면 한쪽에는 조은파의 『얄개전』이 있었고요. 그때 명칭이 ‘소년소녀 명랑소설’이었어요. 학원 문화사에서도 나오고, 주로 아동 쪽이지만 계몽사와 지경사에서도 나왔었지요. 또 한쪽에는 소위 헤세의 『데미안』으로 상징되는 성장소설이 있었습니다. 고전이라 연령과 상관없이 읽어야 하는 책들입니다만. 그리고 한국 단편문학이 있었죠. 청소년기에 읽어야 할 책들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충분치 않았던 때에 사계절에서 문제를 설정하시고 새로운 내용을 담아보자 하셨던 거지요. 청소년이라는 단어 대신 ‘1318’이라는 말을 쓰셨는데요.
강맑실
1318 대상의 질 좋은 오락프로그램이 MBC에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단어를 얻어온 거죠. 십 대, 또는 청소년이라는 말은 관변화한 듯해서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안찬수
청소년靑少年이라는 단어의 연원을 따져보니 1920년대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만든 단어라고 합니다. 계도해야 할 대상으로서의 청소년이라는 단어와 1318문고가 설정하고 있는 이 '1318'이라고 하는 세대는 독자층으로의 설정에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단순히 MBC에서 그 단어를 썼기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문제 설정이 우선 있었기 때문에 1318이란 단어를 찾아내신 것 같습니다. 그 지점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청소년이라는 단어의 개념이 참 헷갈리는데요. 법령적으로 말할 때, 그리고 일반적으로 우리가 학생이라고 말할 때, 애들이라고 말할 때 다 다릅니다. 나라마다도 다른 것 같아요. 독일은 킨더 운트 유겐트Kinder und Jugend라고 하지요. 아동·청소년이란 단어가 독일식 단어입니다. 영미권은 또 다릅니다. 우리가 아직 정립하지 못하고 있어요. 법령의 규정만 해도, 법마다 다르게 정하고 있어요. (「청소년기본법」에서는 9세~24세, 「청소년보호법」에서는 19세 미만으로 되어 있음)
김태희(사계절 아동청소년문학팀 팀장)
영어권에서는 영어덜트Young adult 혹은 주로 틴에이저Teenager라는 말을 씁니다. ‘1318’이라는 말은 그와 비슷한 듯하면서도 억압된 걸 풀어주는 느낌을 담고 있어요. 제가 사계절에 합류한 게 2004년이었고 97년에 외부인의 눈으로 봤을 때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을까 ?’ 궁금했었죠. 왜냐하면 지금처럼 그림책이 부상한 건 2000년대 초였고, 그전까지는 초등 고학년부터 중학생을 위한 아동문고가 유행하고 있었거든요. 아동문고 시장이 탄탄히 형성되어 있어 내기만 하면 책이 팔리던 시대에 왜 우리에게 낯선 걸 시작했을까 궁금했어죠. 출판계에서는 다들 ‘어떻게 하나 두고 보자.’ 했던 것 같습니다. 2000년대 중반이 되니까 청소년문학이 블루오션이라고 비룡소도 문학동네도 창비도 뛰어들었지만 90년대 말에는 놀라웠습니다.
안찬수
개척의 공이 있는 거지요. 1318문고의 목록을 보면 이런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는 기존과 다른 지향을 갖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독일이 자랑하는 아동·청소년문학상을 받았다고 다 소개하신 것도 아니고 그중의 일부만,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상 수상작 가운데서도 일부, 뉴베리 상을 받았다고 다 소개하신 것도 아니고 말이지요. 사계절만의 눈이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눈이 뭘까? 유혜자 선생님이 번역하신 미리암 프레슬러의 『행복이 찾아오면 의자를 내주세요』는 참 찾아내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어떻게 찾아내신 건가요?
강맑실
다양한 주제를 통해 청소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이 겪는 학교에서의 문제, 친구와의 문제, 선생님과의 문제, 진로문제, 가족 간의 갈등… 실존적인 일상의 것에서 인종, 평화, 인권의 문제로 나아가려고 했고, 그런 주제의 외국작품을 선별하면서 한국적 상황과 직결되어 있는지가 기준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읽었을 때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책을 찾았습니다. 92년에 홀츠바르츠의 그림책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를 번역해 냈을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사계절의 마니아 독자 분들이 계세요. 바로 전화를 하셔서 ‘왜 외국책을 번역하느냐?’ ‘우리나라 책은 왜 못 내느냐’ 비판을 하시거든요. 하루라도 빨리 우리 현실에 발 딛는 책을 내야겠다고 했었고, 거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해주셨던 게 박상률 선생님이었습니다. 처음부터 기획위원 격으로 자문도 해주시고 중심을 잡는 역할을 해주시다가 직접 쓰시기 시작했으니까요.
안찬수
‘책읽는사회’가 2004년에 기적의도서관에서 청소년 대상으로 작가와의 만남을 개최했었어요. 도서관에 작가와의 만남이 없었는데 도정일 선생님이 어떻게 도서관에 그런 것조차 없냐고 해서 그때 프로그램 이름이 뭐였냐면 ‘문학의 순회대사’였어요. 앰버서더. 도서관으로 사람을 한 사람씩 보내던 때, 박상률 선생님이 참 열심히 다녀주셨어요. 2000년도 초기에도 청소년문학에 관여하는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김태희
박상률 선생님은 구체적으로 독자를 청소년으로 정하고 이것은 ‘청소년 문학’이다, 나는 ‘청소년 소설 작가’다 라고 명토 박아 글을 쓴 국내 최초의 작가였어요. 박상률 선생님의 『봄바람』을 시작으로 ‘아, 청소년 책이라는 게 이런 거야? 나도 이렇게 써보면 되겠네.’ 하고 원고도 점점 들어왔고, 또 그 작품을 예시로 들며 저희가 원고를 청탁하기도 하면서 이후 국내 청소년 문학이 활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안찬수
소설가 한창훈 선생님이 『열여섯의 섬』을 쓰셨고, 김남일 선생님의 『모래도시의 비밀』도 있었고, 김종광 선생님의『처음 연애』, 이상운 작가의 『내 마음의 태풍』도 있었지요. 2002년에 사계절 문학상은 어떻게 구상을 하셨던 겁니까?
김태희
1318문고의 지향점이 아이들이 삶의 주체로 살 수 있게 저변을 마련하는 것이다 보니까 우리 문화와 정서에 맞는 우리 책을 발굴하는 작업이 절실히 필요했고, 한편으로는 청소년문학의 존재를 알리고 관심을 환기하기 위해 2002년에 처음으로 상금을 내걸고 작품을 공모하는 사계절 문학상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초기에는 문학상 자체를 많이 모르시기도 하고 지금처럼 홍보도 쉽지 않았기 때문에 응모 편수도 많지 않았습니다. 수상작이 나오지 못한 해도 있었습니다. 그때 순수창작지원금 오백만 원에 선先인세 천만 원을 상금으로 내걸었는데 뒤이어 청소년문학상을 제정한 출판사들은 전액 선인세이긴 하나 이천만 원을 상금으로 내걸기도 하여, 저희가 방침을 수정하는 과정이 있기도 했습니다.
2회 때 『푸른 사다리』로 사계절 문학상을 받으신 이옥수 선생님은 지금도 활발히 청소년문학을 하시고 계시죠. 청소년 문학 작가들은 아이들을 만나면서 아이들한테 기운을 얻고 이 아이들에게 힘이 되는 좋은 작품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문학상을 통해서 신여랑 작가도 처음 등단했고, 김해원 선생님은 동화만 쓰시다 『열일곱 살의 털』로 처음 청소년문학을 쓰셨고, 박지리 작가 같은 경우는 25살에 아이들이 재미있는 작품이라고 서로 추천하는 책이 된 『합체』로 등단을 하셨어요. 『합체』 같은 경우는 아이들이 즐기면서 읽고 재미있는 작품이라고 추천하는 책이 되기도 하고. 문학상을 통해 국내 작가군도 자리 잡히고, 다양한 주제와 소재를 다루는 작품들이 많아졌습니다.
안찬수
지난 주말에 이 인터뷰를 하려고 도서관에서 문고 백 권을 쌓아놓고 들춰봤습니다. 청소년문학으로 한정 않고,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독자 전체를 대상으로 했을 때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나서주실 청소년 문학 작가가 누굴까? 청소년 문학을 눈 밝게 읽어내고, 청소년들이 뭘 보면 좋을지, 어떤 책이 나와야 될지 하는 논의가 우리나라에 너무 부족했기 때문에 아직 거기까지 가진 못한 것 같습니다. 1318문고의 작가들이 한 스무 분 정도 계시고, 박상률 선생이 우뚝하신 것 같습니다. 대표할 만한 작가가 누가 있나요?
강맑실
문학판에서 뛰어나게 인구에 회자되는 분들은 좀 되지요. 이옥수, 이송현, 이재민, 신여랑, 김선희 작가, 작년에 『델 문도』로 문학상 받은 최상희 작가도 있고요. 문학상 대상 수상 작가들의 단편을 모은 책이 이번에 백 번째로 나온 책 『세븐틴 세븐틴』입니다. 공선옥 작가의 『그리운 메이 아줌마』처럼 어른들이 읽어도 손색이 없는 책들은 양장본으로도 내고 있습니다.
김태희
성인문학과 비교하면 그 성과에 비해 아동청소년문학이 주목을 덜 받는 면이 있습니다. 1318문고의 여러 책들이 외국에 소개되고 있고, 김해원 작가의 『열일곱 살의 털』은 중국에서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고 있거든요. 하지만 막상 아동·청소년문학 작가들이 강연이나 국제도서전에 초청되어 가보면 성인문학 작가들에 비해 안 좋은 대우를 받는 경우가 허다해요. 그럴 때 아동·청소년문학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다 드러나거든요. 아직까지도 문학의 하위범주로 취급받는 게 큰 것 같습니다. 교육의 수단으로 본다든지요.
안찬수
이건 저의 이상한 취미인데, 문지 시선과 창비 시선이 백 권에 도달하기까지 얼마나 걸렸나 메모해 놓은 게 있어요. 보니까 뒤로 갈수록 가속도가 붙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나온 민음사 오늘의 시선이 강렬하니까 처음 판형들은 그렇지 않았는데 지금 시집은 전부 민음사 판형으로 나오고 있거든요. 다 똑같아지니까 조금 지겹다는 생각도 듭니다. 1318문고의 판형도 고민을 많이 하신 것 같습니다. 가로를 조금 잘라서 날렵하게 한 일반 단행본 판형의 변형이거든요.
김태희
아무래도 1318문고가 먼저 나왔다 보니까 외향적으로 덜 세련돼 보일 수 있어요. (웃음) 1318문고가 50권에 도달하기까지 97년에서 2008년까지 거의 10년이 걸렸거든요. 그런데 후발주자들은 3~4년이면 50권을 넘겨요. 저희는 굉장히 신중하게 골라서 일 년에 8권을 내면 많이 내는 건데, 다른 출판사에서는 일단 볼륨을 키워야 하니까 속도를 내는 수밖에 없을 것 같고요. 장르에 있어서도 1318이 상대적으로 고전적 청소년문학이 많다면 후발주자들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선호하는 요즘 경향을 반영해 오락성이나 장르문학적 성격의 문학을 많이 내는 편이에요.
안찬수
사계절 문학상을 시작으로 우리나라 출판사 문학상이 만들어졌습니다. 창비, 문학동네, 비룡소도 수상하고 있고요. 시너지가 난 건가요? 아니면 더 어려워진 건가요?
강맑실
좋은 작품들이 다른 출판사에서도 나오니까 사계절 문학상만 놓고 보면 선정 빈도수는 예전 같지는 않지만 청소년문학이라는 분야 자체는 더 풍성해진 거지요. 독자 입장에서는 질 좋은 작품을 고를 수 있는 폭넓은 선택지가 마련되고, 그만큼 작가들에게도 자극이 되고, 출판사 입장에서는 더 좋은 책을 내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경각심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안찬수
더 좋은 책이라는 그 지점이 참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독일에는 빌둥스로망Bildungsroman이라는 전통이 있습니다. 성장소설, 교양소설은 소설사와 문학사에서도 굉장히 독특하게 다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전통이 없기 때문에 강신재 선생이 성장소설을 쓰신 적이 있고, 교단에 계셨던 이창동 작가나 전상국 선생이 교단의 체험 속에서 우리 다음 세대의 문제를 작품화하고 했던 건데요. 어떤 책을 권해야 할까? 팀장님께도 편집자로서의 고민이 있었을 것 같아요.
김태희
‘지금 여기’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는 게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책은 재미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작품성과 더불어 한번 책을 잡았을 때 끝까지 읽게끔 만드는 문학성이 있어야 해요. 청소년들 내면의 갈등과 성장, 청소년들이 접하게 된 현실은 결코 밝지만은 않지만 그럼에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요. 청소년 독자들이 좋아하는 박지리 작가의 『합체』 같은 경우 말도 안 되고 황당한데 재밌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려면 편집자 혼자의 고민만 있어서는 안 되고,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안찬수
어려운 문제입니다. 저희가 하는 사업 중에 ‘책날개’라고 민간재원에 예산을 매칭해서 개학할 때 신입생들한테 책을 선물하는데 뭘 넣어야 될지 굉장히 막막하더라고요. 도서 선정위원 모시는 것 자체가 힘들어요. 작가들은 자기가 쓴 책이니 안 되고, 학교 선생님들이라고 청소년문학을 쭉 읽으신 게 아니라 교육적으로 필요한 책만 읽으신 게 전부고요. 눈 밝은 독자가 손꼽을 정도로 적습니다. 청소년이 뭘 보면 좋을지, 어떤 책이 나와야될지에 대한 논의가 너무 없는 거예요. 의논할 사람도 마땅치 않아 저희가 활동할 때도 굉장히 갈급합니다. 지금은 잡지도 없잖아요?
김태희
한동안 「풋」 「자음과모음 r」「청소년문학」이라는 청소년 문학잡지가 있었는데 모두 폐간되었지요.
강맑실
청소년문학의 풀은 넓어졌지만, 그 담론은 대중적으로는 확산되지 않고 극소수의 특수한 그룹에서만 논의가 되고 있을 뿐이죠. 공론의 장도 활발하지 않고요.
안찬수
1318 들이 읽을 만한 책을 내는 좋은 출판사 열 곳에 스무 곳 더해서 서른 곳이 된다고 하면 그런 고민을 나누는 편집자들의 모임을 가지면 어떨까요?
김태희
좋은 생각인데 현실적으로 쉽진 않겠습니다. 좋은 아동·청소년문학을 제대로 짚어주고 소개해주는 평론가 그룹이 있으면 좋겠으나 그마저 부족한 실정입니다.
안찬수
사계절과 메이저 출판사, 그리고 마이너한 일인출판을 포함해서 1318 도서목록을 만들고 계신데 현장의 선생님들은 그 목록 자체가 어렵고 재미없기 때문에 뭘 봐야 할지 모르겠다며 책사회 더러 도와달라고 하십니다.
강맑실
굉장히 형식적인 도서목록인 거죠. 큰 효과는 없어도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알릴 방법이 없다는 데서 나온 자구책인 셈입니다. 재작년부터는 전국 도서관의 사서 선생님들과 직접 연결되는 네트워크를 구축해서 저자와의 만남을 주선하기도 하는데요. 학교도서관 현장 한 편에서는 프로그램의 부재가 문제가 되고 있거든요. 그래서 도서관대회에 가서 저희 프로그램을 설명하면 반가워하시는데, 모르시는 분들은 완전히 상업적인 프로모션으로 생각해버리기도 하니까요. 안타까워요.
안찬수
엄청난 노력을 하고 계시네요. 개개 출판사가 감당 못 할 일입니다. 편집자와, 사서와, 독자가 만나는 다리를 놓는 역할을 하려고 책사회도 애를 쓰고 있습니다.
이건 다른 질문인데요. 우리 사회에 청소년 문학이라는 게 뿌리내리기 위해 어떤 걸 구상하고 계실까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런데 청소년 시는 왜 없는 거예요? 100권 안에는 주로 소설과 에세이, 희곡이 있습니다. 청소년 시는 왜 없는 거죠?
김태희
과연 필요가 있을까요? 최근 창비에서 청소년 시를 내기 시작했는데요. 성인 시도 있고, 동시도 있는데 여기에 굳이 청소년 시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내는 거잖아요. 시인들 사이에서 설전이 벌어지기도 해요. 시적 언어라는 것 자체가 청소년과 어른을 가를 필요가 있을지요? 시적 언어나 시적 감수성은 다르다고 생각하거든요. 또 청소년 소설은 지금 나아졌다고 해도 일반문학의 하위 장르처럼 오해하셨던 것처럼 청소년 시를 일반 시의 하위 장르로 자리잡게 만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습니다. 사실 출판사에서는 이 출판사에서 청소년 소설을 시작했으니까, 우리는 청소년 시라는 새로운 장르를 정착시켜보자 하는 목적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요. 어떻게 정착되는지 지켜볼 일입니다. 청소년이 쓰는 시도 아니고, 청소년을 위한 시?
안찬수
청소년이 읽을 때 제일 좋은 시를 꼽으라면 윤동주의 서시, 평생 간직할 시죠. 청소년기에 순결한 영혼의 맛들…….
김태희
맞아요. 차라리 그런 시들을 모아서 아이들이 끊임없이 읽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안찬수
시는 청소년 문학이라고 했을 때 여전히 논란거리군요.
강맑실
희곡도 저희가 유일합니다. 아주 좋은 희곡이어서 실험 삼아 내봤는데 낯설어서인지 반응이 적습니다.
안찬수
올해 연초에 극단 학전의 김민기 형이 일부러 책사회를 찾아오셨습니다. 상업화되어 있는 대학로 연극판에서 고군분투하시는 거예요. 학전에서 만드는 어린이극은 사계절 1318문고가 지향하시는 바와 같이 어린이들의 오늘의 현실을 연극화한 것인데 상업적으로 성공할 리 없을 거고, 기적의도서관 순회를 하면 좋겠다 해서 비용을 꼽다 보니 규모가 있는 연극의 경우 한 번 갈 때마다 최소 천만 원씩 드는 거예요. 이를테면 그런 거예요. 현장에 들고 가야겠는데 저희도 똑같은 고민이 있습니다.
김태희
1318 연극체험놀이라고 『소년이 그랬다』 같은 청소년 희곡을 대본으로 바꿔서 학교에서 아이들과 간단한 대사 중심의 극으로 올려봤는데 참 좋았습니다. 얽히고설킨 문제적 관계를 자기 고민으로 바꿔 친구들과 선생님과 공감할 수 있고 몸으로 체험할 수 있고 찾아가서 간단하게 대사 중심으로 연극을 했는데 재밌었는데 저희가 그걸 지원할 수도 없고요.
안찬수
이른바 장르문학들 있잖아요. 눈에 두드러져 보이는 게 리처드 애덤스의 『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 영국식 동물 판타지예요. 사실 저희 때도 그렇지만 청소년기에는 『셜록 홈즈의 모험』 같은 추리나 판타지에 끌려서 열심히 읽곤 하는데, 이런 영역은 1318문고에 많이 안 들어와 있습니다.
김태희
지금은 저희도 많이 구하고 있죠. 몇 년 전부터 작가들과는 재난, 서바이벌, 판타지, 추리, 미스터리에 대한 얘기를 많이 나눠요. 사계절 1318문고의 정체성이 참 힘든 게, 좋은 외국작품을 가져와서 내면 편한데 ‘사계절이 그러면 되겠냐?’는 비난이 있어서 국내 작가를 통해서 그 이상의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어요. 일반 독자들이 외국 문학만 읽어 한국 문학이 죽는다는 소리가 있는데 그만큼 요즘은 외국 문학이 낯설다는 거부감이 전혀 없어요. 하지만 우리 문학으로 승부를 걸고 싶다는 욕심이 있기는 하고요. 『블랙 주스』나 『화이트 타임』은 마고 래너건의 굉장히 좋은 환상소설 단편집인데 사계절이 이런 책을 번역 출간할 때에는 우리 작가들이 보고 자극을 받아서 그 이상의 우리문학을 만들어달라는 주문이 담겨 있어요.
안찬수
‘사계절이 그러면 되겠냐?’. 무서운 말입니다. 칼날 위에 서 있는 상황이신데요. 요즘 아이들의 감각을 따라가기 힘들지 않나요?
김태희
1318세대의 ‘지금, 여기’ 현실을 다룬다는 게 쉽지가 않습니다. 여기저기 추천도서 목록에 올라간 초기의 문고가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지만 새로운 세대의 아이들에게 90년대의 목록을 좋은 책이라고 읽으라고 하면 재미있을까 우려됩니다. 당시에 새로웠던 책들이 벌써 낡은 느낌이 들어요. 그만큼 세대가 빨리 변하고요. 조앤 롤링이 『해리 포터』를 몇 년 동안 반려 당했다는 이야기가 유명한데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분이에요.
안찬수
영국은 지금 세계에 팔아먹는 게 없어요. 자동차도, 반도체도 없는데 셰익스피어 이후의 『해리 포터』가 프리미어리그와 더불어 국가적 산업이에요. 조앤 롤링이 유모차 끌고 『해리 포터』를 집필했던 공간에서 관광객들이 차를 마시고요.
김태희
다른 컨텐츠도 아우를 수 있는 문학 컨텐츠를 개발할 수 있도록 국가 사회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답답한 일입니다.
안찬수
요즘 청소년 문학 시장은 어떻습니까?
김태희
우선 아동청소년 인구가 엄청나게 줄어들었고, 부모세대의 변화가 있습니다. 지금 부모들은 우리 아이들에게 굳이 책을 읽혀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요. 교과연계가 아니라면 책을 읽히는 걸 그다지 반가워하지 않는 대신 영어랑 중국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안찬수
북스타트를 처음에 시작했을 때 한 해에 태어나는 신생아가 52만 명 정도 됐는데 지금은 43만 명 태어납니다. 지난 10년 사이 신생아가 약 10만이 줄었습니다. 합계 출산율이 1.0을 가까스로 넘을 뿐입니다, 과거에 한 명의 뛰어난 인재가 아홉 명을 먹여 살린다고 했다면 지금은 버릴 아이가 단 한 명도 없는 겁니다. 아이들의 능력과 재능과 지향을 어떻게 발굴해서 새로운 먹을거리를 창출해 낼까 하는 고민이 있어야 합니다. 자유학기제도 그런 고민 속에서 나온 제도인데 아무런 준비가 없습니다.
김태희
자유학기제가 운영되는 걸 보면 의도를 모르겠습니다. 학교에서 하는 진로 체험이란 너무나 형식적이고요.
안찬수
수용할 수 있는 기관 사업체도 없고 준비 없이 현장에 적용하려니 선생님들도 막막할 거예요. 저희는 올 초부터 자유학기제를 책과 관련된 활동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나 논의하고 있습니다. 사실 취지는 나쁘다고 하기 어려워요. 미래학자들이 미래에 없어질 직업군으로 변호사, 의사처럼 정보를 다루는 직업을 꼽고 있는데요. 시험의 부담 없이 미래상을 그려보고 고민하는 게 자유학기제의 취지일 텐데요.
김태희
청소년문학에는 기성세대를 바라보는 청소년들의 시각과 비주류들의 삶이 담겨있어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토론할 거리가 충분히 많은데 왜 이런 걸 활용하지 못하고 마트에서 캐셔 체험을 하고 창고 물건 분류하는 걸 아이들이 직업체험이라고 하고 있다는 게 너무나 끔찍합니다.
안찬수
어려운 점이 있다면 어떤 게 있나요?
김태희
청소년문학도 시장이 안 좋아서 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에는 만 부씩 책을 찍었다면 지금은 삼 천부를 일 년에 소화하는 것도 힘든 상황입니다. 예전 같으면 충분히 책으로 나왔을 원고도 요즘은 출간이 쉽지가 않습니다. 90년대 말에 어린이 잡지에 한 편만 실려도 출판사에서 서로 가져가려고 했던 것과 비교되는 대목입니다.
안찬수
전부들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으니 말이죠.
김태희
요즘은 뉴스가 소설보다 더 미스테리하니까요. 어떤 날은 뉴스만 읽어도 하루가 다 가요. 문학이었다면 개연성이 없다고 할 정도의 일들이 마구 일어나는데 소설이 따라갈 수가 있나요?
한편 청소년문학이다 보니 교육제도와 나란히 갈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는데요. 책을 읽은 뒤 독서기록장을 쓰게 하고 수행평가 점수를 매기는 도구로만 전락되는 게 아닌지, 아이들에게 숙제를 만들어주는 게 아닌지 고민이 되기도 해요. 어른들도 책 읽고 요약해서 내라고 하면 누가 읽겠어요? 읽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공감을 해야 재미인데 말이에요.
안찬수
결론에 거의 도달한 것 같습니다. 1318문고에만 한정된 게 아니라 사계절이 걸어오는 과정에서 전범을 많이 보여 오셨습니다. 우리 다음 세대들이 읽어야 될 책을 만드는 갈 길이 어떤지, 지향이나 고민하고 계신 게 있으면 말씀해 주시지요.
강맑실
사계절이 끝까지 지켜내려고 했던 것은 관점의 문제예요. 발 딛고 사는 세상 속에서 무얼 지켜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지켜야 할 게 있다면 지속적으로 관철시켜 나가자. 책 속에서 그 관점이 관철되어야 되기 때문에 저는 회사를 대표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반드시 책을 다 읽고 출간을 해오고 있습니다. 외국책의 경우 번역을 다 해놓고 보니까 미비하게 오해받을 수 있다는 판단이 들 때는 출간을 접기도 합니다. 청소년은 누구를 만나느냐, 어떤 책을 읽느냐에 따라서 가치관이 튈 수 있는 질풍노도의 시기잖아요. 위선적인 허위로 덧칠된 거짓된 책들이 사실 허다하게 많거든요. 아름다움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를테면 성형을 하더라도 예뻐야 되는 것, 그게 아름다움이라고 가르치는 책들이 무수히 많아요. 청소년들이 읽는 책에 대해서는 그 철학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단 생각을 합니다. 한 권의 책이라도 궤도 이탈을 할 경우 문고 전체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심사숙고해서 선별해나갑니다. 저희 출판사가 낸 책은 인문서이건 그림책이건 어떤 분야가 됐건 책의 정신을 지향한다고 해놓고 어긋나는 지점이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어요. 책은 재미와 감동이 있으면서 동시에 계몽적이면 안 되므로 쉬운 일만은 아니에요. 국내작품의 경우 주제가 좋고, 신선해도, 그 의도가 너무 드러날 땐 팀장과 팀원들이 저자와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눠 그런 요소를 없애서 내려고 하기 때문에 시간이 참 오래 걸립니다. 작가들도 지쳐 하지만 그래도 다시 또 책을 내자고 다시 오실 때 사계절 식구들은 보람을 느낀다고 합니다.
안찬수
“사계절이 그러면 안 된다.” “사계절은 이래야 한다.” 정말 쉽지 않을 듯싶습니다.
강맑실
열혈독자들의 지켜봐 주는 시선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긴장하고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안찬수
책사회 일을 하면서 ‘청소년들이 어떻게 책과 만나야 하는가?’ ‘어떤 책을 만나야 하는가?’ 고민이 큽니다. 간사들도 논의를 위해 여러 선생님들을 만나러 다니고, 우리가 했던 책 운동들도 다시 반추해 보고 있습니다. 1318문고가 100권이 되기까지 간난신고로 지켜온 ‘사계절’의 한결같은 생각과 고민들이 맞닿아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속 발전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