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회의〉 400호! 1999년 2월 5일 〈송인소식〉으로 첫 호가 나와 2004년 7월 제호를 ‘기획회의’로 이름을 바꿔, 지금까지 쉼 없이 달려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한 호, 한 호 쌓아온 〈기획회의〉의 역사는 그 자체로 우리 출판 역사의 한 장일 것입니다. 10돌을 맞이하던 2009년, 당시 출판계의 최대 화두였던 ‘도서정가제 정착’을 위해 ‘문화를 살리는 힘 도서정가제’의 특별좌담에 저도 참여한 바 있습니다. 그때의 기억이 새롭습니다. 15돌 기념호 때는 별책 단행본 『한국의 출판기획자』를 통해 ‘퍼블리터’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던 것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기획회의〉는 출발 초기에는 출판인들을 위한 업계 잡지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어엿한 서평지가 되어 있습니다. 물론 아직도 〈기획회의〉의 판권란에는 ‘출판전문지’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기는 합니다만, 저는 〈기획회의〉의 여러 꼭지 중에서 ‘분야별 전문가 리뷰’를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문학/인문/비소설/과학/경제경영/아동/청소년/만화 등 각 분야의 ‘눈 밝은 이’들의 서평은 시간을 들여 읽어보려고 애를 씁니다.
조금 오래 된 이야기입니다만, ‘뉴욕타임스북리뷰’가 펴낸 책을 본 적이 있습니다. 『Books of the Century: A Hundred Years of Authors, Ideas, and Literature』(1998)라는 책인데, 1896년부터 1997년까지 100년 동안의 서평 연대기를 통해 기억에 남는 작가와 사상가들이 어떤 이들이었는지, 그리고 주목할 만한 서평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다룬 책입니다. 그런데 제 눈에 띈 대목은 출간될 당시에는 뉴욕타임스북리뷰가 별로 주목하지 않았지만 이후에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목이었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The Catcher in the Rye』(1951)과 같은 작품입니다. 뉴욕타임스북리뷰는, “아, 그때 우리 눈이 삐어서 그 책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100년 동안 자신의 서평을 되짚어 보면서 자신의 실수까지 드러내다니, 저는 감탄했습니다.
아마도 뉴욕타임스북리뷰의 서평 연대기는 자부심의 표출이었을 것입니다. 서평을 통해 만들어온 독자의 공동체, 영혼의 공동체에 대한 자부심. 믿을 만한 서평이 쌓아온 책과 정신과 문학의 역사에 대한 자부심. 그 자부심을 바탕으로 앞으로 100년을 이어 나가보겠다는 자부심.
사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서평지’다운 서평지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주목할 만한 서평지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고, 또 떠올랐다가 사라지곤 했습니다. 대한출판문화협회가 내던 〈출판저널〉, 교보문고의 〈사람과 책〉, 여기에 〈책과 인생〉〈미메시스〉〈서평문화〉〈라이브러리&리브로〉〈아카필로〉〈시선과 시각〉등등. 100년까지는 아니어도 한 세대를 견뎌내는 서평지를 낼 정도의 실력이 아직 우리에게는 없는 것일까요? 〈기획회의〉가 100년 서평의 연대기를 써나가기를, 저는 기대합니다.
독자 공동체에게 신뢰를 받는 서평지의 존재는 한 사회의 문화 역량 수준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평書評은 책에 대한 메타정보를 쌓아나면서도, 대상이 되어 있는 책의 가치에 대한 평가를 담고 있습니다. 서평은 저자의 생각과 서평자의 생각이 만난 대화록입니다. 서평은 대상이 되어 있는 책에 대한 생각과 느낌과 논평을 통해서 새로운 내용(콘텐츠)을 형성해나갑니다. 그렇기에 좋은 서평은 책을 새롭게 만나게 합니다. 그런 좋은 서평을 우리 사회가 더 많이 생산해낼 수 있어야 합니다. 〈기획회의〉가 앞으로도 ‘눈 밝은 이들’의 좋은 서평은 더 많이 담아내어 주기를 바랍니다.
평소에 저는 우리 사회에 프리뷰preview는 너무 많고 리뷰review는 너무 적다고 말하고 다닙니다. 하루에도 수십 종씩 쏟아져 나오는 신간, 그리고 그 신간을 각종 언론매체에 배포할 때 출판사는 빠짐없이 ‘보도자료’를 끼어 넣습니다. 언론사 종사자들이 너무나 바빠서, 시간이 없기에, 찬찬히 꼼꼼하게 책 한 권을 읽을 시간이 넉넉지 않아서 그렇다고들 하지만, 언론사의 기사를 보면, ‘보도자료’를 적절하게 녹인, 비슷비슷한 프리뷰일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의 언론사는 일차적으로 책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책에 대한 정보는 홍수를 이룹니다. 하지만 독자가 원하는 것은 일차적인 정보가 아니라, 이차적인 판단, 논평,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짧은 시간에, 단시일에 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 년을 돌아보면, 일 년을 내다볼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십 년을 돌아보면, 십 년을 내다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백 년을 내다보기 위해서는 백 년을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리뷰의 힘은 그런 것이라 생각합니다. ‘리뷰’는 지금 현재 새롭게 출간된 책을 앞에 놓고 일 년을, 십 년을, 백 년을 돌아보면서, 앞을 내다보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질문하고, 대화하고, 토론하는 힘, 생각하는 힘을 더욱 기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독자들은 신간에 대한 ‘정보’에 목말라 하는 것이 아니라, 신간에 대한 ‘이야기’에 목말라 하고 있습니다. 믿을 만한 매체가 꽤나 공들여 다룬 리뷰. 그 리뷰는 독자들을 책으로 이끌 것입니다. ‘책 읽는 사회’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는 그런 리뷰가 간절합니다. 질문하고, 대화하고, 토론하는 힘, 생각하는 힘을 북돋는 데 앞으로도 〈기획회의〉가 큰 힘을 보태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기획회의〉500호! 1000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 이 글은 〈기획회의〉 400호(2015년 9월 20일 발행, 발행인 한기호, 발행처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의 여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