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동아리를 위한 책 읽기 6
분야별 추천 도서_ 사회과학
생각해 보면 나의 공부나 삶에 가장 기본적인 영향을 준 책은 단연코 E.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라는 책이다. 이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두 가지 큰 방향에 관한 것으로,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유양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 빗대어 그게 아니라 존재양식으로 사는 것이 바람직함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우리가 독서동아리를 하더라도 짧은 시간에 많은 책을 읽어서 유식한 척하는 것(소유양식)보다는 하나를 읽더라도 천천히 깊게 읽고 다른 사람과 서로 생각을 나누며 지행합일하려고 노력하는 것(존재양식)이 옳다.
고미숙 선생의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북드라망)는 공부의 재미를 알게 해 준다. 우리가 어릴 적부터 공부를 많이 해야 하고 잘해야 한다는 소리는 수없이 들었지만, 어떤 공부가 바람직한 공부인지, 공부를 제대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따위에 관해서는 별로 배운 바가 없다. 이런 면에서 이 책은 여러 가지 답도 주면서 스스로 답을 찾게 하는 책이다.
사실, 우리가 독서동아리를 하면서 책을 선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책을 기준으로 해야 할까? 이런 질문 앞에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누군가 추천해 주는 책도 좋겠지만 자신이 이것저것 읽다가 가장 마음에 들고 두고두고 다시 읽고 싶은 책을 발견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란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책이란 결국,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살도록, 나아가 내가 나 자신을 찾도록 도와주는 책이라 하겠다. 그렇게 살아야 진정으로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동아리에서 ‘사회과학’ 책을 읽으면 좋은 점이다.
일례로, 와타나베 이타루의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더숲)는 남들의 눈치보다는 자신이 진정 하고픈 일을 하면서도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건강한 살림살이 경제를 만들어 가는 젊은 일본 부부 이야기를 다룬다. 내용도 흥미롭지만 마음이 참 따뜻해지는 책이다. 필자가 자기 책을 소개하는 것이 대단히 쑥스럽긴 하지만 《나부터 세상을 바꿀 순 없을까?》(이상북스)나 《팔꿈치 사회》(갈라파고스)도 우리가 각자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살면서도 서로 돕고 사는 것이 바른 길임을 잔잔하게 이야기한다. 일중독이나 소비 중독에 빠진 우리 자신부터 제대로 구제하는 지름길은 진정한 우리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나아가 그를 기초로 해서 경제, 교육, 노동, 정치, 문화 등 삶의 모든 측면을 근본적으로 재구성해야 비로소 행복한 삶이 가능해질 것이다.
20대부터 60대까지 세대를 아우르며 소통할 수 있는 책으로는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갈라파고스) 또는 스콧 니어링의 《스콧 니어링 자서전》(실천문학사)을 들 수 있다. 장 지글러의 책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결코 정의롭지 못함을, 왜 한편에서는 비만으로 고생하며 왜 다른 편에선 굶주림의 고통을 겪는지 잘 설명한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가치관으로 살아야 하는지 잘 설명해 준다. 한편, 스콧 니어링의 책은 미국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던 교수가 왜 귀농하게 되었는지, 왜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온갖 기득권을 누릴 수 있는 한 개인이 그 동반자와 함께 가장 자연스런 삶을 자발적으로 선택하게 되는지 알려 준다. 나는 니어링 부부가 쓴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보리) 같은 책도 동시에 권하고 싶다. 그들이 척박한 조건 속에서도 상황을 탓하지 않고 묵묵히 즐겁고도 행복한 삶을 꾸려가는 과정이 잘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니어링이 죽음이 임박해서 ‘죽어가는 과정을 스스로 느끼면서 아름답게 마무리하겠다’는 결심을 담은 유서는 나에게도 큰 울림을 주었다.
30~40대의 학부모들은 아이들과 바람직한 관계를 맺기 위해 졸저 《나부터 교육혁명》(그린비)이나 하임 기너트의 《부모와 아이 사이》(양철북) 같은 책을 읽기를 권한다. 《나부터 교육혁명》은 부모가 줏대를 가지고 행복하게 살면 아이도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며, 일류대 강박증이나 조급증을 버리고 ‘옆집 아줌마’의 선동에 흔들리지 말고 오히려 그들과 함께 교육 시스템의 변화를 같이 도모하자고 말한다. 《부모와 아이 사이》는 특히 우리가 자녀들과 소통을 할 때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 감정에 호응해 주며 아이 말을 경청하는 자세를 가질 때 우리의 관계가 훨씬 좋아질 수 있음을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결국, 우리는 책을 통해 삶을 성찰하고 새로운 시도를 할 용기를 얻게 된다.
한편, 어떤 사람은 고전을 꼭 읽어야 하는지, 책 읽을 시간도 부족한데 그냥 본인이 좋아하는 책만 읽으면 안 되는지, 질문하는 경우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간이 없더라도 고전을 읽을 필요는 있다. 하지만 그것도 추천 도서 목록에 의거해 기계적으로 읽으면 재미가 없다. 목록을 갖고 있더라도 언젠가 자신의 ‘삘’이 땡길 때 하나씩 읽다 보면 재미도 느끼고 의미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길)은 봉건주의 사회로부터 자본주의 사회로의 역사적 전환이 이뤄지면서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그 결과 현재 우리 삶이 얼마나 뒤틀려 있는지를 알아 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폴라니는 상품이 되어서는 안 되는 세 가지가 상품화되는 바람에 우리 삶이 크게 뒤틀렸다고 말한다. 그것은 토지, 노동, 화폐다. 땅이나 집을 오늘날 부동산이라 한다. 돈이 있으면 쉽게 사고판다. 그러나 부동산이란 이름은 어떤 면에서는 땅에 대한 모욕이다. 북미의 ‘시애틀 추장’이 1854년의 편지에서 “저 들판과 산과 강, 새와 새벽 공기 등은 모두 우리의 부모 형제자매들이다”라는 취지의 말을 한 것에 견주면 집이나 땅을 부동산이라 말하고 시세 차익을 노리는 것은 우리가 자연성을 대단히 많이 잃어버린 결과이다. 사람의 노동 또한 노동력으로 매매되는 조건에서 우리는 취업 걱정, 정리해고 걱정, 과로사 걱정, 노후 걱정을 하며 산다. 사실, 자본주의 이전의 농업 사회에서는 취업 걱정도 없었고 실업 걱정도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 돕고 살기에 누가 아프거나 큰일을 당해도 모두 같이 해결했다. 화폐는 어떤가? 원래 돈은 물품과 물품의 거래를 돕게 위해 탄생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이제는 돈을 불리고 시세차익을 얻는 수단으로 전락했고, 돈을 투자한 사람이 노동자를 함부로 부리는 권력으로 작용한다. 돈은 원래 삶을 위해 존재하는데, 이제는 삶이 돈을 위한 수단이 되고 말았다. 주객전도된 현실을 바꾸기 위해선 사람도 달라져야 하고 시스템도 달라져야 한다. 달라지기 위해서라도 우리 현실을 있는 그대로 알아야 한다. 그것이 변화를 위한 출발점이다.
아룬다티 로이의 《9월이여, 오라》(녹색평론사)는 인도 기층 사회의 오랜 가부장적 전통에 희생되어 온 사람들의 운명을 그린 《작은 것들의 신》(문이당)으로 영국의 부커상을 수상했던 작가 아룬다티 로이의 정치평론집이다. 그녀는 그 상을 받고서 일약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으나 정작 인도의 주류 사회로부터 끊임없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9월이여, 오라》는 현재 이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담은 여덟 편의 글을 통해 깊은 울림을 준다. 저자의 시선은 이 지구상의 온갖 작은 것들,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것들, 어린이들, 민중들에게로 향해 있고 특히 ‘이라크 해방 작전’이라는 미명아래 죽어간 수많은 어린이들과 민간인들을 사회적으로 애도하며 우리의 성찰을 촉구한다. 이와 함께 제임스 스콧의 《농민의 도덕경제》(아카넷)를 읽을 수 있다면, 우리는 전통적인 농촌 공동체에서 면면히 이어져 온 상부상조, 이웃사촌, 호혜경제의 본질과 의미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대안은 부자 나라가 되는 것이 아니라 소박하게 살더라도 마음이 평화로운 나라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한편, 인문학자 엄기호 선생은 《단속사회》(창비)라는 책에서 ‘단속’이란 개념을 주제로 한국 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저자는 ‘쉴 새 없이 접속하고 끊임없이 차단하는’ 단속의 양상을 주목하고 10여 년 간의 연구를 통해 우리는 언제 누구와 접속하며 단절하는지 사례를 수집하며 차근차근 풀어낸다. 이 책은 도시 공동체와 지역 커뮤니티, 회사, 또래집단 등이 붕괴하고 있는 양상을 살핀 뒤, 고통의 사회성에 무감각해진 사람들의 일상을 관계, 소통, 노동, 국가 폭력 이란 다양한 측면에서 조망한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고통을 구경만 하는 ‘구경꾼’, ‘몰이꾼’들에게 타인의 고통을 담은 이야기를 진지하게 경청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지를 말한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시대의 도래 이후 팍팍해진 우리의 일상을 성찰하는 가운데, 어떤 식으로 살아야 진정 맛깔스런 인생살이를 할 수 있을지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박중엽의 《삼평리에 평화를》(한티재)이란 책은 송전탑에 맞서 싸우고 있는 청도 삼평리 할머니들의 이야기다. 어르신들은 신고리핵발전소에서 밀양, 북경남변전소를 거쳐 오는 76만 5천 볼트 송전선로에서 분기해 청도군에 세워지는 40기의 초고압 송전탑 중 마지막 한 기를 막기 위해 2009년부터 한전에 맞서 싸우고 있다. 평생을 땅을 일구며 자연과 이웃에 의지해 살아온 할머니들의 인터뷰에 나타난 이야기와 삼평리 주민들이 핵발전소와 송전탑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싸워 온 과정은 사진과 함께 깊은 감동을 준다. 땅을 부동산이라 보고 함부로 대하는 도시 사람들의 마음이나 전기를 물 쓰듯 쓰면서도 이것이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져 우리에게 오는지 잘 모르는 우리 모두에게 성찰을 촉구한다.
청년유니온 구성원들이 합동으로 펴낸 《레알 청춘》(삶창)은 일하고 꿈꾸고 저항하는 청년들의 고군분투 생존기라 할 수 있다. 이들은 남대문시장 도매점 배달원, 비정규직 연구원, 공기업 계약직, 방송 작가, 학원 강사, 지방대 취업 준비생 등 열심히 살아가는 11명의 청년들을 심층 인터뷰했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에서 청년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솔직하게 밝힌다. 이들은 불쌍한 희생자들만이 아니다. 이들은 아르바이트라도, 극도로 불리한 고용관계에 있더라도 그 안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자존감을 지키려고 하며 노동자로서의 자신을 자각하고, 또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있다. 나아가 이들은 청년들을 옥죄고 있는 불합리한 사회제도에 대해 가감 없이 비판하며 발전을 위한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기도 한다.
이진경, 신지영 선생의 《만국의 프레카리아트여, 공모하라》(그린비)는 오늘날 갈수록 증가하는 비정규직 문제를 자세하게 들여다보고 나름의 해법을 제시한다. ‘프레카리아트’란 불안정한precarious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의 합성어이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진입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비정규직들이 스스로 뭉쳐 나름의 행복한 삶의 방식을 꾸려 나가는 것도 좋은 길이 될 수 있다. 저자들은 일본의 비정규직 단체들이 그런 방향으로 노력하는 것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한다. 결국, 우리는 정규직이건 비정규직이건 자본이 만들어 놓은 틀거리 안에서 더 높은 지위 상승을 추구하며 살기보다 정말 바람직한 인간과 인간의 유대감이나 상부상조하는 관계망을 두텁게 형성하는 실천을 통해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것이 척박한 삶의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만들어나가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독서동아리도 크게 보면 배움의 공동체일 뿐 아니라 우정의 공동체를 만드는 하나의 길이 될 수 있다.